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가 3월 23일 밤 끝났다. 1월 26일 시청률 5.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시작했으나 8회에서 두 자릿 수 (11.0%)로 껑충 뛰었다. 먼저 SBS 금토드라마의 이 두 자릿 수 시청률은, 나무위키에 따르면 ‘악귀’ 최종회(2023.7.29.)가 찍은 11.2% 이후 약 7개월 만의 일이다.
6회까지 6%대에 머물던 ‘재벌X형사’의 시청률이 갑자기 그 두 배 가까이 솟구친 건 순전 MBC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MBC 금토극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큰 흥행을 거둔”(텐아시아, 2024.3.1.) ‘밤에 피는 꽃’의 후속작 ‘원더풀 월드’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1주일 공백기가 생기자 그 시청자들이 ‘재벌X형사’를 보러 몰려들었단 얘기다.
그러나 ‘재벌X형사’가 종영까지 계속 두 자릿 수 인기를 누린 건 아니다. 12회에서 다시 10.1%를 찍었을 뿐이다. 각 70분으로 확대 방송한 15ㆍ16회도 9%대에 머물렀다. 최고 시청률은 11.0%(8회)다. 최저 시청률은 5.7%(1회)다. 1회 시청률이 최저였다는 건 ‘재벌X형사’가 갈수록 꾸준한 인기를 끈 것이라 할 수 있다.
단, 최종회 시청률이 9.3%에 머문 건 다소 의아하다. 최종회 시청률이 반짝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기 마련인 보통의 드라마와 다른 결과여서다. 최종회에선 경찰에 만족해하던 드라마 흐름이라 진이수(안보현)의 한수그룹 신임 회장 취임이 잠시 아쉬움을 갖게 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최정훈(김명수) 이사를 신임 회장에 앉히고, 경찰로 다시 돌아온 일견 흐뭇한 결말로 끝나서다.
2015년 러시아 드라마 ‘실버 스푼’을 원작으로 한 ‘재벌X형사’는 서바이벌 게임 ‘경찰놀이’나 즐기는 한수그룹 막내아들 진이수가 경찰에 특채돼 실제 수사 및 범인 잡기도 하는 이야기다. 강하경찰서 강력1팀 이강현(박보현) 팀장, 박준영(강상준)ㆍ최경진(김신비) 형사가 이수 팀원이다. 기본적으로 말 안 되는 설정이지만, 신선한 발상이긴 하다.
수사가 벽에 부딛혀 한 발도 더 나가지 못할 때 재벌로서의 이수의 위력이 활로를 열어주는 식이다. 가령 해외도피하려는 범인들 차를 쫓다 길이 막히자 헬기를 동원해 공중에서 땅에 있는 차를 찍어 눌러 제압한다. 그뿐이 아니다. 이수는 수사에 요트를 동원하는가하면 급히 필요해진 10억 원을 마련하려고 한밤중 은행 문을 열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끝난 ‘효심이네 각자도생’의 강태호가 ‘저런 착한 재벌이 다 있나’ 할 정도였듯 “영화나 드라마에서 ‘갑질’을 하고 버럭 화만 내던 재벌은 K드라마에서 친근하게 그려지고 서민의 일상까지 파고든다”(한국일보, 2024.3.19.)는 얘기다. 언뜻 경찰의 무능을 까거나 씹는 친재벌 드라마같지만, 끝까지 지켜보면 그렇지 않다.
예컨대 두 번에 걸친 극악한 살인범은 이수의 형, 그러니까 한수그룹의 장남 진승주(곽시양)로 밝혀진다. 한수그룹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그릇된 욕망이 낳은 아들의 범죄지만, 이수의 착하거나 선한 형사 활동과 확실히 선을 그은 재벌 묘사라 할 수 있다. 보는 내내 왜 엄마 자살 등 이수의 가정사가 시시콜콜 나오는지 의아했던 점을 불식시킨 튼실한 극본이라 할까.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그의 활약에 열광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재벌가의 불법행위에 관한 문제의식마저 정화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재벌이 사회 치안 유지까지 책임지는 이상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한겨레, 2024.3.16.)라고 지적한다. 일리가 있지만, ‘재벌X형사’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란 시청자들의 수준 높은 인식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이런 전개가 나름 재미를 주는 게 ‘재벌X형사’의 강점이다. SBS 금토드라마로 선보였던 사이다 전개의 연장선에 있는 ‘재벌X형사’라 할만하다. SBS 금토드라마 첫 작품인 ‘열혈사제’(2019)라든가 ‘모범택시’(2021ㆍ2023) 시리즈들처럼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주기도 한다. 또한 ‘원더우먼’(2021)처럼 황당하지만, 재미는 있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다만, 복수대행서비스의 ‘모범택시’가 사적 제재인데 반해 ‘재벌X형사’는 공권력(경찰)을 통한 응징이라는 게 다르다. 이 점은 앞에서 잠깐 말한 경찰의 무능을 까거나 씹는 드라마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시선을 거두게 한다. 사이비 교주로부터 뇌물을 받고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황성구(김병춘) 같은 경찰 보여주기는 가끔 뉴스에서 보는 현실의 재현일 뿐이다.
