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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7. 오순절후 열여섯 번째 주일.
예배로 부름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1-2)
예배 기원
우리의 산성이신 하나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권능의 팔로 저희들을 지키시고, 발걸음마다 의롭고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의 건강과 명예와 재산을 지켜주셨기에 저희들이 이처럼 평안하고 복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그 어떤 부와 권세를 누림보다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이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만유의 주 앞에(22장)/ 나의 생명 드리니(213장)/예수 나를 오라 하네(324장) / 내 주님 지신 십자가(339장)/십자가를 질 수 있나(461장)/ 내 주 하나님(469장)
고백의 기도
인생의 행위를 아시며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통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 동안 저희들의 잘못된 행위들을 고백합니다. 저희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저희의 존재와 신앙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음에도 저희들은 주님 안에 뿌리 내리기를 싫어하며, 내 자신의 자랑과 영광만을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영적인 잠에 빠져 땅의 것만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나의 믿음은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착각하였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세상의 물질과 권력과 허탄한 것들로 위안을 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용서해 주옵소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내리셔서 저희로 깨끗하고 온전한 심령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534
제목: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
본문: 갈라디아서 3:23-29
☞ 마음 문을 열고
2001년 1월 4일자 국민일보에 ‘10년 전 약속을 지킨 백화점’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1991년에 개업한 ‘오카다야 모아즈’라는 일본 백화점 이야기입니다. 개업 당시 전단지를 만들어 백화점을 광고했는데, 개업 10년째 되는 해인 2001년 첫 영업일에 이 전단지를 가지고 오면 선물을 주겠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2001년 1월 2일 첫 영업일에 10년 전 전단지를 가지고 백화점에 온 사람이 1200명이었다고 합니다. 백화점은 선물로 준비한 1천 개의 시계를 전달하고, 부족분은 추가로 준비하여 해당 고객의 집으로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10년 전의 약속대로 전단지를 들고 찾아온 전원에게 선물을 준 것입니다.
국민일보는 이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10년 전 약속을 지킨 백화점, 그리고 약속을 10년 동안이나 믿고 전단지를 보관한 고객, 이것이 바로 일본의 저력이 아닌가.” 이런 작은 일을 아름다운 사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약속을 지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모두 약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서약을 합니다. 서류로 약속하는 것도 있고, 구두로 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약속도 있고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약속은 잊히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약속이 그대로 지켰을 때 ‘참 보기 좋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 어떤 약속보다도 영원불변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막을 자도 없고, 방해할 자도 없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타락해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아. 나는 여전히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를 보내겠다’(창 3:15)는 약속으로부터 요한계시록 22장의 재림의 약속까지, 성경의 전부는 약속입니다.
이러한 언약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고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고대에는 개인과 개인이 약속을 맺을 때 짐승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반으로 자르고, 자른 짐승을 양쪽으로 갈라놓고,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피가 철철 나는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이 언약의 사인(sign)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와 염소 그리고 숫양을 가지고 와서 둘로 쪼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동물을 잡아서 언약을 맺는 이유는 만약 약속을 어기면 이 쪼갠 고기와 같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천지가 변해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라의 몸을 통해 적통 자손을 주겠다. 둘째, 이 적통 자손이 앞으로 바다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셋째, 약속의 땅에 아모리가 있든지, 헷이 있든지 이 땅을 너와 너의 후손에게 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을 주셔도 사람들은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약해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시는데, 약속을 주신 지 25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착각해서 종의 몸을 통해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 시간마다 찾아오셔서 약속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1. 성경의 핵심 약속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 약속입니다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귀중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대를 초월해 효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약속의 효능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사야 41:10은 사람들이 암송도 많이 하고, 집이나 가게에 걸어두며 늘 가까이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고 두려울 때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6-27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여기서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합해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은 ‘토가 비릴리스’로서 로마의 성인 남성이 입던 옷을 말합니다.
