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기도
2024년 1월 2주
다날
새 차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접촉 사고를 당한 사람이 “차는 나오면서부터 중고차이니까 새 차라고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외려 사고 낸 사람을 위로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해, 새달, 새 한 주를 보내고 보니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전 1:9)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어느새 헐린 해 헐린 달 지나간 주가 돼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으로 보면 시간은 언제나 오고 있으니 항상 새해를 새달을 새날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새 마음 새 각오로 새날을 산뜻하게 살아내게 해주십시오.
부날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는 젊은이들을 응원합니다. 때론 혼자 남은 곳에서 피눈물을 흘릴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계 7:17)해 주십시오. 이들로 인해 세상이 더 밝아지고, 더 약동하는 선하고 힘찬 영향력을 뿜어내게 해주옵소서.
무날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함석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에서). ‘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 생각하는 것을 그렇다 하지 못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약 4:12)라고 하지 못하며 살아온 제게, 주님은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계 3:15)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하고 머리 흔드는, 옳음 앞에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남날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 때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뜨겁게 서로 사랑”(벧전 4:8)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위에 덕, 덕 위에 지식, 지식 위에 절제, 절제 위에 인내, 인내 위에 경건, 경건 위에 형제 우애, 형제 우애 위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라고 할 정도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삶의 노을기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쇠날
“등잔이 자기 집의 초라한 식탁만을 밝혀준다고 생각하지만, 절망하듯 비틀거리며 타오르는 그 불빛의 깜빡임을 누군가는 먼 곳에서 바라보며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생텍쥐뻬리, ‘야간비행’에서). 율곡 이이는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을 등잔으로 삼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롬 13:3)를 등잔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밝힌 작은 등잔이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줌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길라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을 새기며 살아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