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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4장, 5장, 6장
복음의 비밀에 대한 계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 사랑 안에서 삶, 하나님의 전신갑주
복음의 비밀에 대한 계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소명과 사역을 설명합니다. 이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들이 유업에 참여하는 것이 그 신적인 기원 때문에 믿을 만한 것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1~13절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복음의 비밀>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바울은 비록 에베소에서 3년을 보냈지만 최근에 에베소 교회 회심자들 특히 외딴 동네에 사는 회심자들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밀', 이 비밀은 이제 계시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몸으로 통일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에 대한 바울은 방금 간단히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고 다른 기회에 보다 자세하게 이 비밀을 계시로 바울에게 계시하셨습니다(2~3절).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모세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와 땅끝까지 이를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기록했고 하나님은 심지어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백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와 이방인에게 임할 구원의 범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은 성령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분명치 않았습니다(5절).
'이방인들이....함께 상속자가 되고', 바울은 3~4절에 언급된 비밀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서로와 더불어 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등한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속에 통합되었습니다(6절).
'지극히 작은 자', 이는 바울의 잘못된 겸손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한때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박해한 자였음을 통렬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8절).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란 천사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 전체에도 관심거리며 이들은 하나님이 교회를 창조하시면서 행하시는 일과 하신 일을 놀라워하며 지켜볼 때 하나님께 더 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10절).
'영원부터....예정 하신 뜻',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와 더불어 측량할 수 없는 영혼의 바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하신 것이라', 땅 끝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 역사 속에서 실행되어야 했으며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아들의 지상 사역을 통해 이 일을 하셨습니다(11절).
14~21절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무릎을 꿇고',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전세계적인 구속사역의 웅대함을 생각할 때 크신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겸손한 경배라는 유일하게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성경적 용례에서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가리킵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신 성부 하나님은 또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시는(즉. 그 정체성을 정의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의 현재의 행위는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또 다른 확인입니다(14~15절).
'성령', 성령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와 능력을 적용하십니다. '속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내적 자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16절).
그리스도는 이미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지만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가 능력으로 내주하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내주하시는 성령에 대해 말하고 여기서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 성령 뿐만 아니라 성자의 신성도 암시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사랑은 그리스도의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열매인 살아 있는 믿음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알고', 경건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더 큰 이해로 이어집니다.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요함의 측량할 수 없는 차원을 표현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지식에 넘치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특권입니다.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17~19절).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하나됨>
1~10절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갇힌', 복음을 위한 바울의 투옥은 주 안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바울 자신이 주님을 섬기다가 옥에 갇힐만큼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울의 권면에는 매우 큰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부르심을 받은' 양자됨, 거룩함, 연합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1절).
'겸손'은 바울 시대의 이방인 사회에서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고 교인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기 언급된 모든 미덕-겸손, 온유, 오래참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은 그리스도 자신의 성품 안에서 드러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명백히 드러나야 합니다(2절)
'평안'은 화해와 사랑의 상태이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줄' 역할을 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됨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하나됨을 보존해야 합니다(3절).
'성령', 인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하나의 영혼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리스도인에게 생기를 주어 영생을 얻게 하는 성령께 생기를 공급받습니다. '한소망', 그리스도인들은 개별적인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고 부활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함께 부르심 받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 세상에서 그런 하나됨을 표현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4절).
'주도 한 분이시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믿음도 하나요',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공통되게 고백하는 교리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한 성령, 한 주, 한 하나님 아버지는 삼위일체적 신조를 구성합니다. '세례도 하나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초기 역사에서부터 올바른 세례 방식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세례도 하나라는 말은 모든 신자들이 한 몸이 되는 세례를 가리킬 것이며 이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자가 될 때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한 역사의 결과입니다. 이런 견해가 옳다면 물세례는 신자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의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내적인 실제의 외적인 표시가 될 것입니다(5절).
'만유 위에....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하나님은 무소부제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각 회중이 세상에 어느 곳에 흩어져 있든지 간에 한 몸입니다(6절).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는 구원의 은혜의 다양한 수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도록 주어진 은혜의 다양한 수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은 데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부르심이 요구되며 그리스도는 교회 머리로서 자신의 몸을 다스리십니다(7절).
'이르기를', 바울은 시 68:18을 인용하는데 이 구절에서 올라가시는 분은 승리하신 여호와 하나님 입니다. 바울은 이를 교회의 머리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가르키는 것으로 봅니다. '선물', 시 68:18에서 이 신적인 승리자는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전리품에서 자기 백성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구절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킵니다(8절).
