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에 만나 친해진 형이 있다. 58년생 개띠로 그는 아내와 사별하고 아직도 혼자 산다.
내가 일찍 사회 생활을 한 탓에 10대 시절부터 선배들과 주로 어울렸는데 이상하게 개띠와 인연이 많고 대부분 친하게 지낸다.
예전에 가리봉동 공장에서 일할 때도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 준 형이 있었고 훗날 그 형도 개띠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성수동 어느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하나가 잘려 왼손 검지가 없었다.
열심히 배우라는 격려와 함께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던 형 때문에 나의 공장 생활이 수월했음은 물론이다.
그를 만난 건 2017년 여름,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였다. 오랜 외국 생활을 했기에 한국에 돌아오자 걷고 싶은 길이 참 많았다.
올레길을 걷다가 생수를 사려고 마을로 들어서니 작은 가게가 나왔다. 올레꾼을 위한 시설을 겸한 동네 작은 편의점이다.
가게 앞 벤치에서 부부가 앉아 하드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내가 배낭을 내려 놓고 땀을 닦는 사이 남자가 하드를 사서 내민다.
괜찮다고 사양을 하자 "올레꾼이 반가워서 그래요. 저도 지금 먹고 있잖아요."했다.
그가 혼자 왔느냐고 묻더니 홀로 걸으면 외롭지 않냐고 했다.
"아! 예전에는 항상 둘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혼자 걷게 됐네요. 저에겐 제주가 추억이 참 많은 곳이랍니다."
내가 약 6개월쯤에 걸쳐서 몇 번으로 나눠 둘레길을 완주할 예정이라고 하자 당신들은 오래전에 제주 올레길을 완주했다고 한다.
둘이서 한라산에도 여러 번 올랐다고 하기에 나도 등산 좋아한다고 맞장구쳤더니 더욱 반가워했다.
젊을 적부터 아내가 등산광이라서 둘이 많은 산을 올랐다고 한다. 둘레꾼 선배이자 산꾼 선배를 제대로 만난 셈이다.
옆에서 미소만 짓고 있던 아내 분이 산 이야기가 나오자 한마디 했다.
"매화산 아세요?" 나도 나름 산을 많이 올랐으나 처음 듣는 산이다.
그녀는 자기 고향 가까운 산인데 무척 좋다면서 나중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날 내가 그녀와 나눈 유일한 대화다.
"두 분이서 옛날을 추억하며 둘레길을 걷고 있군요." 했더니 걷는 것이 아니라 차로 둘러보고 있다며 세워 둔 차를 가리켰다.
아내가 몸이 약해서 한라산도 지금은 바라만 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 분의 창백한 얼굴이 한눈에 봐도 병약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내 분께 말했다.
"제가 아는 제주를 몽땅 선물로 드립니다." 했더니 환한 미소로 목례를 보냈다.
사람이 때론 별거 아닌 일로 상처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별거 아닌 말로 위안을 받기도 하나 보다.
남자 분이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해서 흔쾌히 번호를 입력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몇달 후인가? 그가 전화를 했다. 내가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기에 두 번째 전화에서 통화가 되었다.
그가 올레길을 완주했냐고 묻는다. 마침 며칠 후에 제주를 갈 예정이었기에 내 일정을 말했다.
그는 지금 제주에 있는데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참으로 묘한 타이밍이다.
제주 도착한 첫날 저녁에 그와 만났다. 나는 제주 첫날이고 그는 다음 날 제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다.
여자 분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아내가 세상을 떠나 며칠 전 제주의 한 사찰에서 49재까지 끝났다고 했다.
몇 달 전에 내가 본 모습이 부부의 마지막 여행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몇 년 전 아내를 잃었기에 듣는 순간 짧은 탄식과 함께 쓸쓸함이 밀려왔다.
몇년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과 몇달 전에 아내가 떠난 사람의 묘한 공감대가 가슴 시리게 연결되었다.
이런 걸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둘은 한동안 말을 않고 묵묵히 창밖만 바라봤다.
그가 침묵을 깼다. 몇달 전에 나를 처음 봤을 때 내 얼굴에서 아내 잃은 남자의 표정을 읽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후 그 이유 하나로 가끔 만나게 되었고 날로 친해졌다.
## 지난 5월, 그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개를 데리고 왔다. 하얀 몰티즈로 몇 번 형 집을 방문했었기에 나도 알고 있는 아이다.
그는 좋은 와인이 있을 때면 자기 집으로 오라해서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내게 개를 며칠 맡아 달란다.
요즘은 시설 좋은 개호텔도 많은데, 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무슨 부탁을 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이유를 묻지 않는다.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에게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면 더욱 이유를 묻지 않는다.
나한테까지 개를 부탁할 정도면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 내 사는 것 뻔히 아는데도 오죽하면 나한테 부탁했을까.
개 방석과 밥그릇, 사료 등이 담긴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집에 오니 아내가 시큰둥하다.
개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도중 전화를 하긴 했어도 반기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아내는 얼마 전까지 개를 길렀으나 그 아이가 죽고 나서 너무 힘이 들어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천상 이 아이는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내가 곁을 잘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아내 앞에서는 유독 얌전했다. 내가 퇴근해 오면 펄쩍펄쩍 뛰면서 반겼다.
