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카이야. 식에 늦겠어.”
곤히 자고 있는데 관서 사투리가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5분만…….”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며 칭얼거리자, 한숨이 들리더니 이내 촥- 하며 커튼을 걷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눈부신 햇살이 얼굴로 내리쬐어져 미간을 찌푸리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5분만, 5분만. 그 소리가 지금 몇 번째인 줄 아냐? 정말 이러다가 늦겠어. 일어나!”
그리고 과감하게 이불을 홱- 하고 거둬버린다. 내 체온으로 덥혀진 얇은 이불이 날아가자 서늘함이 온몸을 감싼다.
“으, 추워~”
“5월에 춥기는 뭐가 춥다는 거야. 빨리 안 일어날래?”
“여자가 자고 있는데 이불을 확 거둬버리다니, 핫토리 군은 매너가 없네.”
“시끄러. 얼른 일어나기나 해.”
투덜거리자 단칼에 매몰찬 소리가 돌아온다. 눈을 뜨고 뾰로통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어느새 그는 정갈한 수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항상 캐주얼한 모습만 보고 있다가 저렇게 반듯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같은 남자가 봐도 멋들어졌다는 생각에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핫토리 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못마땅한 얼굴로 날 보는 그를 달콤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일으켜 줘.”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양 손을 내민다. 그러면 그는 거절하지 않는다. 표정은 불만스러웠지만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내 손을 잡아 일으켜준다.
“읏차. 세수해야지…… 내 옷은?”
“옷걸이에 걸어놨어.”
“그런데 정말 가야 돼? 핫토리 군은 괜찮아?”
묻자, 그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진다.
“안 괜찮을 게 또 뭐 있어?”
“카즈하의 결혼식이잖아.”
“그러니까 더욱 가야지.”
“정말 아쉽다. 핫토리 군하고 카즈하는 정말 보기 좋은 커플이었는데.”
“나랑 카즈하가 언제 사귀었던 적 있었나?”
좋지 않은 구석을 찔렀는지 그의 목소리에 날이 선다. 나는 그의 예민해진 감정을 모른 척 하며 생글거리는 얼굴로 이죽거렸다.
“카즈하 분명 웨딩 드레스 입은 모습 예쁘겠지~ 아, 빨리 보고 싶다!”
“보고 싶으면 빨리 옷이나 입어. 시간 없으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이곤 그는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 그리고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방문을 닫는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식에 입고 갈 내 옷을 바라보았다. 식에는 꼭 이걸 입고 가고 싶다며 일부러 핫토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블랙 미니 드레스에 원색에 가까운 레드 재킷.
손 끝으로 옷을 쓸어내리던 나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갈 일도 없었고 핫토리와 이렇게 맨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고개를 젓고 방문을 열었다. 거실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핫토리를 흘끔 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선반에 있는 머리끈으로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묶고 세안을 했다. 양치질까지 끝마치고는 서둘러 욕실을 나왔다.
“얼마나 늦었어?”
틀어 올렸던 머리를 풀고 손으로 엉킨 머리를 빗어내리며 물었다.
“15분 안으로 준비하고 나가면 아슬아슬한 정도.”
“15분이면 충분하지!”
보통 여자들이라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입고 있던 편한 옷을 벗어 침대에 집어 던지고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화장대 밑에 서랍에서 검은 스타킹을 꺼내어 신었다. 속살이 다 비치는 얇은스타킹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다. 대충 옷을 입고는 자다가 이리저리 엉킨 머리를 브러시로 빗었다. 빗고 나니 사자머리 같아져서 헤어에센스를 손바닥에 듬뿍 받아 머리에 골고루 발랐다. 은은하고 좋은 향기가 나며 머리카락이 차분해진다. 에센스를 머리에 바르는 동안 잠시 이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흠, 흠흐흠, 흠, 흠, 흐흠~”
그러면서 코에서는 결혼식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틀어 올려봤다가 내려놨다가 고민을 반복하다가 머리를 땋아 옆으로 내리는 걸로 결정했다. 숙련된 손가락은 순식간에 머리를 땋아 내렸다. 잘 보이지 않은 얇은 검은 고무줄로 머끝자락을 묶는다. 너무 정갈해보이지는 않게 옆머리를 살짝 뺀다. 그리고 보석함에 있는 장신구 중 핫토리가 선물로 준 진주 목걸이와 진주 귀걸이를 걸었다. 작은 여러개의 진주와 페리도트가 섞인 세트였다. 화장을 하는 건 더욱 빨랐다. 기초 화장 후에 촉촉한 상태에서 파운데이션은 엷게 바르고 분홍빛의 치크로 광대 라인을 살짝 바른다. 눈화장은 엷게 골드 색감으로 살짝 쉐도우를 바르고 아이라인은 블랙으로 진하지 않게 끔 했다. 인조 속눈썹은 따로 필요가 없어 눈썹을 올리고 위 아래로 마스카라. 입술은 재킷과 마찬가지로 진한 레드.
