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가 차려다 드린
술상을 앞에 두고 앉아 두분이 나누시는 말씀
""야 거져 애 제대루 된놈 이로구만""
""거럼 요즘 아새끼들
공부좀 한다구하믄 어떤놈이 기맇게
집안 농삿일 도우며 공부하갔어?""
장씨 아저씨는
오며 가며 그 용성이네 큰형을 유심히도
보셨던지
한참을 칭찬일색 이었다
그렇게
명문대학교를 다닌다는것은
어른들
즉 부모님들 한테는 무한한 힘이 된다는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엄벙 덤벙 살아온 삶이
그져 많이 죄송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개롱리 작은동네 였지만
국민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어림잡아
학생수가 삼사십명은 족히 되었을텐데
대학생은
용성이네 고려대학교 형
그리고 나중에 알게된
승우네 형님이 서울대학교 상대들 다닌다 했고
큰누나가 이화여대 학생 이어서
동네어른 들은
어느집에 어느대학교에 다니는
자제가 있음에 많이 부러워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욕심 같아서는 서울대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대학교라도 가서
우리 어마니 아바지 가
모든사람에게 부러움을 살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어릴적에 잠시 가져보았다
물론
꿈 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집 저집 동네가 분주해진다
전연돌 형네 방앗간에서는 쉴새없이
쿵쾅 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며
하얀 가래떡을 뽑아내고
이런때가 되면
어김없이
뻥튀기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나
어느집 마당에 자리를 잡게되는데
이집 저집에서
자루 하나씩을 들고 모여든다
우리에게는 구경거리 이기도 했고
그곁을 얼쩡거리다 보면
""뻥이요!!""
소리와 함께 망 사이로 튕겨져 나오는
달달한 뻥튀기를 먹을수도 있었다
깡통에 들어있는
쌀 옥수수 누룽지 또는 콩 보릿쌀
에다
아저씨는 신화당을 조금씩 넣는다
달달해지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인게다
들어갈때는
한깡통 밖에 않되던것이 튀겨져 나오면
한자루가 되는것이 그져 신기하기만했다
영감님은 뻥튀기 기계 밑에다 연실 나무토막을
집어 넣어 불이 활활 일게 만들며
또 한손으로는
기계를 쉬지 않고 돌리는데
무한한 반복동작을 무에 볼게 있다고
동네 꼬맹이들은 주욱 둘러싸고
구경을 하다보면
아는 아주머니는 푸대자루를 열고
""일루와 손내밀어 !!""
하면서 인심을 쓰기도 했다
뻥튀기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물었다
""보릿쌀을 넣고 튀기면
뭐가 나오냐?""
""보리 바풀때기 요""
그러면 재미있다는 듯
""처녀를 넣고 튀기면 뭐가 나오냐?""
녀석들은
말같지도 않은 말에
입을 다물고 눈만 꿈뻑 거리면
실없는 아저씨는
""야 이눔들아 그것도 몰라?
뭐긴 뭐가 나와 할망구 가 나오지 !!
낄 낄 낄""
그래도
그소리에 까르르 거리는
계집애 들이나 젊은아낙 들의 웃음소리가
명절이 오는 작은동네를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명절엔 이렇게 동네에 먹거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한다
또
저위엣집 용환이네 집에서 돼지를 잡으면
온동네가 사람들이
그네집으로 돼지고기를 사러간다
그래서
어마니 심부름으로 나도 한두어번 간적이 있다
원래는
집에서 돼지를 못잡게 되있는데
명절에는 보통 그렇게해도 눈감아 주는것 같았다
""엄마가 돼지고기 비개 있는대로
세근만 달래요""
""응 그래 알았다
이거는 엄마 한테 그냥 잡수시라고 해""
하시면서
뭔가를 듬뿍 싸주시던
용환이 어마니는
참 곱게 생기셨었다 우리어마니 보다도
훨씬 젊어뵈고
또 팔이 불편하신 용환이 외할머니도 함께
계셨는데
참 인자하시고 연세가 드셨지만
고우셔서 할머니 없는 나는
용환이가 많이도 부러웠었다
""니 고기 사러왔어?
밥 은 우찌 먹었고?
밥 않먹었으면 같이 먹고 가라""
억양이 센 사투리
아마도 강원도나 경상북도 사투리로 기억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렇게해서
정육점도 없고 시장도 없는
개롱리 에서 고기는 용환이네 집을 통해서
조달했으며
계란은 동네에 있는 몇군데의
양계장에서 사면 되었다
정작 준비하는 하루 이틀전날에는
북적 거리던 집도
당일 명절날에는 찾아오는 친척 하나도 없이
그져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해져서
나는
슬슬 걸어올라
용환이네 집으로 놀러가면
윗방 하나는 우리들 놀이터 이기도 했다
용환이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에는 언제나 돼지껍데기를
고추장에 볶은 반찬이 올라오는데
나는 특히 그반찬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어릴적 이후로
별 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으로
배 도 든든하고
모여들은 개롱리 악동들 댓명
음명기 김용환 박병남 그리고
용환이 동생 용학이 나 는
""으찌 니 쌈""
다마먹기에 열심이다
그 다마가 먹고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사생 결판 내듯 들러붙어 심각하다
""너 접어 !!""
