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회 산행일지 : 겨울산의 깊은 울음소리
(전남 순천시 조계산)
일시 : 2011년 1월 15(토)
날씨 : 바람 세고 매섭게 찬 날씨
살다보면 전혀 얘기치 않는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일들이 삶을 긴장하게도, 익사이팅하게도 하는 듯하다.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간에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생각도 무척이나 다름이 분명한데 우리 등고선은 참으로 기분 좋게 오래 이어져 왔다.
100회, 숫자와 시간이 갖는 크기보다도 산에 대한 마음을 비교적 삶의 높은 위치에 모셔두고 살고 있는 멤버들은 물론 이미 삶과 행복의 일부가 되어 버린 내나라 산들이 참 고맙다.
등고선이 시작한 산림청 100대 명산 오르기를 공식적으로는 성인봉만 제외하고는 모두 마쳤지만 회장이 캐나다 장기출장으로 함께하지 못했거나 개인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던 산들을 모아 2011년 동안에 회원 모두가 100대 명산을 오르도록 하자는 의견을 모으고 그 첫 번째로 청죽과 내가 함께하지 못했던 조계산으로 길을 잡았다.
교매는 집앞에서 지인으로부터 날씨가 이리 차가운데 산엘 가느냐는 충고를 들었댄다.
8시, 청죽의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45, 10번 고속도를 지나며 섬진강 휴게소에서 나와 교매는 커피를, 아침을 거른 매송과 청죽은 충무김밥과 라면을 든다.
노란 설탕물이 흐를 듯하는 호떡이 먹고잡아 2,000원을 주고 세 개를 사서 요령껏 나누었으나 생각만큼 달지는 않다.
네비가 열심히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승주 IC를 지나쳐 송광사IC에서 내려 국도로 뒤돌아 와야 했다.
선암사 입구에서 주차료 3,000원을 아끼려고 주차매표소가 빤히 보이는 30m 전쯤 남의 집앞 공터에 차를 대었다.
2004년 7월 제24회 정기산행으로 송광사-피아골-연산봉-장군봉-보리밥집-송광사에 이르는 7시간여의 긴 코스를 다녀왔기에 오늘은 반대편인 이곳에서 시작하여 선암사-중봉-장군봉-작은굴목재-선암사의 4-5시간 정도의 코스를 계획하였다.
장갑, 모자, 아이젠 등을 단단히 챙겨서 주차매표소를 당당히 통과, 미리 공부를 해왔다는 교매를 따라 좌측으로 길을 꺾었다.
문화재관람료가 물경 2,500원씩이니 아껴야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길을 가로막고 징수하는 이런 불합리에 소극적으로라도 대처하려면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빤히 보이는 매표소를 우측에 두고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니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 철조망 아래로 통과하려는데 아저씨의 부르는 소리, 들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돌아 나오다가 매표소로 가지 않고 이번엔 산쪽으로 올라섰다.
다행이 따라오거나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키 큰 조릿대 숲을 헤쳐 힘겹게 길을 만들어 오르는 등 마치 60여 년 전 염상진과 하대치가 밤길을 도와 선암사 사리탑과 숯막골을 찾듯 헤매며 약 1시간 가까이 고생을 해야 했다.
사실 조계산을 좀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상당한 시간과 체력을 이미 써버렸다.
키 큰 대숲이 나타나고 이어 개짓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곳으로 내려오니 암자를 만난다.
대승암, 둥근 벽시계가 기둥에 걸린 시골집 같은 모습의 조용한 산채를 지나 큰 길을 따라 내려오다 스님 두 분을 만났다.
‘길을 잘못 들어선 모양이지요’ 하면서 합장을 하고 지나친다.
대승암 삼거리, 선암사에서 600여미터 올라온 곳-시간상으로는 주차장에서부터 약 30분 거리-으로 이길을 따라 오르면 큰 굴목재를 경유 그 유명한 보리밥집을 거쳐 송광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제사 본격적인 조계산 등산로를 만난 셈이지만 이 길 역시 정작 오늘의 애당초 계획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선암사-큰(선암)굴목재-작은굴목재-장군봉-선암사의 좀 더 먼 코스로 급변경하였다.
왼쪽의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쉬며 메모를 좀 하려는데 볼펜도 얼고 손도 얼어 쉽지 않다.
오르는 길이 미끄럽다. 큰 굴목재에 닿았다.
송광사 방향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장군봉(1.8km)을 향한다.
식사할 곳도 마땅치가 않아 작은 굴목재를 지나고 배바위 못미쳐 우측으로 들어가 다행스럽게도 바람을 피하며 볕이 드는 좁은 곳에 모여 앉았다.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일어서 장군봉을 향하는데 겨울산의 울음소리가 참으로 깊고 애를 끊는듯 손도, 얼굴도 아프다.
