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서울한영대 남성현 교수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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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영성의 흐름을 생생하게 담은 순례 여행의 길잡이
박경수,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대한기독교서회, 2023)
박경수 교수의 저서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는 접근하기 어려운 수도주의 영성을 보다 친숙하게 독자에게 소개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의 강의와 연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출판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2013)와 『개혁교회, 그 현장을 가다』(2018)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바 있다. 종교개혁의 성지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신자들의 순례가 일반화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들의 지적이고 영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종합적인 안내서를 선뜻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자의 “○○○○, 그 현장을 가다” 시리즈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감당해왔다.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는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4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수도원에 대해 놀랍도록 다양한 정보를 수도원이 지닌 영성과 함께 소개한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책장을 열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면면을 접하다 보면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것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300쪽의 지면과 각양각색의 400여 도판을 통해 독자는 수도원의 역사와 영성, 과거와 오늘, 건축과 예술작품에 대한 분석과 의미 등 시간을 넘나드는 여정으로 초대받는다.
이 책이 주는 다른 유익은 수도주의 영성의 흐름을 그 시작인 4세기 이집트 영성부터 16세기 예수회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개관했다는 점이다. 영성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자라도 수도원 역사 전체를 개관하거나 동방과 서방의 수도원 역사를 큰 줄기로 제시하는 일은 도전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방문한 역사 현장들을 다양한 도판으로 보여주며 수도주의 영성의 흐름과 접목하여 알기 쉽게 풀어냈다.
이 책은 수도주의의 요람인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기독교 영성의 무대를 사막으로 옮긴 ‘수도주의의 아버지’ 안토니오스는 306년경부터 3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 콜짐(Colzim)산(山)의 오아시스에 머무르며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저자는 안토니오스 수도원을 무려 1993년에 직접 방문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안토니오스 수도원,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원”이라는 순례 연재물의 첫 번째 꼭지를 「기독교사상」 2020년 11월호에 실었다. 이 내용이 이 책의 첫 번째 장으로 자리 잡았다. 안토니오스의 독수주의(獨修主義) 외에도 저자는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의 배경이 되는 니트리아, 스케티스, 켈리아 등에서 꽃핀 반(半)독수주의와, 타벤네시스를 모(母)수도원으로 하는 파코미오스의 공주(公住)수도회도 빼놓지 않고 다루었다. 특히 안토니오스의 생애를 개관하면서 이른바 ‘안토니오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이라고 일컬어지는 근현대 서양 미술의 소(小)주제도 곁들인다. 근대 이후 많은 서양의 화가들이 ‘안토니오스의 유혹’을 회화로 표현한 바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동방 교회의 카파도키아와 메테오라의 수도원을 각각 소개한다. 로마제국 동방의 수도원은 여러 흐름이 있었지만 4세기 후반에 살았던 카파도키아의 바실리오스가 후대에 미친 영향이 가히 압도적이다. 바실리오스의 『수도규칙서』 혹은 『대(大)수덕집』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그 중요성을 잊지 않고 상기시켜 준다. 화산암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절경에 신앙심이 더해져 만들어진 괴레메, 거대한 규모의 데린쿠유 지하도시 등은 저자의 표현대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역사가 만난’ 인류의 유산이다.
이어 저자는 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거쳐 메테오라 지역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대(大)메테오로 수도원 등 ‘공중에 매달린’ 듯한 여러 수도원들은 비잔틴제국이 그 수명을 다해가던 14세기 이후에 설립된 것이다. 몰락해가는 국가를 되살리고자 기도에 헌신한 자들이 깎아지른 절벽을 삶의 장소로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비잔틴 사람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동방의 수도원을 약술한 후 저자는 서방 지역(과거 라틴어권)의 수도원으로 독자를 이끈다. 5세기 초반에 이미 프랑스 남부 지역에 수도주의가 뿌리내렸지만, 저자의 발길은 6세기 이탈리아에 자리한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모태, 몬테카시노로 향한다. 중세 서방의 수도원은 대개 베네딕투스 영성을 통해 활력을 되찾곤 했으므로 이런 선택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몬테카시노 수도원 외에 저자가 방문한 베네딕투스 계열의 수도원은 산마르코 수도원(이탈리아), 퐁트네 수도원(프랑스), 파운틴스 수도원(영국), 아이빙엔 수도원(독일) 등이다.
베네딕투스 영성은 중세의 여러 시기마다 강조점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기도와 노동을 동일선상에 놓는 영성에 기반한다.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손노동을 노예의 일로 천시한 것과는 달리, 이집트 수도주의와 바실리오스의 규칙서는 손노동을 중시하여 기도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바실리오스의 규칙서 초판인 『소(小)수도규칙서』는 390년경 루피누스(Rufinus)의 라틴어 번역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수도원에 소개되었다.(47쪽) 베네딕투스는 라틴어 번역본을 참고하여 자신의 규칙을 완성함으로써 서방 세계의 수도적 삶에 주춧돌을 놓았다. 중세 서방 세계에서 13세기 이전의 영적 부흥은 노동과 기도를 기반으로 한 수도적 삶의 부흥을 일컫는다.
