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로얄 쌀롱이 장관의 의전차가 되었던 이유가, 갑자기 6기통 타지말라는 각하의 지시로 그라나다V6 가 그 자리를 빼았겼었다. 그리고 길에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 가장 비싼 국산차(?)였던 뿌조604가 사실 상 최고급 차량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잊혀져버렸다.
문득 나무위키에서 함 퍼 와 본다.
기아자동차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라이선스 생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푸조가 아시아자동차의 출자회사인 생카(SIMCA)를 합병했을 때이다. 출시 당시 판매가격은 약 2,300만 원[3]으로 국내 최고가의 승용차였다.[4] 대한민국 사양도 V6 2.7L PRV SOHC 엔진을 갖추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던 승용차 중에서는 최고의 배기량과 성능이었다.
원래는 기아자동차에서 상공부 6기통 차량 생산제한 조치를 1978년에 해제한것과 동시에, 노후화(당시 신진 크라운을 쓰던 시절)된 장관급 관용차의 교체 수요를 노리고 국내 시장에 내놓았지만, 출시 직전인 1978년 12월부터 오일쇼크로 인하여 정부에서 6기통 엔진이었던 장관급 관용차를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면서 604의 주문을 취소하고 레코드 로얄을 장관급 관용차로 지정하여 대량 주문하자 비슷한 시기에 장관급 관용차 교체 수요를 노리고 등장한 그라나다(V6 2,000cc)와 함께 제대로 엿을 먹어 버렸고, 여론으로 인하여 다른 부유층들에서도 주문 취소가 줄을 이었다. 그나마 그라나다는 국무총리 관용차로 납품되었지, 푸조 604는 그런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가격도 매우 비쌌으니 당연히 극소수가 판매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기아자동차 최악의 흑역사인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에 프랑스 본국보다 4년 먼저인 1981년에 억울하게 강제로 생산이 중지되어 단종되고 말았다. 그나마 단종 직전인 1981년 1월에 재고가 143대나 쌓여 있는 상황에서 장관 관용차의 4기통 제한을 해제하여 4기통 1900cc 레코드 로얄이었던 장관 관용차를 푸조 604로 교체했지만[5], 얼마 안 가서 강제로 단종되었으니, 푸조 604 입장에서는 무용지물 조치였다.(...) 그라나다는 장관급 관용차가 4기통으로 제한된 와중에 4기통 엔진이 달린 버전도 고육지책으로 내놓았고, 1981년에 장관급 관용차의 4기통 제한 해제가 풀린 이후로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서슬퍼런 칼날을 피할 수 있어서 1985년까지 계속 살아남았고 후속인 그랜저가 2023년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여러모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에게 제대로 엿을 먹은 차량(...) 이 때문인지 몰라도 레코드 로얄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는데, 현재 현역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604 차량은 딱 1대 있는것으로 확인됐다. 번호판이 살아있으며 공도주행도 문제없다. 일반적으로 공개된 것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원주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한 대,[6][7] 그리고 제주도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에 한 대로 총 두 대이다. 그 외에 금호상사[8][9]와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도 비공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튼 동 시기에 판매했던 피아트 132, 그리고 몇 십년 후의 일이지만 기아자동차가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한 독일의 피터 슈라이어와 함께 기아자동차의 유럽 DNA로 분류된다.
기아자동차가 도입할 당시에는 고위 기술을 흡수하는 시기로 분류되었다. 당시 경쟁차는 현대 그라나다와 GMK(후의 새한자동차) 레코드 로얄. 현대 그라나다가 V형 6기통 2,000cc 포드 쾰른 엔진, 레코드 로얄이 직렬 4기통 1,900cc 오펠 엔진이었으니 푸조 604의 2,700cc 배기량은 경쟁차들을 그냥 압도했다. 하지만 이 6기통 대배기량 엔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이 되었다
https://youtu.be/Vx-8WXRq9KI
첫댓글 기아가 뿌조,피아트 라이센스 한 덕에 국산 아닌 국산으로 좋은 차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