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에게 코제트을 부탁하고 죽음을 맞는 판틴의 흰 원피스 잠옷위에 흰 조명이 강하게 비춰진다.
코제트에 대한 마리우스의 사랑에 절망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사랑에 충실한 에포닌의 죽음위로 잔잔한 흰 조명이 내린다.
거리의 부랑아로 살아가고 있지만 총알이 떨어진 혁명군을 위해 스스로 총알을 구하러 나가 죽음을 맞이한 소년에게 흰 조명이 쏟아진다.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 투쟁하다 혁명이 끝난 전쟁터에서 쓸쓸히 죽어간 젊은이의 젊은 몸을 감싼 붉은 깃발 위로 하얀 색 조명이 떨어진다.
마지막 날, 이젠 하늘로 데려가 쉬게 해 달라며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의 흰 머리위로 하얀 빛이 날린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침침한 무대 배경에 다섯 번의 밝은 흰 조명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단순한 조명 하나로 짧은 시간안에 수천 페이지 분량의 레미제라블 원작의 주제를 그렇게 생생하게 나타내다니, 연출가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다섯 사람은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나타내는 주제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가난한 엄마 판틴은 자신의 어린 딸 코제트를 위해 몸을 파는 일을 했다. 가련한 에포닌, 그녀는 비록 겉모습은 거칠고 상스럽지만 사랑하는 연인 마리우스를 위해 그의 사랑 코제트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혁명군의 소년과 젊은이들은 보통사람들의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주교의 사랑에 감화된 장발장의 이후 삶은 정의롭고 봉사하는 삶이었다. 코제트에 대한 그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세상에서 소외된 하층민들이었지만, 진실로 정의로운 사람들이었고 진짜 사랑을 아는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장발장과 쟈베르 경감과의 대결, 혁명군의 노래, 파리 시민들의 합창등 비장하고 남성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에포닌의 절절한 사랑등으로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선율도 느낄 수 있었다.
긴 분량의 거대한 소설 원작을 2시간 30분의 짧은 무대에 정말 잘 버무려놓았다. 주제도 놓치지 않았고 음악도 훌륭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대단한 뮤지컬이다. 21년간 계속된 레미제라블 공연에 대한 명성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별을 바라보면서 장발장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노래하는 쟈베르 경감의 독창(stars)과 테나르디에 부인이 부르는 독창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정말 그 인물이 책에서 튀어나와 제 역을 하는 느낌이었다. 판틴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행복한 시절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I dreamed a dream), 코제트에 대한 마리우스의 사랑에 절망하며 그녀의 짝사랑의 외로움을 노래하는 에포닌의 노래(on my own), 혁명군이 부르는 노래(one day more), 혁명이 끝난 후 동료들은 다 죽고 자신만 살아남아 죄책감속에서 부르는 마리우스의 노래(empty chairs at empty tables), 장발장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되는지 갈등하며 부르는 노래(who am I?), 마지막 에포닌과 판틴이 장발장을 하늘로 데려가며 부르는 삼중창등, 모두 박수 갈채를 받았다. 마리우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때문이었다.
레미제라블이 공연된 퀸즈 티어터는 웨스트엔드에 자리한 오래된 극장이었다. 3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층간 간격이 낮아서 스톨석에 앉았는데도 2층 나온 부분때문에 무대의 윗부분이 가렸다. 스톨석을 사더라도 일찍 사야만 좋은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듯 했다. 무대는 좁았지만 회전판을 이용해서 효용성을 높였다. 자베르 경감이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이 있었다. 어떻게 처리할 지 궁금했는데, 다리를 올리고 무대 바닥을 강처럼 조명으로 처리했다. 특별한 무대 장치가 없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무대 장치였다.
레마제라블 뮤지컬은 화려하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무대지만, 탄탄한 구성과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정말 잘 만들고 잘 하였다. 뮤지컬이 끝난 후 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럴만했다.
드디어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영국에 오기 전 마음먹은 일 중의 하나였다.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좋은 작품을 접해서 감개무량하고 행복했다. 싼 좌석을 구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비싼 좌석이 전혀 아까울 공연이 아니었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홈페이지: www.lesmis.com
극장: Queen's theatre
제작: Cameron Mackintosh
작곡: Alain Boublil
Claude-Michael schoberg
작사: Herbert kretzmer
배우들: 장발장;John owen-Jones
자베르;Hans Peter Janssens(벨기에인)
판틴;Sophia Ragavelas
테나르디에 부인; Tracie Bennett
마리우스;Jon Lee
에포닌;Sabrina Aloyeche
퀸즈 티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