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이뤄준다더니"...소원 빌며 던졌던 분수대 속 100원 '이곳'에 사용 됩니다
여행톡톡 2023. 6. 11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아시나요? 이것은 로마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인 트레비 분수에서 유래되었는데요. 트레비 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던지면 지금의 연인과 이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 속설 때문에 사람들은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데요. 아마 '내가 던진 동전은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과연 분수대 속 동전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레비 분수의 동전은 어디로 갈까?
트레비 분수는 1732년 니콜라 살비(Nicola Salvi)가 설계해 1762년 피에트로 브라치(Pietro Bracci)가 완성한 분수.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는 로마에서 가장 큰 분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이기도 합니다.
이 분수가 유명한 것은 첫 번째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째 동전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굉장히 상업적인 전설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을 위해 던지는 동전 수입이 상당히 짭짤해서인지 여기저기에서 소원 들어주는 분수랍시고 패러디하고 다닙니다. 가끔 분수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동전을 던지면 두 번째 동전을 던져 이루어진 사랑이 깨진다고 합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동전을 던져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곳인데요. 전설은 물론 영화에까지 등장한 이곳에선 낮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동전을 던지기조차 어렵다고 합니다. 수북이 쌓인 동전 때문에 바닥을 구경하기는 더욱더 힘들죠. 이 동전들은 매일 아침 로마시에서 진공 흡입기와 밀대 등을 이용해 수거하는데요. 하루에 4,000유로(한화 515만 원)의 동전이 쌓인다고 합니다.
하루에 500만 원이니 한 달만 지나도 금액이 어마어마하겠죠? 2016년 한 해 동안 트레비 분수에 던져진 동전을 수거하여 집계해보니 무려 140만 유로(한화 약 17억 원 상당)라는 금액이 나왔다고 하며, 수거된 동전은 2001년부터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가톨릭 자선단체인 '카리타스'에 기부되었습니다. 카리타스는 저소득층 식품 지원, 무료 급식소, 난민 쉼터 등에 기부금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많은 금액이 분수대에 동전으로 던져지다보니 2019년 로마의 시장 비르지니아 라지가 올 4월부터 수거한 동전을 시 예산으로 귀속시키기로 결정했는데요. 도시의 낡은 기반시설을 재건하고, 문화재 보존과 사회 복지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죠. 그동안 로마시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려왔는데요. 2018년 10월에는 열악한 도시환경에 분노한 주민 수천 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이에 결국 관광객들의 소원을 담은 동전마저 긁어모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트레비 분수의 동전을 두고 로마시 시장과 가톨릭 교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는데요. 2001년부터 동전을 기부받아 노숙자와 빈곤층을 지원하는 데 사용해온 카리타스에 대한 지원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트레비분수의 동전까지 빼앗으려 한다며 로마시를 거세게 비난했죠.
카리타스도 이러한 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논쟁은 과거에도 있었는데요. 로마 시의회는 2017년에도 재정난에 처한 로마시의 빠듯한 살림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했지만,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 무산됐습니다.
로마 시장은 이번에도 역시나 교회와 야권의 반발에 밀려 입장을 선회했는데요. 최근 고위 간부들과 회의를 통해 트레비 분수의 동전을 카리타스에 계속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트레비 분수뿐만 아니라 로마시 곳곳에 있는 다른 분수에 쌓이는 약 2억원의 동전 역시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벌써 동전으로 4억 모인 청계천 팔석담
로마에 트레비 분수가 있다면, 한국에는 청계천 팔석담이 있습니다. 서울의 트레비 분수라고 불리는 청계천 팔석담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는데요. 청계천 복원 사업이 2005년에 완료되면서 '행운의 동전 던지기'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2008년에는 의미를 더하고자 트레비 분수를 본떠 만든 '소망석'을 설치했는데요. 그 결과 1년에 약 52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모였으며, 현재까지 모인 동전은 무려 4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행운의 동전 던지기 초기에는 동전을 매일 수거하지 않고 1~2주에 한 번씩 수거했는데요. 당시 1년간 모인 동전은 총 8만 6,233개로 요즘엔 보기 힘든 1원짜리 동전이 9개나 있었죠. 첫 번째와 두 번째 모금은 각각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돕기 성금으로 전달했습니다.
현재는 매일 밤 9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동전을 수거를 하는데요. 수거된 모금은 서울장학 재단에 기부해 서울 소재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청계천 꿈디딤 장학금'으로 사용됩니다. 2005년 이후로 2018년까지 모인 금액은 국내 동전 3억 9,663만 4,000원, 외국 동전 35만 4,338개로 외국 동전도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동전들은 장학 재단에 기부하거나 성금 기탁이 가능하지만 외국 동전은 환전이 어려워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요. 수거되는 외국 동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환전이 불가능한 동전은 유니세프에 일괄적으로 보내집니다. 지난해에도 서울시민 이름으로 외국 동전 1만 5,000점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했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이를 다시 영국으로 보내 환전 후에 긴급구호자금으로 활용된다고 하네요.
분수대 속 동전, 가져가면 불법?
분수대에 잔뜩 쌓여있는 동전에 혹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실제로 동전을 훔치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2002년 로마에서, 한 달 동안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주워 1만 2000유로(약 1500만 원)를 훔친 노숙자가 붙잡혔습니다. 또 2005년에는 청소용역 업체 직원 4명이 11만 유로(약 1억 2800여만 원)를 훔쳐 로마 경찰의 조사를 받았죠.
다만, 로마의 경우에는 분수대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동전을 꺼내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실제로 2003년에 낚싯대로 동전을 건져 올린 여성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판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트레비 분수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소를 한다고 하니 이제는 누구도 동전을 훔칠 수가 없겠네요. 그리고 다행히도 국내에서는 아직 적발된 사례가 없습니다.
각자의 소원을 빌며 던지는 동전은 불우이웃에게 또 다른 희망을 전해주고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일부는 "정말 필요한 곳에 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완전히 믿을 순 없다"라며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두의 소원이 담긴 작은 동전들이 꼭 필요한 곳에 전해져 의미가 변질되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