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
"아픔을 대면하는 게 너무 힘들어. 이제 좀 내려놓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행동을 준비하면서 종종 들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저 스스로도 해봤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놓을 수 없는 때인 것 같습니다. 아니, 놓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부채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요.
이미 내 삶의 일부인데, 억지로 놓는다고 놓아지는 것도 아닐 터.
여전히 10년 전의 아픔과 상처를 잊지 못하지만, 그 아픔을 지금 여기 내 삶에서 껴안고 살아보자는 사람들이 함께 했던 지리산과 살래골의 세월호 기억행동.
"그래, 고통은 잘 들여다보고 약도 발라주고 자꾸 햇볕도 쪼여주어야 새살이 돋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 지리산, 살래골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과 약속 문화제>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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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범종의 소리가 허공을 어루만지며 퍼져갑니다. 우리 마음으로 마을로 지리산자락으로 저 하늘로...
10년의 시간이, 그 긴 시간의 아픔과 절망과 치유를 위한 몸짓들이,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 그래서 더 희망이 필요했던 날들이...
손을 모읍니다. 생각을 멈추고 종소리에 집중해보면, 잘 보면 종소리는 귀로 듣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잘 들으면 세상과 하나가 되고, 그 긴 시간들이 지금 바로 여기의 울림이 됩니다.
산내마을 뿐 아니라 지리산종교연대 종교인들과 인근의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등 산너머에서도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함께 있음이 서로서로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문화제는 지리산이음의 임현택 님, 실상사의 수지행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못다 부른 그 이름 불러봅니다.
많은 분들 오셨지만, 더 모셔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못다 부른 그 이름, 못다 불리운 그 이름을 가진 이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는 것은 10년이 흘러도 별 도리가 없네요.
그래도 끝까지 304명의 가신 님들의 이름을 부르고 불러 우리 가운데로 초대해 모셨습니다.
열번째 봄 기억행동은 4월 1일~16일까지의 공식추모기간 동안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억억행동을 하자고 뜻을 모은 바 있습니다. 오늘 <기억과 약속 문화제>는 그렇게 살아온 기억행동의 마음과 실천을 함께 나누는 장입니다.
첫 무대는 4160시민합창에 함께 한 분들.
참석자들과 함께 <네버엔딩스토리>를 불렀습니다.
연습이 모자란 탓에 영상촬영할 때, MR이 아니라 AR을 틀어놓고 불렀다는 사정도 있었다지만, 진심으로 손을 잡았던 사람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하는 못자리일, 밭일 하다가 뛰어온 농부님들까지... 노래연습하던 처음에 눈물 콧물 찍어내느라 노래가 계속 끊겨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호, 기억을 잇다 조각보 _ 살림꽃협동조합
산내마을에는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을 운영하고 새활용 물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는 <살림꽃협동조합>이 있지요. 살림꽃 회원인 현정님, 모하나님, 온빛님이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살림꽃 식구들은 기도소가 좀더 밝고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세월호참사는 분명 아픈 기억이지만 우리가 저 공간에 들어왔을 때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다짐할 수 있고,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좀더 따뜻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그래서 빛을 느낄 수 있게 좀더 밝은 색을 많이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416을 추모하는 조끼를 만들고, "기억은 힘이세지", "우리함께 봄416"이라는 문구를 조끼에 바느질로 새기면서 이 조끼를 입고 마을사람들이 릴레이낭독을 한다고 하니, 힘이 났고 좋았다.", "함께 기억행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오늘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생명평화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_ 실상사 걸개그림팀
실상사 천왕문에 들어오자마자 눈길을 확 끄는 그림이 명부전 바깥벽면에 보였지요.
마침 실상사에서 지리산프로젝트 레지던시 중인 김화순 작가님이 함께 해서 또한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주제는 연화화생(蓮華化生). 극락왕생의 뜻을 담았습니다.
심청전에서 심청이 크나큰 연꽃을 타고 다시 세상에 오고 구제활동을 했던 것을 떠올려 보시면, 고개가 더 끄덕여질 거예요.
