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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완전정복] Ep.19)
스킬라치, 원기옥형 스트라이커
월드컵 역사,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은 그야말로 여러 스타들이 즐비한 '군웅할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대회였다. 지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마라도나와 준우승에 그쳐 절치부심하며 돌아온 마테우스,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 득점 기계 호마리우, 86 월드컵 득점왕 개리 리네커와 악동의 원조 폴 개스코인 등 다양한 스타들이 참여한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회와 같았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제치고 1990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커리어 내내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이 대회에서만큼은 달랐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대회 최고의 선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기옥형 스트라이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그 이름은 바로 살바토레 스킬라치다. 오늘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원기옥을 쏘며 최고의 스타가 된 스킬라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메시나 시절 스킬라치의 모습 (출처: repubblica palermo)
인간극장 스토리의 원조
스킬라치는 시칠리아의 작은 클럽 메시나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가 데뷔를 할 당시 메시나는 4부 리그에 해당하는 세리에 C2 소속이었다. 그가 데뷔한 시즌 메시나는 C1으로 승격을 하게 됐고 이후 3시즌이 지나서야 메시나는 세리에 B로 승격을 하게 된다. 이때 스킬라치는 리그 31경기 11골을 넣으며 팀 승격에 일조하게 된다. 세리에 B 승격 첫 시즌에서는 33경기 3골을 넣으며 극심한 부진에 빠졌으나 다음 시즌부터는 좋은 폼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13골을 넣으며 예열을 마친 스킬라치는 다음 해인 1988-89 시즌 23골을 넣으며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하며 많은 빅클럽 스카우팅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스킬라치는 한때 이탈리아를 대표했던 수문장 디노 조프 감독의 부름을 받아 유벤투스에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스킬라치는 그 시즌 리그 15골을 포함해 시즌 21골을 터뜨리며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보다 리그에서 골을 많이 넣은 선수는 마르코 반 바스텐, 마라도나, 로베르토 바조뿐이었다.
그렇게 월드컵 직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스킬라치는 아주리 군단 월드컵 최종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4부 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선수가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인 이탈리아 대표팀 자격으로 월드컵에 참가하는 인간극장 스토리를 완성한 것이다.
극장을 넘어 신화로
극적인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아주리의 주전 공격수는 이미 만석이었다. 세리에 A에서 꾸준히 두 자릿수 득점을 터뜨린 잔루카 비알리와 마라도나와 함께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한 카르네발리, 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자 삼프도리아의 판타지스타였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스킬라치는 포워드 중 6순위 선수라는 세간의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그렇게 자국에서 열린 첫 번째 경기,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쉴 새 없이 공격을 몰아쳤으나 골키퍼의 연속 선방으로 후반 30분까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안방에서 첫 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지 못한다면, 팬들의 비난은 물론 온갖 언론에 조롱을 당할 것은 뻔할 뻔자였다. 이때, 이탈리아의 감독은 대표팀 경기 경력이 단 한 경기뿐이었던 스킬라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극적인 선제골로 팀을 구해내는 스킬라치 (출처: Barbosa Futbol Videos)
그리고 그 승부수는 극적으로 적중하게 된다. 비알리의 크로스를 받은 스킬라치가 헤더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게 된 것이다. 무명의 선수가 개최국 이탈리아를 구해내자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 축구 팬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골을 넣었다고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음 경기인 미국전에서도 교체 출전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입지가 상승했음을 증명했다.
어쨌든 이탈리아는 미국전에서도 1대 0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을 확정 짓게 된다. 여유롭게 3차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된 이탈리아 감독은 주전 공격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당시 신예였던 로베르토 바조와 스킬라치를 선발로 기용한다. 두 선수는 좋은 호흡을 보이며 각각 한 골씩 넣으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스킬라치는 자신에게 찾아온 선발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득점을 통해 자신의 폼이 절정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스킬라치의 월드컵 2호골, 이처럼 스킬라치는 본능적인 골 감각이 월드컵 내내 절정에 올라있었다. (출처: Barbosa Futbol Videos)
얼마 전까지 2부 리그를 전전하던 공격수가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2골을 넣자 언론들은 스킬라치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스킬라치는 인터뷰 중 꿈을 즐기게 해달라며 자신의 상황이 최고조임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의 감독 역시 16강전에서 3차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스킬라치와 바조를 선발로 내보내며 그가 꿈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스킬라치는 16강 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 결승골을 뽑아내며 자신의 꿈같은 시간을 이어나갔다. 8강 아일랜드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킬라치는 이번에도 침착한 마무리를 통해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아주리를 4강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스킬라치의 등장에 환호했고 그의 활약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16강 우루과이를 상대로 멋진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는 스킬라치, 대회 3호골 (출처: Barbosa Futbol Videos)
나폴리의 악몽
하지만, 4강의 상대는 그들이 만났던 상대와 확연히 수준이 다른 팀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였던 것이다. 심지어 준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은 나폴리의 홈구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였다. 그 경기장의 현재 이름은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다. 그렇다. 마라도나는 당시 나폴리 소속으로 유례없는 활약을 보여주며 나폴리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당시 경기를 회고하는 이탈리아 선수들 증언에 따르면 관중의 절반 가량이 이탈리아가 아닌 마라도나를 응원했다고 한다.
