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경_78. 사섭품(四攝品), 공, 법브시,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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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야, 보살은 어떠한 법보시로 중생을 섭수하는가?
수보리야, 법보시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요, 둘째는 출세간이다.
어떠한 것을 세간의 법보시라고 하는가?
세간의 법을 부연하여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른바 부정하다고 관찰하는 수행 또는 호흡의 출입을 억념하는 수행이 그것이니라.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 등의 이와 같은 세간의 법 및, 나머지 모든 범부와 함께 행하는 법들을 베푸는 것을, 세간의 법보시라고 부르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세간의 법을 보시하고 나서, 모든 인연으로 교화하여 세간의 법을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세간의 법을 멀리 떠나게 하고 나서, 방편의 힘으로 성스럽고 무루인 법 및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를 얻게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라 하고,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하는가?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란 37조도법과 삼해탈문이고,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란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성스럽고 무루인 법은, 수다원의 과위 가운데의 지혜 내지, 아라한의 과위의 지혜ㆍ벽지불 가운데의 지혜, 37조도법 가운데의 지혜, 6바라밀 가운데의 지혜 내지, 대자와 대비 가운데의 지혜 등이니라.
그리고 그와 같은 온갖 법 중, 세간 혹은 출세간의 지혜, 유루이거나 무루인 것, 유위이거나 무위인 것 등 이러한 법 가운데의 일체종지를, 보살마하살의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라고 부르느니라.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하는가?
일체 번뇌의 습기의 상속을 끊는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보살과 부처님은 어떠한 다름이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름이 있다. 보살마하살의 일체종지를 얻게 될 때, 이것을 일컬어 부처님이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은 다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이 일체종지 가운데 머물러서, 온갖 법에 대하여 밝게 비추지 않은 데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세간의 법보시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세간의 법보시에 인연하여 출세간의 법보시를 얻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가르쳐서 세간의 법을 얻게 하고, 방편의 힘을 가진 까닭에 가르쳐서 출세간의 법보시를 얻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떠한 것을 보살의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고 하는가?
범부의 법과 함께하지 않느니라. 이른바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ㆍ3해탈문ㆍ8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32상ㆍ80수형호ㆍ5백 다라니문을 출세간의 법이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념처(念處)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몸의 안쪽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며,
몸의 바깥쪽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고,
몸의 안팎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되, 정진에 힘쓰고 일심의 지혜로 관찰하느니라.
몸에 있어 인연이 모여서 생한 것을 관찰하고,
몸이 멸하는 것을 관찰하고,
몸의 모임과 생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하되,
이 도를 행할 때에 세간에서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하고, 집착하는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또한 느낌ㆍ마음ㆍ법념처도 이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정근(正勤)이라고 하는가?
아직 생하지 않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이미 생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은 끊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아직 생하지 않은 선한 법은 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고,
이미 생한 모든 선한 법은 더욱 늘리고 닦아 구족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이것을 4정근이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여의족(如意足)이라고 하는가?
의욕의 삼매로 단절하고 결합하여, 처음의 여의족을 성취하고,
정진의 삼매ㆍ마음의 삼매ㆍ사유의 삼매로 단절하고 결합하여, 여의족을 성취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5근(根)이라고 하는가?
믿음의 근ㆍ정진의 근ㆍ기억의 근ㆍ선정의 근ㆍ지혜의 근이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5력(力)이라고 하는가?
믿음의 힘ㆍ정진의 힘ㆍ기억의 힘ㆍ선정의 힘ㆍ지혜의 힘이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7각지(覺支)라고 하는가?
기억의 각지(覺支)ㆍ택법의 각지ㆍ정진의 각지ㆍ기쁨의 각지ㆍ경안의 각지ㆍ삼매의 각지ㆍ평정의 각지이니라.
무엇을 8성도분이라고 하는가?
올바른 견해ㆍ올바른 사유ㆍ올바른 언어ㆍ올바른 직업ㆍ올바른 생활ㆍ올바른 정진ㆍ올바른 삼매이니라.
무엇을 3삼매(三昧)라고 하는가?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의 문이다.
무엇을 공삼매라고 하는가?
공의 행과 무아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공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무상삼매(無相三昧)라고 하는가?
적멸의 행과 떠남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무상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무작삼매(無作三昧)라고 하는가?
