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때문이었다. 소살리토를 선택한 것은. 장만옥을 좋아했던 그녀는 이 우아한 여배우가 샌프란시스코의 날품팔이 택시운전사로 등장했던 ‘소살리토’(2000)를 보자마자 이 소도시에 푹 빠져버렸고, 영화 속 장만옥의 꿈처럼 자신도 소살리토에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너무 번잡한 관광도시 같아 내키지 않는다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정작 그녀가 떠나버린 지금, 그 소망을 대신 실현하는 옛 남자친구라니.
소살리토의 아침은 안개로 시작했다. 안개가 천천히 자취를 감췄을 때, ‘천사들의 하늘 보금자리’라는 표현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는 한쪽 벽이, 샌프란시스코 해변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주인의 취향인지, 모네의 수련(修鍊) 복제품 연작이 나머지 삼면 벽에 걸려 있었다. 하늘 꼭대기에서 소살리토와 태평양, 그리고 모네를 굽어보는 기분. 실내에서 보는 집 안팎 풍경은 풍요로웠다. 전날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식욕이 솟구쳤다. 장을 보기 위해 서둘러 문을 나섰다.
관광이 아니라 삶을 살고 싶다면, 소살리토에서 차는 필수품에 가깝다. 마트 몰리스톤즈(Mollie Stone’s)③는 3㎞ 넘게 떨어져 있었다. 광고상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스테이크용 프라임 쇠고기’를 골랐다. 1파운드(약 450g)에 5.99달러. 서울보다 현격하게 착한 가격이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루이지애나산 소시지도 함께 집었다. 1911년부터 이 맛 그대로란다. 집으로 돌아와 핫 플레이트(hot plate)의 플러그를 꽂았다. 유리 밖에서 예의 그 표범만한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슬픈 눈으로 짖었다. 요리한 스테이크와 소시지의 절반씩을 덜어 접시에 담았다. 거실 식탁과 마당에서 각각 식사가 시작됐다. 고기는 달콤했고, 소시지는 매콤했다.
소살리토 중심 거리인 브릿지웨이(Bridgeway)는 넉넉잡아 4㎞. 해변과 평행하게 달리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양쪽으로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갤러리와 기념품 가게가 도열해 있다. 해변을 따라 유유자적하기에는 환상적인 산책로다. 해변 맞은 편에는 언덕과 야트막한 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유럽풍 고급 주택이 점점이 박혀있다.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에서 북쪽으로 겨우 자동차 5분 거리. “샌프란시스코가 금문교를 놓은 이유”라고 말할 땐 좀 뻔뻔해 보이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국에서 가지는 환상과 달리, 돌아다니기 부담스러운 슬럼이 점점이 박혀있는 실제 샌프란시스코 도심은 그렇게 살기 좋은 곳 만은 아니다. 열살 난 아들과 함께 택시운전으로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던 영화 속 장만옥은 쉬는 날마다 금문교 남쪽에서 반대 쪽을 올려다보며 캔버스에 소살리토를 그려 넣곤 했었지. 샌프란시스코 하층민의 삶을 하루 빨리 벗어나게 해 달라고. 내게도 행복을 달라고. 그녀들을 떠올리며 호라이즌④에서 기네스를 주문했다. 집 한 채는커녕, 맥주 한 파인트(약 473㏄)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주말이다. 브릿지웨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지역신문 마린 인디펜던트 저널(Marine Independent Journal)을 읽다가 단신에 눈이 멈췄다. 주중에는 폐쇄했던 포인트 보니타(Point Bonita)⑤의 등대가 토요일과 일요일 낮 12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만 지역민에게 개방한다는 소식이었다. 충동적으로 소풍을 결심했다. 20분을 달리니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전세계에서 금을 찾기 위해 미국 서부로 달려들었던 1855년, 보니타는 설립됐다. 직전 한 해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900명에서 2만 명으로 20배 이상 폭증했다지. 하지만 그 해의 이주민 1만9100명은 운이 좋았다. 늘어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안개와 파도에 쓸려 저 세상으로 떠나야 했다니까. 150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말 그대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샌프란시스코 만을 덮고 있었다. 바다가 육지로 파고들어온 만(灣) 특유의 지형 때문에 1년이면 2000시간의 안개가 해변과 도심을 덮는다고 했다. 저 아래 소살리토에는 우거진 녹음이 11월에도 화창한데. 안개 저쪽에서 페리가 기적(汽笛)을 토해 냈다. 주말 등대지기 이름표를 가슴에 붙인 수잔(Susan)이 샌프란시스코와 소살리토를 왕복하는 배라는 사실을 넌지시 일러줬다. 삶은 겨우 20분 너머에 있었다.