우리 세대로 치면, 리오넬 메시가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바르셀로나 홈구장인 캄 노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상대했다고 보면 된다. 축구 팬이라면 바르셀로나 팬들이 메시에게 가진 충성심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나폴리 팬들에게 있어서 마라도나는 메시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 역시 이러한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지역에 대한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인터뷰를 하며 자신을 응원해달라고 호소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4강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리는 스킬라치 (출처: Barbosa Futbol Videos)
마라도나의 심리전에 휘말리는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스킬라치는 또다시 선제골을 넣으며 자신이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수비 실책으로 인해 동점골을 내주었고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결승전 티켓을 아르헨티나와 마라도나에게 내주어야 했다. 후에 스킬라치는 만약 4강전 경기가 나폴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펼쳐졌다면 이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그만큼 나폴리와 함께한 마라도나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복 없이 선제골을 터뜨린 스킬라치 역시 대단했다.
"꿈속에 있는 나를 깨우지 말아 주세요" -살바토레 스킬라치-
스킬라치는 3, 4위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PK 결승골을 넣으며 팀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왔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의 주인공은 단연 스킬라치였다. 벤치 멤버에 불과했던 선수가 후반 조커로 빛을 보았고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살려 대회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인생극장 스토리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조별리그 3차전부터 16강, 8강, 4강, 3위 결정전까지 무려 5경기 연속골을 넣었고 모두 팀에 있어 중요한 골들이었다.
대회 득점왕 역시 6골을 넣은 살바토레 스킬라치의 차지였을 뿐만 아니라 대회 MVP에게 수여되는 골든볼까지 스킬라치에게 주어졌다. 스킬라치가 최고의 선수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선수는 우승을 차지한 서독의 캡틴 마테우스, 축구의 신 마라도나였다. 비록 발롱도르는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소속팀에서도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마테우스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1990년은 스킬라치에게 정말 꿈같은 한 해였다.
스킬라치의 골 셀러브레이션, 그는 대회 6골을 기록하며 대회 최고의 스타 자리를 차지해다. (출처: FourFourTwo)
꿈에서 깬 스킬라치
하지만, 스칼리치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골든볼과 골든슈를 동시에 차지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였지만, 그 이후의 커리어는 그저 그런 선수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월드컵 이후 한차례도 세리에 A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터트리지 못했다. 유벤투스를 떠나 인터밀란으로 향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결국 스킬라치는 축구 변방인 아시아 무대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일본 J리그에서 수많은 골을 폭격하며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주빌로 이와타가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스킬라치를 보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잘 살리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스킬라치가 2부 리그를 전전하는 별 볼일 없는 커리어를 지녔었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가장 위대한 축구 대회인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축구 강국 이탈리아 국가대표팀과 최고의 팀인 유벤투스와 인터밀란에서 뛰었던 것만으로도, 나아가 월드컵에서 대회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로 지목될 만큼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스킬라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골든볼과 골든슈를 동시에 석권한 스킬라치,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출처: MA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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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월드컵의 탄생, 쥘 리메의 꿈
Ep.2) 초대 월드컵,'메이저 3연패'를 이룩한 우루과이
Ep.3)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무적의 아주리
Ep.4) 축구 때문에 자살을? 마라카낭의 비극
Ep.5) '공은 둥글다' 베른의 기적
Ep.6) 펠레, 축구황제의 강림
Ep.7) 세상을 경악케 한 ‘절름발이’ 가린샤
Ep.8) 골 라인 넘은 거 맞아? '축구종가' 논란의 우승
Ep.9) 에우제비우, 돌풍을 잠재운 흑표범
Ep.10) 펠레, 축구황제 대관식
Ep.11) 축구 전쟁,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Ep.12)쥘 리메컵 잔혹사
Ep.13) 크루이프, 현대 축구의 전환점
Ep.14) 베켄바워, 왜 역대 최고의 수비수인가?
Ep.15) 역사상 최악의 월드컵, 1978 아르헨티나
Ep.16) 파올로 로시, 월드컵 판 신데렐라
Ep.17)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왜 동시에 펼쳐질까? 히혼의 수치
Ep.18) 마라도나, 왜 축구의 신인가?
첫댓글 최고의 활약을 보인 대회가 월드컵이라니 ㄷㄷ
ㄷㄷ
스킬라치ㄷㄷ
와 토너먼트 전경기 골이네
ㄷㄷㄷㄷㄷㄷ
와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