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9322 ♧ 이름: 김영배 ( 남 ) ♧ 2012/6/25(월) 00:20 (MSIE9.0,WindowsNT6.1,Trident/5.0) 59.187.211.198 1366x768 ♧ 조회: 343 | |
세월은 많이 흐르고. <졸업한 그 이후에는 이쪽 방향으론 소변도 안눈다!!>그렇게 말했던곳, 나는 논산 전반기와 금마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101 보충대에서 65년도 8월初에 대광리 옥계리 초소를 지나 gop 소재 9사단 28연대 2중대에 배속됐다. 2중대는 당시 보병 병과인 신병교육중대로 6주간의 교육을 마치면 28연대 12개 중대에 팔린다.당시 170명 정도 였는데,
나 김영배.조종학.김의성.이강한.송순복등,다섯명의 입대동기 서울 애들이 포함되어있었다. gop 지역은 민간인을 볼려면 20킬로 이상은 나와야 옥계리 초소가 있고 거기서 한참더 나와야 대광리다.(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그곳은 사방 팔방.살펴봐도 보이는건 하늘과 산봉오리뿐. 흙과 짚으로 반죽해 벽을 쌓고 지붕은 갈대로 덮어 200 여명이 잠잘 수 있는 토막사 내무반.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내무반에서 나오면 그 앞에 300평 정도를 닦아 그게 연병장이고... 거기서 50미터 1중대로 가는 도로를 지나 100미터가량 내려가면,개천이있고 그 개천옆이..ㅋ, 이건 내무반 보다는 90% 정도도 못한..초라한..건물 갖지도 않은 건물이 있는데 그게 식당이다. 식사시간엔 밥을 타서 그걸들고 아무데서나 쪼그려앉아 먹는다. 6.25 사변때.대구 칠성천변 피난민들이 생각날 정도로 비참하다. 이게 뭐 ...군복도(훈련복)너덜너덜하고...논산훈련소는 아방궁이다. 밥이 적어서 배가고파 밤에 얼른,잠도 안오는데...지금도 한자도 틀리지않고 훤히 외고 있는 이북 방송이 한밤중에 산자락을 흔든다.
"컴컴한 등잔불 밑에서 이잡이나 하고 다 떨어진 군복을 꿰메고 있는 불쌍한 남조선 국방군 여러분... 그리곤 ~ 아하 처랼한 초소의 밤이이여..~ 라는 노래가 들린다. 김의성과 이강한.송순복이는 gop에 도착하자마자 원주 1군하사관학교에 지원해 갔고.. 신병교육이 끝났을 때,나와 종학이는 조교로 자충됐다.중대장의 계속된 거부로 못가고 있다가 난 그해 12월,지원에 성공,1군하사관학교에 가게 됐다.하사관 학교에 가게된 동기가 두가지다.하사 계급 이상이면 윗 계급들 한테도 재제를 받는게 없고 일반하사 봉급이 800원이나 되어서 배곯지 않았고(하사가 세명인데 반찬에 멸치도 있는등, 늦은 시간에도 "주보"에 가서 긋고 먹을 수 있는 특혜도 있고...그러나 그 보다도 그해에 임관되어 온 rotc
2期生 한명이 왔는데,오자마자 며칠 안되서 날 부르더니'따까리'라는거 그걸 하란다. 따까리를 하면 배를 곯지 않으니까..그 역활을 할려는 애들이 줄을 섰는데,그리고 애들 인솔 해서 교육장에 다니며 시범같은 거 안해도 되고 불침번과 동초도 안서고...특혜가 많은데.난 남의 뒷치닥거리 하는 거 질색이다.굶으면 굶었지 절대 못한다. 그 소위는 키가 작달막...인천 사람으로 나에게 특별히 호의를 베푼건데 내가 ..까만 쫄짜가 한방에 거절 하니까...호의를 베푼 것 만큼 大怒...날 설득하다못해 안되니까 쪼인트 까고... 괜히 트집잡아 기합주고...결국 하극상도 벌어지고... 난 어떻게 하던 내가 그곳을 떠나야 했다.그리고 쫄짜보다 하사 계급이 낫다. 싶어서... 그 당시 훈련이 쎄기로 全軍에 제일 이라는..그 당시 全 陸軍에 한군데 밖에 없었던"인생재생창" 이라고 불리우던 악명넘치던 곳 원주 1군 하사관 학교...거기를 12월에 내스스로 入敎했다. 전라도땅에 2군 하사관 학교가 생기고 나서 부사관 학교로 통폐합 됐다던가. 원주에 있던 1군 하사관학교도 옮겨가고 그 자리엔 36 사단이 들어섰다는 얘길 들었다. 대관령에 있을 때, 상지대학에 볼일이 있어 몇번 원주를 왔다갔다 했지만,졸업후, 한번도 못가봤다.학교는 이사를 갔지만,땅은 그대로 있잖은가! 지긋지긋하게 교육을 받았고 졸업하는 날엔, "내 두번다시 여기를 오기는 커녕,이쪽 방향으론 작대기도(소변도) 버티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요새는 하는 일이"요양을 한다"는 핑계로 놀고 있는게 하는일, 어제 갑자기 원주를 가고 싶어서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위에 사진은, 1군 사령부에서 1군 군수 사령부 중간에 있는 하사관 학교 가는 하천..사진중앙 끝에 보이는
