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독일 에른스포지멘스 재단과 바이에른예술원은 진은숙을 지멘스 음악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클래식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지멘스 상은 작곡, 지휘, 기악, 성악, 음악학 분야를 통틀어 매년 한 명을 수상하며, 인류 문화에 대한 기여도가 수상 기준이다. 카라얀, 번스타인, 메시앙 등이 역대 수상자이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진은숙이 처음으로 감격적인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진은숙의 곡은 상상적 모호함과 구조적 정교함, 유동성과 안정성, 신비로움과 화려함 사이에 있다.’ 바이에른 예술원 회원들의 심사평은, 일찍이 그를 알아봤던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말을 상기시킨다. ‘바흐의 곡을 동시대 현대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 진은숙의 곡을 과거 대가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이 베를린 필의 목표’라고 사이먼 래틀은 음악계에 진은숙의 위상을 공표했다.
비유럽인이지만 진은숙은 ‘로컬리즘’이 아닌 ‘세계적 보편성’에 승부를 걸었다. 2007년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국의 전통 음악은 지금 우리의 삶과는 관련이 없다. 판소리나 민속음악은 생동감이 있지만 궁중음악은 딱히 한국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무엇이 한국적이냐고 하면 정의하기 힘들다.” 현대 음악은 현대의 어법으로 만들어가는 클래식이다. 과거의 클래식도 그 시대의 현대 음악이었다. 황병기, 백남준, 윤이상 모두 코스모폴리탄이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현대음악을 했다.
진은숙은 1962년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 집안에 사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 예배 반주를 맡았고, 근처 예식장에서 결혼식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레슨을 받는 것은 꿈도 못 꿨던 터라, 독학으로 음악 이론과 대위법을 공부했다. 그녀의 열정을 헤아린 중학교 선생님이 작곡을 권하며 말했다. “너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서울대 음대에서 그를 가르쳤던 강석희 교수(윤이상의 제자)도 당시 진은숙에게 비슷한 예언을 했다. “네가 작곡한 곳은 곧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게다.”
대학 시절 진은숙은 바흐의 첼로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에 그대로 옮겨 동기생들을 절망시키기도 했다. 24살에 그는 독일 함부르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자신들의 고유 영역에 거침없이 새로운 음표를 꽂아 넣는 아시아 여성, 지휘자 켄트 나가노나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같은 거장들이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진은숙은 유난히 물리학에 관심이 많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만들었듯이, 물리학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드디어 내년 5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볼프강 파울리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켄트 나가노의 지휘로 초연될 예정이다.
우주는 비어있어 초신성이 터져도 모깃소리만큼도 안 들리지만, 오직 지구만이 공기의 실핏줄을 타고 터지는 소리를 감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우주의 별을 향해 온몸으로 모스 부호를 쏘아 올리듯 음표의 바벨탑을 쌓고도, 한편으론 갚아도 다시 늘어나는 빚처럼 몇 년 후의 작곡 스케줄에 일상을 저당 잡혀 살고 있다. 점점 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실감한다.(김지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