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세계 역사상 최고의 명장1위 몽골의 수부타이 장군은(1177년 - 1248년(72세) 동서양 모든 역사가 인정한 명장이며 아시아에서 유럽의 폴란드 항가리아 (사조강 전투) 점령한 전술 전투의 신이라 부릅니다 수부타이 장군은 몽골 북쪽 삼림지역에 사는 우랑카이족 출신이며 대장장이 출신입니다 칭기즈 칸 초기 파티의 2인자였던 우량카이 젤메의 아우이며 숲속 부족 출신으로 어떻게 원시부족 출신이 전투의 귀재로 지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점령하였을까 수부타이 장군은 징키스칸의 2인자로 1204년, 테무진 칸이 동나이만족의 타양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했으며, 메르키트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1206년 몽골 초원이 통일되자 천호장에 임명되었다. 형 젤메는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수부타이 장군은 징키스칸의 2인자로 1204년, 테무진 칸이 동나이만족의(나이만족) 타양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했으며, 메르키트족(징기스칸 부인 보르테를 납치한 부족이며 부족장이 징기스칸 부인 보르테를 강간하여 낳은 아들이 징키스칸은 첫 째아들이 주치란 이름이며 주치의 아들 이 서방원정 명목상 총사령관인 바투장군이며 굉장히; 잔인하며 러시아일대를 점령하나 전쟁에 늘 패하여 수부타이 장군이 도와서 러시아를 300년 통치하고 오고타이칸이 죽어도 몽골에 돌아가지 않아 러시아를 지배하여 러시아는 엄청난 탄압을 받는 암흑기입니다 몽골군은 전원 기마부대미며 기마병1명이 5-6마리 말을 가지고 교대로 타면서 적군을 말발굽과 화살로 전멸시키는 기마부대 전술이다
2. 몽골군은 양아치 전술(거지차림 망구다이전법) :
허름한 옷차림으로 허약한 부대로 위장 적이 얕보고 달려들면 후퇴하는 척 하다 하다 뒤에 복병을 숨겨서 궁수부대가 나타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덥는 화살에 의해 적군은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앞에 속수무책으로 적군은 쓰러진다 그 다음 반달칼 부대에 의해 반달칼을 양쪽 손으로 기마를 돌격시켜 양손의 반달칼에 의해 적병은 갈대 베듯이 쓰러진다 몽골군은 게르라는 천막을 이용 이동하면서 어디서나 숙박 숙식을 하는 기병부대로 식량은 소와 말을 잡아 말려서 육포를 만들어 양가죽에 담그면 6개월을 식량 운반없이 전투를 할수 있다 한국과 농경민족은 이 전법은 불가
3.수부타이 장군은 ?
징키스칸의 2인자로 1204년, 테무진 칸이 동나이만족의 타양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했으며, 메르키트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1206년 몽골 초원이 통일되자 천호장에 임명되었다. 형 젤메는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4.호라즘 침공(지금의 이란
칭기즈 칸의 서정군에 제베와( 수부타이와 함께 전투의 신 2인자) 함께 참전하여 호라즘 제국을 공격, 당시 제7대 술탄이었던 알라 웃 딘 무함마드 2세를 카스피해의 작은 섬으로 몰아넣어 죽게 했으며, 몽골로 귀환하는 김에 전리품을 좀 더 챙겨 가자고 해서 이란, 캅카스의 여러 도시와 루시 남부의 공국들을 쓸어버리면서 공략했다. 크림 반도에서 이탈리아계 제노바 공화국의 식민군을 격파하기도 했으며 루시 공국들의 연합군 8만명을 격파하기도 했다(칼가강 전투). 이때 루시 공국들의 야전 역량이 무너져, 나중에 있었던 본격적인 바투의 동유럽 원정 때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되었다. 수부타이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자 그의 나이를 걱정해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후방에서 쉬게 하려고 했지만 수부타이는 칸이 전선에 나서는데 어떻게 자신이 뒤에서 쉬고 있겠냐며 거부했다.
