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친환경자동차 등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쥐고 있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이 흔들린다. 이 틈새를 새로운 기업들이 적극 공략하고 있다. 새로운 전쟁터가 되는 분야는 ‘전장부품’ 시장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꼽아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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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자동차=세상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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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 Chimera Research에 따르면 자동차 전장부품은 파워트레인·xEV/FCV(친환경 자동차)·주행 안전(섀시)·바디·인포테인먼트 등 5가지 분야로 구분된다. 파워트레인에 들어가는 전장부품은 엔진 매니지먼트, 변속제어 시스템 등이다. 주행 안전에 관련된 전장부품은 브레이크 제어, 스티어링 제어, ADAS(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 등이 있다. 바디에는 공조·에어컨 제어, 에어백, 타이어 공기압 경보 등을 꼽을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에 필요한 전장부품은 운전자에게도 친숙한 디스플레이·내비게이션·오디오·음성인식 등이다.
자동차 한 대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부품은 총 3만 여 개. 현재 이 중 40% 정도가 전장부품이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유량이나 온도 등을 측정하는데 불과했던 차량 센서가 지금은 에어백, 내비게이션, ABS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세단에 40~50여 개의 센서가 부착됐지만, 현재 차량 한 대에 센서 200개 이상이 사용되고 있다. 전기차의 경우 전장부품 원가 비중은 차량 한 대 가격의 7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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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ICT 기업과 현대기아차·현대모비스가 전장부품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특히 ICT 기업의 도전이 거세다. 미래 자동차 시장은 ICT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IT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동차 안에서는 그 기술을 충분히 이용하기 어려웠다”면서 “자율주행 시대가 될 경우 차 자체가 정보를 주고받는 플랫폼이 될 것이고, 네이버를 비롯한 IT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며 자율주행차 시장에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LG 전장부품에 강력한 도전장
LG전자·삼성전자·SK텔레콤·네이버가 전장부품 시장에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제조의 강점을 살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SK텔레콤과 네이버는 소프트웨어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다.
LG전자는 2013년 7월 1일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품 사업부와 전기차용 모터와 인버터를 개발하는 사업부를 통합해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2015년 11월 GM의 차세대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정됐다. 구동모터·인버터·차내 충전기·배터리팩 같은 핵심 전장부품 11개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이동통신 반도체 분야 대표기업인 퀄컴과 함께 서울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에서 ‘차세대 커넥티드카 솔루션 공동개발 협약식’을 가졌다. 내년 말까지 마곡산업단지 내에 연면적 1320㎡(400평) 규모의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전장부품업체 ZKW 인수도 추진하면서 스마트카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LG전자는 차량용 통신모듈인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올 상반기 VC사업본부는 1조7590억원의 매출(전년 동기 대비 42.7% 증가)을 기록했다. 내년 1분기에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교외 헤이즐파크에 2500만 달러(약 285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부품 공장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미국 반도체 회사 프리스케일과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 핵심부품 공동 개발, 구글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글로벌 협력사 선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자동차는 급격하게 전자제품화되고 있다”면서 “LG전자가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 1차 공급사의 지위를 공고히 한 원동력은 전자와 IT, 통신 분야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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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기업 인포테인먼트 분야 진출에 집중
SK텔레콤은 강점을 가지고 있는 3D HD맵·빅데이터 분석·5G 차량 소통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내 통신사 최초로 국토부로부터 자율주행차 임시운행허가를 취득했다. 지난 9월 21일에는 서울 만남의광장에서 수원신갈 나들목(IC)까지 26 고속도로 구간에서 시험 주행을 성공한 바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자율주행차 시장은 AI와 5G 통신기술이 결합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는 사업으로 보고 있다”면서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5G, T맵, 클라우드 등에 AI 기술을 결합해 자율주행 서비스 기반을 구축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자율주행 핵심 영역에 대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차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8월 차량 내 개인 환경에 최적화된 플랫폼 ‘AWAY’와 이를 적용한 헤드 유닛 디스플레이 타입의 하드웨어를 공개했다. 인포테인먼트 AWAY는 운전자의 주의 분산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전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네이버랩스는 AWAY를 내년 상반기 오픈 플랫폼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기존 인공지능 분야의 뛰어난 기술 성과를 토대로 이를 자율주행의 인지 및 판단 등에 적용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더 많은 기업과 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ICT 업계의 도전에 조용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로 맞서고 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은 완성차 업계의 위기라는 분석이 높다.