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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선왕조가 개국 된지 3년 뒤인 1395년 9월 준공되었으며, 세종3년(1421)에는 종묘 정전(正殿)의 서편에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종묘일대는 모두 소실(燒失)되었으나, 광해군 원년(1608)에 전란(戰亂) 이전의 규모로 중건(重建)되고, 그 후 몇 차례의 증축(增築) 및 보수(補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유학(儒學)을 바탕으로 창건된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유가(儒家)의 경전인 주례(周禮)의 좌묘우사(左廟右社) 제도를 따라 종묘의 터를 정했으며, 민족(民族)의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에서 비롯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한 줄기인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 자락에 종묘가 자리하고 있어, 지금도 백두산의 정기(精氣)를 끊임없이 받고 있는 명당(明堂)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으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음택(陰宅) 풍수설(風水說)에 따른 명당에 조성되어, 주위의 산세가 종묘 전체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듯 포근한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제례의식을 행하는 곳으로서, 건물과 공간을 엄숙(嚴肅)하고 신성(神聖)한 곳으로 꾸미기 위해 건축물의 구성, 장식, 색채를 간결하고 단순하게 하여 종묘를 한층 더 경건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사방 주변에는 울창한 숲을 조성하여 묘정(廟庭)에서만 공간이 하늘로 통하여 하늘이 내린 신령(神靈)스러운 기운을 가득 받도록 하였다.
사적 제125호인 종묘는 총 면적 56,500여 평으로 종로구 훈정동과 와룡동에 걸쳐 위치하며,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문화유산의 하나다.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는 정전(국보 제227호)과 영녕전(보물 제821호) 그리고 정전의 월대 아래 동편에는 정전에 모셔진 임금의 훌륭한 신하인 배향공신 83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공신당(功臣堂), 서편에는 인간의 운명을 주관한다는 사명(司命) 신(神)을 포함하는 일곱 신을 모신 칠사당(七祀堂)을 비롯하여 임금이 재계(齋戒)를 하던 재궁(齋宮 :어숙실), 제례를 위해 필요한 향, 축, 폐(香, 祝 :축문, 幣 :예물)를 보관 하고 제관(祭官)들이 대기하던 향대청(香大廳), 제사용품 및 음식을 준비하고 보관하던 전사청(典祀廳), 제례 때 사용하던 우물인 제정(祭井), 공인(工人)들이 대기하던 악공청(樂工廳), 임금이 머물며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나라와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망묘루(望廟樓) 등이 보존 되어있다.
종묘대제는 역대 왕들의 음덕(蔭德)을 기리고 나아가 그들의 가호(加護)로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매우 중요하고도 엄숙한 의식으로 조선 창건 후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으나, 1908년부터는 납제(臘祭)가 폐지되었고, 1939년부터는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어 양력 3, 6, 9, 12월 상순으로 변경 시행되다가, 이마저 광복 후에 모두 폐지 되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이왕직(李王職) 주관으로 향화(香火)만 올렸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1969년부터는 매년 1회 다시 시행 되었고, 1971년 이후로는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의 종묘대제 봉행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한 차례 봉행하고 있다.
제향을 올리기 앞서 임금 및 제관(祭官)들은 모두 청정(淸淨)한 상태에서 신(神)을 맞이하기 위해 7일간 재계(齋戒)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제향 하루 전 궁궐에서는 제향에 쓸 향(香)과 축(祝 :축문)을 임금이 헌관(獻官)에게 전달하는 전향축(傳香祝) 의식을 행한다. 제례에 참석하기 위해 임금은 제향 하루 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가마를 타고 궁궐을 떠나 종묘에 도착하여 먼저 종묘에 인사드리는 망묘례(望廟禮)를 행한다. 이어 종묘 신실(神室)의 내외(內外)를 두루 살펴보는 봉심(奉審)을 한 후, 제례 때 사용하는 제기(祭器)의 청결상태를 확인하는 성기의식(省器儀式)에 참여한다. 오후에는 선왕(先王)들께 올릴 희생(犧牲 :소, 양, 돼지)의 비척(肥瘠 :살찜과 야윔)을 검사하는 성생의식(省牲儀式)을 행한다. 제향 전에 치러야 할 이러한 의식들을 마친 임금은 재계(齋戒)의 마지막 밤을 재궁(齋宮)에서 지내게 된다.
재계를 끝낸 임금은 날이 바뀌어 축시(丑時 :새벽1시)가 되면, 수 많은 촛불과 등잔유(燈盞油), 조촉(照燭) 그리고 횃불이 신실(神室)의 내외 및 묘정(廟庭)을 밝히는 가운데 제례를 올리게 된다. 제례는 유교예법에 맞추어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그리고 신을 보내는 절차로 구성되며, 나라의 중요한 의례인 만큼 절도있는 격식에 맞추어 진행된다.
