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속회 정신으로 세상의 빛이 된 교회 | |||||||||||||||||||||||||||||||||||||||||||||||||||||||||||||||||||||||||||||||||||||||||||||||||||||||||||||||||||||||||||||||||||||||||||||||||||||||||||||
돌봄의속회로 일구어 낸 사랑공동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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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 부장 mercykwak@hotmail.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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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깊은 사랑에 빠진 웨슬리안 박용호 목사 .
갈등과 분열에서 화해와 일치로
누가 이런 교회에 지난날 갈등과 분열의 가시밭길이 있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2년 9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동교회는 지난 이십여 년 간 골 깊은 갈등과 불신으로 오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선중 수석장로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죠. 우리교회의 과거 이십년은 가도 가도 끝이 뵈지 않는 어두운 터널 같았지요, 심지어 이단이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누가 교회에 더 붙어 있고 싶었겠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성도들이 하나 둘 떠나 4백여 명 남짓 되는 교인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남은 교인도 언제 떠나려 할지 몰라 가슴 졸이며 신앙생활을 해왔었다”며, 지난날의 악몽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흔든다. 이런 침체의 깊은 늪에 빠져있던 내동교회에 2003년 7월 박용호 목사가 부임했다. 박 목사를 잘 아는 선배 교역자들은 말 많은 교회이니, 부임 첫해는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그저 관망만하라고 조언했지만, 오히려 박 목사는 두 팔 걷어붙이고 교인들의 무너진 마음 밭에 희망의 씨뿌리기를 시작했다. 새 목회자를 향한 교인들의 기대감이 1년 후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교회의 상황이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박용호 목사는 어떻게 첫 번째 과제인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갔을까. 그는 일단 갈등의 상황은 그대로 놓아두고, 먼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교회 내적, 외적인 영역을 총망라한 컨설팅에 들어간다. 지역에 대한 분석, 교회의 역사, 갈등과 분열을 초래한 쓴 뿌리의 원인, 영적인 분석 등을 청년이상의 모든 성인 그룹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설문조사를 벌였다. 한 달 후, A4용지 10매 분량으로 요약된 결과물을 준비한 박 목사는 교인전체회의를 소집하고 이 자료를 공개했다. “여러분이 받아든 이 자료가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입니다. 우리의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보십시오.” 그는 더 이상 서로의 상처를 들추지 말자고 권면했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박용호 목사가 먼저 잡은 개혁의 고삐는 환경변화였다. 1979년도에 지은 예배당은 칙칙하게 변해 침울한 느낌 그 자체였다. 예배당 내부를 정갈하고 아늑하게 리모델링하고 음향, 영상시스템을 교체했다. 외부 조경에도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 이런 환경적 변화는 교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짧은 시간에 매력 없었던 공간이 이젠 가보고 싶은 곳, 지역 주민들도 즐겨 찾는 장소로 변했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의 토양작업 기간, 박 목사와 교인들은 돌봄의 사역원리 안에서 서로 공감하며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그는 직접 나서 교회 내 갈등구조해결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돌봄의 원리에 마음이 열린 성도들은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갈등이 치유되는 기적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선중 장로는 “이제 갈등의 벽이 허물어져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어낸 담임목사를 한껏 자랑한다.
내동교회에 일어난 변화의 원동력은 그들만의 독특한 속회에 있었다. 박용호 목사는 “속장과 강사(인도자)를 이원화시켜 그저 성도관리에만 치중하는 ‘관리속회’로는 더 이상 감리교회에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박용호 목사의 강점은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행하여 그 열매를 거두어 보여주는 실행력에 있다. 돌봄에 대한 주제설교를 통해 토양작업이 이루어진 교인들은 돌봄의 속회를 현대 교회의 생명력으로 확신하고, 3개월 만에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돌봄의 속회를 통해 과거 상처받고 떠났던 성도들이 회복되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봄의 원리는 전도에까지 확장돼 2년 전 4백여 명이 모였던 교회가 매년 20~30% 회복 성장해 현재 1천 2백여 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고, 예산도 전년 대비 두 배로 증가하는 기적을 이루어 내고 있다. 내동교회는 지난해 성탄절 새벽송을 돌며 과자대신 돈(목적헌금)을 산타헌금으로 모아 군인교회와 건축 중인 교회에 성탄선물로 전달했다고 한다. 어린이 속장은 담임목사와 일대일 면담을 신청할 수 있고, 매년 두 번 열리는 어린이 속장 세미나의 주강사 역시 담임목사라고 하니, 그의 속회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이 정도니 성인이야 오죽할까. ‘내동교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속장이 되어야한다’는 말이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박 목사는 내동교회 속장 1백 명은 담임목사와 함께하는 목회자 1백 명과 같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돌봄의 속회로 전환한 후 2년, 속회를 통해 교회는 사랑의 온상으로 바뀌었고, 마음이 굳게 닫혔던 남성 성도들마저 자연스레 섬김의 자리서 사역에 함께하고 있다.
