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잤다. 깨끗이 씻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잤으니...
새벽에 눈을 떠 어제 빨아 널어 둔 옷가지들을 찾아보니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배낭 꾸리고 그 위에다 대충 걸쳐 놓으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속옷은 보기가 민망해 비닐봉지에 넣어 배낭 안으로 넣고 주인 아줌마가 일찍부터 챙겨 준 아침밥을 먹고 다시 오리라 작별인사를 하고 마루금으로 붙는다.
날씨가 좋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걸어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마을 갈림길에서 조금 헤메다 제길을 찾아 걷는데 어느 민박집 앞에서 군산 친구와 재회한다.
“민박집에서 주무신다고 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린 저 아래 여관에서 잤어요.”
“동네 어르신 누구도 지나가는 대간꾼 못봤다고 하대요.”
“잠은 잘 주무셨는지요.”
“예. 3만원인데 저녁밥과 아침까지 주는데 반찬도 괜찮고 방도 따뜻합니다.”
그렇게 조금 걸으니 노치샘이란 곳에 도착하여 물마시고 수통 채우고 수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옴긴다. 대간길 주변에 선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겨주는 데 고마워하기도 전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몇 번씩 주저앉고 싶은 마음 억누르며 수정봉을 오른다.
저기가 정상인가 싶으면 또 오르막, 또또또...
마음을 비워 걷기로 마음 먹고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 역시 육체적인 고통은 마음 먹기에 따라 이겨 낼 수 있는가 보다. 양갱이랑 초코렛 꺼내 먹고 있는데 앞에 여원재 막걸리집 광고 간판이 보인다.
간간히 보이는 조망들 보다 그게 더 반가운 건 뭐지?
군산 친구는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출발 얼른 내려가서 막걸리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입망치로 내려서니 산 하나가 가로막고 서 있다.
계속 최면을 걸며 오르고 지도를 살피니 2.3KM 지점에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봄 날씨라고 치곤 무덥다고 느낄만큼의 더위와 싸우며 길을 따라 걷는데 길 옆으로 산악회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헤메지 말고 이 곳을 지나가시오 라는 뜻인가?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오른쪽이 주막이다.
막걸리에 손두부를 시키고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니 피로가 가시는 듯 한데 막걸리가 나온다. 한 사발 캬~
갈 길은 멀지만 막걸리 더 달라고 해 축내고 있는데 군산 친구가 따라 붙었다.
얼른 오시라 하여 막걸리를 건내니 잘도 받아 마신다.
어제는 술 못마신다고 하더니ㅋㅋ
제주 한림에 동생이 사신다는 주인 아줌마의 넉살을 들으며 싸인펜 달라하여 벽이랑 천장에 우리가 다녀감을 낙서도 하고(이미 다른 대간꾼들의 낙서로 꽉 차있다.)한 시간여를 지체 하며 놀았으니 서둘러야 된다.
저녁 추어탕 먹고 가라는 아줌마를 뒤로 하고 주막을 빠져나온다.
아줌마께 물으니 고남산은 수정봉보다 쉽다고 했는데 막상 오르려니 장난이 아니다.
고개고개를 몇 개나 넘는지 성산 형은 그런데로 걷는데 경현이가 많이 힘들어 하는 눈치고 군산 친구는 또 보이지 않아 서로 걱정을 했다.
정상에 올라 기념촬영하고 여관 아줌마가 싸주신 주먹밥과 제주에서 말똥이 싸 준 마농지로 점심을 해결한다. 고마운 친구 말똥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다 결혼한다고 그만두고 나갔는데 산악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아내가 매장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난 판촉만 하던 터라 한참 어린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갑장, 그래서 친구 먹었다.
고남산 내리는 길도 만만치 않아 오르락내리락의 반복이다.
이번엔 내 사타구니에 불이 났다.
어찌나 까칠대며 괴롭히는지 바세린 바르고 생리대까지 붙이니 잠잠해져 걸을 만 했다.