'땅 아래 낮은 곳',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시면서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즉, 땅으로) 내려가셨고 거기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지만 또한 거기서 죽음을 물리치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는 40일 뒤에 가장 높은 하늘의 성부 우편에 좌정하시기 위해 올라가셨습니다(9절). '하늘 위에', 그리스도는 만물을 자신의 영광과 능력과 자기 백성에게 선물을 나눠주실 수 있는 주권적인 특권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가장 높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10절).
<은사의 다양성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
11~16절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은사의 다양성은 그리스도의 백성이 하나가 되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온전한 사람', 이 표현은 앞에서 교회에 대해 사용된 몸의 비유를 확대하여 다음 절에서 어린아이와 대조시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를 배우는 일은 본질적으로 분열을 조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사람들인 반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그리스도로 인간적으로 알고 그리스도가 행하시고 가르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일) 가운데 이뤄질 때 덕을 세우며 온전한 사람이 되게합니다. 은사를 받은 사역 자들의 사역은 그들 자신의 사변적이거나 기이한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중심을 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분량',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가 열망해야 할 성숙의 기준입니다. '충만'이란 그리스도의 신적이고 인간적인 완전하심에 대한 최대한의 표현입니다(13절).
'어린 아이', 기독교 교리의 진리에 있어서의 미성숙은 교회를 거짓 교사들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이라는 '풍조'에 무력하게 요동하는 속이기 쉬운 어린 아이처럼 만듭니다. '참된 것'은 사람들을 협박하여 받아들이고 복종하게 하는 곤봉처럼 사용되어선 안되고 언제나 '사랑 안에서' 제시되어야 합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인을 성숙으로 인도하며 성숙은 여기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로써 그 몸을 이끄시고 지휘 하시며 인도하십니다(14~15절).
'마디', 바울은 교회의 성숙을 묘사하기 위해 몸의 비유를 이어갑니다. 모든 지체(즉, 그리스도의 몸 안의 사지나 일부로 모든 신자)는 이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랑 안에서', 사랑없이는 어떤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역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사랑의 행위는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할' 때 그리스도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기억하십니다(16절).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17~24절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자신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새 창조의 일부로서 더 이상 '이방인이....행함같이' 살지 않아야 한다고 주 안에서 매우 엄숙하게 단언합니다.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어두워지고', 고대에나 오늘날에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빛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무지함은 일반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나름대로 총명하지만 그런 총명은 그리스도안에 복음의 진리를 향한 마음의 굳어짐과 결합될 때 결국 모두 낭비되며 무익합니다(17~18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골 3:9~10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을 실제로 만드십니다. 바울의 이방인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단어는 인간을 뜻하는 총칭적인 헬라어이며 아마도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아담과 닮은 인간을 암시하는 말일 것입니다) '썩어져 가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기 때문에 내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22절).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2:15에서 묘사한 바와 같은 집단적인 새 사람의 개인적 측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 받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창조와의 연관성을 보여줍니다(24절).
<성령을 근심케 하는일>
25~32절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분을 내어도', 모든 분노가 다 죄는 아니지만 신자는 분노에 사로잡혀선 안 되며 분노를 다음 날까지 계속 품고 있어도 안 됩니다. 이는 단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회개가 한 사람의 생활 방식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기 위해 도둑질하는 자를 예로 사용합니다. 회개는 멈추는 것과 시작하는 것 둘 다를 포함합니다. 도둑은 도둑질을 멈추고 선한 일을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도둑질은 게으름과 탐욕에서 비롯되므로 회개한 도둑은 그와 정반대되는 부지런한 수고와 기꺼이 구제하려는 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26~28절).
'더러운 말', 28절에서 언급된 '멈춤'과 '시작'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악한 말을 멈추고 이를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며 '은혜'를 끼치는 말로 대체해야 합니다. "더러운" 이란 말은 "못된"(썩은) 열매(눅 6:43) "못된"(부패한) 물고기(마 13:48)에도 적용됩니다 말로 "은혜를" 끼친다는 것은 그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뜻입니다(29절).
'근심하게',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은 죄를 통해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구원의 날'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30절).
'모든 악독'이란 모든 종류의 악독을 뜻합니다. 모든이란 말은 이 목록에 포함된 다른 항목들도 수식해주며 신자들에게 모든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과 악의'를 버려야 함을 말해줍니다. 악독이 목록의 첫 머리에 오는 것은 아마도 악독이 종종 바울이 거론하는 나머지 죄들과 귀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독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악독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주된 특징이며 파멸과 더러움을 야기합니다. 따라서 악독과 분노는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양립될 수 없으며 버려야 합니다. 죄는 다른 사람들에게 산불과 같은 큰 해를 끼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종종 말에 있어서 매우 부주의합니다("비방하는 것"). (31절).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고 주기도문("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 6:12, 참조, 눅 11:4)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매일 필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데서 나옵니다(32절).
