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6월 - 177차 산행] <괴산 아가봉-옥녀봉>
▶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 [산행코스] :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갈론] (10:30)
<산행들머리> 갈론주차장 (행운민박) - 아가봉 - 옥녀봉 - 삼거리 - 갈론계곡 - 주차장
* [프롤로그] — 사람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 눈부시게 화창한 유월이다. 한결 짙어진 녹음이 온 산하를 더욱 싱그러운 기운으로 넘실거리게 한다. 그러나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마른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릴 뿐, 대지는 타는 목마름으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복(三伏)은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휴대전화에 연일 긴급재난문자로 ‘폭음주의보’가 날아든다. 확인해 보니, 오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5도, 광주는 37도를 기록했다. 폭염(暴炎)이다!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온 천하가 그냥 뜨거우니 강과 저수지의 수위가 내려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 많다. 봄부터 이어진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밭작물은 타들어가고 벼가 자라는 논에는 물을 대기가 쉽지 않다. 4대강의 보(洑)에 있는 물마저 녹조(綠藻)가 심하다고 하여 방류하니, 더욱 물이 귀하게 되었다. 결국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은 하늘의 작용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하늘이 우리의 생명이다.
☆… 문재인정부가 들어선지 달포가 지났다. 연일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내며 많은 사안들을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다. 그 중 소외계층이나 서민들을 위하여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돋보인다. 특히 최저임금 규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무원 증원 등은 아주 단호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향후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일단 대선 후보 공약 사항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주역(周易)』고괘(蠱卦)에 ‘先甲三日, 後甲三日’이라는 말이 있다. 침체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그 갑일(甲日)의 전(前) 삼일(三日)과 갑일(甲日)의 후(後) 삼일(三日)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일(甲日)은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때’이고 전·후의 '삼일(三日)'은 통상 ‘석 달’ 즉 ‘백일’로 해석한다. 이 석 달 동안은 외교·안보, 사회·경제·교육 등 새로운 정권이 국정을 준비하고 기틀을 만드는 기간이며, 모든 국민이 새 정권의 국정운영에 기대감을 갖고 바라보는 시기이다. 문재인정부는 꼭 성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 모두 성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격렬한 갈등과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좌우(左右)가 공존하는 ‘국민대화합’의 바탕을 이루어, 모든 국민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 그런데 그 ‘後甲三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을 이끌어갈 인물을 등용하는 일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작금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청문회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지적되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불공정한 행적,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부적절한 이력과 자질 등이 지적되었지만, 대통령은 이들의 임명을 강행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도장 위조의 탈법과 편향적 사고로 인해 스스로 사퇴하였다. 조대엽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면허 취소뿐 아니라 공동 창업한 회사의 임금 상습 체불이 문제가 됐다. 심각한 것은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다. 고려대 서지문 명예교수의 글이다.
“10여 년 전 김병준 교육부총리 지명자의 자기 표절, 논문 중복 게재 보도를 보고 말할 수 없이 놀라고 분개했었다. 그때는 한 마리 꼴뚜기가 모든 교수의 명예에 먹칠했다고 펄펄 뛰었는데 그 후 청문회에 올라온 고위 공직 후보들의 이력서를 보니 김병준씨의 경우는 표절이랄 수도 없을 듯하다. 김상곤 현 교육부총리 후보는 표절이 석사 논문 100여 군데, 박사 논문 수십 군데라고 한다.…”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 ‘불명예 박사학위’(2017.6.17)
이건 ‘표절의 짜깁기’ 수준이다.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는 이렇게 ‘평생 쓴 논문 3개’ 가운데 석·박사 논문은 표절, 학술지 논문은 중복 게재 의혹에 걸려 있다. 그런데 그는 더 가벼운 논문 문제가 있었던 노무현 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교수노조의 성명을 주도하여, 물러나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이 교육부총리를 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의 몰염치가 아닐 수 없다. 김상곤·조대엽 두 후보자의 흠결은 모두 직무와 직결되어 있다.
