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효채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 군락인데 모두가 자연 분재다
한포기 한포기 마다 천년의 솔향을 간직한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 책의 저자이시고 원로 분재가이신
한석근 시인회장님 그냥 보고 가실리 없다
해박하신 안목으로 자연을 보고 구수한 입담으로 이바구 들려주니
답사시간 내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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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동구 지역의 다른 산들이 모두 마골산으로부터 뻗어 나갔다는 점과
하천의 발원이 모두 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동구 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동축사도 이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동축사로 오르는 길은 남목초등학교 앞사거리(옥류교)를 지나 감나무골 로 접어들어 남목정수장에서 우회 하면 시멘트포장도로가 초입길이 된 다. 동축사 주차장까지 승용차로 갈 수도 있지만 등산의 묘미를 더하려 면 여기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좋다. 동축사 주차장에서 긴 계단(308계단-260m)을 따라 올라서면 바로 절 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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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목관 원유영이 섰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54E6204A21A2711F)
성혈이다
원시인들이
하늘에 제사지낸 바우다
털옷을 입고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제사장의 모습이 눈에 아롱거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54E6204A21A27220)
방어진 등대도 보이고 중공업도 보이고 미포 앞바다도 보였다
동축사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방어진 앞바다까지 들렸는데
그 종소리도 방어진 팔경에 하나다
미포 백사장에는 낙화암이라는 바우가 있었다
낙화암은 미포백사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바위산으로(서부동218-7소재)슬픈 전설을 안고 서 있던
울산 동구의 최대의 문화유산이였음에도 현대조선 건설시 파괴되어 수몰되고
그 중 일부 “쌍바위”는 한국프랜지(주)회장댁 (불당골)정원에 옮겨져 있다.
전설 : 낙화암 전설중에는 백제멸망시 부소산성의 낙화암은 3천 궁녀가
백마강에 떨어져 정절을 지켰고, 논개는 왜장을 안고 낙화되어 그 충정이 빛나
는데 이곳 낙화암엔 사건의 내용조차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해지지 않고 있어 추측
만 난무할 뿐이다.
혹 학정을 일삼던 지방관을 안고 낙화가 되었다면 입조심으로 사건의 전말이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낙화가 된 의녀의 붉은 치마가 파도에
밀려 미포 앞바다 섬에 걸렸는데 이 섬이 홍상도(紅裳島)이고, 의녀의 녹색저
고리가 파도에 밀려 나왔던 곳이 “녹수금의(綠袖錦衣)”라는 지명을 낳게 되었다.
낙화암 석벽에 8수의 한시(漢詩)가 음각되어 있던 것을 故 이만우씨가 4 수를 필사본 해둔 것을 이고장 수필가이자 현 울산 광역시 시인협회장 한석근님께서
향토사보(울산향토사연구회 발간)에 기고하신 것을 옮겨 본다.
낙화암(落花巖)의 시(詩)
원유영(元有永 : 남목감목관을 지냄)
그 옛날 어느 해 꽃이 떨어졌던가
봄바람이 건듯 부니 꽃은 다시 피었건만
바위에는 봄이 와도 그때 그 사람 보이지 않고
달빛만 하염없이 푸른바다에 서성이네
落花昔何年 東風吹又發 (낙화석하년 동풍취우발)
巖春不見人 空佇滄溟月 (암춘불견인 공저창명월)
새벽부터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였더니
저녁엔 밝은 달이 문득 바위 앞에 나타났네
지난날 비추었던 옛 사람 가고 없건만
끝없이 봄 하늘만 활짝 개었네
曉來雲氣重 紅月忽巖前 (효래운기중 홍월홀암전)
照向人間去 春晴萬里天 (조향인간거 춘청만리천)
문득 해촌에서 한 여인을 만나서
손을 흔들며 마고야 불렀지만
오랜 세월동안 파도치는 바닷물 밖에는
푸른 바위 위에 일찍이 마고할미 본적 없소
忽逢海林女 擧手喚麻姑 (홀봉해림여 거수환마고)
過劫鯨濤外 翠巖會見無 (과거경도외 취암회견무)
사또님께 대답을 올리오니
관가의 일이 한가하신지 장난이 지나치외다
이내 몸이 마고할미 아니었다면
어찌해서 쉬이 이 바위에 나타날 수 있었으리오
奉答牧官前 官間聊戱劇 (봉답목관전 관간료희극)
妾身非麻姑 安能見此石 (첩신비마고 안능견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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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근 울산 시인협회장님은 향토사학뿐 아니라 분재에도 고수시다
