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횡으로 지나가는
겨울 빛의 수평선과 하얀 모래밭이 싱그럽 다.
이따금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함께 묻혀오는 갯내음도 상큼하 다.
물론 해변가에 줄지어 들어선 모텔만 없다면 더욱 좋으련만. 기장 9포의 나들이는 송정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송정은 지금 해운대구에 속하지만 원래 기장 땅이었다.
송정의 옛 말도 가을포(加乙浦)로 우리말의 '갈포'를 한자로 옮겼다.
갈대가 우거진 갯가를 뜻한다.
조선 말까지만 해도 송정천과 바다가 맞 닿은 자리에 갈대가 우거졌다는 것이 기장군청의 설명. 지금은
포 구 흔적도 갈대도 찾기가 어렵다.
죽도공원이 그나마 아련한 기억 을 되짚으며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대신한다.
가을포에서 31번 국도 지선을 따라 500m가량 기장 방면으로 들어 가면 기장 9포의 두번째 포구인
공수포에 이른다.
기장곰장어 간 판을 확인한 뒤 해안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길 찾기가 쉽다.
포구 의 마을 이름도 공수마을이다.
공수포는 나라에서 내린 논밭을 뜻 하는 공수전에서 유래했다.
한때 비오리가 많이 산다고 해서 '비 옥포'나 '비조포'로도 불렸다고 한다.
'U'자형의 작은 포구로 된 공수포는 다른 포구와 달리 포근하고 깔끔하다.
덕분에 해양부로부터 관광 어촌마을로 지정됐다.
선창 가를 에워싼 나무 보행로는 외국의 산뜻한 관광 어촌을 연상시킨 다.
호리병 모양의 대형 콘크리트 수조도 구경거리다.
지난해 말 건립했는데 올 여름부터 배에서 잡은 물고기를 이곳에 풀어놓고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수마을 끝자락의 아담한 건물은 지난 1970년대 세워진 LG그룹의 별장이다.
별장 뒤쪽의 언덕을 타고 오르면 극락사 삼거리를 지 나 곧바로 용궁사 주차장에 닿는다.
용궁사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기장군의 관광 명소로 해안 절경이 아름답다.
용궁사 뜰에서 식당을 지나 바깥으로 나가면 시랑대다.
태종대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멀리 내다보이는 수평선도 무척 평온하다.
바위 곳곳에는 옛 시인묵객들이 시랑대의 아름다움을 시문으로 새겨 놓았다.
눈썰미가 있다면 양지바른 바위 틈새도 둘러볼 일이다.
한겨울을 잊은 듯 해국과 인동초,갯당귀,인진쑥이 거친 갯바람을 이겨내며 옹기종기 피어 있다.
시랑대는 예부터 기장 최고의 명승지. 하지 만 최근 용궁사가 입구 문을 막아 양해를 구해야 들어갈 수
있다.
용궁사에서 다시 31번 국도로 빠져나와 2.5㎞가량 들어가면 무지 포를 만난다.
옛 무지포는 희고 긴 모래밭이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모래밭은 공유수면 매립으로 완전히 사라 졌고 대신 포구 끝자락에 월드컵등대와 대변등대를 남겨 놓았다.
광주리 모양의 커다란 붕장어 통발과 멸치 후릿배는 그 나름대로 무지포의 정취를 되살려준다.
기장 최대의 포구나 다름없는 대변항도 왼쪽에 나타난다.
대변항 을 지나 다시 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친구'의 촬영장에 이른다.
영화 초반부에 어린 주인공 네 명이 헤엄치며 놀던 장소다.
지금 은 소공원으로 조성돼 길게 펼쳐진 갯바위 주변에서 데이트 나온 연인과 낚시꾼의 한가로운 겨울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기장의 대 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인 '대변~월전 길'도 여기서 시작된다.
자동차를 계속 몰아 월전상회를 찾은 뒤 죽성리의 왼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포구 끝자락에 황학대가
위치한다.