<사랑 안에서의 새로운 삶>
일반적인 복종의 첫 번째 예는 바울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아내들에게 권면하면서 설명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남편에게는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고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5:22~33절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복종하기를', 21절의 일반적 복종에 대해 바울의 첫 번째 예는 결혼 관계의 바른 질서입니다. 아내의 복종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해야 할 순종과 같지 않으면 이 본문이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명하는 것도 아닙니다(모든 남편에게가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 남성과 여성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이 복종은 결혼 관계에 건강하고 조화로운 적응을 위해 남편의 궁극적인 리더십을 존중하는 것입니다(22절).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이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근거이며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모델로 합니다. '교회 머리'이자 '몸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지위가 문화마다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아내와의 관계에서 남편의 머리 됨과 아내가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머리는 명백히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위를 가리키며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원천'을 의미 할 리는 없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도 남편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아내의 원천이 아닙니다(23~24절).
'사랑하기를', 바울은 이제 남편의 의미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남편에게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 대신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남편은 사랑의 자기회생으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자기희생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려놓는 성경의 그림은 분명 남자의 어떤 종류의 폭압이나 억압과도 직접적으로 반대됩니다. 남편은 사랑을 통해 아내가 그들의 결혼을 풍성한 충족과 주님께 대한 즐거운 섬김의 원천으로 여기도록 해야합니다. 특히 바울은 아내의 의무(세 구절)보다 남편의 의무(아홉 구절)에 세 배나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25절).
이 세 구절의 초점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거룩함을 증진시키기 위해 능력과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아내를 거룩하게 하거나 그 죄에서 씻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씻음을 통해 주님을 섬기도록 성별한다는 뜻입니다. '물로 씻어', 이는 세례에 대한 언급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 경우에는 영적인 씸음)을 그것의 외적인 물리적 표시를 가리킴으로써 언급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26~27절).
바울은 아내를 위한 남편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의무를 이 사랑을 자신의 몸(자기 자신) 자기, 자기 육체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고 그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자기 몸에 대한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29~30절이 명백히 보여주듯이 그리스도가 위하여 자신을 회생하신 그 '몸'은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교회인 '몸'이었습니다(29~30절).
'한 육체', 자기 아내를 자기 육체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남편에 대한 명령은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를 '한 육체'가 되도록 결합시키시는 창조의 실제에서 비롯됩니다. 바울은 세상에 죄가 존재하기 전의 결혼에 대해 말하는 창 2:24를 인용합니다(31절).
바울이 말하는 '비밀'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 된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을 뜻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2장의 결혼에 대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관계와 결부됩니다. 바울의 의도는 심오하다('크도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연합의 첫 창조 자체를 장차 있을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본뜬 것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세 때부터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반영하며 본으로 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바울의 명령은 단순히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이신 그리스도 자신과의 관계가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모든 시대의 모든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제시합니다(32절).
<순종과 공경>
1~9절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자녀들아', 올바른 권위에 대한 복종을 예시하는 두 번째 가족관계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입니다. 모세율법은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한 자녀에 대해 사형을 규정했고 바울은 그런 불순종을 많은 중대한 죄들 중의 하나로 열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앱 6:1~3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자녀의 적극적인 의무를 역설합니다. 순종은 부모 모두에게 해야합니다. 어머니의 자기 남편에 대한 복종은 어머니의 부모로서의 품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대시킵니다. '주안에서', 이 말은 동사 "순종하라"를 수식합니다. '옳으니라', 그런 순종을 옳거나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2~3절에 인용된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에 부합된다는 점입니다(1절).
'공경하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입니다. 자녀가 자라서 지혜롭고 경건한 어머니께 감사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2~3절).
'아비들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피할 부정적인 행동으로 권면을 시작하며 이어서 발전시킬 긍정적인 행동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특히 아버지들의 책임을 다루지만 이것이 이 부분에 있어서 어머니들의 기여를 축소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노엽게 하지', 순종적인 자녀는 특별히 상처받기 쉬움으로 억압적이고 생각 없는 아버지의 행동은 자녀를 낙심시킬 것입니다. '양육하라', 부모는 주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하나님이 명하신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일은 엡 4~5장에서 이미 요약된 그런 실천에 집중되어야 합니다(4절).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이타적인 섬김은 하나님이 무시하거나 잊어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신실한 종에게 '종이나 자유인이나' 똑같이 상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하나님의 전신 갑주>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훈으로 권면을 마무리합니다. 바울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인은 삶을 주님의 방편들을 사용하는 영적 전쟁으로 그리는 한결같은 묘사입니다.