풍수지리학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계신분이라
같이 답사하면서 시를 읊을 경치를 만나면 시한수 읊으시고
문화재를 만나면 구수한 입담으로 문화재를 해설하시고
기이한 나무를 만나면 분재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곁들였다
바위곁에 서있는 소나무가 바위를 배신하지 않고 안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
보통 사람이면 그냥 무심코 보고넘길탠데 일일이 설명을 하신다
제가 풍수론을 이야기하면서 혈이 여기같다고했을때
여자 회원중에 항상 질문이 많은 아라사가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민망시러버 은유적으로 명당 뒤가 혈이라고 했드니
한석근님은 땅바닥에 직접 누우시어 오른팔은 우백호
왼팔은 좌청룡 머리뒤는 북현무 배꼽밑이 혈이라고
아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 했나보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게 삼라만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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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울산은 동서남북 풍도가 아름다운 곳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 요산요수(樂山樂水), 산고수청(山高水淸), 풍광명미(風光名媚) 등의 말은 울산을 두고 생겨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북쪽으로 치솟아 오른 영남 알프스 7봉은 명실공히 그 산세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장부 기상을 갖춘 1000M가 넘는 준봉들이다. 이들 산정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수맥은 생태환경이 되살아 난 태화강 회야강, 대곡천등의 골짜기와 마을과 산야를 흘러서 종내는 바다에 이른다. 맑고, 푸르고, 시린 물은 때로는 산진수회(山盡水回)의 풍광이 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멋스러움을 안겨주고 마지막에는 떠나는 아쉬움 한입 물고 배산임해(背山臨海)의 낭만을 가져다준다. 이 모두는 요산요수의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있음이며, 높은 산봉에서 발원하여 길게 흘려온 물이 시민의 젖줄인 태화강을 이룬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슴 높이만큼 출렁이는 감벽의 바다 동해를 가보라. 포물선을 그리며 해원을 선회하고 낭만을 쫓는 갈매기 떼며, 수평선으로부터 무시로 달려드는 목련꽃떨기 같은 하얀 파도자락은 산골 소년의 때 묻지 않은 미소보다 아름답다. 산과 바다, 강과 들녘, 천혜의 자연경관을 어찌 다 글로써 표현할 수가 있으랴. 이런 명미한 풍광들이 일궈낸 것이 오늘의 울산 12경이다. 울산 12경은 필자와 함께 울산광역시 지명위원들이 심사숙고하여 지정하였다. 자연과 인위적 요소들이 만들어 낸 현대적 관광명소가 되었으나, 그 바탕엔 각 지역의 이른바 옛 8경들이 모체가 되었음을 짐작해야 한다. 울산의 구팔경은 세종실록(1454)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 둘 읊고 있노라면 마치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아른거린다. 『성루화각(城樓畵角), 전함홍기(戰艦紅旗), 동봉일출(東峰日出), 산사송풍(山寺松風), 남포명월(南浦明月), 강정매설(江亭梅雪), 조대소우(釣臺疎雨), 염촌담연(鹽村淡烟)이며, 동국여지승람(1530)에 기록된 울산8경은 구8경과는 그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평원각(平遠閣), 망해대(望海臺), 벽파정(碧波亭), 은월봉(隱月峰), 태화루(太和樓), 장춘오(藏春塢), 백련암(白蓮岩), 개운포(開雲浦)이고, 근대(1940~50)에 최두출(崔斗出)이 읊은 8경은 또 다른 내용이다. 학성세우(鶴成細雨), 태화어간(太和漁竿), 백양효종(白楊曉鐘), 문수낙조(文殊落照), 염포귀범(鹽浦歸帆), 서생모설(西生暮雪)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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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 팔경에 대해서 일일이 시를 곁들여 해설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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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당골 마애불
아주 찾기힘든곳에 있다
길도 없다
불이 나서 가는길이 막혀버렸다
빨치산 유격훈련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불인지도 모르는데
그리 쉽게 친견할수야 없지 않겠나 !
마골산 도깨비가 불을 질러 마애불 밑에까지 숯덩이였으나
불당골 마애불은 건재했다
비단보다도 더 부드러운 감촉의 바우에서
천 수백년을 비바람 모진 풍상에 저렇게 서서 견디었다니 !!!!