카즈하가 생일 선물이라며 사주었던 예쁜 시계도 잊지 않고 챙겨 끼우고 마지막으로 외출할 때 필수로 끼우고 다니던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었다. 핫토리가 항상 끼우고 다니는 반지와 같은, 세트. 커플링이다.
“핫토리 군~ 준비 다 됐어!”
이렇게 하는데에만 딱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새빨간 재킷을 어개에 걸치고 샤넬 클러치백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그러자 소파에서 일어나 기다리고 있던 핫토리가 한숨을 쉰다.
“완전 무장이구만.”
“핫토리 군의 ‘연인’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연인은 무슨. 그 시계는 뭐 하러 낀 거야?”
카즈하가 준 시계를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카즈하가 준 거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을 하셨구만.”
“헤헤.”
“헤헤는 무슨 헤헤야, 이 등골 브레이커가.”
“그치만, 그렇잖아? 핫토리 군의 연인은 핫토리 군의 등골 빼먹는 여자라는 컨셉인 걸.”
“컨셉은 무슨. 실제로도 그러는 주제에.”
헤실헤실 웃으며 팔짱을 끼자 그는 성가셔하며 내 팔을 빼려했다. 그래도 끈덕지게 억지로 팔짱을 꼈다.
“핫토리 군하고 카이야는 다정한 커플이잖아?”
“……그 연기는 그냥 식장에서부터 하지?”
그리곤 냉정하게 내 팔을 빼버린다. 쑥쓰러워하기는. 뭐, 그러는 것도 나름대로 귀엽지만. 웃으며 앞서 구두를 신고 나가는 핫토리를 따라 나도 검은색 힐을 신고 나섰다.
“그렇게 높은 걸 또…. 넘어지지나 마라, 카이야.”
―나이 22세. 키는 162cm. 성별은 여자.
“안 넘어져~”
―이름, 에도가와 카이야.
그게 지금의 나다. 이 세상의 그 어디에도 쿠로바 카이토도 괴도 키드도 없다.
Don't Hate Me 2
Fintion. 하나우리
처음부터 여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뼛속까지 남자고 솔직히 이렇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후회는 하고 있다. 솔직히 이렇게 된 것은 충동적이었던 것이 컸다. 차라리 신이치나 시호가 먹었었던 아포톡신은 먹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이제 해독제가 만들어진데다가 어찌됐든 10년 정도 어려지기만 할 뿐, 남자인 체로 있는 거니까.
그녀가 아포톡신 해독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개발하게 된 APTX-TS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냥 그걸 달라고 했다. 물론 시호는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계속된 설득 끝에 결국 받아내었다.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난 그것을 먹었다. 그때는 실연의 상처로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먹기 전, 마지막으로 그 녀석에게 메시지를 남긴 후 이런 몸이 되었다. 처음엔 굉장히 불편했다. 없던 가슴이 생기고 다리 사이가 휑~ 하고 여자들이 겪는 월경의 난처함과 생리통의 극심함에 시달릴 때마다 남자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반년 정도 지나니 익숙해졌다.
신이치가 썼던 에도가와라는 성을 빌려 이름 한자 하나만 남기고 에도가와 카이야라는 이름의 소녀가 되었다. 얼굴은 똑같지만 더 작고 갸름해졌고 굉장히 여성스러워진데다가 체격도 아담해졌다. 그렇다고 여자 치고 작은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란보다는 작고 카즈하랑 비슷한 정도.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운전을 하며 핫토리가 묻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
“여자가 된 거?”
“뭐, 그런 거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웃었다.
“5년이나 지났는데 새삼스럽긴.”
“난 새삼스러운 녀석이거든. 그러는 핫토리 군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인데.”
“내가 왜 어쩌다 너랑 사귀는 꼬락서니가 되었나, 하는 생각?”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가 내 말투를 흉내 낸다. 풋- 하고 짧은 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말꼬리를 늘려 그를 놀렸다.