사흘 후 형 집으로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형은 아이를 보자 와락 안더니 얼굴을 부비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육십 중반을 넘긴 남자가 개를 보고 운다? 조금 낯설다.
어쩌면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형에게는 피붙이보다 더 정이 가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형은 아내 잃기 훨씬 전부터 형제들과 분란이 생겼는지 거의 연락을 끊고 산다고 했다.
아버지 갑자기 돌아가시고 유산 분배 문제로 가족끼리 다툼이 생겨 한참을 시끄러웠나 보다. 그는 배다른 형제라고 했다.
남의 가정사 내가 꼬치꼬치 묻지 않았기에 자세히는 모른다.
상대가 말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묻지 않는 편이라 그저 가끔 형이 신세 타령 하듯이 몇 마디 하는 것에서 대충 짐작을 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 터지기 직전쯤이던가? 형이 수술할 일이 생겨 내가 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그때도 형제에게 연락하기가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속병이 있는지 위장약 겔포스를 입에 물고 다녔던 적도 있다.
낙천적인 나에 비해 그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응어리를 속에 담고 털어내지를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와 며칠 만의 상봉을 뒤로 하고 형 집을 나서면서 한마디 했다.
"형, 내 주변에는 왜 개띠가 이렇게 많은 거야?"
"너한테만 많은 것이 아니라 원래 58년 개띠들 쪽수가 엄청 많아."
어쨌든 나와 개띠는 참 묘한 인연이 있다. 대부분 좋은 쪽이어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개띠와의 인연을 오래 간직할 생각이다.
첫댓글 개띠와 토끼띠는 육합으로
궁합 중에 가장 좋은 궁합이지요
혹시 그러하지 않은지 생각합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
글쓴님은
아마도 호적줄어서
토끼띠가 아닌 범띠일겁니다
@지 인 네 개띠는 토끼와 육합 범띠와 말띠와도 삼합으로 아주 좋은 궁합입니다 ^^**
개띠와 토끼띠가 육합라는 건 들은 것 같은데
이들끼리 육합도 남녀가 만났을 때 더 맞는 궁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띠 궁합도 남남, 남녀, 녀녀 상황에 따라 다른가 보더라구요.
저도 토끼띠 친구가 여럿 있네요.ㅎ
@지 인 저의 신상을 지인님께서 아시네요.
오일장에 엄니가 아버지 사망 신고 하러 갔다가
동네 이장이 제 출생 신고까지 함께 해주셨다네요.
그 덕에 호적이 줄지는 않았답니다.ㅎ
개띠와의 인연이 많군요.
저는 56년생 잔나비띠입니다.
그러시군요.
원숭이띠가 재주 뛰어난 분들이 많다더군요.
민순님도 그래서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으신가 봅니다.
감성도 풍부하시고, 노래도 잘 부르고, 오토바이도 잘 타고,,ㅎ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란
말이 나오면
난 으례,
개가 어때서!!라고 항변하는 개아버지이기에,
개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게거품을 뭅니다 ㅎㅎㅎ
말복도 지났고허니
개(띠)들이여~화이팅!!
제가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지난번에 몰티즈와 며칠 지냈다가 그 아이의 매력에 푹 빠졌답니다.
몰티즈가 사람을 잘 따르고 무지 영특한 강아지이더군요.
저도 모렌도 선배처럼 개(띠)들을 계속 사랑할랍니다.ㅎ
글 잘 읽었습니다.
개띠들의 이야기를.
저는 '곰띠'라고 말하지요.
곰.... 미련하기 짝이 없거든요.
제 고향은 충남 보령 웅천(熊川).
'곰내'가 제 닉네임이지요.
네, 그러시군요.
장항선 타면 웅천을 꼭 거쳐야 하지요.
그쪽 사람들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가 무지 구수했답니다.ㅎ
사연많은
개띠네요
쪽수가 많은중
저도 낑깁니다 ㅎ
아내잃은 남자
동병상련
그마음으로 이어진 인연
주변에 좋은분들이 참 많구나 싶은데
그건 내가 먼저 좋은사람이라는거겠죠?
휴 멀리왔더니 힘들어유 ㅋ
앗! 반가운 정아님시네요.
게다가 개띠시라니 반가움이 더합니다.
돌아 보면 아무리 봐도 개띠와는 심상치 않은 인연이 있나 봅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가능한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정아님 멀리서 오셨으니 이제 숨 좀 고르셔요.
인연 닿으면 언젠가는 뵐 날도 있을 것이고,,^^
저도 58개띠 이지만, 하도 징그러운 경우를 많이 보아서 슬슬 피해버립니다.ㅎ ^^
섭이님도 개띠시구나.
58년생들이 친구끼리는 자주 충돌이 있나 보더라구요.
옛날 공장 다닐 때 두 형이 맨날 다투고는 했었는데
한 사람이 개띠인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답니다.
글구 섭이님이 저는 피하지 않으셨으면 하네요.ㅎ
글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인상이 좋은신가요.