그럭저럭 나무님이 꼭 막걸리 한 사발하고 지나가라고 가르쳐 준 매요휴게소에 도착해보니 나무에 표지기들이 엄청나게 붙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콘테이너 하나 덜렁 놓여 있을 뿐인데 우리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다. 막걸리가 있으니...
나이 든 할머니께 막걸리 시키고 쌀과 참치 등 필요한 것들을 사서 마시는데 한 쪽에서 할아버지 세 분이 쇠주 한 되를 다 마시고 있다. 안주도 없이...
먼 훗날, 나의 모습은 아닐는지..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 텐트 칠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그냥 술 한 되 사들고 경로당 앞 정자에 가서 자.”
“예? 그래도 됩니까?”
“다들 그래. 요 앞에 있으니까 글루 가.”
“고맙습니다.”
경현이는 계산하고 오면서 바가지 씌우는 할머니라고 투덜댔다.
경로당엔 아무도 없고 열려있는 정자로 들어가 대충 청소하고 배낭을 풀고 채 마르지 않은 빨래를 널었다.
정자를 지어 놓고 유리로 사방을 둘러 놓아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도록
지어 놨는데 여관방 만큼은 못하지만 우리 처지에 이 정도면 호텔이다.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찌개를 할려고 하는데 경현이 머리에 불이 붙었다.
성산 형이 버너를 마당으로 던지고, 경현이는 머리에 불을 끄고 나니 아프리카 토인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 웃을 수도 없고 큰 일이 생기지 않음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원형 가스를 원통형 가스로 사용케 해주는 기구가 불량이라 그 사이로 가스가 새면서 불이 붙은 모양이다. 예전에 화상을 입어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던 터라 많이도 놀랬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거의 왕래가 없었던 시절에 집 앞에서 온 몸에 불이 붙어 사경을 헤메다 서울병원으로 수송하여 겨우 살아나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며 대간길까지 함께 온 친구기에 나도 너무 놀랐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밥 짓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와서 작년에 대간꾼들이 다녀간 후 70만원 들여 바닥 공사를 새로 하였다 하시며 불을 끄고 밖에서 밥 지으라 난리 치고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만찬은 준비되고 성산 형은 막걸리를 반주삼고 우린 소주를 반주삼아 저녁을 먹었다.
군산 친구가 걱정되어 시선은 자꾸 길쪽을 향하고 동네 민박집에 전화도 해보고 그러는 사이 날은 어두어지고 취기는 올랐다.
대간길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 ,,ㅎㅎ 지리산 언제갈건데? 울옆지기 가고 싶어 하는데
언제라도 누님이 콜 하시면.. .
막걸리가없는세상 백두대간길 고행길?
가스통!! 깜작이~~~~~야
웃다가울다가 우여곡절이~~ 빙대장님 글솜씨짱!!
몸둘바를 모르겠사와요
저는 성님들의 마음을 항시 깊이 간직합니다 아무쪼록 대간길에서 감사했습니다
아~~ 한약주 동상 ㅎㅎ 방가 방가~~~^^
난 왜 이리 웃음이 나오지? ㅋ ㅋ 토인머리 ㅋㅋ 굽신 ㅎㅎㅎㅎㅎ
심각한 상황인데 ㅎ
책으로 출간해도 팔릴것같은데....기본으로 200부는 팔리지않을까요?...너무 적은가?...ㅎㅎ
암튼 재미나게 잘 쓰셨네요...산행실력만큼이나 글솜씨도 좋으시네...제주도 하늘산악회 팔방미인...
과찬이세요
나네요.걷고 또걷고 복도록 걷다보면 광목으로 만든팬티에 사타구니가
쓸여서 고통을 호소하던 생각.
고통이 연속...어쩌면 인간은 고통속에 삶의 희열을 맛보게 되는가 보네요...
지나온 발자취를 잊지말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맛을 아시는군요
생리대 요긴하네 쓰이네,,대박,,누구나 편한 인생없지만 바르나바,아픔이 많았었구나,
늘 밝은모습이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