손 을 등뒤로 돌려서
다마 몇개를 손에 쥔채 내밀면
두어놈이 표정없이 대꾸하지
""으찌 갔어 니 먹구 쌈 떠!!""
우리끼리 통하는 말
으찌면 내 가 먹고
니 면 접은 네가 먹고
쌈 이면 비기는 게다
참 심각한 모습으로 이렇게 구슬 따먹기를 하다
서로 속였느니 야마시를 쳤느니
한참을 티각 거렸는데
그것이 삶을 배워가는
우릿적 꼬맹이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사내들의 투닥거림
일요일이면
공 을 찰줄아는 동네 사내놈들은
새팽이 빨간산에 모여서 편을 갈라 공을 찬다
중학생은 중학생끼리 가위 바위보
6학년은 6학년끼리
나누어서 편을 가르고 시합을 한다
한쪽편은 명기네 삼촌
중학생 음도선 형이 주장이었고
우리팀은 동신중학교 3학년 종윤이 형이
주장이었던 날
시합도중 뭔가로 시비가 시작되고
심상치 않게
말이 오고 가던중
제일 큰 형들이 치구박구 싸움이 벌어졌는데
덩치가 큰 음도선형이 종윤이형
면상을 넵따 질렀고
종윤이 형은 입에서 피를 내품으며
손에 피를 받아보니
이빨이 두개나 빠져있었다
싸움은 그걸로 끝났지만
이제 집안간 어른들 싸움으로 벌어질판 인듯
아마도
이빨이 두개가 부러져 나간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경찰서로 바로 쫒아가고
폭행으로 구속될텐데
어른들은
애들을 나무라고 치료해주는것으로
얘기가 마무리 된듯했다
집으로 돌아 오신
종윤형네 아버지께서
속이 많이 상하셨던지
마당에서 누렁이하고 놀고 있는
내곁으로 와서 앉아 담배를 피우시며
한마디
중얼거리듯 하셨다
""망할누무 자식 같으니라구
이빨을 저모냥으루 만들어 놓면
어쩌란 말이여?
에잇 나쁜 눔""
나는
종윤이형 아부지 한테
드릴 말씀이 하나도 없었다
뭔지 모르게 괜히 미안했고
나도 많이 속이 상했었다
종윤이형 아부지는
같은동네 애들끼리 놀다 그렇게 된거니
어쩌겠냐고
돌아서서 오시기는 했지만
못내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가
나중에 사내놈 둘의
아버지가 되고서야
그 마음을 알듯도 했다
이렇게
또래들 끼리는
승부를 다투며 경쟁을 터득하고
나이 한두살 많은 형들 한테는
또 다른 세상을 배우며
함께 앉은
아저씨 한숨 속에서
화 를 달래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끼게되었던
그런시절이
딱 그때나이
열두살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저렇게
명절이 되면 뻥튀기 아저씨가
동네를 즐겁게 해주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FCD4B58691B2A25)
지금은
연탄가게 구경하기가 힘들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0164D58691B2A18)
제법 의젓해진 우준이와
새해첫날을 맞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29294758691B2B12)
녀석 잘 도 먹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2E64858691B2C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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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 자작글=▒▶
먼지 날리던 길 ~~(6)
백곰
추천 0
조회 24
17.01.02 00:0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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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여워요!!^^
전 아이들이 통통하니 그래야 이쁘더라구요
^^
에구!!
이빨이 두개나 그리 되었으니!!
종윤이형 아버지께선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새해 북 많이 받으시구요
댁내 두루 평안 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찾아온 우준이와
항께할수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허지요
어느새
할애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세월이 덧없이
빠르구요
사내녀석들 키우다보믄
그런 가슴 앓이도
겪으며 살게되나 봅네다
어린시절 설날즈음이면 참 분주했어요.
동네에서는 흰떡을 뺄 쌀을 씻어
광주리를 이고 방앗간으로 향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방앗간에서 갓뽑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떡 정말 맛있었어요^^
시골 장터에는 어김없이 뻥튀기아저씨가 있었구요. 어린시절 그때는 먹을것이 넉넉치않아서여서일까요? 뻥튀기도 왜그렇게 맛있었던지요.설날이면 친척어른들 찿아뵙고 새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으며 새뱃돈 받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고향이 이북이신 아버지가
친척이 없으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외롭게 사시다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께서
저세상에서라도 우준이를 보신다면 흐뭇
하시겠습니다.
아뭏튼
어린시절의 명절은
그런대로 기다려지는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고깃국도 먹을수있고
이래 저래
먹거리가 집에 여러가지
있었으니까요
문득 문득
그런생각을 해봅니다
손주가 이리도 이쁜데
내 아버지
살아계셔서 증손주를
안아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
조상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