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과 벽암사원(完)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세상에 참여하는 다섯 계문(The Five Mindfulness Trainings)
불교는 전통적으로 계율을 중시해 왔고, 불교 마음공부 공동체를 가보면 다섯 계문을 지키면서 공부합니다. 다섯 계문은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입니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틱낫한 스님은 전통적인 계문이 보여주는 ‘~하지 말라’의 언어를 세상에 참여하는 마음챙김의 언어로 해석했습니다. 미국의 벽암사원에서,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에서, 틱낫한 전통의 모든 명상센터에서 이 다섯 가지 핵심 훈련을 강조하며 이를 벽암사원에서는 ‘행복으로 가는 길(The Path to Happiness)’로, 플럼빌리지에서는 ‘참여윤리(Engaged Ethics)’로 언급했습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 마음챙김 훈련은 ‘벽암사원 홈페이지’와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의 ‘다섯 가지 깨어 있는 수행’ 참고)
첫 번째 마음챙김 훈련 ● 경외
생명에 대한 경외(Reverence For Life)입니다. 기존의 불살생은 내가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다짐이자 실천인데, 생명에 대한 경외는 더욱 적극적인 참여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생명을 죽이게 두지 않는 것까지 그 의미를 넓혔습니다.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이며, 생명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합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지구별을 보호하며, 마음으로라도 생명을 해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마음챙김 훈련 ● 행복
참된 행복(True Happiness)입니다. 타인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은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이익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자각할수록 착취와 같은 행위를 멈추게 되며, 타인과 자신에게 물질로 마음으로 기쁨과 행복이 되는 관용을 베풀게 됩니다. 빼앗는 것에서 베푸는 것으로 그 의미를 넓혀갑니다.
세 번째 마음챙김 훈련 ● 사랑
참된 사랑(True Love)입니다. 성적으로 잘못된 행위로 생기는 고통을 자각할 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며 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의 약점까지 받아들이고, 관계와 가족,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일을 막는 모든 것이 참된 사랑의 마음챙김 훈련입니다.
네 번째 마음챙김 훈련 ● 경청
사랑의 말과 깊은 경청(Loving Speech and Deep Listening)입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말하지 못할 때 그 말은 고통을 만듭니다.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실을 퍼뜨리지 않고,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비난하지 않으며, 분열과 불화를 일으키는 말보다는 화해하고 갈등을 푸는 다정하고 친절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귀 기울이고 있는 관세음보살처럼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화해의 토대가 됩니다.
다섯 번째 마음챙김 훈련 ● 치유
양육과 치유(Nourishment and Healing)입니다. 술이나 취하는 음료를 멀리하고, 독성이 있는 것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에 해로운 것들(불건전한 미디어, 불건전한 대화 등)을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깨어있는 마음으로 먹고 마시고 소비함으로써 영과 육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상즉의 참여윤리와 대승보살도
이들 다섯 가지 마음챙김 수행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보살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공부공동체에서는 다섯 가지 마음챙김 훈련을 하고, 더 넓게는 열네 가지 마음챙김 훈련(The Fourteen Mindfulness Trainings)을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참여 윤리이고, 현대적 대승보살도 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불교 종파를 상즉종(相卽宗, Order of Interbeing)이라고 부릅니다. ‘상즉’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틱낫한 스님은 존재 간의 깊은 관계 맺음을 소중하게 여긴듯합니다. 나의 행복이 이웃의 행복과 분리되지 않기에 행복의 길은 상즉(interbeing)으로 전개되고, 세상과 함께하는 불교이기에 ‘참여불교’ 또는 ‘실천불교’(Engaged Buddhism)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백 권이 넘는 책과 만 점이 넘는 선 캘리그래피는 모두 참여의 길을 잇는 징검다리일 겁니다. 올해 초 열반에 드신 스님을 추모하며 미국 벽암사원 이야기를 마칩니다.
출처:https://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1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