다음 의식인 천조례(薦俎禮)는 신(神)을 위해 음식을 올리는 절차로서, 희생을 올린다고 조상에게 고(告)하는 뜻으로 미리 잡은 소, 양, 돼지의 털과 피를 창자 사이에 있는 기름 및 간(肝)과 함께 신위 앞에 올리고, 그 중 간(肝)을 취하여 준소(尊所) 밖에 놓여있는 숯불 화로[爐炭]에서 부정(不淨)을 제거하는 뜻으로 태운다. 다음으로 소와 양의 장, 위, 폐(腸, 胃, 肺)와 돼지 살코기[豕膚]를 삶아 익힌 삼숙(三熟)을 올리는데, 제1실인 태조실(太祖室)에 삼숙을 올려놓을 조(俎 :제기)를천조관(薦俎官)이 받들고, 삼숙을 담은 생갑(牲匣 :제기)을 봉조관(奉俎官)이 받들어 신문(神門)으로 들어와 신위 앞에 전달한다. 이때 헌가(軒架)에서는 풍안지악(豊安之樂)이 연주되고 일무(佾舞)는 없다. 악(樂)이 그치면 서(黍 :수수), 직(稷 :피), 소(蕭 :쑥)에 기름을 발라 노탄(爐炭)에서 태운다. 이것은 땅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봉헌(奉獻)하는 의식을 통해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종헌례가 끝나면 신(神)이 베푸는 절차인 음복례(飮福禮)가 이어지는데, 조상신(祖上神)이 흠향(歆饗)한 제1실의 술[福酒]과 음식을 후손인 임금이 들면서, 조상이 주는 복(福)을 받는 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절차이다. 다음 절차인 철변두는 제기인 변과 두(豆) 각 1개씩을 조금 옆으로 옮기는 것으로 제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치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의식으로서, 이 때 등가(登歌)에서는 옹안지악(雍安之樂)이 연주되고 일무(佾舞)는 추지 않는다.
마치면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신(神)을 보내는 의식인 송신례(送神禮)를 행하며, 흥안지악(興安之樂)의 연주와 함께 4배(拜)를 올림으로써, 임금은 정성을 다하여 행하였던 모든 예를 마치고 재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 의식으로 축(祝)과 폐(幣)를 태우는 망료례(望燎禮)가 이어진다. 료대(燎臺)에서 타오르는 연기와 함께 하늘로 돌아가는 조상들의 혼(魂)을 아헌관이 망료위(望燎位)에서 바라보는 의식으로 제례는 모두 끝나게 된다. 최고의 격식과 정성으로 대접 받은 조상들의 혼백(魂魄)은 이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 이 나라의 안녕(安寧)과 번영(繁榮)을 보살펴 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절차는 당상(堂上)에 있는 집례(執禮)의 창홀(唱笏)에 의해 제관(祭官)들의 들고 남, 음악(音樂)과 일무(佾舞)의 시작과 그침 등의 모든 절차가 엄숙(嚴肅)하고도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진행된다. 종묘에서 제례를 봉행할 때의 흥미로운 제관(祭官)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주(祭酒)는 4종류의 술을 사용 하는데 영신(迎神)의 절차인 신관례 때는 기장[梁]과 향기가 있는 울금초(鬱金草)로 빚은 울창주, 초헌례 때는 단 술[甘酒]인 예제(醴齊), 아헌례 때는 흰빛 술[白酒]인 앙제, 종헌례 때는 빚은 지 오래되어 숙성이 잘된 술[過夏酒]인 청주(淸酒)를 각각 올렸다. 술과 함께 명수(明水), 현주(玄酒)라고 칭하는 물을 진설 하였는데, 이는 태고(太古)에 술이 없었던 때를 잊지않기 위해서이며 담아만 놓고 사용하지는 않았다. 한편 술과 물을 담는 준(尊 :술 단지)의 형태와 문양은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사용하였다.