유공스님과 해당화님이 나오셔서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아래 사진 가운데 두 분)
농부와 한량, 그리고 살래골세월호합창단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우리 모두 충격과 분노, 아픔과 좌절로 어쩔줄 몰라하던 때, 지리산권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이 지리산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죠. 이곳 살래마을에서 제일 처음 손을 잡아주셨던 마음입니다. 그때 살래골세월호합창단의 중심을 잡아준 두 분이 한치영 선생님과 한태주 선생님이었지요. 세월호합창단은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마음을 일깨우고 북돋아서 진실규명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한 힘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동네밴드인 <농부와 한량>이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함께 손 꼭잡고 노래를 했던 살래골세월호합창단의 단원들이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생명의 벗>, <세월호 아이들>, <빛나라 촛불> 3곡을 불렀는데요. 모두 십 년 전에 만들어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때 이 노래를 만들었던 한치영 선생님이 오늘도 지휘를 해주셨습니다.
생명의 숨소리를 느끼는 <자연놀이터 그래>
매주 화요일이면 "416희망순례" 조끼를 입고 산내면, 마천면, 아영면 일대를 걸었던 <자연놀이터 그래> 회원들이 여러 가지 일들도 참석을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모두 박수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릴레이낭독
추모기간 동안 실상사기도소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릴레이낭독은 <낭만세상>에서 주관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올해 세월호 추모기간 동안 우리의 추모가, 기억행동이 매일 일상의 삶이 되게끔 중심의 물결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준 것이 릴레이낭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상사기도소에서 때로는 낭독으로, 때로는 노래와 연주로도 함께 했던 릴레이낭독.
머리 하얀 어른들에서부터 참사 당시 그 아이들 또래였던 20대 청년들, 그리고 아주 아이였을 10대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했던 기억행동입니다. 기록상으로만도 60여명이 낭독에 참여했답니다.
청년들의 참여가 더욱 많았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생각해봅니다.
릴레이낭독을 주관했던 <낭만세상> 회원들의 인사에 이어 오늘은 살래마을극단 <떼아뜨르마고> 회원들이 낭독을 했습니다. <4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연극대본 중 엔딩 씬.
경쟁사회으 시스템에서 외진 곳으로 홀로 밀려나고 고통과 절망으로 일그러져버린 삶들, 삶 자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연대감이 우리 삶에 선물하는 따뜻한 체온, 타인에 대한 돌봄이 결국은 스스로 돌봄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이것이야말로 정말 신비하고 멋지고 신나고 따뜻한 삶의 방정식이 아니던가요?
마음을 울린 낭독에 이은 기억행동은 범종타종릴레이.
어쩌면 이건 마을을 울린 기억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을분들에게 범종치는 법을 가르쳐주신 실상사 스님은 범종을 추모와 치유의 뜻을 담아 마을사람들과 함께 친 것이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고 의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리산이음 활동가인 자유님은 "마을에서 늘 듣고 있던 좋아했던 종소리였는데, 추모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쳐보게 되니 감동이었다"고도 하셨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소리야말로 세상의 삿됨은 가라앉혀주고 밝음을 널리널리 퍼지게 해주는 마법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행동. 지리산이음에서 준비한 공동체상영.
4월 16일 오후4시~8시.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프로젝트로 제작된 <드라이브97>, <흔적>, <그레이존>을 연속상영합니다.
지리산의 든든한 생명평화의 벗, 지리산종교연대 종교인들.
오늘은 산청 성심원에서 여러 분들이 함께 해주셨네요.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재속회원들도 함께요.
4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함께 서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생명평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든든해지곤 하지요.
아픔이 있고 기원이 필요한 곳에는 늘 함께 하고 있는 지리산종교연대 종교인들이 기도문 합송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마지막은 <생명의 벗> 합창.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생명의 벗이여, 나부터 평화가 되자"
일상에서 생명의 벗, 평화의 벗으로 함께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과 약속 문화제>를 마쳤습니다.
점심 무렵까지도 햇살이 뜨거워서 생명평화기도단 위에서 모임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일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오후가 되면서 하늘에 구름이 드리우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었어요.
주관은 세월호참사 10주기 살래골기억행동, 지리산종교연대, 그리고 후원과 협찬은 온 우주의 선한 기운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면서 기억과 약속 문화제 스케치를 마칩니다.
음... 다 써놓고 보니 체온이 따뜻하게 흘러다닌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스케치를 해놓고 보니 그냥 행사보고서 같아 참 아쉽네요. 이번에 함께 한 각각의 모임들과 기억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언제 다시 인터뷰와 함께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남겨둡니다.
함께 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 세상에 함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