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진주 스리랑카(Sri Lanka)
스리랑카 위치 / 스리랑카 전도(全圖) / 스리랑카 국기(國旗)
♦ 스리랑카 국기(國旗)
♤초록색: 무어족 ♤주황색: 타밀족, 불교 ♤칼: 나라의 주권 ♤사자: 싱할라족(용기)
♦ 스리랑카 개관(槪觀)
♤면적: 6만 5천 6백 ㎢(남한 면적의 약 3/4) ♤인구: 약 2천 1백만 명
♤인종: 싱할라족 74%, 무어인 7%, 기타 타밀족 등 ♤수도: 콜롬보(Colombo)
♤언어: 싱할리어, 영어, 타밀어 등 ♤1인당 국민소득: 약 4천 USD
♤환율: 1 USD=약 190루피(LKR) ♤종교: 불교 69%, 이슬람교 8%, 기타 힌두교 등
‘동양의 진주’, ‘인도의 눈물’, ‘실론 티’ 등으로 알려진 스리랑카는 인도 남동부 바다에 있는 아름답고 자그마한 섬나라다. 기후는 고온다습한 전형적 열대기후로 삼림이 울창하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으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스리랑카는 불교국가로 풍부한 불교 유적들, 독특한 민속무용, 친절하고 순박한 국민성, 화려한 코끼리 축제 등으로 알려졌다. 이런 아름답고 풍부한 자연유산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 1인당 GDP 4천 달러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고 하겠다.
♦ 스리랑카로 가는 여정(旅程)
대만(臺灣)에서 콜롬보행 비행기 표를 끊었는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5시간 걸리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8시간 머무르다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고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 스케줄이다.
대만을 출발하여 무심코 앉아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섬들을 감상하는데 비행 3시간 만에 느닷없이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더니 낯선 공항에 착륙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물어보니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공항이란다. 비행 스케줄에 없던 일이어서 놀랐는데 임시 기착 티켓을 받아들고 1시간 쯤 공항에 기다리다가 그 비행기를 다시 탄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이었고 코타키나발루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였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여 8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열차를 타고 다운타운 구경을 갔는데 예상보다 상당히 멀었다. 쿠알라룸푸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였는데 시내가 비교적 깨끗하고 매우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공항에 도착하니 밤 12시, 예약해 둔 숙소인 트로픽 인(Tropic Inn)에서 보낸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1박에 아침식사 포함 15달러(16.000원)짜리 싸구려 숙소인데 픽업비용을 31달러나 내라고 하여 의아 했었는데 공항에서 콜롬보 시내까지 40km가 넘는 긴 거리여서 이해가 되었다.
1. 수도 콜롬보(Colombo)
<1> 아름다운 해변 라비니아(Mt Lavinia)와 콜롬보 시내관광
숙소 바로 옆이 이름난 휴양지인 마운트 라비니아 해변이어서 여기에서 3박을 하며 콜롬보 시내 관광을 하는 한편 아름다운 인도양 해변에서 마음껏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콜롬보 도심의 비하라 공원(Vihara Maha Devi Park)은 널찍하며 열대 수림들로 우거져 시원하고 아름답다. 부근에는 시청, 독립기념탑과 초대대통령 동상 등이 있고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공원 바로 옆에 한국 대사관이 있어 그냥 한 번 들어가 봤더니 30대 중반의 대사관 여직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그리고 스리랑카 여행에서 주의할 점도 일일이 짚어주었는데 헤어질 때 명함도 주며 곤란한 일이 생기면 즉시 전화하라고 한다.
콜롬보 도심에는 서양식 건물도 눈에 많이 띄는데 포르투갈과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영향이라고 한다. 공원을 나서 조금 걸으면 자그마한 호수(베이라 호수)가 나타나고 호수 가운데 아담한 불교 사당(Sima Malaka)이 있는데 사당 안에서 젊은 무용수 7~8명이 열심히 전통무용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포즈를 취해주며 마음껏 찍으라고 한다.
라비니아 해변 / 전통 무용수들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데 사람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고, 호수에는 엄청나게 큰 펠리컨과 가마우지들이 떠 있다. 그리고 이따금 까마귀보다 훨씬 큰 검은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서 자세히 보았더니 박쥐 떼였는데 주변 나무에 내려앉아 과일처럼 주렁주렁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다.
<2> 스리랑카 최대의 사찰 강가마라야(Gangaramaya Temple)
베이라 호수 다리 / 세계 불교의 총본산 강가라마야
호수에서 골목길을 요리조리 걸어가면 스리랑카에서 제일 오래되고 세계 불교의 총본산이라고 자랑하는 유명한 절 강가라마야 사원(Gangaramaya Temple)이 있다. 해변에서 제법 떨어져 도심 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해일이 이곳까지 덮쳐와 사찰건물 일부가 파손되어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이 절은 스리랑카 불교의 중심으로 교육센터이자 박물관, 도서관뿐만 아니라 고아원도 경영하고 있는 등 명실상부한 스리랑카 정신교육의 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절은 또 수많은 국보급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많은 경제적 도움으로 건축되고 운영된다고 하며 한국에서 보내온 불상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불상과 불교 관련 보물들이 모셔져 있다. 강가라야마 사원이 박물관에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보물들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다.
