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제주올레 사무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은 서귀포가 고향인 저에게 <소라의성>으로의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인근에 소정방이라고 불리는 작은 폭포가 있어 아주머니 할머니들께서 여름이면 물 맞으러 다니는 곳이고,
절벽을 넘어가면 허니문하우스라 불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이 있는 곳과 함께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2002년 월드컵에 잉글랜드 대표팀이 합숙훈련을 했던 파라다이스 호텔이 있던 시기가
모두 소라의성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소라의성은 제주의 싱싱한 해물을 넣고 끓이는 해물 뚝배기로 유명한 식당이었지만
건축물이 위치한 곳이 절벽 바로 옆이다 보니 붕괴의 위험이 있어 결국 재해지구로 묶이게 되면서
철거가 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한국 현대건축의 문을 연 건축가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건축물이어서 철거 반대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철거는 면했지만 철거하기로 했던 건축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던 차에
비영리로 운영이 되는 제주올레의 사무국이 들어옴으로써 소라의성 문제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인근에 문을 연 왈종미술관과 함께 새로운 시기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국 직원들이 말하기를 큰 바람이 불 때면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지금은 제주올레 사무국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이전의 이름인 <소라의성>이 정감이 가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그 이름을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건축물의 느낌을 잘 살린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 건축물을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적인 모습이 동그랗고 그 동그란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이 영락없는 소라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층으로 지어져 바다를 향해 난 창문으로 아름다운 공주님이 고개를 내밀 것 같은 생각을 하다보면 소라의성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문득 소라나라의 공주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기도 합니다. 이참에 현재의 제주올레 사무국이라는 이름에 예전 이름인 <소라의성>이라는 이름을 건축물의 별명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을 해봅니다.
제주에는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제주시 쪽에 옛,제주대 본관이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슬프지만 철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귀포 쪽에 소라의성과 함께 현재 서귀포중앙여중 교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이 남아 있으니 건축가인 저로서는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화가 이중섭 선생은 서귀포에 살았던 육 개월의 흔적으로 이중섭거리가 탄생하였으니 소라의성으로 들어가는 인근의 길을 김중업 길로 만들고 서귀포를 건축가 김중업의 도시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소라의성이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건축물이 맞느냐 하는 논란도 있기는 합니다만 건축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김중업 선생의 건축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소라의성은 김중업 선생이 자주 사용하는 자연적인 선을 많이 이용한 건축물입니다. 큰 원에 작은 원이 붙어 있고, 큰 원을 둘러싸고 올라가는 계단과 함께 발코니처럼 튀어나온 부분도 동그란 모습이니 소라의성이라는 이름이 붙은게 이상할 게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건축물의 특징은 제주의 재료를 이용해 제주다움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에 미장을 하면서 바닷가에서 나오는 까맣고 동그란 돌을 붙임으로써 전체적으로 김중업이라는 코드와 제주라는 코드를 절묘하게 결합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 하는 대목입니다.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서울에 있는 옛,서산부인과를 보면 소라의성이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발코니를 잡아주는 거꾸로 된 원뿔 기둥이나 발코니 하부의 동그란 마감, 콘크리트와 미장에 페인트 마감 등은 김중업 선생이 자주 사용하던 건축 요소입니다.
소라의성은 두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합니다. 정방폭포 방향에서 오는 길과 허니문하우스에서 내려와 소정방을 거쳐 올라가는 방향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사무국이 있으니 올레길이 지나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좋은 건축물의 특징은 보는 방향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소라의성은 약간 언덕진 곳에 있지만 정방폭포 방향과 소정방에서 오는 방향의 높낮이가 달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일단 정방폭포 방향에서 오면 원기둥이 놓여 있는 기하학적인 덩어리가 눈에 뜨입니다. 그 옆으로 살짝 경사가 있고 지면에서 올려다보는 동그란 발코니 하부와 둥글게 말아져 올라가는 기둥의 상부가 연결되면서 묘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기둥 상부를 장식하는 주두가 시대별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으로 나뉘는데 소라의성에서 쓰인 모양은 가히 김중업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1층은 제주올레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2층은 제주올레 사무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건축물의 옥상에 꼭 올라가보기를 추천합니다.
일단 2층으로 회전하며 올라가는 계단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넓은 입구가 올라갈수록 좁아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으며, 제주의 동그랗고 작은 돌을 일일이 붙인 벽을 손으로 만져가며 올라가는 맛은 일품입니다. 건축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손으로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2층을 거쳐 옥상에 올라가면 좁은 계단이 넓게 옥상공간과 만나게 되고 드넓은 바다가 눈 앞에 보이는 느낌은 마치 소설의 클라이맥스와 같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절벽이 펼쳐져 있고 소라의성이 있는 부분만 절벽이 오로라처럼 말려들어가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꾸로 소라의성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양 옆으로 절벽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또한 장관입니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옥상입니다. 절벽 사이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모습은 세상사에 찌든 마음을 한번에 청소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서귀포항이 커지면서 방파제가 길게 나와 화가 이중섭도 사랑했던 서귀포 앞 바다의 풍경을 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귀포항을 세계적인 미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재의 방파제는 분명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해치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건축물은 오랜 기간 사용하면서 덧붙이기도 하고 - 증축이라고 합니다 - 색이 바뀌기도 하며, 일부의 재료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를 건축물의 진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진화가 모두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진화가 환경에 적응하기 못하면 결국 그 종은 멸종하게 되고 건축물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라의성에도 덧붙인 부분이 있는 것 같지만 다행이도 괜찮아 보입니다. 문화재를 다루게 될 때 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부분이 원형 그대로 유지할 것이냐,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원형 그대로 두자면 박제가 되었다고 하고, 현대적으로 바꾸게 되면 왜곡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방법은 달라져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곳에서 생활하는 건축주의 손에 맡겨 전체적인 훼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생활에 필요한 조정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건축주의 문화적 소양이 높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지금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제주에 큰 관심이 없던 시기에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건축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시 건축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지금도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유명 건축가들이 제주에서 많이 작업하고 있지만 도시의 모습은 점점더 삭막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제가 제주도 서귀포에 갤러리하루라는 공간을 만들고, 문화도시공동체 쿠키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아름다운 서귀포, 아름다운 제주를 가꾸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건축물인 소라의성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사진 이승택 이세환건축사사무소 소장,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표. 제주대 건축학부 외래교수>
첫댓글 소라의 성 여기서 보게 되니 반갑네요...제 여고 동창 부모님이 운영하셨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