무상(無常)의 행과 괴로움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무작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8해탈(解脫)이라고 하는가?
안에 물질의 생각을 갖춘 채, 밖의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첫째 해탈이다.
안으로 물질의 생각은 없지만 밖으로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둘째 해탈이다.
정해탈(淨解脫)이 셋째 해탈이다.
그리고 일체 물질의 생각을 지나 모든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일체의 다른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을 관찰하여 무변허공처에 들고, 나아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滅受想定)의 해탈에 들어가니, 이것을 8해탈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9차제정(次第定)이라고 하는가?
수행자가 애욕과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에 들고, 2선ㆍ3선ㆍ4선과,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에 들어가니, 이것을 9차제정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부처님의 10력(力)이라고 하는가?
경우와 경우 아닌 것을 여실히 아는 지력(智力)이 있고,
중생의 과거 또는 미래 또는 현재의 모든 업과, 모든 받는 법칙을 알고, 업을 짓는 곳을 알고, 인연을 알고, 과보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ㆍ정의 더럽고 청정한 모습을 분별하여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느니라.
다른 중생의 근기에 대해 높고 낮은 모습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다른 중생의 모든 의욕과 믿어 이해하는 바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세간의 무수한 계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일체에 도달하는 길의 모습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느니라.
모든 전생의 한 생애 내지 무량겁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천안으로 중생의 선하고 악한 길에 태어남을 여실히 보는 지력이 있으며,
무루인 까닭에 무루인 마음의 해탈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니,
이것을 부처님의 10력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4무소외(無所畏)라고 하는가?
부처님은 진실된 말로,
‘나는 일체를 바르게 안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법을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으며,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첫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된 말로,
‘나는 일체의 번뇌를 다했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번뇌를 다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으며,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두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 된 말로,
‘나는 도를 장애하는 법을 설한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법을 수용해도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고,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세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 된 말로,
‘내가 설하는 바 성스러운 도는 능히 세간을 벗어나고, 이 행에 의해서 능히 괴로움을 다한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도를 행하여 세간을 벗어날 수 없고, 괴로움을 다할 수 없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고,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네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무엇을 4무애지(無礙智)라고 하는가?
첫째는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義無礙智]이며,
둘째는 법에 걸림 없는 지혜[法無礙智]이며,
셋째는 말에 걸림 없는 지혜[辭無礙智]이며,
넷째는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樂說無礙智]이니라.
무엇을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의미에 의한 지혜를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법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법에 의한 지혜를 법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말에 의한 지혜를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변재에 의한 지혜를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18불공법(不共法)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 모든 부처님의 몸에는 허물이 없으며,
두 번째, 말씀에 허물이 없으며,
세 번째, 억념에 허물이 없으며,
네 번째, 다른 생각이 없으며,
다섯 번째,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 없으며,
여섯 번째, 안다고 버리지 않는 마음이 없으며,
일곱 번째, 뜻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여덟 번째, 정진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아홉 번째, 억념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 번째, 지혜를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한 번째, 해탈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두 번째, 해탈지견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세 번째, 일체의 몸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네 번째, 일체의 말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다섯 번째, 일체의 뜻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여섯 번째, 지혜로써 과거세를 알아 걸림 없고 장애가 없으며,
열일곱 번째, 지혜로써 미래세를 알아 앎에 걸림 없고 장애가 없으며,
열여덟 번째, 지혜로써 현재세를 알아 걸림 없고 장애가 없느니라.
무엇을 32상(相)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발 밑이 평평하여 편안하기가 거울 넣은 상자의 바닥과 같으며,
두 번째는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과 테로 바퀴의 모습을 구족하였으며,
세 번째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이 길어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네 번째는 손발이 부드러워서 다른 몸의 부분보다 뛰어나며,
다섯 번째는 발꿈치가 넓고 구족되고 원만하고 좋으며,
여섯 번째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 사이의 엷은 막이 묘하고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일곱 번째는 발뒤꿈치가 높고 평평하여 좋기가 발꿈치와 서로 같으며,
여덟 번째는 이니연(伊泥延) 사슴의 장딴지는 가늘고 좋은 것처럼 장딴지가 이니연 사슴왕과 같으며,
아홉 번째는 편안하게 서서 양손으로 무릎을 만지며,
열 번째는 음부가 감추어진 모습이 마치 말이나 코끼리의 왕과 같으니라.