다리를 지나면 개천의 물폭이 3미터 이상되는데 물의 깊이는 평균 5~60 센티이다.거기서 .낮은포복과 높은포복을 했고.그리고,저기서 손을 호호 불며 세틱도 하고. 그런데 어제보니 하천에 물은 얼마없고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형성되어있다. 사진의 둑 위 좌측길이..내가교육 받는 도중 단한번 외출을 나갔던 길 이다. 그 당시는 초가집 몇채밖에 없었고 논과 밭만 있었던 곳인데,
둑길 뒷쪽으론 완전히 주택가로 변해 있고 집집마다 내 말을 비웃듯 담위로 각종 꽃들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학교를 가는 3킬로 정도 거리안에 저렇게 고층 아파트도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다. 저 앞에 보이는 部隊가 전에 1군하사관학교 있던자리..정문에 면회소 사병에게 내 신분증을 보여주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되돌아 나오며 사진 한장 찰칵 -,좌측의 저길은 없었다. <군대란..싸우는것을 가르키는. 즉 - 사람을 죽이는 걸 가르치는 곳이다.지금 맹호부대가 월남에서 적과 싸우고 있다. 귀관들도 졸업후,보병 분대장으로 파병될 수 있으니까 죽지 않을려면 힘들어도 견뎌내며 교육을 받도록...군인은..여기를 졸업한 귀관들은..총알이 소나기처럼 쏱아지는 곳에서도 적을 이기고 돌아와야된다.그 방법을 여기서.....가르친다.> 교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들리는듯 하다. 나는 졸업후,28연대 2중대로 원대복귀.2소대 선임 분대장으로 파병됐다. 군가 개선행진곡에서, ~........ 불러라 강산을 진동할 노래 죽음을 이기고 돌아온 용사 산천도 초목도 반겨어 맞는다. 아하- 자유의 태양이 빛나는 나라 승리의 길을 돌아온 용사.~ 나는 원주 1군 하사관 학교에서 그 엄청난 교육울 받았음으로 살아서 돌아 왔다고 지금도 믿는다. 그 당시 우리들에게 혹독한 교육을 시키며 사기를 진작 시켜줬던 교관과 조교 그리고 선임하사들께 감사하는 맘으로 당시 경례 구호였던 "軍紀!!"경례하고 말없이 돌아섰다. 오늘은 국군묘지엘 갔다.측문으로 들어서니 수문장들이 경례를 하며 반긴다. 顯忠池 앞에 의숭화(접시꽃)도 반기고. 28연대 2중대에서 젤먼저 전사한 이차세 전우.상주 사람,참배 20 여년만에 조카란 사람이 한번 왔었는데 그 이후론 만나질 못했다.3분대 부분대장. 군번이 1141로 나보다 군입대 고참. 그리고 지영길 전우님 묘소 참배. 날이 너무 더워서 그늘도 덮고 바람도 없고...보통 경우에현충원에서 17시는 되어서야 나오는데, 땅속에 있는 사람은 말이 없건만 산사람이 덥다고 타령을 한다. 동작대교 밑으로 가면 세상 부러운거 없이 시원하지만 갑자기 충동이 생겨서 옷 죄다 벗고 한강에 뛰여들까봐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박병장이 찬 수박을.갖고오며, "원 이렇게 더운데..얼굴 팔뚝을 저렇게 다 테우고..더울 때 수박..아주 괜찮다. 바로 아래 댓글쓴이가 지영길전우 바로 아래 여동생이다.부산에 사신다. 선희: 영배님 ..저도 오늘 범어사에 모신 오빠를 뵈오러 갔었답니다. 우리전우님들 얘기도 하고 .. 영배님 말씀도 하고하니.. 잘 알고있다는듯 싱긋이 웃는 오빠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더이다. 많이 더웠죠? 부산은 비도 좀 내리고 바람이 많이불어 저녁 퇴근길에는 춥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글 잘 읽고 ...