내동교회의 영원불변의 표어 “돌보고 세워서 증인되는 교회”는 박용호 목사의 목회철학이자 교회를 움직이는 사역의 원리이다. 지난 4월, 세계최초의 웨슬리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4천만 원의 제작비를 선뜻 지원한 내동가족의 결단에는, 영상을 통해서 웨슬리 정신을 한국교회에 전하여 섬기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지금 목회를 하셨다면 분명히 방송이나 인쇄매체를 최대한 활용하셨을 것”이고 말하는 박용호 목사는 멀티미디어를 통한 선교와 웨슬리 정신을 전파하는 일에 깊은 애정을 보인다. 물론 이 네트웍의 중심에 내동교회가 서있기에, 성도들은 웨슬리 정신을 담아낸 모델교회로 내동교회가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 오늘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내동교회에는 꿈이 있다. 웨슬리의 신학과 영성이 담겨있는 속회연구를 위한 속회연구원, 웨슬리 영성 수련원, 웨슬리 정신으로 무장한 사회지도자 양성을 목적한 비전학교를 망라한 웨슬리타운을 이곳에 설립할 장기계획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 내년에는 국내외 웨슬리관련 도서를 모아 놓은 ‘웨슬리도서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한국 웨슬리의 중심이 바로 이곳 내동교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참 웨슬리안 박용호 목사 박용호 목사는 웨슬리와 깊은 사랑에 빠진 참 웨슬리안이 틀림없다. 서재에 걸어 둔 웨슬리 초상화, 책장엔 국내외에서 수집한 웨슬리 관련 책들이 칸칸이 높이를 더해 가고 있다. 그의 웨슬리 사랑은 이전 사역지인 양구교회에서 구체화됐다. 청년목회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조금은 늦게 속회에 관심을 갖게 된 박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박사원에서 ‘돌봄의 속회와 교회성장’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연구의 임상실습지가 된 양구교회는 4년 7개월 만에 배가성장을 이루었고, 현재 사역지인 내동교회의 기적적인 회생과 부흥도 웨슬리 정신의 속회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박용호 목사의 학구열은 남달리 뜨겁다. 훈련병시절에도 호되게 야단을 들으면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그는 배우면 배울수록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낀다며, 최근엔 영국에서의 웨슬리 원형 찾기에 열중이다. 올 여름에는 영국웨슬리신학대학에서 객원교수의 자격으로 ‘웨슬리 속회와 한국적용’, ‘웨슬리 리더십’에 대한 강의도 계획하고 있다. 박 목사는 시골에서 자라며 품어 왔던 순수함, 도시에서 고학하며 엮었던 온갖 시달림도 훈련으로 감사히 여기는 긍정적인 생각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의 주위는 늘 산뜻하고 활력이 넘치며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힌다.
기존의 새가족용 교재가 교리중심적이라 정작 새가족들에게 부담감이 큰데 비해, 새가족의 정착에 초점을 둔 ‘거듭난 크리스천’은 한결 부드럽고 다정한 돌봄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거듭난 크리스천’은 새가족의 눈높이에 맞추어 적절한 예화를 토대로 삶의 목적과 길을 자연스럽게 토론하게하며, 결국 말씀 안에서 자신을 비춰보아 거듭난 크리스천이 되도록 이끌고 있다. 내동교회의 80% 새가족 정착률에 이 교재가 큰 기여를 했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프리칭아카데미> 내동교회 홈페이지http://www.nae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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