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시리즈 설교 – 1
교만 : 스스로 하나님 되기
2024. 2. 18. 주일 낮(사순절 1주) 잠 6 : 16-19
지난 수요일이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수요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고 오늘은 사순절 첫 주로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모두 아시겠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이번 사순절 주일에는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토록 미워하신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총 7가지 죄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아쉽게도 사순절은 6주이기 때문에 한 가지를 다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죄는 부활주일이 지난 다음 주에 이어 전하면서 7가지 죄에 대해 마치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죄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제가 전하는 ‘죄’는 4세기경 사막의 수도사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7가지 대죄’를 가지고 전하려고 합니다.7가지 죄는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입니다.
이 목록을 보며 오늘 말씀의 제목인 ‘교만’이라는 항목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만: ]에 대해 말씀을 전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의 심각성에 대해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죄의 출발이 교만에서부터 시작된다”입니다.
7가지 죄 중에서 첫 번째 ‘죄’인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교만을 의미하는 라틴어 ‘스페르비아’는 자기 자신을 높이 둔다는 의미로, 자신을 실제 상태보다 더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스스로를 탁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 위에 있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기며 행동합니다. 이것은 뭇사람들 가운데서 우뚝 드러나고 싶은, “잘못된 높임에 대한 욕구”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쓴 ‘하나님의 도성’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을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자신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라고 가르칩니다. 이 모습을 인간의 원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창 3:1-7절에 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자신과 세계를 통치하며 살려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 11;1-9절의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던 인간의 행동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여 살며 문명을 이루고 힘이 강해지자, 사람들은 교만해져서 창 11:4절을 보면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고” 했습니다.
‘이름을 내다’라는 말의 원뜻은 ‘스스로 이름을 짓다’는 의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동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처럼,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주권과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바벨탑을 쌓고 성을 건설하여 함께 지내면서 스스로 하나님 대힌 땅의 지배자요 주권자로 살려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결국 그들을 흩으셨고, 다른 말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이라고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말합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만의 본질은, 사탄이 자기를 높여 하나님 자리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려고 시도하다 천사의 무리에서 떨어진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 14:13-14절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가 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유혹 내용과 같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이유와 같습니다.
C. S. 루이스 역시 교만이야말로 죄 중의 죄요 “가장 큰 죄”이며, 다른 모든 죄악은 교만에 비하면 마치 “벼룩에 물린 자국”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죄 중의 죄인 교만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자기 기만입니다.
이 말은 자기 스스로를 속인다는 겁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른 채 남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무척 대단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눅 18:9-14절에 나오는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인간의 이런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11-12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 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자신의 율법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그를 의롭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 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신의 잘못된 ‘의’논리에 빠져 자신이 잘못한 것도 모르고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지 바리새인은 몰랐던 겁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파당을 짓고 자기 지도자와 자기 은사를 자랑하며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그들 안에 있는 자기기만을 엄중히 질책했습니다.
고전 3:18절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이처럼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내 마음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 가지로 너희에게 전하였거늘 너희가 그 말씀을 너희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도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기만의 탈을 용기를 가지고 과감히 벗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2. 분열을 가져옵니다.
교만한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경청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더 합리적이고 의롭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견해를 들을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습니다. 혹 듣는다 하더라도 진심이 아니라 그저 예의상 듣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교만은 쌍방의 대화와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독단적 고립 상태를 가져옵니다.
또한 교만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혀 조직의 평화와 관계를 해칩니다. 이들은 동료가 어떤 식견과 능력이 부족하거나 어떤 일을 잘못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또 교만한 사람은 어른이나 선배의 말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에, 더 높은 권위에서 오는 정당한 지도나 통치를 무시하고 때로는 거부합니다.
이처럼 교만한 사람들이 있으면, 조직은 결속력이 떨어지고 관계가 냉랭해지기 십상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를 보시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분열입니다. 정치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중심의 신앙을 가진 분들을 보면,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이 우선입니다. 다른 것은 듣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불평을 터뜨리면서 세를 규합하여 교회를 분열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빌립보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였던 것은 서로 자신을 최고라고 여기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모두 자신이 최고라고 하기 때문에 절대 하나 되지 못합니다.
빌립보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권면이나 사랑으로 하는 위로나, 또 성령으로 말미암은 교제나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나 자비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런 좋은 일들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자신보다 낮게 여기며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2: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교만의 다른 이름)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교만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교만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신들을 분열시키고, 오직 자신들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3. 최후까지 남는 죄입니다.
교만이 모든 죄의 뿌리라고 하는 데는 다른 죄의 원천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만은 뿌리처럼 땅속 깊이 박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지에 해당하는 모든 죄가 제거된 후에도 남아 있어 제거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금 싹이 트고 가지가 솟아나듯이, 교만은 탐욕, 정욕, 탐식과 같은 대죄들이 다 제거된 뒤에도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애초부터 조심하고, 막고, 이겨내려면 방제를 잘해야 합니다. 교만이 다시는 싹트지 않도록, 교만에 병들면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교만을 교만인지 모르고 그냥 놔두면 결국 교만으로 뿌리까지 죽이든지, 아니면 다시 자라서라 그로 인해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잠 16: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럼 교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교만한 마음이 들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라고 스스로 외쳐 보십시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생각할 때, 하늘의 안식을 접어두고 오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십자가가 깊이 새겨질 때 교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셋째,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무조건 겸손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깊이 낮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가장 겸손한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 외에는 교만을 다스려 나갈 힘이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교만한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자신감인지, 용기인지, 성공자의 마음 자세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시면서 나를 비춰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교만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