아무나 이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안에 원피스 같은 것을 입었고, 유명한 사람들만 자기 신분을 나타낼 때 입었습니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옷은 신분이자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토가 비릴리스를 보면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하고 약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옷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밖을 둘러싸고 계신 예수님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언약을 똑같이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 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나는 약하고 추하지만 예수를 믿는 순간 예수의 옷을 입은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예수를 믿는 우리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로 옷 입은 것을 보십니다. 율법을 지키고 힘쓰고 애써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필요 없어 보이는 율법을 주셨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19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이 말은 처음부터 율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 율법이 생겼으며, 하나님은 우리로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율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는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약속 중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 되는 중심 약속은 예수를 통한 속죄로 말미암은 인류 구원의 약속입니다. 예수를 통한 속죄로 말미암은 인류 구원의 약속, 이 약속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상속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26절).
예수님을 믿음으로 창조주이신 만왕의 아들이 됩니다. 이 약속은 절대로 변치 않습니다. 자녀가 되는 이 복은 특권을 받는 것 이상입니다. 면책이 주어집니다. 이는 “너는 내 것이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4에도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12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변치 않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야베스의 기도, 다윗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한나의 기도 등 수많은 기도가 있지만 최고의 기도는 단연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을 예배와 의식을 마칠 때 하는 의례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당시에는 엄청나게 혁명적이고 파격적이며 놀라운 기도였습니다.
첫 구절부터 우리에게 엄청난 약속의 실현이요, 감격적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시작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신성 모독죄에 해당했는데, 예수님은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놀라운 응답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는 구별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28절).
예수를 믿는 순간 누구나 평등하고 고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계급, 인종, 지역, 남녀, 신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 순간, 내가 예수로옷 입는 순간 모두 동일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약속의 좋은 예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의 여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특징을 요약하면 고립된 인생, 상처 난 인생, 목마른 인생일 것입니다. 특히 그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4:4에 보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겠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길을 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지키시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은 여인에게 찾아가셔서 새 생명과 새 인생을 갈구하는 여인에게 약속하시고, 고립되고 상처받고 목마른 이방 여인도 약속대로 예수님의 VIP가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빌레몬서에도 대단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빌레몬과 그의 종인 오네시모가 나오는데, 빌레몬은 재력이 있는 주인인 반면 오네시모는 종입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가 도망을 칩니다.
로마 시대에 도망치다 잡힌 종은 이마에 낙인이 찍히거나 때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종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이 예수를 믿게 됐고, 오네시모도 도망을 갔다가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됐습니다.
이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돌아가면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편지를 씁니다. 주 안에서 동등한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별함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저주 아래서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더 이상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벽이 높거나 특정인이 모이는 곳이 돼서는 안 됩니다. 초대 한국 교회 기록에 보면 양반이 모이는 교회, 백정이 모이는 교회 등이 따로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때로 자신들의 교회가 특정 전문가가 많이 모인다고 자랑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모르는 무서운 생각입니다. 교회의 가장 쉽고 멋진 구호는 바로 “누구나 오라”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받고 신음하는 대상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4. 하나님의 약속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됩니다
29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유업을 이을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클레로노모스’로서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 하나님의 것 등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7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유업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복음은 오늘도 역사합니다. 오늘도 이 복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육체적으로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믿게 됨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이 됐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산 한 사람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969년 7월 16일은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선 이글호를 싣고 고요한 바다로 명명한 달 표면에 착륙하기 위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날입니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7월20일에 인간이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닐 암스트롱입니다. 20분 후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암스트롱의 뒤를 따라 달을 밟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한 강연에서 올드린이 암스트롱보다 20분 뒤에 나간 이유가 밝혀집니다.
원래 순서로는 올드린이 먼저 내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인이었던 올드린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자신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가 돼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게 해주신 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올드린은 암스트롱에게 첫 걸음을 양보하고, 지구에서 가져간 빵과 포도즙을 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이글호 안에서 20분 동안 성경을 읽고 성찬식을 행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창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약속하신 말씀 하나하나가 우리 삶에 임해 현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실 때, 이미 축복과 응답은 시작된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 이니라”(사 55:11).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고 약속의 말씀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반대로 말씀대로 상황이 바뀝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약속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요,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녀 됨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상속자로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감사와 감격으로 이 땅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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