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06/25-01:10]- 참전인: 사람이 이승을 떠나면 영혼은 이렇게 홀로 떠도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월남 도착해서 첫밤을 보낸 막사에서 들은 포성이 아직 기억에 쟁쟁합니다. 왜 저렇게 줄창 쏴대는지, 뜬눈으로 보낸 월남의 첫밤이었습니다. 고국을 떠날때 날씨는 지금처럼 석자 땅이 타들어가는 가뭄이었지요. 비탈밭으로 물져나르는 아버지 생각 뿐이었습니다. 살아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괜시리 한숨만 나오고.. 탈영하여 돌아가고프긴 하지만 검푸른 남지나 밤바다가 말없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고요. 내 조국을 위하고 우방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라는 사명감은 개뿔이나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아침에 레이숀을 받아 끼니를 때웠습니다. 느끼하고 냄새만 맡아도 토할 거 같은 뱃밥이랑은 전혀 다른 먹이였습니다. 헌데 어떤 놈 꺼는 파운드케익이 있는데 내꺼엔 그게 없는 겁니다. 몇개 들어있는 군용빛 깡통을 암만 뒤져봐도 없더군요. 밥이 아니더라도 케익이라도 먹어야 요기가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06/25-04:02]- 참전인: 옆에 그놈이 받은 건 B-1이었고, 내꺼는 B-3라 판두 켁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입니다. 레이숀 만드는 양놈들두 참. 아침에 팔려가는 당나귀처럼 연병장에 도열해 있는데 햇볕가릴 그늘 한점없이.. 연병장가에 서있는 야자수 몇그루 뿐이었고요. 급조한 아스팔트길 넘어 물이 흐르고 그 옆으로 모래둔덕을 사이에 두고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게 눈에 들어오데요. 다농강이 흐르고 그 넘어가 남지나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강과 바다가 나란히 흐르는 건 그때 첨 보았습니다. 인연이 안되어 함께 섞여 흐르지 못하는 게 슬펐고요. 호명하는 순서대로 따블빽들고 알듯 모를듯 불려나가는 그들의 웃음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직 머리에 뚜렷이 남아 있는 건 그때 찦차를 타고 나타난 중사 한 사람입니다. 지금 그 중사를 기껏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새까만 쥐새뀌'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땀에 잔뜩 쩔어 소금이 버석버석한 방탄조끼을 입은 그는 새까맣게 탄 얼굴에 눈만 반짝거렸습니다. -[06/25-04:35]- 참전인: '야, 수색대 올 사람. 수색대 오믄 암껏도 할 일없어야. 걍 레숑만 까먹구 놀믄 되야.' 그 중사가 대열사이를 휘젓고 다니면 하는 소리였습니다. 사기도 유분수지 세상에 놀구먹는 수색대가 어딨겠습니까. 그가 내 서있는 자리까지 오자 나는 모래둔덕 넘어 남지나바다로 눈을 주었습니다. 그의 손가락 지적은 곧 죽음으로의 지적일 게 분명해서 말입니다. 레이숑만 까먹느라 방탄조끼가 그렇게 소금에 절었겠습니까. 잔잔한 바다 위에 돗단배 하나가 떠가더군요. 전쟁을 치루는 나라 치고는 너무나 한가롭고 퍙화스런 풍경이었습니다. 나를 비껴간 중사는 몇몇을 골라 일당을 챙겼는지 찦차에 올라 사라지더군요. 마침내 내 이름도 불리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근무할 곳은 당장이라도 굴러내릴듯 혼바산 산정에 붙어있는 옹바위를 질리도록 볼 수있는 곳이었지요. 쌓아놓은 모랫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소리, 느리게 돌아가는 천정에 목맨 선풍기, 나를 눈여겨 보던 도마뱀, 늙은 야자수...