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환자들 집에서 여생 보내려 해 돌봄가족 55% "교대할 사람 없어" 在家 요양서비스 등 확대해야
"(치매 노인 모시기가) 힘들다고 들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들은 것과 차원이 달랐어요. 그나마 아침에 나가 오후 4시까지 여기 계시니 남은 가족은 (부양) 부담이 확 줄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하며 팔을 위로 뻗어보세요.”지난 10일 서울 효창동 구립용산데이케어센터에서 노인들이 음악치료사 최나리씨와 함께 팔을 뻗으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데이케어센터에 노인을 모시면 남은 가족들 부양 부담도 줄고, 노인 스스로도 정든 집에 머물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10일 오전 서울 효창동 구립용산노인데이케어센터 프로그램실. 음악치료 수업이 한창이던 교실 뒤편에서 노모(91)를 지켜보던 아들 배창호(가명·58)씨가 입을 열었다. 배씨는 치매기에 더해 최근 허리까지 삐끗한 모친 걱정에 잠시 들렀다며 "어머니가 여기서 친구도 만나고 즐거워하시니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센터 노인 14명은 이날 음악치료사 최나리(42)씨 앞에 둘러앉아 '밀양아리랑'을 한 구절씩 따라 부르며 소고(小鼓)로 장단까지 맞추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요양원으로 쏠림 현상을 막고 노후를 살던 곳(Aging in Place)에서 편히 보내게 하려면 데이케어센터처럼 '가족의 짐'을 덜어내는 복지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무거운 부양 부담, 최소 200만명
노인 돌봄 부담을 진 가족은 점차 느는 추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은정 부연구위원이 2014년 전국노인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뇌졸중·암·치매 등 3대 중증 질환을 앓는 65세 이상 인구는 87만2350명(전체 노인의 13.7%)이었다. 이들 노인이 속한 평균 가구원 수가 2.3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돌봄·부양 부담을 진 인구수는 200만6405명에 이른다.
가족들의 돌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가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 360명을 방문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을 돌보는 배우자나 자녀 등의 55.3%는 "교대할 사람 없이 홀로 돌본다"고 답했고, 하루 돌봄 시간이 평균 9시간 정도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많은 노인이 여전히 '정든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급적 재가(在家) 서비스를 지원·확대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용산데이케어센터에 노모(92)를 모시는 딸 최규옥(66)씨는 "엄마를 요양원에 9개월 모셨는데, 서운해하셔서 마음이 불편한 적이 있다"면서 "지금은 '자식들이 해주는 것보다 대접 잘 받는다'며 눈 뜨자마자 데이케어센터 가시려 할 정도로 만족하시고, 저녁땐 집에서도 모실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휴식을…"
경남 진주에 사는 김진석(가명·53)씨는 최근 노모 부양에서 벗어나 3년 만에 휴가를 다녀왔다. 그간 병상에 누워 지내는 어머니 권순이(가명·84)씨 식사 챙기고 배변 체크하느라 휴가는커녕 24시간 한눈 팔 수 없었는데 '24시간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해 지난 3~8일 6일간 지방 여행을 간 것이다. 김씨는 "짧은 휴가였지만 모처럼 바람 쐴 기회가 생기니 생활에 활기가 돌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노인 부양 부담을 덜어내도록 재가 장기 요양 서비스 지원을 확대해야 무분별한 요양병원·요양원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재가 서비스 이용자는 2012년 20만여명에서 올 7월 30만여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지만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중에 매일 방문 요양 서비스(하루 4시간 기준)를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액은 월 12만~18만원, 방문
간호·목욕 서비스는 회당 6000원 정도에 이용 가능하다.
지역사회도 노인 돌봄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은 "노인병원과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등이 함께 있는 복합 의료·요양시설을 늘리고,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굴해 도시락 배달, 집 청소 같은 봉사를 하는 것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