“뭐야, 후회해? 카즈하가 마음 못 잡고 갈팡질팡하니까 사귀는 척 해달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렇다고 너랑 동거까지 할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동거해버리는 바람에 카즈하가 마음을 다 잡았잖아.”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가 혀를 찬다.
“그래서 후회해? 카즈하를 놓친 거?”
“아니.”
“어째서? 핫토리 군은 카즈하를 사랑했잖아. 진심으로.”
“그랬지.”
“지금도 사랑하잖아.”
“…….”
그가 말을 잇지 못한다. 정곡이 찔린 모양이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더 이상 카즈하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러지 않는 것을 넘어 오늘 다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그의 심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굉장히 우울할 것이다.
“왜 핫토리 군이랑 사귀면 카즈하가 위험해질 거라 생각한 거야? 탐정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물론 그가 왜 카즈하를 놓아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카즈하와 핫토리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 하지 않아도 점점 깊어갈 때 쯤 그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때 당시, 그는 신이치와 함께 검은 조직의 잔당을 쫓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을 쫓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그들이 테러를 자행한 적도 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혹시 행여라도 그들에게 자신들을 쫓는 자들 중 ‘핫토리 헤이지’가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동창 애들이 카즈하 앞에서는 안 그러지만 다들 아쉬움이 많아.”
내가 말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쉬움?”
“분명히 성인이 되면 핫토리 군이랑 카즈하가 결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됐다면서 말이야.”
“남의 일에 관심들 좀 끊으라고 해.”
“나도 아쉬워. 괜히 나 때문에 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처음, 사귀는 척 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불 같이 화를 냈다. 핫토리는 사실 내가 남자라는 걸 알고 있다. 내 본명도 다 알지만 단 한 가지, 내가 괴도 키드라는 것만은 알지 못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동시에 사랑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럴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축복이다. 그런데 핫토리는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겁을 먹고 카즈하를 밀어내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화가 났다. 그의 제안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었다고, 항상 그리움에 젖은 그의 눈을 볼 때면 후회한다.
동시에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
“있잖아, 핫토리 군.”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도쿄에서 오사카로 도망쳐 온지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 옆에는 항상 그가 있어주었다. 오로지 친구로서. 묵묵히 옆에 있어주었다. 감기에 걸리면 아포톡신의 후유증으로 남들의 몇 배를 고통스러워 할 때도, 난생 처음으로 생리를 경험하면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도, 아직 그 녀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움에 사무쳐서 힘들어 하며 여자의 몸이 되어 우울증에 충동적으로 자살하려 할 때도 그가 옆에 있어주었다.
그래서 버텼다. 5년의 시간을.
“카즈하, 드레스 입은 모습. 예쁘겠지?”
“……그렇겠지.”
그래서 말하지 못한다.
“좋겠다. 결혼도 하고. 카즈하의 아기는 분명 제 엄마를 꼭 닮아서 예쁠거야.”
“그럴 걸.”
“카즈하는…….”
“시끄러워, 그만 좀 해. 날 놀리는 게 재밌냐?”
버럭, 하고 그가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나는 웃지도 않고, 같이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선팅된 창문에 이마를 기대었다.
“야, 카이야?”
“차라리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몸도 마음도 여자였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지금, 난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건 도 무슨 소리야?”
“그냥, 어제 카즈하랑 통화했을 때…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그게 부러워서.”
하다못해, 여자를 좋아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적어도 그 녀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오코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굳게 믿고, 머지않아 성인이 되어 그녀랑 결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또 다시 이렇게 날 사랑해줄 리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텐데.
예상대로, 식장에 들어서자 눈길을 한몸에 받았다. 그럴 것이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식장에는 물론 예쁜 여자들이 많긴 했지만 ‘에도가와 카이야’의 얼굴에는 그다지 못 미쳤다. 하물며 함께 온 남자 친구가 훤칠한 키에 까무잡잡하지만 건강해보이고 잘생긴 오사카 청년이다. 식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오사카의 명탐정 아니던가?
나란히 서있으니 주목 받게 되는 건 당연했다.
“자, 그럼 연기 시작해야지? 핫토리 군.”
벌써부터 자연스러운 스마일을 보이며 핫토리의 팔에 살짝 팔을 낀다. 그는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잘난 척 하길 좋아하는 탐정답게 썩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긴장한 티는 났다.
“우리 자리는 어디지?”
“저 쪽 앞이야.”
“윽, 너네 아버지 보인다.”