수많은 불상 / 사찰의 보물 / 사찰의 상징 코끼리(巨象)<살아있는 코끼리>
박물관에 있던 스님이 내 손목에 오색으로 된 실타래를 매어주며 여행의 안전을 기원해 주었는데 귀국 직전까지 계속 매고 다녔고 여행 내내 기분이 좋고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당시의 해일(쓰나미)로 스리랑카는 막대한 재산과 인명 손실이 있었는데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발생하였다고 하며, 우리나라 한류스타 배용준이 학교를 지어 기증하였다고도 한다. 내가 만난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은 당시의 해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소연하였다.
콜롬보에서의 마지막 날은 아름다운 라비니아 해변에서 수영도 즐기며 인도양의 푸른 파도에 취해 꿈결처럼 푸근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바닷물은 따뜻했고 해변의 노천가게에서 마시는 커피도 향기롭다. 이곳에서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도심 인근의 갈레(Galle Face)도 이름난 해변으로 넓은 시민공원을 조성해 놓은 멋진 해변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2. 가장 스리랑카적인 도시 캔디(Kandy)
콜롬보 북동쪽 120km, 고원의 도시 캔디(Kandy)는 가장 스리랑카적인 고대도시로 관광책자에 소개되어있는데 16세기, 싱할리족의 수도로 세워져 1815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기까지 300여 년간 왕도(王都)였던 도시이다.
실론섬 서부 해안에 있는 콜롬보에 비하여 지대가 높은 중부지역에 위치한 까닭으로 날씨도 한결 선선하고 도시 경관도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1> 불치사(佛齒寺-Dalada Maligawa Sacred)
싱할라 건축양식의 불치사 / 불치사 앞의 캔디호수 / 불치사 입장 준비(치마)
캔디의 가장 유명한 명소인 불치사는 이곳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眞身齒牙舍利) 때문인데 AD 362년 인도에서 모셔와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싱할라 왕조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왕권의 상징으로 모셔와 불치사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불치사는 캔디호수 바로 옆에 분홍색 담장, 붉은 기와를 덮은 전형적인 싱할라 건축양식으로 많은 불자(佛子)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길게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 1.000루피(25.000원), 신발보관료 20루피를 내고 들어가려니까 반바지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다시 200루피(500원)를 냈더니 커다란 천을 발목까지 오도록 내린 뒤 한 바퀴 감아 허리에다 찔러 주었는데 이곳 남자들의 평상차림이다. 웅장한 건물의 중앙에 모셔져 있는 탑 모양의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함은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둘레에 일곱 겹의 황금 띠가 둘러져 있었는데 사람들에 가려 잘 볼 수도 없다. 사리(舍利)를 모시는 법당은 물론 복도와 바깥까지 불자(佛子)들은 두 손을 합장하고 바닥에 앉거나 꿇어 엎드려 열심히 불경을 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리랑카 최대(最大)이자 아시아 최고의 불교축제로 꼽히는 캔디의 부처님 치아사리 친견법회(Esala Perahera)는 매년 7~8월에 열흘간 열리는데 이곳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함을 열기 위해서는 지방에 흩어져 있는 장관 4명이 열쇠를 가지고 모여야 한다고 한다.
황금 연꽃 좌대에 모셔진 치아사리함을 태운 성스런 코끼리가 앞장서면 아름답게 치장한 100여 마리의 코끼리가 그 뒤를 따르고 연이어 북을 치는 사람, 무용 댄서들, 휘황한 연등 행렬이 뒤따르는데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축복을 내린다고 한다.
<2> 쓸쓸한 데갈도루와(Degaldoruwa) 사원
아름다운 와불상 / 사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호텔 직원이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한 데갈도루와 석굴사원은 시내버스로 30분 정도 가야하는데 시내버스에는 관광객은 달랑 나 혼자뿐이고 순박한 시골사람들 7~8명이 전부다. 포장도 되지 않은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없이 가는데 놀랐다.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 산골짜기 한가운데 나만 덜렁 내려주며 기사는 저 길로 들어가 보란다.
좁고 험한 언덕길을 올라가자 작은 건물이 보이고 건물 안에서는 초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 10여명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곳을 조금 지나자 마당 한쪽 그늘 밑 나무테이블에 모여앉아 공부하는 중ㆍ고등학생들로 보이는 7~8명과 선생님도 보이는데 공책을 들여다보니 모두 불교 관련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작은 귓속말로 쓰나미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절에서 데려다 기른다고 귀띔을 한다.
석굴사원이 어디냐니까 바로 뒤를 가리키는데 바위산에 있는 작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작은 굴이다.