얕은 언덕 위의 황학 대는 윤선도가 7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던 유적지. 윤선도는 이곳 에서 한글시
6수를 남겼다고 하나 안내 간판에서 이를 전해받기는 힘들다.
황학대마저 관리 부실로 폐허나 다름없이 방치된 상태다 . 국내에 2곳뿐이라는 국수당도 포구 왼쪽의
금보횟집 위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국수당에는 500년은 족히 됐음직한 소나무가 볼 만하다.
국수당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죽성리 왜성과 신라 토성이 보인다.
왜성과 토성 주변에는 아직도 당시 전쟁 때 화살 재료를 공급했던 대밭이 남아 있다.
왜성 왼쪽의 봉우리는 남산 봉수대다.
죽성리는 옛날 죽성 8경으로 소문났을 만큼 아름다웠다 . 해변의 순환도로도 여기서 끊어진다.
신앙촌이 가로막고 있기 때 문으로 죽성초등학교와 신앙촌을 지나 14번 국도와 31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까지 둘러갈 수밖에 없다.
일광해수욕장을 지나 일광 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면 이을포가 나타난다.
이을포는 소설가 오영수의 '갯마을'을 낳은 실제 무대. 소설의 배경이 됐던 강송정과
느티나무,느릅나무,당집을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가 크 다.
갯벌도 당시만큼 넓지 않지만 그런대로 운치는 남아 있다.
마 을 사람들은 일광천을 따라 달음산 밑까지 올라가면 아직도 가끔 은어가 잡힌다고 전한다.
갯가의 돌이 바둑돌처럼 반지르르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기포(碁浦 )도 여기서 가깝다.
기포는 현재 전국 최대의 다시마 집산지. 하 지만 이곳 역시 포구는 거의 매립된 상태다.
찾기가 쉽지 않다면 행정구역상의 일광면 이동마을을 물어보면 된다.
큰 전등 2개가 긴 대나무 끝에 매달린 갈치배와 멀리 붉은 빛을 내는 이동 등대 가 그 나름대로
이채롭다.
기포에서 임랑까지 이어지는 6㎞의 31 번 국도 동백길도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동백로를 따라가다 보면 칠암에 못미쳐 갯내음이 향긋한 동백포에 이른다.
옛날부터 구갑석(거북 등딱지 모양의 수석)으로 유명해 개발 소문만 들리면 전국의 수석꾼들이 모여든다고
하는 명소다.
갯바위마다 파래가 붙어 있어 작은 포구의 정취가 오롯하다.
파래 와 뒤섞여 붉은 빛을 내는 해초는 '주취'라고 불린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이를 삶아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칠암과 문중마을을 지나면 행정구역상 문동으로 불리는 독이포에 닿는다.
큰 볼거리는 없지만 포구 앞의 옛 돌담과 기와집이 그 나 름대로 호젓한 풍경을 담아낸다.
월내포도 임랑해수욕장을 지나면 곧바로 만난다.
투명한 옥빛의 바다가 무척 온화하다.
월내교 아 래에는 좌광천이 바다를 향해 흐르며 좌광천 위쪽에는 서민의 정 서가 담긴 동해남부선이
횡으로 지난다.
기장 9포의 마지막 순례지인 화사을포는 고리원자력이 터를 잡아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화사을포(火士乙浦)의 이름 해석으로 포구 여행을 마감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화사을포의 화(火)는 '불'을 뜻하고 사을(士乙)은 '살(光)'을 의미하는데,다름아닌 고
리원자력발전소의 입주를 예감한 듯하다.
여유가 있다면 월내포에 서 멀지 않은 이길봉수대에도 올라가 볼 일이다.
봉수대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하나 가급적 느린 걸음으로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옛 봉수대였던 만큼 조망권이 무척 좋다.
봉수대도 옛 모습 그대 로 복원된
상태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남포동 원산면옥 냉면 비싼거에 비해 맛없던데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