평소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소임을 다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시다가 오늘 임인년 상달 10월 초아흐레에 불공을 올리는 원명화보살님 그리고 아드님 따님 일가족들 오늘 불공으로 또 한 획이 그어져서 성큼 나아가는 그런 날이 됩니다.
이 덕양선원 도량에 늘 나오셔서 수행하고 작복하고 이 일정에 따라서 더불어서 대비주 수행을 하고 또 하루 일을 불공 삼아서 즐겁게 하고 잘하고 복을 짓는 그런 시간을 보내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자기 집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삶을 아주 완전 연소 소신공양(燒身供養) 올리듯이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는 그 모든 분들이 보살님들이고 또 대비주 수행자들입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어떤 상황 여건에 있든지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특히 원명화보살님 계신 그 자리는 원명화보살님이 집에 계시든 법당에 나오셔서 함께 수행하시든 원명화보살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중심되는 자리고 그 자리에서 자비심이 흘러 나와서 가족들에게 또 전화 통화를 하거나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때도 자비심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그런 중심 되는 자리가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수행이고 불공입니다.
어떤 일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이것이 처처대비주 인인본래불 사사불공입니다.
항상 우리가 그렇게 살고 계시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뜻깊은 마음을 내어서 불공 올리면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죠.
이 불공 올리는 공덕으로 지금까지 정말 기도하고 또 가족을 돌보고 일을 하면서 일과 관련된 분들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고 했던 그 모든 그 공덕들이 또 한 획을 걷는다.
이런 좋은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발원도 풍성하게 원만하게 성취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평소에 가끔씩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보살이라는 것을, 또 내가 대비주 수행자라는 것을, 그리고 내 안에 무한한 지혜와 자비와 능력과 가능성이 처음부터 한 번도 아닌 적이 없이 무한하게 갖춰져 있다 하는 것을 가끔씩은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떨 때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서 어떨 때는 예민해지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렇더라도 상관없이 내 내면에는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 없이 무한한 지혜와 또 사랑과 능력과 가능성이 언제나 무궁무진하게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그것을 다시 긍정하고 발휘하는 삶을 살 것인가?
대비주를 지송할 때, 다시 확인됩니다.
그리고 다시 솟아나서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 덩어리가 내 마음에 자리를 턱 잡고 있으면 꿀꿀하다는 표현이 있죠. 하루 종일 그만 마음이 꿀꿀합니다. 그죠.
마음이 뭔가 좀 침체돼 있단 말이에요.
이럴 때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더 심하게 막 소용돌이에 떠내려가서 꿀꿀한 표정을 짓고 꿀꿀한 말을 하고 또 꿀꿀한 어떤 행을 하게 되면 이것이 업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굳어져 버려요.
자꾸 굳어져 버려서 그것이 푹 자고 나면 없어져야 할 정도로 가벼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얼굴이 그냥 굳어지게 하고 또 말을 그렇게 하고 또 행동을 그렇게 하는 바람에 금방 풀어지지 않고 그다음 날로 또 넘어가고 또 그다음 날은 좀 더 쌓여서 그다음 날로 넘어가고 해서 그만 일주일 내내 얼굴이 흐리고 마음이 꿀꿀한 상태로 지나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럴 때 이것을 알아차리고 언제 여기서 얼른 벗어나서 본래의 청정 자성, 본래의 무궁무진한 지혜 자비 능력 가능성의 본래 자기의 참 마음에 이르러서 그와 같은 마음으로 회복을 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게 바로 대비주를 지송할 때 그렇습니다.
대비주 지송하는 힘이 약한 경우에는 조금밖에 안 걷힙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성심으로 대비주를 외우고 외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요 3독 하면 되어버리다가 한독 하면 돼버리다가 아니면 대비주를 하겠다고 마음을 탁 내는 순간에 그만 없어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이런 비유가 있어요. 도장을 찍잖아요.
도장을 탁 찍는데 종이에 도장을 찍으면 선명하게 찍힙니다. 그죠.
이 도장이 딱 찍혀버리면 확정이 돼버립니다.
이 도장 찍는 것에 우리의 감정의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그 모습을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면요.
처음에는 이렇게 그냥 종이에 바로 도장을 딱 찍어서 내 마음속에 그냥 우울이라든가 꿀꿀한 것이 그대로 이 마음에 탁 각인이 돼버린단 말이에요. 찍혀버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찍어버려.
나한테 찍혔다는 말이 있잖아요.
‘너 나한테 찍혔어’ 이런 말이 있잖아요.
고얀 놈 이렇게 찍어버린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고얀 놈 하는 그 마음이, 화내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딱 자리를 잡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고얀 놈 하는 이 미운 마음이 성내는 마음이거든요.
골내는 마음이거든요. 이게 오래 간단 말이에요. 유효기간이 길어.
그러면 상대방도 나한테 찍혀서 안 좋고 고얀 놈 하는 내 마음의 이 에너지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고얀 놈 하는 것은 보기 싫다는 마음이잖아요. 그죠.
마음이 안 맞다는 마음이거든요.
이게 유심소현(唯心所現)이에요.
보기 싫은 일이 자꾸 벌어져.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자꾸 다가온단 말이에요.
상대방도 손해고 나도 손해고.
그래서 고얀 놈 하는 것을 얼른 버려야 되는데 이것을 버리는 방법이 알아차리고 대비주를 지송하면서 이것을 다 풀어버려야 돼요.
두 번째 유형은 뭔가 하면, 도장을 어디 찍는가 하면 진흙에 찍는단 말이에요.
도장을 진흙에 탁 찍어. 그러면 어떻게 돼요?
진흙도 좀 꾸덕꾸덕한 진흙에는 이게 오래 남죠.