☆… 이렇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이들의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일말의 양심도 없는 후안무치의 인사(人士)가 될 것이요, 임명권자는 이념적 코드만을 내세운 나머지, 소위 ‘내·로·남·불’의 논리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최고의 이슈를 내걸었는데 이렇게 스스로 적폐를 만든다면 국민적 신망을 받지 못할 것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정치(政治)는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 正名也)”라고 했다. 그 직책에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요체는 바로 ‘君君臣臣’,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 [오늘의 산행지 ; 아가봉-옥녀봉] — 백두대간 장성봉에서 갈라져 나온 괴산의 군자지맥
☆… 저 영주 풍기의 소백산에서 서진해 오던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조령산-백화산-희양산-악휘봉-장성봉-청화산 등 문경구간을 지나면서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며 속리산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산행지인 옥녀봉-아가봉은 백두대간 장성봉에서 북쪽, 괴산쪽으로 뻗어나온 군자지맥 작은군자산(남군자산)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이다. 구체적으로 그 산줄기는 장성봉-막장봉-재수리치-작은군자산[남군자산]-옥녀봉-아가봉으로 이어져 달천강 앞에서 맥을 다한다. 백두대간 악휘봉(장성봉 북쪽)에서 북으로 뻗어간 칠보산-보배산 지맥과 장성봉에서 북으로 뻗어간 남군자산(작은군자산)-군자산 지맥 사이의 계곡이 그 유명한 ‘쌍곡계곡’이다. 산세와 풍광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칠보산과 군자산은 쌍곡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거기에는 괴산 쌍곡계곡에서 재수리치를 넘어 문경시 농암의 용추계곡으로 넘어가는 517번 지방도로가 있다.
☆… ‘갈론계곡’은 동쪽의 군자지맥(남군자산(작은군자산)-군자산)과 서쪽의 옥녀봉-아가봉 산줄기 사이에 있는 계곡이다. 그리고 옥녀봉-아가봉의 서쪽은 달천강의 본류가 흘러내리는데, 그 물은 괴산댐에서 호수(湖水)가 되어 절경을 이룬다. 백두대간 속리산 서쪽(법주사)에서 발원한 달천강은 괴산군 청천면을 지나 괴산읍을 경유하면서 음성, 수안보 등에서 흘러내려온 여러 지류들이 합류하여,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유입된다. 지난해 우리가 산행한 괴산의 <사랑산>은 남군자산에서 서쪽으로 송면터널(49번 도로) 위로 뻗어간 산줄기의 끝에 있으며, 아가봉과 달천강 사이에 있다.
* [갈론계곡] — 신선들이 노닐었던 심산계곡의 명소, ‘갈은구곡’
☆… 충북 괴산의 심심산중 ‘갈론계곡’은 아홉 곳의 명소가 있다고 해서 ‘갈은구곡(葛隱九曲)’이라 부르기도 한다. 골이 깊기로 소문난 괴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라 할 만큼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계곡이어서 아직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호젓한 계곡이다. 유리알같이 맑은 계곡이 곳곳에 비경을 만들고 있으며 예부터 시정과 풍류가 넘치는 계곡이다. ‘갈론’이란 이름은 이 계곡 입구 마을에 갈(葛)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은거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은구곡’은 제1곡 갈은동문, 제2곡 갈천정, 제3곡 강선대, 제4곡 옥류벽, 제5곡 금병, 제6곡 구암(거북바위), 제7곡인 고송유수재, 제8곡 칠학동천, 제9곡 선국암이다. 강선대(降仙臺), 칠학동천(七鶴洞天), 선국암(仙局岩) 등 신선과 학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갈론계곡은 선경의 호젓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갈은구곡
* [산으로 가는 길] — 쾌주의 고속도로, 화창한 날 유월의 산을 찾아…
☆… 오늘의 산행지는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와 청천면 운교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군자지맥 갈래의 산줄기 <아가봉-옥녀봉>이다. 우리의 금강버스에 동승한 대원은 김준섭·꽃구름·장태임 부회장, 호산아 고문·장병국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실무 민창우 기획과 박은배 총무, 유형상 부대장이 포진하고, 향이 허향순 님, 늘 젊음을 구가하는 강재훈·안상규·전진국·송기성 님, 그리고 한결같은 김재철 님 내외분, 이철호 님, 이정순·장영서 님, 오늘 처음 나온 하회탈의 지기 이경희 님, 그리고 오랜 만에 참석하신 허방석 님 등이다. 짱가의 지기 한 분이 오셨는데,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다.
☆… 오전 7시 35분, 서울의 군자역을 출발한 우리의 금강고속은,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일로 남으로 내려가다가, ‘금왕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난 후, 음성I.C에서 37번 국도로 내렸다. 음성을 지나 괴산에서 연풍으로 이어지는 34번 도로를 이용하여 칠성에 이르렀다. 칠성은 싱그러운 유월의 맑은 기운이 은은히 감도는, 내륙 깊숙한 충북의 괴산의 작은 면소재이다. 칠성은 괴산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마을이다. 괴산댐의 호수(괴산호)는 그 호반에 <산막이 둘레길>이 조성되어 산과 호수의 절경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우리의 버스는 그 칠성로를 따라 가다가 달천강 수전교 못 미쳐서 왼쪽의 길로 접어들었다. 댐 아래의 달천강은 흐르는 물의 양이 아주 적었다.
