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없이 버티까 팜
박용범(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1. 농촌이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아니다. 농촌의 미래는 정확히 지금의 도시고 농촌에는 희망이 없다. 도시화가 시작된 지 100년, 95%의 국민이 모조리 시민이 되어버렸다.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닌 시민에게서 나온다. 식량자급율은 25%이하로 떨어졌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반도체가 있으니까. 6,70년대만 해도 모두 농민의 자식이었으나 우리는 지금 거의가 농맹이다. 몇 해 전 상자텃밭을 보급하는 행사에 참가한 팔순의 노인이 토마토를 가르키며 고추모종을 달라고 한다. 고추나 토마토를 구분하기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 본 적이 없으니까. 농산물이 1년 내내 주구장창 나오니 제철에 무엇이 나는지 알 수도 없다. 원래 딸기는 5월말에나 거두지만 모조리 하우스안에서 재배하니까 3월이면 끝물이다. 도시야말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다. 결국 모든 길은 도시로 통하고 우리는 끝내 멸망하리라. 도로공사는 전국을 바둑판 같은 고속화 도로망으로 만들 꿈을 가지고 산과 들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 2007년에는 고속도로만 3000km를 이미 넘었다. 앞으로 강원도 원주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으로 합쳐질 날도 머지않았다. 농촌이 살아남을 길은 거대한 공룡도시를 위해 에너지생산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바이오에너지생산을 위해 농지는 유채꽃밭이 되고 신재생에너지사업으로 논 곳곳이 태양전지판으로 깔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자급율에 농지는 맥없이 사라져간다. 세계적인 원자재 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앞으로 곡물을 사두라고 귀띔한다. 항상 말도 안되는 국면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보고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있다. 그리고 대다수는 그게 위기인지도 모른다.
2. Vertical farm은 수직농장이다. 들녘에서처럼 수평으로 뻗은 게 아니라 수직으로 솟은 농장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에 작물이 자란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니 물류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푸드마일리지를 줄이는 게 장점이다. 수경재배를 하니 땅도 필요 없다. 토양의 장점은 이미 양분을 갖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다고 본다. 얕은 뿌리체계는 뿌리가 물과 양분을 찾는데 쓰는 많은 에너지도 아낄 수 있고 영양생장에 집중할 수 있어 빨리 다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농부는 날씨에 민감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기후와 계절과 관계없이 연중 계속 생산되는 시스템을 자랑한다. 노동력도 절감된다. 수경재배(hydroponics)는 물(hydro)과 일(ponos)의 합성어다. 물이 경작하는 시스템이다. 땅도 필요 없고 밭을 가는 농부도 필요 없다. 수직으로 솟아오르지, 진짜 녹색이지, 탄소도 적게 배출하지, 이보다 더 저탄소녹색성장에 딱 들어맞는 게 있을까 싶다.
3. 식물공장(plant factory)도 일종의 버티컬 팜이다. 실내에서 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흙이 필요
하지도 않고 단지 물만 있으면 되는 수경재배기술과 인공적인 광원인 발광다이오드(LED)조명만으로 완벽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농산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공장인 셈이다. 현재 식물공장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정부에서 시설투자비의 절반을 지원하고 관련 포럼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현재 50여개 공장의 세배가 되는 150개의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에 농촌진흥청에서도 남극세종기지에 연구원들을 위한 콘테이너형태의 식물공장을 세웠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일본에 뒤질세라 식물공장의 생산기술을 강화하여 빌딩형 식물공장인 버티컬 팜을 위한 파일럿 플랜트를 올 하반기에 설치하고 정밀기술을 확보해서 2013년에는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식물공장은 온도와 물, 산도와 CO₂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있고 인공적인 광원(LED)과 자동화기술로 생산량을 노지재배보다 단위면적당 100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첨단농업이요, 정밀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공장으로 들어설 때는 반도체공장처럼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거친 뒤에야 접근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통해 균들이 쉽게 퍼진다. 누구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에이 농사나 짓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귀농을 해서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농사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 푸념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공장이나 버티컬 팜은 집중화되고 자동화된 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아무나 할 수 없으니 가치가 독점되고 이윤도 보장된다. 일본 최고의 식물공장전문가 다카쓰지씨는 정부가 나서는 이유가 “산업적 측면에서 식물공장의 미래를 밝게 보고 베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산업이고 베팅이다.