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운행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ICT 업계에 비해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연 기관 위주의 산업 패러다임을 스마트카 시대에 발맞춰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완성차 업계가 스마트카 시대를 대비하는 기술력은 외부의 우려와는 다르게 상당 수준까지 올라왔다”면서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ICT 기업이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11월 15일 현대차그룹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혁신기업과 공동 기술 연구를 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핵심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스마트시티와 로봇이다. AI와 자율주행 분야는 스마트카 시대를 대비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현대기아차는 ▲차량 네트워크 ▲클라우드 ▲빅데이터 ▲커넥티드 카 보안 등 4대 핵심 기술을 선정하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사인 시스코와 협업을 통해 ‘차량 네트워크 기술’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커넥티드카 전용 운영체제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자동차 부품 기업 현대모비스도 발빠르게 전장부품 시장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2013년 600억원을 투자해 전장부품 개발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장시험동을 신축한 상황이다. 그동안 순항제어장치, 차선이탈 방지 및 제어 장치,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후측방경보 시스템 등의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을 선보였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의 고부가가치 기술확보는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고 첨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모비스는 2020년 이후 자율주행기술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최근 112만㎡(약 34만 평) 규모의 서산주행시험장을 완공했는데, 자율주행기술 검증을 위한 전용 시험로를 갖췄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와 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기업은 아직까지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비중은 높지 않지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용 반도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조언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아직까지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는데,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시장이 30%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선은 우리가 잘하는 시장에 집중하고 있고,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업이 전장부품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자동차용 반도체 공정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조향과 안전장치 및 구동 관련 모터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만도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자율주행 부품 분야에 도전해 성과를 내고 있다. 자율주행차에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카메라 분야에서는 2006년부터 차량용 카메라 모듈을 개발하고 있는 삼성전기가 눈에 띈다. LG계열사도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에 적극 뛰어들었다. LG화학(배터리)·LGCNS(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 솔루션) 등이다.
한국 기업 전장부품 경쟁력 충분
전장부품 시장에 뛰어든 한국 기업의 미래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유망하다”고 답했다. 전장부품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와이즈오토모티브 관계자는 “새롭게 시장 확대를 주도하는 전장부품의 경우 거의 동등한 레벨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도 “전장부품 분야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쌓아오고 있다”면서 “자율주행 등 미래기술 분야에서도 통찰력 있는 전략과 과감한 투자가 있다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부품연구원 조남규 박사는 5~10년 이내에 글로벌 기업들과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 규모가 커서 일부 대기업이 집중적으로 투자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분야나 전방추돌방지시스템, 조향시스템 등 핵심 전장부품 분야에서는 이미 성능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면서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스기사]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 공략하는 글로벌 기업
구글과 애플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시장을 이끌고 있는 선두 기업이다. 애플은 카플레이, 구글은 안드로이드 오토라는 플랫폼을 구축해 완성차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애플은 GM·피아트크라이슬러·아우디·닛산·혼다· 현대차 등과 제휴를 맺고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과 제휴한 완성차 업체는 벤츠·BMW·GM·도요타·현대차 등이다. 최근에는 바이두가 카라이프(CarLife)라는 플랫폼을 선보이며 벤츠·폭스바겐·현대차 등과 제휴를 맺었다.
모바일과 PC 시대의 프로세서 강자인 인텔과 퀄컴도 전장부품 시장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프로세서 개발에 나섰다.
전장부품 기업 모빌아이와 손잡고 2021년까지 자율주행차 개발을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퀄컴은 자동차 반도체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인 NXP를 지난해 10월 390억 달러에 인수하는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자동차가 전장화가 되면 필수적으로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능력이 뒤따라와야 한다. 그래픽 솔루션 기업 엔비디아가 적극적이다. ADAS를 지원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분야에 사용되는 테그라 시리즈를 내놓고 공략 중이다.
파나소닉도 전장부품 시장의 강자로 꼽힌다. 2016년 초 차량용 영상인식 기술을 보유한 스페인 기업 피코의 지분 49%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독일의 인포테인먼트 기업 오픈시너지도 인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오스트리아 차량 부품업체 ZKW를 인수했고, 최근에는 닛산 전기차 배터리 사업부를 인수했다. 미국 테슬라와 함께 투자한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를 가동하면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점유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파나소닉은 2019년까지 전장부품 기업 M&A에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