열한 번째는 몸의 종횡이 균등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니그로(尼俱盧) 나무와 같으며,
열두 번째는 하나하나의 털구멍에서 한 개씩의 털이 나는데 색깔이 푸르고 부드럽고 오른쪽으로 돌았으며,
열세 번째는 털이 위로 향하고 색깔이 푸르고 부드럽고 오른쪽으로 돌았으며,
열네 번째는 금색의 모습으로 그 색깔이 미묘하여 염부단금(閻浮檀金)보다 뛰어나며,
열다섯 번째는 몸의 광명이 사방으로 한 길이며,
열여섯 번째는 피부가 엷고 섬세하고 윤기가 있어서 때가 끼지 않고 모기가 앉지 못하며,
열일곱 번째는 일곱 곳이 충만하니 두 발바닥과 두 손바닥과 양 어깨 위와 이마 가운데가 모두 충만하고 글자의 모습이 분명하며, 열여덟 번째는 두 겨드랑이 밑이 가득하며,
열아홉 번째는 상체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으며,
스무 번째는 몸이 넓고 단정하고 바르느니라.
스물한 번째는 어깨가 원만하고 좋으며,
스물두 번째는 마흔 개의 치아가 있으며,
스물세 번째는 치아가 희고 가지런하고 촘촘하고 뿌리가 깊으며,
스물네 번째는 네 개의 어금니가 가장 희고 크며,
스물다섯 번째는 상체가 방정하기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으며,
스물여섯 번째는 혀의 예민함이 최고도이어서 최상의 맛을 얻고 목구멍에서는 두 곳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며,
스물일곱 번째는 혀가 크고 부드럽고 엷어서 능히 얼굴을 덮고 귀와 머리카락에 이르며,
스물여덟 번째는 청정한 음성이 매우 깊어 비유하건대 마치 가란빈가(迦蘭頻伽)의 소리와 같으며,
스물아홉 번째는 눈의 색깔이 비유하건대 마치 황금의 눈동자[精]와 같으며,
서른 번째는 속눈썹이 비유하건대 마치 소왕과 같으며,
서른한 번째는 눈썹 사이의 백호상이 부드럽고 희어 비유하건대 마치 도라(兜羅)솜과 같으며,
서른두 번째는 정수리가 육계골(肉髻骨)로 되어 있느니라.
그러한 32상이 부처님 몸에 성취되어 광명이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 만일 널리 비추고자 하면 바로 널리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국토에 가득하게 되고 중생들은 그 광명을 받는다. 만일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버리면 일월의 시절이나 햇수가 없느니라.
부처님의 음성은 널리 삼천대천국토에 가득하고 만일 큰 소리를 일으키고자 하면, 바로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국토에 가득하게 되니, 중생의 다소에 따라서 음성이 널리 도달하느니라.
무엇을 80수형호[種好]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정수리를 볼 수 없다.
두 번째는 코가 곧고 높고 좋아서 구멍이 드러나지 않느니라.
세 번째는 눈썹이 초생달과 같고 감유리색이다.
네 번째는 귀가 둥근 흙두덕처럼 되었다.
다섯 번째는 몸이 튼튼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나라연(那羅延)과 같다.
여섯 번째는 뼈 사이가 비유하건대 마치 쇠사슬로 묶은 것과 같으니라.
일곱 번째는 몸을 한 번에 돌리는 것이 비유하건대 마치 코끼리왕과 같다.
여덟 번째는 길을 갈 때에 발이 땅에서 네 마디가량 뜨고 무늬가 나타난다.
아홉 번째는 손톱이 붉은 구릿빛과 같고 엷어서 윤택이 있다.
열 번째는 무릎 뼈가 튼튼하고 원만하게 자리 잡았다.
열한 번째는 몸이 정결하다.
열두 번째는 몸이 부드럽다.
열세 번째는 몸이 굽지 않았다.
열네 번째는 손가락이 길고 가늘고 둥글다.
열다섯 번째는 손가락의 무늬가 정엄하다.
열여섯 번째는 맥박이 깊다.
열일곱 번째는 복사뼈가 드러나지 않느니라.