저자는 베네딕투스의 영성의 고향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설명하면서 스코틀랜드 철학자 매킨타이어(A. Macintyre)가 쓴 『덕의 상실』(After Virtues, 1981)을 거론하는데, 매킨타이어는 덕을 실천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로서 베네딕투스 공동체를 제시한다.(101-102쪽) 베네딕투스 공동체가 추구한 노동과 기도의 조화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행 2:43-47)의 회복이라는 원초적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초시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을 설명하면서 박식한 도상 해석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개관한 것은 이 책의 묘미를 더해준다.(135-147쪽)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아랍 세력의 침입으로 883년 파괴된 이후, 서방 수도원의 중심은 910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클뤼니(Cluny) 수도원으로 옮겨간다. 그 이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원 운동이 쇠락할 무렵인 1098년 시토(Cîteaux) 수도회가 설립된다. 클뤼니 수도원과 시토 수도회는 모두 베네딕투스 영성을 기초로 했다. 저자가 지적하듯,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의 작사자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흔히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인 인물이었고 막강한 종교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182-183쪽) 베르나르가 설립한 프랑스의 퐁트네 수도원은 현재까지도 시토회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자는 2008년 학생교류 프로그램의 인솔자로 영국 요크를 방문했고 이 기회에 시토회의 파운틴스 수도원 유적을 탐방했다고 한다. 영국은 16세기 수도원 해산령 이후 폐허로 변한 수도원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더러는 캠핑장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파운틴스 수도원은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토회 유적지라고 한다.(197쪽) 저자가 소개하는 중세 마지막 수도원은 독일의 성녀이자 교회의 박사인 힐데가르트가 여성들을 위해 설립한 아이빙엔 수도원이다. 힐데가르트는 다방면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인물’(219-221쪽)이고 방대한 규모의 의학 치료서를 남겼기에 ‘독일의 허준’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네딕투스 계열의 수도회가 생명을 다하던 13세기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 등 새로운 수도회가 탄생한다. 베네딕투스 계열의 수도회가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를 모토로 삼았다면, 탁발수도회는 절대적 가난(마 9:10-11)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저자는 앗시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함께(108-118쪽),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도미니크회) 등을 소개한다.(156-163쪽) 그러나 중세 말기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탁발수도회는 많은 비난에 직면했고, 특히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자들은 특히 탁발수도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종교성이 천주교 내부의 개혁 운동을 주도한다. 이른바 가톨릭의 스페인화 시기에서 저자는 『영혼의 성』을 쓴 아빌라의 테레사와 이냐시오의 예수회를 대표적으로 다룬다. 아빌라의 테레사가 전통적인 수도원의 갱생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냐시오는 정해진 장소에 정주(定住)하지 않고 베네딕투스의 공동체 영성을 탈피하여 학문과 개인 영성을 결합한 현대적 개념의 종교 결사(結社)를 설립한다.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는 전문적인 학술서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책 뒷표지에 적힌 “언젠가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수도원 탐방을 위한 안내서”, “안방에서 떠나는 수도원 순례”라는 두 문구가 요약하듯, 영성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로 계획되었다. 동방과 서방 수도원의 큰 줄기를 따라가며 인물과 주요 장소의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렸고, 건축과 미술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도 가미했다. 또 각 수도회의 분화와 현재의 모습도 제시하는 백과사전식의 구성을 갖추어 수도원 핸드북으로서 손색이 없다. 동방 수도원 중에서는 5-6세기 유대 사막의 수도원들과 중세 비잔틴의 수도원 및 병원이 전체적으로 누락되었고, 예루살렘의 성(聖)요한 병원수도원과 중세 프랑스의 병원수도원 등 수도원 영성의 중요 부분도 누락되었지만, 그 상당 부분은 고고학이나 오래된 문서로만 접근이 가능할 뿐이다.
끝으로 이 책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직접 가본 곳만 선별하여 글보다 몸으로 먼저 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을 덮고 나서도 ‘나도 한번 이런 곳을 가고 싶다’는 열망의 싹이 아련하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듯하다. 박경수의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가 부디 널리 애독되고 순례와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독자들의 영적인 지혜가 깊고 넓어지며, 신앙도 성숙되고, 덤으로 인문학적 소양도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한다.
남성현|서강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4-6세기 수도원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독교 초기 수도원 운동사』, 『콘스탄티누스 가문의 기독교적 입법정책』, 『고대 기독교 예술사』, 『병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역할』 등의 저서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 등의 역서가 있다. 현재 서울한영대학교 글로벌 기독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