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06/25-05:29]- 황진국: 금요일 오실 때 전화 주세요. 010-9014-2288. -[06/25-05:59]- 전재경: 굳이 미사려구를 쓰지 않아도 담담하게 그리고 감칠맛나는 글에 단숨에 읽어내려 갑니다 -[06/25-07:00]- 백동기: 사람은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것 같습니다.직장 근무시절 크리스마스 위문품 전달 행사가 있어 근무하였던 필승고지 GOP에 까지 가서 지난시절 근무하였던 GP초소를 멀리서 처다보고 온 기억이 있는데 당시 근무때 와는 달리 GOP에 전기가 다 들어가 살벌한 경계작전속에서 물지게 지고 오르던 급수작전은 자동펌푸 설치로 인해 벌리지 아니해도 되겠꾸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 국가 경제성장의 혜택이라고 느꼈습니다. -[06/25-07:11]- 황진순: 오늘 6.25 참전 62주년 기념식을 진주교육대학 강당에서 거행하기에 몸이 불편하신 참전노병님들 모시고 기념식장에 다녀올겁니다. 건강회복하시길빌며...참전시절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선배님. -[06/25-08:16]- 안흥종: 어제올린 글이 별반 알맹이도 없고 다행히 댓글이 없어 삭제했습니다. 7일 항해 끝에 하선하여 캄란에 도착한 월남신병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가장 먼 28연대 보충 병력이 트럭으로 실려 가고, 29연대 병력도 실려 갔다. 나머지는 30연대 병력으로 한명이 남아 앉은 번호를 시켜도 역시 한명이 남는다. 유난히 새카만 중사가 어떤 놈이야 한 놈 나왔! 워낙 살벌하게 날뛰어서 자수하는 자가 없었다. 급기야 한사람씩 호명하면서 불린 병사는 별도로 집합시켰다. 맨 나중 홀로 남은 한명이 28연대 병력인데 우왕좌왕하는 사이 슬쩍 이탈한 것이다. 28연대 병력 수송트럭은 이미 떠난 지가 오래다. 인원파악하다 시간 낭비한 중사는 방방 뛰면서 28연대를 탈영한 병사를 사형시킨다고 엄포 놓는다. 인사장교는 무전으로 연락 취하고 30연대 병력으로 조치를 취했는데 도착하자 말자 약은 병사도 있었다. -[06/25-08:38]- 김영배: 참전인전우님!긴 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그렇게 긴 댓글 단숨에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더군요. c.레이션에 대한 추억은 늘 배가 고프다가 먹을게 많으니까 기름끼 있는게 질리고. 수색대에 근무하셨군요.제가 하사관학교에서 배운바에 의하면 戰鬪, 10일~30일전,난다긴다하는 1개분대 매복조 정도의 정예병으로 일몰과 동시에 적의 진지를 잘 관측할 수 있는 지역으로 접근,적군의 지형과 형태.아군의 공격시 필요한 루트등등,필요한 군사정보를 비밀리에 갖고 돌아와야 합니다.아군의 지휘부는 수색대의 보고를 가장 중요하게 참작,작전에 이용하는데 수색대는 전투를 하는 부대가 아니라는..정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평화시에는 인사처가 우선이지만 전쟁시엔 정보.작전 그다음이 인사 이거든요. 아무튼 우리 살아와서 서로간에 글로서 문답을 하니 참 고마운 일 입니다. -[06/25-09:00]- 김영배: 황진국 전우님! 금요일 13시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재경 전우님 댓글에 감사드리고...신세를 져도 분수가 있지..소래포구는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혼자 가려고 합니다. 백동기 전우님! 어제 현충원 측문으로 들어가는데 거기 수문장(경비)이 날 알아보고 경례를 하길래 서로 잠시 얘기를 해봤는데.50세 쯤 되는 그가 완전히 땅파는 얘기만해서 대꾸는 안했지만 얼마나 열받는지... 