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도산서원을 향해 출동 합니다~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 입니다.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께서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사후 건립된 서원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사립학교 입니다~
70여회나 관직을 사양하고 후학에 힘쓰다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 되었답니다.
선조때 명필 한석봉이 사액서원에 보낼 글씨를쓸때 퇴계 이황을 기린 현판 임을 알면,
망칠까봐 단어를 거꾸로 불러 마지막 자가 오른쪽 위로 살짝 치켜 올라 갔답니다
진본은 한국 국학 진흥원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역락서재의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로 정사정을 비롯한 제자들이 세웠다고 합니다.
이황 퇴계가 종택 부근 계상서당에서 가르치다 이곳으로 옮겨와,
도산서당을 지었을 때 함께 지은 제자들의 숙소 농운정사입니다.
퇴계 선생의 교육과 관련하여 남기신 말씀은,
현대인들이 구구절절 새겨들을 말씀입니다.
1.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다.
2. 배우는 사람의 공부 가운데 심신을 닦는 것보다 절실한 일은 없다.
3. 진리가 가까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4.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5. 빼앗을 수 없는 뜻과, 꺾이지 않는 기상과, 흐르지 않는 앎을 늘 지니도록 하라..
|
도산서원의 모태, 세 칸짜리 소박한 집 도산서당에 들러 봅니다.
두 사람 누우면 등이 맞닿을 만큼 작은 방에 살며 마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계단 오른쪽으로는 매화나무가 서 있는데 추운 겨울밤 마당에 핀 매화를,
감상하려고 화로 의자까지 만들었을만큼 매화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 현감으로 계실때 선생을 몹시 사모하는 기생이 사랑의 정표로,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나는 백매화를 구해 드렸는데 청렴 결백하신 선생께서 기꺼이 받으시고,
동헌 뜰 앞에 심고 즐기셨고 도산 서원에 있는 매화도 그 나무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ㅎ~ 목조건축 지붕위에 기왓장끝에 사용 되었던 기와인,
수막새에도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네요~
돌아 가실때의 유언도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 입니다
마당에는 못 정우당을 파고,
꽃 중에 군자라는 연꽃을 심었습니다.
시사단은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으로 세운 건물 입니다.
정조때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해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겼답니다.
전날 해설을 해 주셨던 해설사님을 다시 뵙게되어,
옥진각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듣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붓글씨로 이름났던 선조의 초서 어필, 추사 김정희의 현판을 비롯해 유명 서원과 집,
정자에 걸었던 당대 명필들의 친필 현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의 생애와 과거급제,
공직생활, 율곡 선생의 관계, 교육관, 말씀 등.. 안내문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입원록은 유생들이 서원의 동, 서재에 들어올 때 서명한 명부입니다.
매화시는 28년 동안 매화에 관하여 지은 시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신기독은 홀로 있게 되면,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기 쉬우므로 늘 조심하라는 뜻 입니다.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인 청려장(菁藜杖) 입니다.
안동호 위를 가로지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 월영교(月映橋) 입니다.
2007년 물문화관과 함께 개장한 월영공원은 바닥분수, 집합광장, 전통정자 및 방지,
녹음수변 산책로, 수변데크, 주변의 풍경을 즐기는 시설이 마련돼 있습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지은 부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답니다.
월영교는 이 들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이,
미투리 모양을 형상화 해서 월영교를 만들었다는군요.
첫댓글 역사 인물 좋은자료 잘보구갑니다
우리나라의 돈의 표지에 나올 자격이 있는 분이시죠.^^
감사합니다....
저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제일 마음에 와 닿는것이 흙탕물이라 생각되면 피하는 정신입니다. 아무리 벼슬을 주어도 주관있게 사양하는 청렴도는 현대인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