그렇지만 물기가 많은 것은 금방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 마음속에 있는 꿀꿀한 것도 마음의 힘이 커져 버리면 어떤 것은 며칠 만에 그냥 지나가 버려요. 마음이 다시 회복된단 말이에요. 평상심으로 회복이 돼요.
계속 마음의 힘이 점점 자라게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가?
어디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돼버리는가 하면 물에 도장을 찍는단 말이에요.
물에 도장을 찍으면 어떻게 돼요.
흔적이 없죠.
그렇지만 뭔가 찍히는 느낌은 있어.
내 마음이 꿀꿀하거나 아니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떤 고얀 놈 하는 어떤 그런 것이 있단 말이에요.
어지러워 그냥. 휘저어져버린단 말이에요. 내 마음이.
그렇지만 금방 없어져 버려.
이런 거 경험해 보셨죠?
가족 간에도 바른 소리 한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죠. 마음 상하죠.
그러면 그게 어떤 경우에는 하루 종일 갑니다.
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어.
그러다가 아차 하고 바로 마음을 다시 회복을 하게 되면 금방 없어져 버린단 말이에요.
그럼 금방 웃어.
그런데 나중에는 도장을 어디에 찍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가 하면 허공에 도장 찍기를 하는 거예요. 허공에 도장을 찍어.
그러면 아무런 흔적이 없죠.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이 도장이라는 놈이 아직까지 있는 거야.
골내고 화내고 하는 도장이라고 하는 놈이 있단 말이에요.
그 도장도 완전히 없어져 버려야 돼.
그래서 허공처럼 맑고 아주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마음이 햇살처럼 환~~ 해야 된단 말이에요.
우리 원명화보살님은 대비주 수행을 꾸준하게 평생을 해오셨잖아요.
몸이 이제 불편하시잖아요.
몸 불편한 것도 초월해 버리고 그대로도 받아들이고 초월하기도 하고 다 포용도 하는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대비주로 꾸준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계셔도 원명화보살님 생각하면 원명화보살님을 생각하는 것이고
가족들이 모여서 만나도 우리 참 대도화보살님을 만나도 또 돌아가서 힘을 내는 것이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평생을 헌신하고 우리 아드님 따님을 정말 훌륭하게 잘 키우시고 이러한 삶을 살아오신 그 삶이 그대로 이 내 마음으로 치면 내 마음 이 팔식(八識)에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다 저장이 돼 있어요.
아무런 훼손됨이 없어. 공덕 쌓은 것이, 공들인 것이.
그리고 이 세상과 또 하늘로 나눈다면요.
이 세상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공덕을 쌓고 복을 지은 그것은 동시에 저 하늘에도 그대로 지금 차곡차곡 기록이 되고 쌓이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수행하고 작복하는 것은 계속해서 쌓여 나가는 거예요.
쌓여 나가서 한 세대가 이제 30년에서 36년쯤 봅니다.
원명화보살님은 한 36년쯤 하셨죠. 벌써 한세대 하셨죠.
옛날 어른들은 발복(發福)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그 후대에서 탄탄하게 쌓여 있는 공덕 그 위에서 후대에서 발복하면 된단 말이에요.
발복을 누가 해야 될까요?
부담가지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두 아님이나 따님이 꽃을 피우는 세대예요.
부모님의 평생을 헌신하신 사랑과 공덕의 그 토대 위에서 우리 아드님 따님 그렇게 활짝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독성기도 하는 날인데 독성기도는 특히 공부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기도예요.
학업 성취, 그리고 합격 성취를 발원하고 그리고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우리가 시험을 본다고 할 수 있어요.
다 시험 보고 있는 중이야.
지금 말 한마디 하는 것, 표정 짓는 것, 전부 다 지금 그대로 아까 말씀드렸듯이 차곡차곡 이렇게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차곡차곡 쌓여서 이게 그만 무르익어버리면 결실이 돼가지고 알밤이 돼서 툭 떨어져 버리거든요. 일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지금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쌓이고 쌓인 거예요.
시간도 오랫동안 쌓였고 그리고 혼자만의 어떤 원인이 그런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어떤 정부니, 지방자치 단체니, 아니면 어떤 역할을 하는 분들이니, 그쪽 지역의 상권이니, 또 주인이니, 또 손님으로 가는 분이니, 모여드는 그 모든 분들, 모든 분들이 전부 다 쌓이고 모이고 서로 인연이 되어서 어떤 일이 벌어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할 일은 뭔가 하면 그 인연과 조건을 만드는데 우리 몸도 마찬가지잖아요.
병도 그렇고 우리의 일이 되고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수많은 요인이 쌓이고 수많은 요인이 모여서 어떤 현상이 벌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밝고 맑고 정말 복이라는 것을 자꾸 쌓고 또 그렇지 않은 업장에 해당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100이 모여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복이 하나가 모자라면 100이 안 돼버리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복을 하나를 더함으로써 이루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100이 되어서 또 재앙이 일어나는데 그 재앙의 조건이 하나가 모자라도록 하는 것, 99까지 가 있는데 하나만 덧붙이면 100이 돼서 어떤 재앙이 만들어질 것인데 우리들이 수행하는 것은 업장 소멸하는 것은 하나를 덜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99에서 100으로 되려고 하다가 98로 내려와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한숨 돌리잖아요.
그때부터 속도를 내어서 덜 것은 덜어내고 더 할 것은 더 해가는 이것이 바로 수행이고 작복입니다.
이 수행과 작복은 처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절에 나와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하는 거예요. 우리 원명화보살님처럼.
오늘 오랜만에 원명화보살님 법당에 나오셔서 함께 이렇게 대비주 같이 하고 해서 감개가 무량합니다.
부디 더 건강하시고 이 가문에 큰 성취가 있으시기를 다시 축원드립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