① 코롤라: 여행 사이트 익스피디아(www.expedia. com)를 통해 도요타 코롤라를 4일 동안 195달러(약 18만원)에 빌렸다. 이 가격에 가솔린도 가득 채워줬다. 페이리스 카 렌탈(Payless Car Rental)이라는 지역 렌트카 회사의 소형차 가격이었는데, 저렴한 대신 사무실이 공항 바깥(차로 약 3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자체 셔틀버스로 공항과 사무실을 왕복 운행한다. 소살리토 시내에서만 있을 예정이라면 자전거를 강추한다. 소살리토 진입로 입구에 있는 마이크 자전거점(Mike’s Bike)에서 하루 30달러에 빌려 준다. 헬멧 포함. 시내 전체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별도로 있다. 단, 운전용 장갑은 개인적으로 준비할 것.
② Angel’s Flight Heavenly Vacation Rental: 단기 임대주택. 역시 익스피디아를 통해 예약했다. 3박에 852달러(세금과 수수료 포함). 여기에 개인주택 보안경비와 청소요금을 합쳐 324달러가 추가됐다. 한 달을 이용해도 추가 청소를 하지 않으면 추가요금은 동일하다. 방 하나, 욕실 하나, 거실 하나, 부엌 하나. 어쨌거나 이 기간으로만 계산하면 하루에 35만원 꼴이니 고급 호텔 가격이다. 3층 주택이었는데, 주인이 3층을 쓰고 1, 2층을 각각 임대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소살리토에는 단기 임대주택이 몇 개 없고, 예약도 빨리 차는 편이다. 구글에서 ‘Sausalito vacation rental’이란 키워드로 찾으면 대여섯 곳이 나온다. 침실 개수와 규모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개인이 소규모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체 홈페이지도 거의 없다. 휴가용 임대주택 전문 사이트로는 www.homeAway.com도 있다.
③ Mollie Stone’s: 소살리토 유일의 대형 할인마트. www.molliestones.com 우리로 치면 작은 규모의 이마트나 롯데마트를 떠올리면 된다. ‘금문교 가게’(Golden Gate Grocery)등 소규모 식료품 가게는 물론 곳곳에 있다. 단 가격이 만만치 않다. 생수 한 병에 2달러 수준.
④ Horizons: 소살리토의 대표적 해변 레스토랑. 물 위에 데크를 설치하고 그 위에 레스토랑이 있다. 당연히 바다를 즐길 수 있다. 호라이즌을 포함, 브릿지웨이에는 10여 개의 레스토랑이 바다를 향해 있다. 기네스 한 병 3.75달러. 식사는 점심 20~30달러, 저녁 50~100달러 수준. www.horizonssausalito.com
⑤ Point Bonita Lighthouse: 금문교 북서쪽에 세워진 등대. 태평양과 샌프란시스코 만이 한 눈에 굽어 보이는 요새다. 이 곳을 포함, 미국은 금문교 주변 30만㎢의 산과 해변을 금문교 국립 휴양공원(Golden Gate Recreation Area)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금문교 국립공원’과는 별개다. 수천년 삼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뮈어 우즈(Muir Woods), 태평양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포트 크론카이트(Fort Cronkhite) 등이 포함되어 있다. 소살리토에서 대부분 자동차로 1시간 거리 안쪽이다. 뮈어 우즈(Muir Woods·5달러)를 제외하면 대부분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경관이 뛰어나고 피크닉에도 좋다.
⑥ Napa: 소살리토에만 있기 심심하다면, 북쪽으로 달려 보자. 1시간만 달리면 와인 산지로 이름난 나파(Napa)가 나온다. 29번 고속도로 나파쪽 출구로 나가면 최근 우리나라에도 1호점을 낸 첼시 체인의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다. 토미 힐피거, 코치, 캘빈 클라인 등 50여개의 가게가 있다. www.premiumoutlets.com/napa
⑦ 항공편: 투어익스프레스(www.tourexpress.com)는 12월 13일까지 유나이티드 항공 샌프란시스코 왕복항공권을 55만원에 판다. 세금 23만4400원은 별도이며 환율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문의 (02)2022-6500. 샌프란시스코 ‘시티패스’, 호텔 3박을 포함하는 6일짜리 자유배낭여행 상품은 120만원부터. UA를 이용한다. 문의 (02)2022-6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