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5명 `좋은여자닷컴` 사장님으로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일에 더 열심…애들도 엄마가 일한다고 좋아해"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취업 전선에 나섰을 때 ‘전업 주부’ 출신은 가장 불리하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더라도 육아와 출산으로 직장을 포기해 긴 공백이 생긴 주부 역시 서류전형에서 1순위로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인력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면서 고용 불안이 날로 심화되고 있기에 가정의 안정을 위해 생업 전선에 나서려는 주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지만 ‘주부 취업’은 물론 쉽지 않다.
그런 현실에서 최근 사회 진출의 비상구를 찾을 수 없던 주부 5명이 함께 사업체 여사장으로 변신해 화제다.
지난달 문을 연 ‘좋은여자닷컴(www.goodwomanshop.com)’은 10년 넘게 살림에 묻혀 살던 주부 5명이 뭉쳐 만든 여성 기업이다. 업종은 한지공예, 피부관리, 글짓기 지도, 홈패션, 여성 상(喪)장례 등 다섯 가지. 이들 여성 CEO(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47세. 쇼핑몰 운영은 각자 하지만, 마케팅과 홍보는 공동으로 진행한다. 일종의 ‘한 지붕 다섯 가족’인 셈.
이들 여사장은 모두 서울시가 운영하는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기술을 익힌 끝에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중부여성발전센터 김영숙(30) 취업담당 상담사는 “주부들은 프로 못잖은 기술을 가져도 취미에 그칠 뿐 직업으로는 삼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창업을 원하는 주부가 함께 모이면 서로 의지도 되고 창업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부여성발전센터는 이들이 모여 창업에 관해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홈페이지 제작 등에 필요한 초기 비용 350만원을 지원했다.
사업 시작은 쉽지 않았다. 우선 대부분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한 달간의 강도 높은 컴퓨터 훈련을 거쳐야 했다. 쇼핑몰 주소를 제대로 써넣지 못하는 ‘컴맹’도 있었다. 이때는 한 가지 일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아줌마 근성’이 도움이 됐다. ‘컴퓨터를 모르면 사업도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배운 것.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쇼핑몰에 주문이 들어왔는지 아닌지 확인할”(국애자 씨) 정도로 컴퓨터와 친해졌다.
한지공예 전문점 ‘옹달샘’을 운영하는 권성녀(55)씨는 영롱한 색상의 색(色)한지를 이용해 휴지통, 반짇고리, 문갑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 판다. 권씨는 센터에서 1년간 한지 공예를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던 데다 남보다 몇 곱절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지금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특별활동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실력이 늘었다.
“3년 전 아이들이 모두 자라면서 여유가 생겼어요. 센터에서 만든 작품을 주위에 나눠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사업으로 해 보면 좋겠다는 권유도 많이 받았어요. ‘성공 예감’을 놓치기 싫었습니다.”
창립 한 달이 지난 지금, 권씨의 성적표는 어떨까? 권씨는 “구체적인 매출 실적은 아직 밝히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값이 싸면서도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많이 나서 주문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권씨가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싼 값에 질 좋은 재료를 파는 가게를 발굴해낸 덕분이다. 권씨는 “앞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전통 민예품을 많이 만들어 유럽과 미국에 수출하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매직스킨’은 고객 피부를 1대1로 관리해 주는 피부관리 전문점이다. 박정숙(48)씨는 외국인 회사의 의류 디자이너로 일하다 30대 초반에 육아 문제로 회사를 그만뒀다. 박씨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전문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아 메이크업이나 헤어 등 여러 분야에 문을 두드려보긴 했어요. 그런데 피부 관리를 배웠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박씨는 “홈페이지를 여는 일도 어려웠지만 손님들이 계속 사이트에 들르도록 흥미를 유발하는 일도 참 힘들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고객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나 기획 상품을 개발하는 데 바쁘다.
‘모퉁이돌’은 초등생에게 논술과 글짓기 등을 가르치는 일종의 공부방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이정임(38)씨는 그룹(어린이 5인 기준)당 20만원 정도를 받고 글짓기와 책읽기, 토론술 등을 지도해준다. 이씨는 “엄마가 일한다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집 두 아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집에만 있을 때는 늘 찡그린 얼굴이었고 잔소리도 많이 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좋은 일이라도 생겼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늘 활기 넘쳐 보인다나요. 예전엔 목 안에 멍울이 생긴 것처럼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도 다 사라졌어요.”
‘한땀’은 이불이나 베개 등 홈패션 제품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맞춤’ 홈패션 가게다. 고객 요구에 맞게 상담을 거쳐 집집마다 다른 맞춤형 홈패션을 제공하는 점이 특징. 국애자(48)씨는 “대량 생산하는 공장 물건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맞춤 방식을 도입했다”며 “모든 제품은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만든다”고 설명했다.
“주부가 바깥일을 하면 집안일을 게을리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만큼 시간을 더 쪼개 활용하기 때문에 더욱 부지런해집니다.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해야 하니 외모도 깔끔하게 가꾸게 되고요.”
국씨는 “쇼핑몰에서 남는 수익의 일부는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씨는 요즘 침을 많이 흘려 베개 커버를 자주 갈아줘야 하는 지체장애인을 위해 베개 커버 수백장을 만들고 있다.
‘여성 상(喪)장례단’은 고인(故人)이 여성일 경우 염습 등 장례 절차 일체를 여성이 도맡아 해주는 업체다. 이 기업의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마지막길 여성의 손길로’. 장례식장에서는 남성이 염을 해 주는 게 보통이다. 박봉숙(47)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병원에서 남성이 염을 해 줘 안타까웠다”며 “돌아가신 분이 여성이라면 염은 같은 여성이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는 곳도, 학력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차곡차곡 기술을 익혀 사업을 시작한 아줌마 사장이라는 점을 공통분모로 가진 이들. 성격이 다른 다섯 기업이 모인 덕분에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힐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모두 ‘본업’이 집안 살림을 해야 하는 주부들인지라 자주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주부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다고 사업을 벌이느냐며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라? 제법인데’란 반응을 보여요. 주부들도 지혜와 실력을 모으면 내실 있는 여성 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박봉숙씨)
앞으로 날개를 더욱 활짝 펴고 싶다는 이들. 일 속에서 성취감을 발견한 ‘아줌마 사장’들의 얼굴은 비 온 뒤의 맑은 하늘보다 한층 투명했다.
자료출처 :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첫댓글 참.좋은 정보를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여성상위시대->남녀 평등의 시대->누구나 일해야 하는 시대적 욕구->자아성취를 위한 중요한 계획과 결단과 일정기간 배움과 실전과 달고 쓴 열매를 얻고 나누는 데 더욱더 아줌마 부대는 용감하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