실망을 하며 굴 입구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놀라움으로 가슴이 울렁거린다. 석굴가운데에는 길이 7~8m의 부처님 와불상(臥佛像), 또 한쪽 벽면에는 부처님 좌불상과 두 제자의 입상(立像), 그 둘레의 벽면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채색의 벽화들과 또 빼곡히 그려진 정교하기 그지없는 천정화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데갈도루와 석굴사원(Degaldoruwa Cave Temple)은 18세기 초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달랑 석굴 하나로 규모는 작지만, 부처님 와불(臥佛) 조각상과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3. 담불라(Dambulla) - 황금(黃金) 사원과 석굴(石窟) 사원
캔디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담불라(Dambulla)라는 작은 마을(邑 정도)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유명한 시기리야(Sigiriya) 요새와 폴론나루와(Polonaruwa) 고대도시의 관광거점이다.
담불라(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가 가까워지면 평원(밀림)가운데 꼭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바위산 아래에는 황금사원(Golden Temple)이 있고 바위산 정상 조금 아래에는 석굴사원(Rock Temple)이 있다.
황금사원 황금불상 / 사원을 향하는 스님 행렬 / 불심(佛心) 깊은 스리랑카 사람들
황금사원은 바위산 밑에 엄청나게 큰 황금색의 좌불상(높이 30m)을 모셔서 사원의 지붕 역할을 하고 그 밑에 대웅전에 해당하는 법당들을 배치하였으며, 널찍한 마당과 또 한 쪽에는 각종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관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황금불상을 향하여 줄지어 가고 있는 스님들과 코끼리의 행렬을 설치해 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이 황금사원 한쪽에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법당을 드나들기에 유물 전시관 입장료인가보다 하고 나도 입장료를 내지 않고 법당과 둘레를 둘러본 후 계단을 올라가 황금불상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가 보니 불상 뒤쪽에 바위산 위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 행렬이 보인다.
나도 무작정 따라 오르는데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지만 더워서 그런지 무척 멀게 느껴지고 힘이 든다.
계단 중간은 구걸하는 사람, 음료수를 파는 잡상인들,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물들을 받아먹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원숭이 떼들로 제법 북적인다. 30분쯤 오르면 정상 바로 밑까지 오르는데 거기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그 유명한 석굴(石窟)사원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결국 황금사원(Golden Temple)과 석굴사원(Rock Temple)은 같은 하나의 사원이었고, 아까 황금사원의 입장료는 이 석굴사원을 들어가는 입장료였던 셈이었다. 이곳을 들어가려면 일일이 몸수색도 받고 전자문(電磁門)도 통과해야 한다. 표를 받는 사람한테 표를 사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구입하면 안 되겠냐, 혹은 돈을 직접 내면 안되겠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애걸을 해도 다시 내려가서 표를 사오라고 막무가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올 수 있겠는가?
옆에서 지켜보던 40대 사내가 재빨리 달려와서 자신이 대신 끊어다 줄 테니 수고비를 달라고 한다.
입장료 1.200루피, 수고비 200루피를 합하여 총 1.400루피(35.000원)다.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돌아설 수도, 내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자신도 없어 결국 돈을 내밀고 올라올 때까지 나무 그늘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3~40분쯤 기다렸더니 사내가 헉헉거리며 올라와 표를 내민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을 겨냥한 전문 심부름꾼(?) 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니 신발 맡기는 곳의 사람이 생각보다 먼 거리라며 심부름 값 200루피(5.000원)가 비싼 것이 아니라고 위로를 한다.
신발 맡기는데 다시 20루피.... 그러나 석굴사원을 보는 순간 모든 억울함이 일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총 다섯 개의 석굴로 석굴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크기와 섬세함, 그리고 화려한 색깔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중국의 용문석굴, 둔황의 막고굴도 보았지만, 결코 뒤지지않는 훌륭한 석굴사원이었다.
석굴사원 앞에서 / 동굴 속 와불상 / 입상과 좌불상
BC 1세기, 싱할라 왕조 때 건축되었다는 이 석굴사원은 암벽 밑의 흰색 벽으로 이루어진 회랑 안쪽에 자연 상태의 바위산을 파낸 5개의 석굴이 연이어져 있는데 제일 큰 제2 석굴은 가로세로 52m×23m, 천정 높이 7m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황금색 불상과 여러 가지 신상(神像)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다섯 굴을 합하면 모셔진 불상이 총 157좌나 된다고 하니 놀랍다. 그뿐만 아니라 천정과 벽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현란한 색채의 프레스코화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제2 석굴 외에도 제1 석굴의 거대한 부처님 열반상, 제3 석굴의 수많은 좌불상과 입상들이 인상적이었고, 화려한 색깔로 그려져 빽빽하게 채워진 천정화 등은 2.000년 전에 조성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중한 불교의 보물이자 인류의 유산으로 생각되었으며 가슴가득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제3 석굴 가운데에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항아리가 하나 놓여있고 사람들이 들여다본다. 석굴 천정에서 작은 물줄기가 쉴 사이 없이 떨어져 항아리에 넘치는데 아무리 가뭄이 들어 평지의 다른 샘들은 말라도 바위산 꼭대기의 이 물은 절대로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이곳 지명이 담불라라고 부르게 된 연유로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의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