5,금나라 정벌
그러나 금나라를 정벌하던 도중에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게 되는데, 1231년도 당시의 금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던 안진화상이 이끌던 금나라 군대와 맞붙은 도회곡 전투에서 패배해 퇴각한 것이다. 완안진화상은 그의 뒤를 쫒아 추격전을 벌였다.[29] 그러나 실패도 잠시, 끝내 1233년 금나라의 도읍인 변경을 함락하여 금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6.유럽 (서방)원정에서의 맹활약 수부타이가 점령한 몽골의 영토 최대
바투의 유럽 원정에도(바투가 무능하여 수부타이는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는데 총사령관인 바투의 삽질까지 메꿔가며큰 공을 세운 뒤에 귀환했다. 당시 러시아 제공국을 거의 초토화시켰고, 레그니차 전투 및 사요 강 전투에서 각각 3~50,000명 가량의 폴란드/튜튼, 헝가리 군세를 전멸시켰다. 특히 사요 강 전투는 패퇴하는 헝가리군 수만명을 수일간 포위 기동으로 추적하며, 학살했다. 유럽 지역에 남아있는 몽골에 대한 공포는 이 전역들에 기반한 것이다.[31] 명목상의 총사령관은 바투였으나, 실제로 해당 전역들을 주관한 것은 수부타이였으며, 이로 인해 킵차크 칸국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신성 로마 제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던 도중, 몽골 본토에서 오고타이 칸의 병사 소식이 알려져, 본토에서 열리는 쿠릴타이에 참가하기 위해 회군하게 되었다. 이후 구유크 칸은 그를 중국 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나 귀환 중 병사했다. 서방 원정 당시 이미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쇠약해져 말을 못 타게 되긴 했었다고. 몽골의 대칸 3대를 섬긴 백전노장으로서 수명도 72세로 중세 몽골인 치고는 꽤나 장수한 편이었다.사후 그의 우량카이 일족은 몽골 제국 및 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 나머지 세 가문은 무칼리의 잘라이르, 보오르추의 아를라트, 티라운의 술두스였다. 특히 그의 아들인 우랑카다이와 손자인 아쥬도 몽골 제국의 명장으로 용맹을 떨쳤다.금나라 정벌 때 빼고는 패배한 적도 거의 없었고[생애 20번의 원정 동안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고 갈아버린 나라만 32개였다. 또 싸워본 문화권만 해도 몽골계, 중국계, 중동계, 유럽계로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문화권의 군대를 쓰러뜨렸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나라 하나 갈아버리는 사람이었다.
7. 수부타이장군의 업적
인류가 생성된 이래 그는 제베와 함께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1번의 회전에서 승리했다.수부타이는 평생 그가 만난 여진족의 금나라, 한족의 남송, 탕구트족의 서하, 몽골계와 튀르크계의 각 유목 부족,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아랍, 이란, 튀르크 계열 십수 개 국가, 동슬라브족의 러시아, 남슬라브족의 불가리아, 서슬라브족의 폴란드, 마자르족의 헝가리, 조지아족의 조지아, 아르메니아족의 아르메니아의 군대들을 현지에서 줄줄이 격파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 알바니아의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스컨데르베우), 티베트(토번)의 가르친링처럼 1개 제국과 격전을 벌이거나, 또는 조선의 이순신, 금나라의 완안진화상, 남송의 악비처럼 본국에서 완벽한 방어전만 펼쳤으면서도 최고의 명장으로 대우받는 인물이 세계 역사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수부타이의 전적이 얼마나 넘사벽인지 알 수 있다.몽골군의 세계 정복전 중에서도 수부타이는 고려 전선보다는 중국과 서방 정벌에서 많이 활약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다른 장군보다 낮은 편이다. 한국 한정으로는 차라리 여몽전쟁에 참여한 살리타가 더 유명하다. 한국어로 구글에 검색했을 때 살리타가 훨씬 결과가 많고, 뉴스에 언급되는 빈도 수도 훨씬 높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부타이의 활약상이 인터넷 등 많은 매체에서 알려지면서 한국에서의 수부타이의 유명세가 옛날보다는 높아졌다. 하지만 직접 침략을 당한 서양 및 중동권에서는 칭기즈 칸과 거의 동급으로 악명이 높다. 공식적으로 미국 《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 전쟁사상 정복전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력했던 장군 및 군인 순위 1위로 등극해있으며, 세계사 최강의 정복자 로 등극했다.
첫댓글 일부역사공부하고갑니다
외국역사랄 잘 이해가 않되지만 장군공부좀 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32개의 나라를 정복시켰다니 얼마나위대한 장수인지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