열여덟 번째는 몸에 윤택이 흐른다.
열아홉 번째는 몸을 반듯이 하여 굽지 않느니라.
스무 번째는 몸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한 번째는 의식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두 번째는 용모와 위의를 만족하게 구비했다.
스물세 번째는 머무름이 안정되어 능히 동요시킬 자가 없다.
스물네 번째는 위의가 일체에 진동한다.
스물다섯 번째는 보는 자가 모두 즐거워한다.
스물여섯 번째는 얼굴이 크거나 길지 않다.
스물일곱 번째는 용모가 단정하여 몸을 요란하게 하지 않느니라.
스물여덟 번째는 얼굴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아홉 번째는 입술이 붉어서 비유하건대 마치 빈바(頻婆)의 과일 색깔과 같다.
서른 번째는 음성이 깊다.
서른한 번째는 배꼽이 깊고 둥글고 묘하다.
서른두 번째는 털이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서른세 번째는 손발이 원만하다.
서른네 번째는 손발이 뜻대로 이다.
서른다섯 번째는 손금이 명확하고 바르다.
서른여섯 번째는 손금이 깊다.
서른일곱 번째는 손금이 끊이지 않았다.
서른여덟 번째는 일체의 악한 마음을 가진 중생도 보기만 하면 화평하고 기뻐한다.
서른아홉 번째는 얼굴이 넓고 용모가 뛰어나고 좋다.
마흔 번째는 얼굴이 청정하고 원만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달과 같다.
마흔한 번째는 중생의 뜻에 따라서 화평하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말한다.
마흔두 번째는 털구멍으로부터 향기가 나온다.
마흔세 번째는 입으로부터 좋은 향기가 나온다.
마흔네 번째는 위의와 용모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다.
마흔다섯 번째는 가고 머무르는 것이 비유하건대 마치 코끼리왕과 같다.
마흔여섯 번째는 나아가는 방법이 비유하건대 마치 거위왕과 같다.
마흔일곱 번째는 머리가, 비유하건대 마치 마다나(摩陀那)의 과일과 같다.
마흔여덟 번째는 일체의 음성을 구족하였다.
마흔아홉 번째는 치아가 예리하다.
쉰 번째는 혀의 색깔이 붉다.
쉰한 번째는 혀가 엷다.
쉰두 번째는 털이 붉은 물질이다.
쉰세 번째는 털이 청정하다.
쉰네 번째는 눈이 넓고 길다.
쉰다섯 번째는 구멍의 모습이 갖추어져 있다.
쉰여섯 번째는 손발이 붉고 희어서 비유하건대 마치 연꽃색과 같다.
쉰일곱 번째는 배꼽이 나오지 않았다.
쉰여덟 번째는 배가 드러나지 않느니라.
쉰아홉 번째는 배가 작다.
예순 번째는 몸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예순한 번째는 몸을 지탱하는 것이 신중하다.
예순두 번째는 그 몸이 크다.
예순세 번째는 키가 크다.
예순네 번째는 손발이 청정하여 고요한 못과 같다.
예순다섯 번째는 몸 주변의 광명이 각각 한 길이다.
예순여섯 번째는 몸의 광명을 비추면서 간다.
예순일곱 번째는 평등하게 중생을 본다.
예순여덟 번째는 중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느니라.
예순아홉 번째는 중생에 따라서 음성을 지나치게 크게 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작게 하지도 않느니라.
일흔 번째는 설법하되 집착하지 않느니라.
일흔한 번째는 중생의 말에 맞추어서 설법한다.
일흔두 번째는 한 번 낸 음성으로 모든 소리에 대답한다.
일흔세 번째는 차례에 입각하여 인연의 법을 설한다.
일흔네 번째 온갖 중생들로서 그 특징을 관찰하되 다하지 못하느니라.
일흔다섯 번째는 보는 자가 싫어할 수가 없다.
일흔여섯 번째는 머리카락이 길고 좋다.
일흔일곱 번째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지 않았다.
일흔여덟 번째는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굽었다.
일흔아홉 번째는 머리카락의 색깔이 비유하건대 마치 푸른 구슬과 같다.
여든 번째는 손발에 덕의 모습을 갖추었다.
수보리야, 이것을 80수형호라고 이름하니, 부처님의 몸에는 성취되어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