제복(祭服)에 대해 살펴보면, 임금은 위용과 권위를 상징하는 면류관(冕旒冠)과 구장복(九章服)으로 이루어진 구장면복(九章冕服)을 착용하였는데, 면류관은 구류(九旒)를 늘어뜨리고 매 류(旒) 마다 오채옥(五彩玉)을 꿰었다. 구장복은 겉은 흑색, 안은 청색으로 된 대례복(大禮服)으로 상의[衣] 양 어깨에는 용(龍)을 수놓고, 등에는 산(山), 양쪽 소매에는 세가지 무늬 [화(火 :불꽃무늬), 화충(華蟲 :꿩), 종이(宗彛 :술 그릇)]가 각 3개씩 들어가며, 하의[裳]에도 4가지 무늬 [초(藻 :수초), 분미(粉米 :쌀), 보(도끼), 불(亞자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고종 임금이 황제위(皇帝位)에 오르면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日), 월(月), 성신(星辰)의 문양이 추가 되어 구장면복에서 십이장면복(十二章冕服)으로 바뀌었다. 9장복과는 달리 12장복의 의(衣)에는 6가지 무늬로 오른쪽 어깨에 일(日), 왼쪽어깨에 월(月), 등에 성신(星辰)과 산(山), 양(兩) 소매에 용(龍)과 화충(華蟲)의 문양을 사용하였고, 상(裳)에도 6가지 문양인 화(火),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 불이 새겨져 있다. 현재는 십이장면복을 착용하며 여기에 폐슬(蔽膝 :무릎 가리개), 패옥(佩玉 :양 옆으로 늘이는 옥으로 역은 장식품), 대대(大帶 :허리에 매는 끈으로 후수에 붙여 사용), 수(綏 :후수 라고도 하며 실로 짠 장식으로 뒤로 늘어뜨림), 말(襪 :의례용 붉은 버선), 석(의례용 붉은 신), 규(圭 :의례 때 손에 드는 도구) 등을 착용한다.
일찍이 예(禮)의 완성은 악(樂)이라고 하였듯이 종묘제례는 종묘제례악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엄숙한 제례절차에 따라 연주되는 종묘제례악은 경건하고 장엄한 곡(曲)으로서의 그 음악성을 높이 평가 받고있다. 특히 보태평(保太平)악과 정대업(定大業)악은 세종(世宗)대왕이 연향(宴享)에 쓰도록 친히 지은 것을, 세조(世祖) 때 다시 다듬어 세조10년(1464)에 처음으로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이래 오늘날까지 전승 되고있는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 유산으로 중요 무형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64명의 춤에 의해 펼쳐지는 팔일무(八佾舞)와 역대 제왕의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보태평 11곡과 무공(武功)을 기리는 정대업 11곡의 악장(樂章)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묘제례악은 아악기(牙樂器), 당악기(唐樂器), 향악기(鄕樂器)가 고루 편성되어, 상월대에 배치된 등가악대 37명[협율랑 1, 도창 6, 연주 30]과, 하월대에 배치된 헌가악대 72명[도창 6, 연주 66]에 의해 연주되며, 그 뛰어난 역사적,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전통 음악의 장엄함과 경건함의 특징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무인(武人)적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는 무무(武舞)를 추는 무인(舞人)은 원래 처음 두 줄은 나무칼, 다음 두 줄은 나무 창, 마지막 두 줄은 활과 화살을 들고 춤을 추었으며, 각종 깃발 등의 의물(儀物)을 든 의장대(儀仗隊)가 일무원의 춤과 박자에 맞추어 발을 구름으로써 그 장엄함을 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앞의 4줄은 나무로 만든 칼을, 뒤의 4줄은 나무로 만든 창을 들고, 아헌례와 종헌례 때 정대업의 악(樂)에 맞추어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추며, 의물을 든 의장대는 배열 하지 않는다.
이처럼 600여년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역사와 선조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생동감(生動感)이 넘치는 역사의 현장인 종묘(宗廟)는, 우리만이 아닌 세계인 모두가 보호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文化遺産)으로서 보호, 유지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리 고유의 자랑스러운 제례문화(祭禮文化)를 보존(保存)하고, 후손들에게 전승(傳承)해야 할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들의 책임은 실로 무한한 것이리라.
종묘 관련 등록문화재 현황
종묘(宗廟) : 사적 제125호
정전(正殿) : 국보 제227호
영녕전(永寧殿) : 보물 제821호
종묘제례(宗廟祭禮) :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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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목록 등재
종묘(宗廟) :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1995년)
종묘제례(宗廟祭禮)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문화유산(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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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제례의식의 절차는 가능한 한 조선초 성종년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충실하도록 하였기에 오늘날 재현되는 의식의 절차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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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국조오례의 / 법제처
2) 종묘의궤 / 숙종년간
3) 서울민속대관(풍수편) / 서울시
4) 무형문화재 홍보 영상물 / 서울시
5) 종묘대제 / 대동종약원
종묘대제 행사 시간표: (2004. 5. 2. 일요일)
1) 10:00~12:30 -------------------- 종묘대제 (영녕전 제향)
2) 12:30(경복궁 출발)~14:00(종묘 도착) --------- 어가 행렬
3) 14:00~16:30---------------------- 종묘대제 (정전 제향)
첫댓글 사람들이 많아서 붐비는 것만 빼고는 정말 유익하고 좋은 시간입니다^^
경회루님 자료 너무 감사히 보고 있어요.....프린터 잉크가 좀 달려서 그렇지.....히히....암튼 열정이 대단하신 분같아 늘 도전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