그가 가리킨 방향 옆에는 카즈하의 아버지인 토야마 긴시로 오사카 형사부장과 어디로 보나 야쿠자처럼 험상궂게 생긴 핫토리 헤이조 오사카 본부장이 함께 있었다. 토야마 형사부장은 결혼예복인 하카마 차림이엇지만 핫토리 본부장은 언제나처럼 험상궂은 수트였다. 게다가 그 주변에 있는 몇몇 경찰 관계자들.
“……항상 느끼는 건데 오사카부경은 사람들이 죄다 야쿠자 같아.”
“하, 하하, 그런 소리 좀 듣는 편이지.”
그렇게 말하며 핫토리는 아버지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자, 잠깐!”
“왜? 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
“그, 그래야지.”
“넌 이상하게 우리 아버지 무서워하더라?”
얼굴이 무섭다. 얼굴이. 어차피 부딪혀야 하는 얼굴인데 피하면 예의없다는 소리를 듣겠지. 그건 핫토리 헤이지의 ‘연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가면을 뒤집어 쓴다.
“가자. 아버지한테 인사 드려야지. 암, 그렇고말고.”
“나참.”
핫토리는 고개를 저으며 직진했다. 그러다 그의 아버지도 이쪽을 눈치 챘는지 시선을 이족으로 돌린다. 안면 근육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면서 애써 웃었다. 그들 앞에 도착하자 팔짱을 낀 손을 빼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핫토리 본부… 아니… 아저씨…?”
긴장한 나머지 말도 잘못 했다.
“아아, 에도가와 양. 오랜만이구나.”
투박하고 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손을 붙잡고 가볍게 악수를 하자 핫토리 본부장의 시선이 곧장 핫토리에게로 향한다.
“헤이지, 이 녀석. 어디서 뭘 하다 늦게 온 거냐?”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이걸로 됐다. 뒤로 한 걸음 빠지고 이번엔 토야마 형사부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카즈하가 자기 신랑 사진 보내줬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저씨가 더 멋있으신 것 같아요.”
“하하, 우리 카즈하한테도 그 말 똑같이 전해줬으면 좋겠구나.”
“물론이죠.”
입에 발린 소리로 간단하게 대화를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하며 양해를 구한다.
“아, 전 그럼 카즈하한테 한번 다녀올게요. 웨딩 드레스 입은 모습 구경해야죠.”
“아, 그럼 핫토리 군도 같이 다녀오게나.”
“아, 저는 괜찮습니다.”
“갔다 오지 않고, 왜?”
핫토리 본부장이 핫토리에게 묻는다.
“나오면 보지, 뭐. 식도 얼마 안 있으면 시작하잖아? 바쁜데 정신 사납게 나까지 가서 뭐해?”
“그,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오오, 그래. 다녀오렴.”
핫토리와 핫토리의 아버지가 실갱이를 벌이는 동안 슬그머니 빠져나와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왠지 핫토리의 아버지는 위압감이 있어서 무섭다니까. 정말 야쿠자 보스 같은 포스다. 그런데 핫토리의 어머니는 못 뵈었던 것 같다. 늦으시는 건가? 생각해보면 핫토리가 어머니를 닮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버지를 닮았으면…….”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빨리 카즈하랑 셀카 찍어서 핫토리에게 염장을 질러줘야 할 것 같다. 실컷 약 올려야지. 놓친 걸 후회나 잔뜩 하라고.
“바보같은 놈.”
약간의 심술 정도는 괜찮잖아?
식장을 나오자 구석에 신부 대기실이 보인다. 입구 앞에는 카이호 고교 졸업생들이 눈에 보였다. 다들 카즈하 구경하느라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다시 웃는 얼굴의 가면을 뒤집어 쓴다. 늘 연기해왔던 에도가와 카이야를 연기해야 한다. 그렇게 싱숭생숭해진 속내를 다잡으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때, 클러치를 든 손이 누군가에게 잡힌다.
핫토리겠거니,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쿠로바.”
하지만 거기엔 핫토리가 아닌, 다른 청년이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적갈색의 눈이 동요하며 흔들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쿠로바, 맞지?”
지금의 내가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이름.
―하쿠바 사구루….
하나우리 북스
http://cafe.daum.net/hanauli
첫댓글 늦게 와서 이제야 보게되네요ㅠㅠ 다음화가 빨리 보고 싶어요ㅠㅠ
너무 늦게 읽었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개인 카페에서는 아직 활동하시나요. 다음 편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