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튀르키에 )의 지진과 한국과 왜! 형제의 나라로 부를까요?
터어키는 6.25전쟁시 15,000명 파병 전사 721명 부상2.493명의 유엔군일원으로 한국에 파병한 피를나눈우호국가입니다 특히 청천강 부근 군우리 전투에서 프랑스군 미군이 전멸당할 순간에 터어키군이 용감하게 맞싸워 물리쳤으며 6.25전쟁시 파병한 군사는 사실 지금은 탄압받는 쿠르트족이라 합니다
1.,터어키 지진과 관련은 ?
튀르키에 정부와 유엔이 5일(현지 시각)까지 집계한 지진 사망자는 튀르키예 4만5089명, 시리아 5914명 등 5만1003명에 달한다. 부상자는 12만명 이상, 이재민은 2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합니다.
2.튀르키에 (터어키)의 역사는 ?
13세기 말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건국했으며, 1354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정복하고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하며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3. 6세기668년고구려와 당나라 고당전쟁에 당이승리하기전 당나라 북쪽에 거란족 돌궐족(터어키.튀르키엔)이 고구려와 함께 당나라는 북쪽 국경에 철륵. 설연타 나라를 세운 돌궐족이며 당의 국경과 인접해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당을 견제하기위해 사신을 보내 고구려 돌궐 이 당에 대항하는 과정에 당나라의 공격으로 동돌궐이AD635년 당에 쫒겨 멸망 이어 서돌궐이 685년 서쪽에 건국합니다 먼저 동돌궐족의 한부류가 설연타. 철륵이란 나라가설립 635년 당에 멸망하게 되자 이는 고구려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데 당은 서쪽의 국경이 안정되자 당은 고구려를 집중 공격 침략하여 연개소문의 아들 3형제가 권력투쟁으로 연남생이 당에 당에 항복하여 고구려는 668년 멸망을 하게 됩니다
고구려와 협력으로 당을 견제했댠 돌궐족 설연타
한편 당의 공격으로 돌궐족은 744년 당에 쫒겨 1천년동안 1만8천키로를 이동하여 오늘날의 소아시아반도에 셀쥬크 터어키를 건국하여 1037년 - 1307년 소아시아반도와 동로마제국과 전투로 콘스탄틴노플을 점령하고 성지인 예루살렘을 점령 약탈하자 마침내 동서양 대전투 십자군 전쟁이 8차에 걸쳐서 113년동안 전쟁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 100만명 추정 당시 세계인구 4억명)내고 셀쥬크 터어키는 십자군전쟁에서 승리 막강한 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4.오스만 대제국 건설은 ?
오스만은 1300~1481년에 아나톨리아 전역을 정복하였고 1346년 유럽에 진출하여 1389년 코소보, 카이로를 지배했고 1444년 십자군을 패퇴시키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했고, 알바니아·크리미아 등을 합병했다.
오스만인들은 개종시킨 젊은이들을 평생 복무시킨 데브시르메 제도를 활용해 지배계급에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17세기와 18세기 대부분 동안 전성기의 국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며.지나치게 오랜 평화기로 인해, 18세기 말에 이르자 오스만의 군사력은 점차 방만해졌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서구 열강들에게 연전연패하며 그 부실한 체력이 폭로되었고, 어쩔 수 없이 탄지마트라 불리는 개혁 정책을 통해 제국을 탈바꿈하려 노력했다. 오스만 제국은 이를 발판 삼아 19세기 내내 영토가 점차 축소되면서도, 특히 발칸 지역 등에서는 통치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5.1908년에는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제국의 황제에게 헌법을 인정하고 입헌군주정을 선포할 것을 강제했고, 5년 후 급진파 장교들이 주축이 된 통일진보위원회가 쿠데타를 일으켜 일당 독재 체제를 선포했다. 통일진보위원회가 결성한 통일진보당은 독일 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결속을 위해 애쓰던 오스만 제국은 아랍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을 상대로 대량 학살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과 동맹국이 패배하자, 오스만 제국은 중동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고, 이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이후 현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이 등장해 혼란스러운 국정을 다잡고 오스만 제정을 폐지한 후 현재의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했다. 서양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오스만 튀르크라 부릅니다
6. 끝으로 처칠수상이 영군 해군참모총장시절 1차대전시 튀르키에 무스타프케말과의 갈리폴르전투에서 케말파샤가 처칠의 군사를 격전을 벌여 50만명의 영국군이 전사 양측 전사자수는 비슷하나 패전은 처칠이 기록에 남아 처칠을 비아냥 할때는 갈리폴트 전투하면 처어칠 수상의 뼈아픈 패전사에 기가 죽는다 하나 2차대전에서 독일의 함부르크 드레스덴 쾰른 대폭격 전투기 1000대씩 동원 무차별 폭격으로 (융단폭격의 신조어)3개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 독일이 결정적인 패배를 시키기도 합니다 폭격기 1천대가 일제히 공격하는 융단폭격으로 드레스덴시 함부르크 쾰른시는 고열 1000도가 넘어 수십만명이 동시에 살상됩니다
드레스덴시 대폭격 장면
쾰른시 대폭격
함부르크 대폭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