황진순전우님!6.25참전 기념식에 가시면,그곳 사진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06/25-09:09]- 김영배: 안흥종전우님!지우셨다는 "수색대는 조용하다!"에 댓글을 쓸려고 컴앞에 앉았다가 수박으로 음료수를 만들어놓은거 한잔 따라서 갖고 컴앞에 앉아보니 어.?!! 방금 있었던 글이 사라져서 잠시 당황 했습니다. 백마 1진은 나트랑에 도착했었는데 안전님은 캄란에 도착했군요. ㅋ, 그 판국에도 요령있는 병사가 있었네요.근데 그건 요령이 아니라 바보짖이고 총살깜 입니다. 그런데 6.25 사변때도 그러했지만 9사단 28연대는 워낙 전사자가 많아 거기로 배속되는거 싫어 했을 겁니다. -[06/25-09:19]- 최현득: 며칠사이에 어려운일이 많았습니다 같이 여행을 간 일행이 급성으로 병원에 가고 가망이 없다는 통고에 가족들이 모이고 인근도시 대학병원에 가까스로 생명을 구하고 회복할 가망이 보여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어젯밤을 보냈습니다 목요일부터 비상사태가 일어나서 한참이나 분주 했습니다 뎃글달 형편은 못되고 지나쳐 제목들만 읽었습니다 참 살아있다는게 일순간의 일이구나를 생각 합니다 몇년전 교회 탐방차 양평을 갔드랬는데 부대들이 보이는 길을 가면서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리대대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면회시간이 지나고 면회을 온 어머니가 어렵게 아들을 만나 우시든 위병소가 가슴이 아파 다시 와야지 했는데 못가보았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싶은데 길은 알지가 의문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우리는 간이 약해서 하사관 학교는 엄두도 못내었는데..... 나트랑항에 도착해서 장비운송차 일주일을 있어면서 먹은 C레이션은 신기하기만 했고 일주일만에 화장실에 갔다오니 힘이 없어서 혼이난 기억이 납니다 1번 국도가 개통전이라 처음에는 비행기로 투이호아로 공수를 했습니다 모래벌판 비행장에 내린 기억이 지금도 생생 합니다. -[06/25-09:32]- 박용환: 기억력으로 말하자면 그중이신 김영배선배님!ㅎㅎ요즘 건강상 운동두 열심히 하시고 그 지나두 한참이나 지나간 추억을 쭈욱 나열 하신다는게 부럽기만 합니다.ㅎ 저역시 이런 글을 읽을랴하면 문득문득 옜날일이 생각나서 두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만...ㅎㅎ 위 댓글중에 참전자님에 댓글두 본문글과 흡사해서 입가에 군침을 흘리며 읽었습니다..(참전자님이 뉘신지는 지는 알고 잇습니다.ㅋ)이제는 필통을 열어서 살피지 안아두 알고 있습지요..ㄲ~ㄲ 김선배님~!무더운 날씨에 웬간함 시원한 그늘을 택하셔서 운동하시고 늘~건강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06/25-09:45]- 김영배: 선희님!어제는 글쎄...술을 깜빡 했답니다. 묘소에 갈때에 다른건 다 빼먹어도 되지만,술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잊다니.. 날씨가 더운 탓 만은 아닙니다. 선희님이 올려주신 사진으로 봐서 오라버니는 상당히 야무진 사람 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월남에서 작전중,vc가 내 옆에 있는 전우를 겨눴으니까 그렇지 나를 겨눴더라면...쓰러진 전우의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나는 40여년전에 버얼써 땅속에 있는 전우와 자리를 바꿔 있을수도 있어서.. 그 생각에..날씨가 더운탓도 있지만,잠도 잘 안오고...새벽에 눈뜨면 부지런히 현충원으로. 내 전우들 열명이 있는 26묘역에 가보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묘비는 뜨끈뜨근하고... 어제 지영길님은 나에게, "자탄의 벽이 천정을 넘어도 돌아오지 않을 세월의 젊은날 이여. 