* [괴산댐의 아름다운 호수(湖水)를 끼고] — 심산구곡으로 들어가는 호반 길
☆… 오른 쪽으로 보이는 괴산댐을 지났다. 괴산댐은 1957년 국내 기술진이 설계·시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용 댐인데, 괴산수력발전소이다. 괴산호를 끼고 조성된 도로는, 포장은 되어 있지만 차 한 대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도로(칠성로 10길)이다. 굽이굽이 심심산곡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앞에서 차가 오면 비켜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장대한 소나무들이 울창한 호반의 숲길이었다. 소나무 수림 사이로 맑고 푸른 괴산호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2013년 조성된 ‘산막이 둘레길’은 호수의 저 건너편에 있는 산책길이다. 아름답고 청정한 호수를 끼고 지나가는 굽이굽이의 숲길이다.
괴산댐
* [폭염주의보가 내린 유월의 산행] —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시원한 숲길
☆…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산행들머리인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청정마을 ‘갈론’이었다. 워낙 첩첩산중이라 사람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기막히게 궁벽한 산곡이다. 오전 10시 30분, <갈론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따가웠다. 유월의 폭염이다. 스마트폰 긴급재난문자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오늘으 선두는 민창우 대장이 서고 후미는 유형상 부대장이 수고하기로 했다.
☆… 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배티골 계곡을 건넌다. 계곡은 물이 고여 있었으나 흐르지는 않았다. 계곡물은 맑았지만 물길은 끊겨 있는 것이다. 산길은 계곡을 따라서 난 평탄한 길이었다. 활엽수와 잡목들이 울창한 숲속의 산길은 서늘하였다.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세상은 뜨거워도 자연의 산속은 시원하니, 산에 든 발길이 가볍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가는, 1.2km의 평탄한 흙길을 걸었다. 산은 토산이므로 길 또한 쾌적했다.
*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오르는 산길] — 이어지는 암릉 길의 아름다운 풍광
☆… 오전 10시 54분, 아가봉 1.8km를 가리키는 이정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처음 완만하게 올라가는 산길이다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서 산길의 경사는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아주 가파른 산길. 대원들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도를 높여가면서 주위에는 활엽수림 사이의 군데군데 장대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받들고 있었다. 경사가 아주 가팔라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숲길이어서 공기는 신선하고 쾌적했다. 가파른 산봉의 허리를 돌아나갔다. 온 산의 능선이 바라보이는 지점, 시야가 열린다. 안부 건너편에 아가봉이 보였다. 아가봉을 1.2km남겨둔 지점,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날이 건조하여 발길을 떼놓을 때마다 산길에는 팍팍한 흙이 푸석푸석 먼지가 일었다.
☆… 평탄한 안부를 지나고 나니 암릉 길이 시작되었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고 치고 오르는 암릉길은 아기자기 맛이 있었다. 평탄하게 이어진 산길을 오르다보니 휘어진 낙락장송이 장엄하여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대원들이 포즈를 취했다. 돌아보니 우리가 산허리 지나온 산봉이 우뚝하다. 산봉의 이름이 없어 ‘호산봉’으로 명명하자고 농을 던졌다. 그리고 저 멀리 동남쪽으로 옥녀봉이 보인다. 매바위로 불리는 바위를 올랐다. 주변의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조망처이다. 동쪽 건너편으로 군자산의 줄기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49번 도로가 뻗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길, 우뚝하게 솟은 바위를 타고 올랐다.
낙락장송(落落長松)의 기개로!!
오늘 산행의 제2포인트 옥녀봉
우리가 지나온 산봉 - "호산봉"
앞으로 올라가야 할 아가봉을 배경으로
매바위
* [아가봉 정상] — 그리고 암릉길, 바위와 소나무가 절경을 이루다
☆… 낮 12시, 오늘의 제1산행 포인트인 아가봉 정상에 올랐다. 해발 542m밖에 되지 않으나 올라오는 산길은 아기자기하고 재미가 있었다. 비교적 평탄한 주변의 윗자리에 삼각의 표지석이 서 있다. 대원들이 여럿이 또는 단독으로 포즈를 잡았다. 정상에서 땀을 식힌 후, 산행을 계속했다. 이어지는 산길은 암릉이어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답고 사방이 환하게 열려 유월의 청산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았다. 첩첩산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초록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가까이 있는 옥녀봉 뒤쪽으로 군자산지맥이 늠름하고 남서쪽으로 49번 도로가 보이고 그 옆에 사랑산이 솟아 있었다. 주변의 군자산 줄기 너머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아련하다. 대야산이 산너울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 [깎아지른 절벽] — 안전자일을 타고 내려오다
☆… 오후 12시 20분, 깎아지른 절벽에 이르렀다. 높이 30미터 정도의 암벽인데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어 대원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자일을 잡고 내려갔다. 민 대장이 아래에서 돕고 호산아 고문이 자일을 잡고 내겨가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게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르게 또 다시 산봉(521고지)을 올랐다.