하지만 강제 퇴직당한 강현 부친 이형준(권해효)이 누명을 벗고 복직하는 등 올바른 경찰상 보여주기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는 데서 경찰 까기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특히 형준의 복직과 동시에 특진 및 경찰서장 영전은 시즌 2를 위한 밑밥이라 할지라도 결말에서 보여준 이수의 신임 회장 사양하기와 함께 흐뭇하기까지 하다.
25년 전 자살로 종결한 사건에서 놓친 걸 찾아내 딸인 강현으로 하여금 범인을 잡게하는 형준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형준은 이수에게 사죄까지 하고 있다.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된 사건 기록을 뒤져 자살이 아닌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경찰이 현실에 있을까 하는 점에서 미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강현을 비롯한 형사들의 고군분투와 함께 흐뭇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전회 마지막 장면이 다음회에서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게 그렇다. 가령 12화는 진명철(장현성) 집 안에서 사람이 죽은 걸로 끝난다. 그런데 13화 첫 장면은 형준의 복직과 동시에 특진 및 경찰서장 영전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러 그런 듯싶기도 하지만, 이런 연출은 다음회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는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걸로 생각된다.
“당신이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 하는 등 아버지에게 막 퍼부어대는 이수도 좀 아니지 싶다. 아무리 혼외자라 해도 자신을 세상과 만나게 해준 아버지가 엄연하다. 그런 아버지에게 ‘당신’ 어쩌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애비 없는 호로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해서다.
튼실한 극본과 달리 놓친 디테일 묘사도 좀 아쉽다. 가령 7화를 보자. 이수는 정신과 의사 서유경(최희진)으로부터 진이수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도 “어떻게 내 이름을 아냐”고 묻지 않는다. 물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간다. 황당하지만, 재미는 있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이런 내면적 리얼리티까지 거기에 묻히는 건 아니다.
‘창고’를 ‘창꼬’(6ㆍ7화)라 말하는 것 외엔 발음상 오류가 없는 건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다행이다. 오히려 “그렇게 참신한 또라이는 처음 보네” 같은 대사가 기억에 남기도 한다. 다만, 강현이 고미숙(윤유선) 음식 솜씨에 대해 이수에게 변명하는, “엄마가 갱년기라서 간을 못맞춰 짜고 맵고”는 무슨 말인지 의아하다. 실제로 갱년기 여성들에게 그런 ‘증상’이 있는 건가?
‘재벌X형사’는 시즌 2를 예고하며 끝났다. 나는 ‘소방서 옆 경찰서’(2022)가 시즌 2 방송을 예고하며 끝난 것에 대해 “이렇게 1편에서부터 시즌 2를 예고했던 드라마가 얼마나 있었는지 싶다. 아마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7.6%로 출발해 8%대 시청률을 유지하다 최종회만 딱 한 번 두 자릿 수(10.3%)를 찍었을 뿐인 드라마의 속편이 8개월 만에 돌아온 건 이례적이라 할만하다”(장세진평론집 ‘드라마 톺아보기’ 수록)고 말한 바 있다.
8개월 만에 돌아온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는, 그러나 ‘소방서 옆 경찰서’보다 인기를 끌지 못한 시즌 2가 되고 말았다. 혹 16부작중 딱 두 번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보인 ‘재벌X형사’가 그 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긴 최고 시청률 7.7%에 그친 ‘7인의 탈출’(2023)도 시즌 2가 불과 4개월 만인 3월 29일 SBS 금토드라마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