유현덕님을 뵌 분은 한결같이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 같아요.
좋은 분인가 봅니다.
저도 개띠거든요^^
인상이 나쁘다는 소리는 듣지 않구 살았네요.^^
지금까지 저와 스친 인연들 중에 맺어진 사람보다 비껴간 인연들이 훨씬 많답니다.
인연이란 억지로 맺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맺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그냥저냥 살다 보니 개띠와의 인연이 유독 많았을 뿐이랍니다.
콩꽃님이 개띠시라니 공연히 좋네요.ㅎ
저도 개를 좋아하지만 방안에서 키우는건 아니올씨다 입니다.
그냥 개답게 키웁니다. 그리고 큰개를 좋아 합니다. ㅎㅎ
ㅎㅎ
송산님 의견이 아주 명쾌하시네요.
요즘 주거 형태가 마당 없는 집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키우는가 보데요.
송산님 개가 엄청 크네요.
귀도 크고 얼굴도 다리도 길고,,
모쪼록 개답게 잘 키우면서 즐거운 날들 되시길,,ㅎ
굳이 개띠 아니라도 마침 성향이 비슷해서 인연 되었고 거기다 띠가 개띠 ㅎㅎ나는 물주가 둘 있는데 하나는 닭띠 하나는 양띠 ㅎㅎ평생 울궈 먹습니다 양띠는 딸내미 닭띠는 삼척 여동생이죠
벌써 김장고추 다 준비해놨다고
밭마늘 까 놓고 젓갈 사러 가자고
닭띠 양띠 조아~ 개띠 만큼~^^
운선님께서 성격이 좋으셔서 물주도 생기는 겁니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따지다 보면 결국엔 자기 혼자만 남는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절반씩 있는 성품 중에서 가능한 좋은 면을 보려고 합니다.
아는 사람 중 절반만 제가 잘 지내도 밑진 인생은 아니라고 보네요.
암튼 운선님 닭띠, 양띠님들과 함께 오래 행복하시길요.ㅎ
짠하면서 여운이 남는 글이네요
성당후배들 동아리이름이
개띠클럽이랍니다
단체 운영할때
봉사를 많이 해주던 모임이었는데
지금도 이어진다네요
특징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2~5명이라 후배들 불렀다가
줄줄이 아기들이 일개 중대라
그 다음부터는 못 불렀지요 ㅎ
평화님 다녀가셨군요.
감히 제가 넘볼 수 없는 선한 마음과 재능을 가지신 분,,
제가 댓글을 자주 못 달지만 뒤에서 평화님을 지켜보지요.
님에게서 재능 있는 사람이 노력까지 하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았답니다.
성당의 개띠클럽을 응원할게요.
늘 평화, 늘 건강, 늘 행복하시길,,ㅎ
우리서방도
개띠인데
그닥 도움이 안되는
개띠
지는 맨날천날
파닥거리며 사느라
지치는 닭띠
좋은 사람과의 인연
참 부럽습니다
석우님 반가워요.
개띠와 사시면서 파닥거리느라 지친다고 하셨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몰러유.
나중 결정적 순간에 개띠가 도움이 될지도,,
저도 석우님의 글맛을 살려내는 재능이 부럽답니다.
시도 정성으로 읽으시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줄도 아시고,,ㅎ
저도 58년 개띠가 가장 많은줄 알았는데
61년생이 93만명?으로 가장 많다는걸
알았습니다.
며칠전 다음뉴스에 떴었거든요.
몰티즈~
열 살된 울 강쥐랑 똑같이 생겼네요.ㅋㅋ
얼마나 예쁜지 두 말해 뭐합니까.
정말 자식같아요.
말할 수 없이 예뻐 죽어요.ㅋ
네, 제라님 덕에 1961년생이 제일 많다는 것을 알았네요.
강아지를 무지 사랑하는 분이시군요.
10년 동안 함께 했으면 가족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모쪼록 예쁜 몰티즈와 오래 행복하시기 바랄게요.ㅎ
현덕님 글은 늘 여운이 남아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울때도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같은 처지가 되면 더욱
친해지죠
잔잔한 다뉴브강의 물결 처럼
사는동안 평온했으면 좋겠어요
두어달전에 사랑하는 시동생을 하늘나라에
보냈거든요
지금도 동서는 자식같은 푸들 개 와
의지하며 새벽 두시만 되면 한번도짖지도 않던
푸들 개가 현관을 향해 짖어댄다고
동영상 까지 촬영해서 보여주네요
시동생이 집에 항상 그 시간에 온다고ㅜㅜ
아 ㅡㅡ슬퍼요
현덕님
순백의 글에 제 얘기가 길어졌네요
리즈향님 댓글이 더 슬프네요.
오랜 기간 피아노 소리에 물든 손가락이여서일까요.
리즈님 댓글에서 순백의 향기를 느낍니다.
아빠가 귀가하던 시간을 아직도 강아지가 기억한다는 대목에서 코끝이 시큰해옵니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삭힌다고 하더군요.
동서가 고여 있는 슬픔을 삭히고 푸들 개와 함께 평온을 찾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