* [안부 사기막재] — 다시 숨이 턱에 차오르게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
☆… 이제 여기에서부터 옥녀봉을 향하는, 남군자산으로 가는 산줄기를 따라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가팔랐다. 한참을 내려오니 안부(鞍部) 사기막재였다. 아가봉에 1.2km 내려온 지점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그 계곡으로 바로 내려가는 배티골이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송면 사기막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이다. 이정표에 ‘탐방로 아님’을 표지해 놓았다.
암릉의 절벽 ; 저 멀리 달천강 괴산호의 일단이 보인다
☆… 안부 사기막재에서 옥녀봉 가는 길은 0.5km밖에 되지 않지만, 숨 막히게 가파른 오름길이었다. 급경사의 가파른 산길, 숨이 턱에 차오르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들고 숨찬 구간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인생(人生)이 그렇다. 하나의 산(山)을 넘고 나면 또 다시 올라가야 할 산(山)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 산(山)은 산을 오르는 우리에게 정직한 땀을 요구한다. 땀을 흘려야 할 때 흘려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오늘 산 전체는 그리 높지 않으나 수많은 산봉을 오르내려야 하는 여정이다. 힘들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넘치는 산길이다.
* [옥녀봉 정상] — 유월의 녹음이 드리워진 호젓한 산정(山頂)
☆… 오후 1시 25분, 해발 599m 옥녀봉 정상에 도착했다. 삼각형의 자연석에 ‘속리산 옥녀봉’을 새겨 놓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뜨거운 숨을 고르고 몇몇 대원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옥녀봉에서 다시 안부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올 때의 높이와 경사만큼 아주 가팔랐다. 아래로 쏟아지는 바윗길 중간에 안전자일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자일을 타고 내려와, 힘들게 뒤따라 내려오는 대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울창한 낙엽송 숲속에서의 점심식사] — 음식과 함께 마음도 나눈다
☆… 오후 1시 40분, 안부(鞍部)에 도착했다. 옥녀봉에 0.3km 내려온 지점으로 하늘을 찌르는 장대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바로 가면 남군자산이다. 여기에서 북쪽의 이어진 산곡이 바로 갈론계곡이다. 갈론계곡에는 예부터 ‘갈은구곡’이라고 명명하는 아름다운 명소가 있다. 낙엽송 숲 속의 너른 자리에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했다.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내어놓고 함께 그 음식을 나누면서 마음도 나눈다. 땀을 많이 흘린 이런 날은 차가운 막걸리 한 잔이 지극한 행복감을 준다. 오늘 처음 나온 이경희 님이 비장의 도화주(桃花酒)를 내놓아 그 깊은 맛을 음미하기도 했다. 도화주는 산도화(山桃花) 꽃잎으로 빚은 술이다. 깊고 그윽한 향기가 특별했다.
* [하산 길의 갈은구곡(葛隱九曲)] — 선국암 너럭바위,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 오후 2시 4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얼마간 완만한 산길을 내려오니, 계곡이다. 그러나 계곡의 상류는 바싹 말라있었다. 긴 가뭄 탓이다. 어지간해서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곳인데 가뭄이 극심한 상황이다. ‘갈은구곡’의 (9) 선국암 주변도 완전히 말라서 계곡에는 바윗돌만 뜨거운 햇살을 받아 화끈거렸다.
순결한 엽록의 잔치
☆… ‘갈은구곡(葛隱九曲)’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면서 곳곳의 명소에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제1곡 갈은동문(葛隱洞門), 제2곡 갈천정(葛天亭), 제3곡 강선대(降仙臺), 제4곡 옥류벽(玉溜壁), 제5곡 금병(錦屛), 제6곡 구암(龜岩, 거북바위), 제7곡인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 제9곡 선국암(仙局岩)이다.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降仙臺), 옥구슬 같은 물방울이 흐르는 절벽(玉溜壁), 비단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錦屛), 거북 모양 바위는 구암(龜嵒)이고 ‘고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란 뜻의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등의 풍광이 절경이다. 7곡 고송유수재 곁에는 8곡 칠학동천(七鶴洞天)과 9곡 선국암(仙局嵒)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일곱 마리의 학이 날아와 노닐고, 강선대(降仙臺)에 신선이 내려와 선국암(仙局岩)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한가로이 바둑을 두는 곳, 그곳이 갈은구곡이다.