근자에 선희가 올린 사진을 보니 선화랑 행복해 보여서 매제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을 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었을 때,이 불효한 아들의 이름을 수 만번은 부르고 우셨을..나의 어머니.그리운 내 어머니... 올 추석엔 형제들이 다 모였을 어머님이 계신집� -[06/25-09:59]- 김영배: 계신집을 멀리서 바라보며 가을이 떠내려 가도록 불효의 잘못을 눈물로 채워야 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듯 하더이다. -[06/25-10:02]- 김영배: 감사의 댓글을 쓰는 사이에 1진동기 최현득 전우님..그리고 박용환 전우님이 댓글을 ..감사합니다. 최전우님도 너무 잘 아시는 일 이지만, 28연대는 나트랑에 도착후,바로 트럭에 분승, 날이 어두워 졌을 때, 캄란 어떤 평평한곳에 도착을 했는데,그날밤 첨으로 나온 c.레이션 깡통을 딸줄 몰라 고생하던? 분대원들이 생각 납니다.ㅋ,그때는 우리 모두 갑자기 닥친 낯선 나라에서 어리둥절햇던 기억이..그런거 부터 우리나라가 발전한 원동력이 시작됐었던거로 압니다. 일행이 급성였다는데 병명이 뭔지 모르지만 급성이 붙으면 위험한 겁니다.사람의 목숨은 찰라 입니다. 박용환 전우님!제가 기억력이 좋다뇨? 천만에요..하두 고생을 해서 잊혀지지가 않는 거죠. 그렇게 고생을 했어도.그 때가 그립고 또다시 그렇게 젊어지는 날이 온다면 주저치 않고 그때의 군생활을 다시 할겁니다. -[06/25-10:21]- Saigon Kim: 김영배전우님 건강은 많이 회복되셨겠죠? 1964년 겨울 허구한날 꽁꽁 언 쪼인트를 맞았던 기억이 씁쓸 합니다. 춘천에 근무할때 문서연락병으로 원주 1802공병보급단으로 문서를 전해주면 잘못해 왔다고 죄없는 연락병 들의 쪼인트가 성할 날이 없었답니다. -[06/25-10:50]- 수색대: 안동신병훈련소 내무반장이 원주제1하사관 신삥 출신인데 군대서 배운 노래 절반은 내무반장에게 배웠다. 하사관 교육 과정에 잡군가(雜軍歌)교육도 있는지요. 1. 극장가자 다방가자 그런 말씀 마세요, 시골에서 자라난 몸 서울 온지 한 달 반 ~ ♬ 2. 대한에 여자들은 육군을 좋아해 좋아하지 말아요 총 맞아 죽어요... 씩씩한 육군에 아내가 되어라 헤이~사랑을 이뤄라 ~ ♪ 3.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 두갑 일년에 열두갑 치마 밑에 감추고서... 차마 밑에 불이 붙어서 毛가 다 탔네 ~ ♬ 어이야 ~ 어이야 ~ -[06/25-14:46]- 김영배: 김성찬 전우님 안녕하십니까!이곳 날씨는 더워서 오늘은 모처럼 그냥 집에 있습니다. 저는 보병여서 맨날 부대 근처에서 훈련받고 그러다가 월남 갔다와서 제대하고...고국에서도 그랬지만 월남에서도 자유시간을 내서 부대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답니다. 1군 하사관 학교에서 기합은 말할것도 없고 맞기도 수없이..ㅋ,저는 건강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김성찬 전우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흥종 전우님!1군하사관학교 출신이 안동신병훈련소 내무반장이라 거기 내무반 훈련병들 호강 했습니다. 여간 빽이 쎄지 않으면 2군으로 가기 힘든데... 중대마다 다른데,지금 우리 베트벳에 황진국~박용환 전우님같은 구대장(소대장) 이면 雜歌는 다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대장이나 선임하사가 귀찮아서 안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거하신 세가지 잡가중 2번은 기억이 가물하고 나머지 1~3번은 지금도 부를 수 있습니다. -[06/25-15:15]- 홍 진흠: 김영배님! 홍하사 생각에 다음번엔 수박화채도 매우 좋을듯 합니다. 꼭 묘소에 술을 부어야만 된다는 법이 없잖습니까? 암튼 기억력에 박수 보내드립니다. 선배님! -[06/25-1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