좌불도 아니고 와불자세로도 아닌 기립한 자세로 !!!!
그래 맞다 도통한 부처는 천만년을 서있을수도 있고
잠들지 않고 눈을 뜨 있을수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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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사는 인도 서축의 동쪽에 있다해서 이름붙여졌다.
동축사 대웅전 뜰앞에 놓인 5층 석 탑은
구례 화엄사의 서오층석탑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향토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동축사는 삼국유사에 재미있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신라 진흥왕때 남쪽 바다에 큰 배가 떠와 울산의 미포에 닿았다.
살펴보니 서축 아육왕이 황철 5만7천근과 황금 3만푼을 모아
석가삼존상을 주조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를 배에 실어 보냈다는 글이 있었다.
배에는 1불과 2보살상의 모형까지도 같이 실려있었다.
그 1불의 모습이 불당골 마애불 모습이 아닐까 ?
이에 왕은 동축사를 지어 3존을 안치하고 황철은 장육존상을 만들어
경주 황룡사에 안치했다.
장육존상은 이듬해 발꿈치까지 눈물을 흘려 왕이 죽을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왕은 이후 동축사 3존불도 황룡사로 옮겼다.
3존불과 황철을 싣고 온 배는 울산 미포에 닿기 전에 인연을 찾아
1천300년이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한다."
< 동대(東臺)-동축사 바로 동쪽에 우뚝솟은 바위군 >
☞동대(東臺)란 ?
동축사의 바로 동쪽에 우뚝솟은 바위군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오르면 동해에서 솟는 일출을 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인 것이다.
그래서 훗날 관일대(觀日臺)라 불리던 곳이다.
대자(臺字)를 붙였다고 해서루대(樓臺)가 있었던 곳은 아니고
바위군 자체가 전망대란 뜻이다.
울산 지역의 산들이 다 그러하듯이 마골산도 노년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산의 꼭대기는 둥글고 온순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능선도 둔각형으로 산간(脚)과 산복(腹)이 모두 완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마골산'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이에 대해서는 울산문화원에서 펴낸 "울산지명사"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마골이라 함은 재립 또는 개립산이라 하는 것인데 재립은 삼대를 벗기고 남은 줄기를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재립을 한자로 쓰게 될 때 마골이라 하는 것이다.
마골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산면 모두 흰돌로 덮여 재립대를 쌓은 것 같다 하여생긴 이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구의 주산인 마골산에는 흰 빛깔의 바위가 많으며,산 이름의 유래도 크고 작은 많은 바위들 때문에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나무가 별로 없어 드러난 바위들 때문이 '마골'이라는 산이름이 실감났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울창한 나무에 바위들이 가려 이같은 특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변화하였다.
마골산 정상에서는 동구지역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정상에서서 어느시인이 쓴 동축사 에 대한 시한수가 생가나기에 가만히 읊조려본다.
東 竺대나무 寺
동대는 어찌 저리도 높은고
굽어보니 벌써 해가 지고 있구나
뜨고 지는 저 해, 우습기도 하니
세상살이와 약속한 듯 닮았구나
땅 끝을 돌고 돌아 끝이 없으니
해 끄는 용들도 지치기도 했으리
옛부터 영웅 호사(豪士)는
때 맞춰 공업(功業)을 힘썼나니
?은 쥐들이야 돌아볼 것 있으랴만
사람들은 다투어 공명만 좇는구나
비좁은 선방에 않으신
아, 늙은 스님이시여
이 산 꼭대기서 태어나 늙었으니
흐르는 세월인들 알기나 하실까.
지팡이 짚고 징검다리에 앉으니
다리 아래 흐르는 찬 물줄기
바위 틈 단풍잎은 서리맞아 붉고
지는 해가 아름답게 비치네
대나무 동백이 서로 얽히어
물 가 양쪽에 빽빽히 섰는데
미풍은 골짜기에 불어오고
종소리는 귀에 울려 퍼지네
산에 오르니 참으로 장관이네
아늑한 동축사라 더욱 즐겁네
밝은 내 마음은 고요하기만 하여
나를 공색(空色)의 세계에 보내 주누나
고개 돌려 외로운 중에게 묻노니
아, 나는 무엇하러 여기에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