4. 다 좋다고 치자. 그러나 버티컬 팜이 식량위기상황에 닥칠 때 식량안전과 식량자급율을 높이는 대안이라고 선전하는 대목은 참을 수가 없다. 자급의 위기는 먹고사는 중요한 일을 남한테 맡겨서 집중화, 표준화, 전문화될 때 생기는 법이다. 한살림 생협에서는 공정무역을 하지 않는다.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라고 해서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과 바로 거래해서 정당한 가격을 주고 무역을 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소득작물은 단작을 확대하고 농민이 가족을 먹이는 작은 텃밭마저 소득을 위한 농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결국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커피를 팔아 외국의 값싸고 의심스런 농산물을 사다먹어야 한다. 그건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채소장수들이 도시가 아닌 농촌 이곳저곳으로 트럭을 몰고 다니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농사에 매달려 텃밭도 가꾸지 않는 농가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한다면 위기가 닥칠 리가 없다. 투자도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가 원칙이다. 물론 큰돈은 만지지 못하겠지. 유사이래 언제 농업이 돈이 된 적이 있었나? 농산물을 많이 팔려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특용작물? 그런 게 어디있나? 요새 블루베리가 돈이 된다고 난리다. 그렇다고 블루베리를 매일 먹을 수는 없고 모두가 블루베리만 하면 안되지 않나. 농산물 모두가 특용작물이거나 아니거나지 먹는 음식에 특용이 있을 수 없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다. 농업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돈에 노예가 된 농민들은 임금노동자로 전락한다. 자급은 꿈꿀 수가 없다. 그리고 원래 농사는 투입되는 비용이 전혀 없어도 가능한 것이다. 식물공장에서 생산비용의 25%가 전기료로 나간다. 시설투자에 대한 감가상각비(40%)를 예외로 한다고 해도 전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농사다. 그래서 전기료가 싼 한국이 식물공장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5. 도시에 경작할 땅이 없다고 하지만 곳곳에 유휴지가 많다. 수많은 나대지, 하천부지, 철로변, 폐선부지, 그리고 파악하지도 못하는 공유지가 있다. 외국도시농업의 법과 제도는 경작지 확보를 기본 골자로 하고 있으며 경작지는 도시농업운동의 핵심이슈와 과제로 되어 있다. 계속 도시가 콘크리트로 뒤덮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그린벨트가 아닌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농지벨트를 꿈꿀 만하다. 상자텃밭(container garden)도 농사를 체험하고 도시농업을 널리 보급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운동의 지속성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땅이 아닌 것을 단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탄소순환, 질소순환, 물의 순환과 같이 물질순환의 토대가 되고 생명을 살리는 기본 바탕은 흙(not soil but earth)이다. 도시농업의 가치는 흙을 살리는 데 있으며 자원의 순환은 도시농업의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데 흙이 필요 없다니 말이 되는가?
도시에서 농사짓는 이유는 그 동기와 배경이 다양하지만 결국 자연과 동떨어진 삶에서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에 기초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참여하는데 도시농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도시농업을 정의하고 분별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며 최우선으로 지켜야할 필수조건이 자급이다. 그래서 도시를 벗어난 러시아의 다차는 도시농업이 될 수 있지만 상추를 시설재배하는 대규모 근교농업은 도시농업이 될 수 없다. 그 생산자인 시민이 자신의 먹을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투기와 상업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직접 길러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야 도시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농업의 개념이 진보하고 있다. 전통적인 정의에서는 판매가 시장을 혼란시킬 수 있다고 하여 도시농업에서는 금지된 것이었다. 그러나 쿠바의 도시농업혁명으로 영리적인 부분까지 경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버티칼 팜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공장의 직원이다. LED가 햇빛을 대신하고 토양생태계가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자원의 순환이 아니라 외부자원에 의존하는 구조도 도시농업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부분이다. 수경재배의 특성상 유기농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결점이다. 토건국가의 코드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도시농업이 될 수가 없다. agriculture는 라틴어의 agri(흙)과 culture(경작)이 합쳐진 말이다. 그런데 땅도 없고 시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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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9. 매일경제, 첨단농업 현장을 가다 ②일본의 희망 ‘식물공장’ 참조
▪ 식물공장이란 “농작물에 대하여 통제된 일정한 시설 내에서 빛, 온‧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및 배양액 등의 환경 조건을 인공적으로 제어하여 계절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연속 생산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김정호, "식물공장의 동향과 전망", 농정연구속보 제61권, 한국농촌경제연구원,2009.10.30.
박용범-버티카팜.hwp
첫댓글 지난 시간에 수직농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관련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의 글은 4월21일열린 도시농업심포지엄의 자료입니다.
어딜가도 꼭 왜구 후손들이 문제야...
잘 읽었습니다. '버티카 팜'..ㅋㅋ 처장님 센스있네요...
친환경과는 먼 방법이라고 생가협니다요.. 넘 많은 에나ㅓ지비용이 투입될거니간요..
팔당 상수원 지역의 농사을 못짓게 하고 남양주에 수직농장을 지으려한다더니, 역시 좀 무서운 것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