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임사홍
디모데명 ・ 2017. 6. 1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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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사홍
임사홍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 자는 이의입니다.
연산군의 장인인 신수근과 결탁하여 연산군의 생모인 윤 씨 폐비 및 사사건을 연산군에 몰래 고하여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임사홍은 효령대군(태종의 아들)의 손녀와 혼인해 왕실의 사위가 되었고, 임사홍의 두 아들도 예종의 딸과 성종의 딸과 혼인하여 두 임금과 사돈이 되었습니다.
임사홍은 조선시대의 간신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초기에는 관직에 충실한 신하였습니다.
세조 대에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임사홍은 권력을 남용하는 조정에 바른 소리 하는 소신 있는 신하였고, 글에도 능하여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으며,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성종 대에 사간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맡았습니다.
▲ 경복궁 근정문
이런 임사홍에게 성종 대에 내린 흙비로 파직되어 유배생활을 떠나게 됩니다.
도승지로 재직 중이던 1478(성종 9)년 4월에 많은 비가 왔는데, 흙비가 내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이는 하늘의 경고다. 그리하여 당분간 술을 일절 금지한다는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고 상소하였습니다.
"해·달·별·바람·비·물이 위에서
이변을 나타내고,
아래에서 변을 고하며
백성에게 해를 주고
사람의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은
재이라고 이를 만하기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
<성종실록 91권, 성종 9년 4월 27일>
그러나 임사홍은
"운수가 마침 그러한 것이니
괴이할 것이 없으므로,
술을 금할 필요가 없다."
이에 신하들은 임사홍을 성토하였습니다.
"가을에 수확이 있다고 미리 말하여
전하께 아첨하고,
또 천변과 인재는
족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여
전하를 속였으니,
임사홍이 간신입니까? 충신입니까? ...
신하들은 통분함을 이기지 못겠습니다."
<성종실록 91권, 성종 9년 4월 27일>
성종도 임사홍의 말에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대간들 대부분이 임사홍을 성토했기에 임사홍은 파직, 유배되었습니다. 흙비를 변괴로 여겨 하늘의 경고로 생각한 당시에 임사홍의 탄핵은 성종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임사홍은 이를 갈면서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 임숭재가 연산군의 이복 여동생인 휘숙옹주에게 장가를 들면서 궁중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휘숙옹주와 임숭재는 연산군과 편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임사홍은 다시 돌아왔고 연산군은 임사홍을 수시로 불러 많은 일을 상의하였습니다. 정계로 돌아온 임사홍은 자신을 쫓아냈던 세력들을 한꺼번에 몰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 씨의 문제를 이후 100년까지 논하지 말라"라고 말하였지만,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생모인 폐비 윤 씨가 투기가 심하다는 이유로 폐비되고 얼마 후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사건을 몰래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연산군은 어머니에 대한 죽음의 과정을 알게 되었고, 사건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 엄 숙의와 정 숙의를 궁에서 죽이고 할머니인 인수대비도 머리로 들이받아 죽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생모 폐비 윤씨 사건에 관련된 신하를 죽이거나 유배 보내고, 무덤을 파서 부관참시 하기도 내렸습니다(갑자사화).
▲ 폐비 윤 씨 회묘
이후 연산군의 명으로 각 도를 다니며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는 채홍사가 되어 기생을 뽑았는데 이들을 흥청이라 불렀습니다. 이로 인해 궁궐은 놀이터가 되었고 연산군의 향락과 사치는 혹독함이 날로 더해졌습니다.
이에 연산군 재위 12년 만에 성희안·박원종·유순정 등이 도모하여 자순 대비의 조칙으로 연산군을 폐하여 유배했고,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하였습니다(중종반정). 임사홍도 집으로 찾아온 반정군에 붙잡혀 끌려 나와 죽었습니다.
이때 신수근도 집에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20일 후 앞서 갑자사화로 죽은 사람까지 참시하였던 것처럼 임사홍 자신도 부관참시 되었습니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임사홍은 선왕조에서 붕당과 결탁하여,
조정을 문란을 하였으되,
오히려 관전을 입어 처단을 모면하더니,
폐왕조에 이르러서는
그 아들 임숭재를 연줄로 하여
나인 녹수에게 빌붙어 온갖 꾀를 다부리며
악한 일을 하도록 부추겼고,
충직한 사람들을 해치고
백성은 도탄에 빠뜨리며,
임금을 불의에 빠뜨려 거의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으니,
그 죄는 부관참시 하고 가산을 적몰해야 합니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26일>
역사는 이렇게 임사홍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간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처] 조선 임사홍|작성자 디모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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