매송은 귀 덮는 모자로 바꾸고 장갑안에 다시 비닐장갑을 한겹 더 쓰는 등 각자 중무장을 해보지만 별 도움이 못된다.
정말 춥다. 추위 속에서도 나무들은 우뚝하지만 우리는 그리 우뚝한 자세가 도저히 아니다.
세 시경 정상인 장군봉(884m)에 닿았지만 앉을 마음의 여유도 없다.
계곡도 깊고 생각보다 커 보이는 조계산은 소설 ‘태백산맥’의 산이다.
이곳 선암사에서 1943년 태어난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소설이 완간된 것은 1989년으로 이미 읽은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곳 조계산 숯장수인 염무칠의 장남 염상진과 차남 염상구의 갈등과 상반된 행적, 빨치산과 토벌대의 공방, 조연으로 하대치, 김범우, 심재모, 소화, 정하섭, 외서댁, 죽산댁 등 수많은 주변 인물들의 행적 모두가 감동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민초들의 가족사이자 민족사였으며, 가족간, 개인간의 환경적, 사상적 갈등이 곧 민족의 갈등이 되었고 결국 그 갈등이 봉합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던 우리 비극의 참모습을 나는 태백산맥을 통하여 보았으며 그 후 아리랑과 한강을 통하여 한국현대사를 나름대로 정리해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곳 출신인 조정래 덕분이다.
선암사 2.7km의 하산에 앞서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그래도 미끄럽다.
한고비의 급경사를 내려서 면 바람도 막히고 길은 산허리를 돌며 경사를 낮춘다.
네 시, 차밭들을 지나 편백나무 숲을 등진 거대한 사극 세트장같은 선암사가 아래로 보인다.
정갈한 기와집들이 무리를 이루고 기와를 얹은 낮은 흙담장길이 집들을 잇고 있다.
조계산에는 송광사와 선암사, 큰 두 개의 사찰이 있다.
송광사는 고려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조계종 사찰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며 이곳 선암사는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중창한 태고종의 본산이다.
비록 문화재관람료는 내지 않았지만 경내로 들어선다.
눈을 치우는 등 스님들이 울력으로 바쁜듯이 보였다.
시인이 말하는 등굽은 소나무가 어느 것인지는 모르지만 옆으로 큰 소나무가 옆으로 누워 있고 그 앞에는 아미타불 조성불사에 동참하라는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다.
보물 1311호의 대웅전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웅장하며 단층이 낡아 목재의 질감이 좋다.
그 옆, 2,000명분의 밥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구시가 있고 새터민 장학금으로 사용하니 보시공덕 하라는 안내에 따라 동전들과 몇장의 1,000원권 지폐가 던져져 있다.
대웅전 마당에는 철제빔 사이로 어지러운 줄에 빛바랜 등들이 아직도 빼곡이 달려있어 보물 395호 삼층석탑도 가리고 있다.
범종루를 지나 만난 일주문도 위용이 있고 화려하다.
입구에는 화석처럼 남은 거대한 괴목의 몸주름마다 동전들이 빼곡이 끼워져 있다.
정호승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창비)’에서, 그리고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2000, 생각의 나무)’ 중 ‘그리운 것들 쪽으로’의 주인공인 그 유명한 선암사 뒤깐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선암사/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 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선암사 뒤깐, 내부 게시글)
“선암사 화장실에서 나는 잃어버린 삶의 경건성과 삶의 자유로움과 삶의 서늘함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눈물겨웠다.
아, 그리운 것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그러니 그리운 것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리운 것들을 향해서 가자. 가자. 가자.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기어이 가자.
그것들이 살아있는 한, 내 마침내 그곳에 닿을 수 없다 할지라도 내 사랑은 불우하지 않으리.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김훈, 자전거 여행)
돌을 깍아 계곡 위 우아한 아치형으로 세워진 보물 제 400호인 승선교도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지나쳐 버렸다.
이번에는 매표소를 당당하게 지났다.
하늘은 미쳐 내리지 못한 눈으로 가득 무거워 보이더니 이내 눈발을 날린다.
돌아보니 조계산 정상이 아득하고 어두운 구름이 산위를 짓누르고 있다.
시간이 다소 이르지만 승주에서 물어 식당 ‘주말농원’에 들어 시끄럽지만 반찬 많고 인심후한 아주머니가 서빙하는 정식을 맛있게 비웠다.
커피를 뽑아 나서는데 폭설이다. 조심스레 고속도에 올려 8시 20분 겨울산행, 그 진수를 맛보고 돌아오다.
산은 기어이 가야할 나의 그리운 곳 목록, 눈물이 나면 와서 실컷 울 수 있을 곳 목록의 최상위에 있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