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는 구절초는 꽃이 귀한 늦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찬바람 이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온 들녘과 언덕빼기에 하얗게 물결치는 꽃, 이 땅 어딜 가나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에서는 가을 냄새가 뚝뚝
묻어난다. 가을빛이 완연한 날, 구절초를 찾아 남도 땅으로 떠났다.
전북 정읍시 감곡면 방교리 동곡마을. 마을 입구에서부터
구절초의 알싸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6년째 구절초를 소중하게 가꾸어온 조병관(42)씨와 김후정(43)씨 부부가 사는 집이다. 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6천여 평의 밭에는 흰 꽃망울을 터트린 수많은 구절초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온통 구절초 향기에
휩싸인 꽃밭에는 윙윙대는 벌과 나비가 가득하다. 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풍경이다.
"산과 들에 피어있는 보잘것없는 들꽃 하나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8년 전국 명산에서 질 좋은 구절초 뿌리를
캐와서 2백여 평의 땅에 들꽃 동산을 만든 조병관 김후정 부부는 현재 6천여 평의 땅에 토종 꽃밭을 가꾸고 있다. 가난한 농촌 노총각 조병관씨와
미대출신의 독신녀 김후종씨가 만난 것은 지난 97년 봄. 인근 동네에서 알게된 서른 여섯의 남편과 서른 일곱의 아내는 그해 가을 인근의
옹동마을을 찾았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구절초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어릴 적 감기에 걸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구절초를 달여줬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인 김씨는 씨앗을 받아다 다랑이밭에 심었다. 이웃들은 좋은 땅에다가 쓸모없는 잡풀을 심는다며 혀를 찼다.
"그냥 꽃이 좋아서
구절초로 베개도 만들어보고, 구절초로 김치도 담가보았어요."
이러한 김씨의 노력으로 제품이 개발되고 돈도 벌리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구절초 베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아해요.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축제를 연 것은
농민들은 물론 도시사람들에게 구절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조씨와 김씨 부부는 지난 10월 1일부터 닷새
동안 구절초 꽃축제인 '들꽃잠 축제'를 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 백여 가족들이 구절초 향기에 취했고 이들 부부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구절초
수제비와 비빔밥을 무료로 제공했다.
"지금의 농촌 현실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구절초(들국화)로 이제는 정말 농촌도 살만한 곳이며 꿈과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구절초가 만발한
이곳에서..."
부인 김씨가 내온 구절초 꽃차를 마시려고 보니 마른 꽃이 찻잔 안에서 다시 활짝 피어난다. 살아있는 듯 피어난
모습이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는 이들 부부를 닮았다. 알싸하고 향긋한 꽃내음이 입안 가득 감돈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면서...
가을 들녘에는 다양한 야생의 들국화들이 피어난다. 조병관씨와 김후종씨가 운영하는 정읍의 들꽃잠농원에서는 들국화의 대표격인 구절초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북 정읍에 있는 들꽃잠농원(063-571-0841)을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태인 나들목을 빠져 나와
좌회전을 한 후 4km정도에 있는 신태인읍까지 와야 한다. 신태인읍 면소재지에서 감곡 이정표를 따라 다시 4km 정도 지나면 왼쪽에 동곡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구절초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마을길을 따라 들어오면 긴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는 구절초 군락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