10~20절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능력', 바울은 하나님의 갑주를 그것이 주는 능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소개합니다. '강건하여지고', 그리스도인은 자기 힘으로 초자연적인 권세와 맞설 수는 없으므로 주님의 힘, 능력에 의존해야 하며 주님은 주로 기도를 통해 이 능력을 공급하십니다(10절).
'전신 갑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파노플리아')는 14절, 16~17절에서 묘사된 것들과 같은 방패와 무기들로 구성된 완전무장을 한 군인의 전체 장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바울의 묘사는 주로 구약을 간접 인용한 것이지만 사용된 단어들은 로마인의 무기류 특히 커다란 문 모양의 방패와 짧은 찌르는 칼을 뜻하는 단어들과도 잘 중첩됩니다. 그런 무기들에 대한 눈에 보이는 묘사는 로마제국 전역에 걸친 수많은 군대에 대한 부조(석관)에서 발견됩니다. '간계', 여기서는 거짓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과 이들의 '간사한 유혹'에 대한 악마적인 기원이 폭로됩니다(11절).
영적인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세상 주관자들'에 대한 이 목록은 마귀의 동맹 세력이 어둠을 다스린 우주적 권세를 매우 강력하게 행사하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정신이 번쩍 들도록 엿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의 군대가 주님께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주님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며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1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원수는 초인간적인 영적 세력이므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인간적 방패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갑주와 "성령의 검"이라는 이사야 11:4~5와 59:17에서 하나님 자신과 그의 메시아에 속해 있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적하고', 앱 6:11의 '대적하기'와 13절 뒷부분에 '굳게 서기'와 더불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전선에서 원수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군인으로 묘사합니다. '악한 날', 5:16에서 바울은 이 시대 전체를 "악한 날들"로 규정하지만 그리스도의 백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만군의 주가 하늘을 가르고 자기 백성을 영원히 구원하시러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마지막 날까지 이 시대 내내 진퇴를 거듭합니다(13절).
굳게 서기, 주님은 자기 백성은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으므로 바울은 무서운 영적 원수들에 맞서 굳게 서라는 명령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리띠, 호심경, 신, 방패, 투구, 검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 방편들 즉 진리, 의(14절) 복음(15절) 믿음(16절) 구원, 하나님의 말씀(17절)을 뜻하는 비유들입니다.
13절 해설에서 언급됐듯이 이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갖추고 있는 하나님과 메시아의 성품과 사역의 여러 측면들입니다. 예를들면 주님은 자신의 압제받는 백성을 구원 할 이를 아무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들에 대한 진노를 쏟으러 오시기 전에 자신의 "의의 갑옷"과 "구원의 투구" (사 59:17)를 착용하셨습니다.
'서서' 라는 단순하고 각성시키는 명령과 더불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것을 촉구합니다. 신자들은 언제나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불화살' 불타는 화살은 나무 방패와 기타 방어물들을 파괴하도록 고안되었지만 '믿음의 방패'는 마귀의 공격을 없앨 수 있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교회의 방편들의 영적인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의존보다 더 명백하게 나타난 곳은 없으며 말씀은 이 영적인 갑주의 목록에 언급된 유일한 공격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강한 능력으로 예리한 양날 칼처럼 휘둘러야 합니다(14~17절).
<꾸준히 기도하기>
이 단락은 기도(영적 전쟁의 주요 무기)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며 언제, 어떻게, 누구를 위해 기도할지를 설명합니다. '기도하고', 전쟁용 무기들은 기도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영적인 무기이며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자원입니다. 기도는 이 구절에서 '모든'이란 말이 (ESV에서) 네 번이나 사용된 데서 드러나듯이 보편적인 습관으로 신자의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항상....항상 힘쓰며....여러 성도를 의하여,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일종의 예배이며 성령은 기도하는 그 사람을 위해 간구하십니다(18~20절).
21~24절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바울은 맺는 말과 마지막 축도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인 두기고는 일정기간 동안 신실하게 바울을 섬겼고 아마도 원본 편지를 에베소에 전달했을 것입니다.(21~22절).
바울은 서두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회에 '평안, 사랑, 믿음, 은혜'를 기원하는 축도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바울은 '사랑'을 세 번 언급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두드러진 주제인 편지에 걸맞습니다(23~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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