선국암 앞의 계곡 ; 마른 하늘 아래, 아아 계곡은 목이 마르다!!
제9곡 선국암(仙局巖)
☆… 선국암(仙局岩)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가장자리에, 너비가 6m 정도 되는 아주 평평한 반석(磐石)이 고인돌에 올려져 있는데, 신선이 내려와 대국을 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바위에는 실물대의 바둑판이 그려져 있고 바둑알을 놓는 동그란 홈도 파여져 있었다. 바위 옆에 새겨진 구곡시(九曲詩)에는 바둑을 둔 선인의 풍류가 그윽하다.
玉女峰頭日欲斜 옥류봉 산마루에 해가 기울어
殘棋未了各歸家 바둑을 끝내지 못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네
明朝有意重來見 다음날 아침 생각이 나서 다시 와 보니
黑白☺爲石上花 흑백의 바둑알 알알이 돌 위에 꽃이 되었네
해가 저물어 한 판의 바둑을 끝내지 못하고 돌아가는 아쉬움과 흑백의 바둑돌이 어우러진 바둑판을 꽃에 비유한 서정이 절묘하다.
☆… 물이 많지 않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하산 길, ‘갈은구곡’의 명소를 하나하나 살피고 머물 수는 없었지만, 그 이름에 값하는 구곡(九曲)의 절경을 벗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절묘한 암벽과 너럭바위 그리고 특히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이루고 있는 맑은 물이 선경(仙境)을 방불케 했다. 긴 계곡을 내려와 제1곡 갈은동문 아래의, 암반이 있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몸의 피로를 잊고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군데군데 청정한 물이 ---
가뭄으로 물이 많지 않은 갈은계곡
갈은구곡의 명경지수(明鏡止水)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암각(岩刻) 글씨
제1곡 갈은동문(葛隱洞門)
☆… 구곡(九曲)은, 원래 중국 송(宋)나라 시대의 주자(朱子, 1130~1200)가 푸젠성(福建省)의 무이산 계곡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그 무이산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 군데를 선정하여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한 데서 연유한다. 주자는 그 아름다운 선경을 ‘무이구곡가’로 찬탄했다. 조선시대의 율곡은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지었다. 황해도 고산의 비경을 읊은 것이다.
우리나라 내륙의 깊숙한 괴산에서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을 비롯하여 ‘선유구곡’, ‘쌍곡구곡’ 그리고 여기 ‘갈은구곡’ 등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노닐던 선비들의 풍류와 서정이 머문 곳이다. 거기에는 명경지수 같은 맑은 물, 절묘한 형태의 기암(奇岩) 그리고 바위와 물과 어우러진 고송(古松)이 만들어 낸 선경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갈론리의 ‘갈은구곡(葛隱九曲)’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전덕호(1844~1922)가 설정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갈은구곡은 9개의 곡마다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한시(漢詩)를 암각해 놓았다. 주자가 무이구곡의 9개의 명소마다 한시를 새겨 놓은 것처럼, 갈은구곡 역시 7언절구의 한시로 구곡을 설명하고 있다. 구곡의 암벽에 한시를 음각한 곳은 국내에서 갈은구곡이 유일하다.
저 물속에 크고 작은 버들치가 바글바글 살고 있었다!! 저 물마저 말라서는 안 된다!!
제1곡 갈은동문 아래의 청정한 물에 ---
갈론마을 입구 주차장(산행들머리-원점회귀)
* [에필로그] — 한 사람의 정성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 오늘은 박은배 총무님께서 우리 산우들을 위해서 별식(別食)을 준비해왔다. 주차장 옆, 그늘이 드리워진 계곡의 물가에서 모든 대원들이 모여, 정성으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별식은 손수 집에서 쑤어온 구수한 도토리묵과 쪽깃한 닭발양념무침이다. 큰 그릇에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양이다. 거기에다 시원한 막걸리까지 곁들었으니, 옛 우리 선인들의 탁료계변(濁醪溪邊)의 풍류(風流)가 바로 이것이었다. 더운 날 땀 흘리며 힘들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격의 없이 좋았다. 총무님의 노고와 정성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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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재사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