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병관 |
세병관(洗兵館)은 삼도수군 통제영으로 쓰였던 건물로 서울의 경복궁과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그 평면적이 크고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국보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통제영을 이 곳으로 옮겨 온 이듬해인 1604년에 처음 세웠다. 이 곳은 수백 년간 통영을 지킨 곳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축물이다. 국보 가운데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올라가 누워볼 수 있는 건물이다.
세병관을 지나 왼쪽 담장을 지나면 12공방들이 자리하고 있다.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에서 비롯됐는데,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각종 군수품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 관급 장인들을 기용했다. 이 장인들이 만든 여러가지 물품 가운데 12가지가 상업적 공방으로 발전하고 급기야 통영의 명물로 등장하게 됐다. 세병관 옆 12공방 구역에는 공방별로 건물이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는 12가지 물품을 제작하는 장면이 입체적으로 구성돼 있다. 12공방은 통영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한편, 세병관으로 이어지는 길가 초입 조선시대 돌장승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벅수'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복수가 와전 된 듯. 문화동에 자리했다고 문화동 벅수다.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표정이 눈길을 끌었다.
세병관 앞의 통영시향토역사관도 잊지 말고 들르자. 통영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세병관과 통영시향토역사관을 양쪽에 두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통제사가 실제로 집무를 보던 운주당도 둘러보자.
중앙시장 |
통영의 전통시장 중앙시장은 4백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시장 뒤편 언덕은 동양의 몽마르트언덕 불리우는 ‘동피랑’이 자리하고 있고, 시장 바로 앞바다는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란 뜻의 ‘강구안’이라 부르는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 곳에는 복원한 거북선도 자리하고 있다. 후드득 갈매기와 비둘기가 날아올랐다가 거북선 위에 내려앉고 사람들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잊지 않고 거북선에 들른다. 아이들은 신기한지 두리번대며 거북선 안을 돌아다닌다. 국운이 휘청대던 시절, 절체절명의 나라를 켰던 분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 머물고 있다.
중앙시장은 해안선을 끼고 있는 시장인 관계로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생선과 석화 그리고 꾸덕꾸덕하게 잘 마른 건어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짓수도 양도 다양하고 많다. 시장 자체가 하나의 큰 볼거리였다. 통제영시절 12공방이 자리하고 있었던 관계로 나전칠기 제품과 누비제품 그리고 바지게떡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통영의 땅을 밟고 공기 한 모금을 크게 들이키면, 바다와 인접해 있는 도시들이 가진 특유의 내음이 코 끝을 자극한다. 그렇게 통영과의 첫인사를 나누고 방문한 통영 중앙시장, 촘촘하게 얽혀있는 길을 따라 상인들과 손님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정겨운 곳이다.
통영 중앙시장과 바깥쪽 문화마당을 따라 쭉 늘어선 상가 중에는 충무김밥과 꿀빵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맛보는 명물들이다.
한편, 충무김밥은 본래 뱃사람들의 먹거리였단다. 유난히도 뜨거운 통영의 햇살 탓에 재료를 넣어 말은 김밥은 금새 상해 먹기가 힘들어 김에는 밥만 넣고 반찬은 따로 먹는데서 유래됐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한입 크기로 말아놓은 김밥과 오징어 무침, 무김치의 조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본고장 통영에서 맛보는 충무김밥은 바닷바람을 한껏 느끼며 먹기 때문에 더 맛있다. 큼직큼직하게 썰어 데치고 무친 오징어는 본고장의 후한 인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통영 활어 시장 속으로 들어가자, 갓 잡아 올린 바다가 가득하다.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배를 따고 살을 가른다. 바람은 차갑지만 생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은 노점에 하루 종일 앉아 자리를 지킨다. 오가는 손님들과 눈을 맞추며 구매 의욕을 가늠하고, 손으로는 물건을 옮기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좌판 벌리고 앉은 시장 상인들이 보이고 머물고 떠나는 배들이 내지르는 뱃고동 소리가 사이사이 들려온다.
벽화의 언덕 동피랑 |
동피랑 마을2007년 벽화 공모전을 통해 '한국의 몽마르트르'로 재탄생한 이곳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아기자기한 벽화가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전망대 구멍가게에서는 커피와 차를 즐길 수도 있다.
통영을 한 번에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언덕 위다. 동피랑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은 담담하고도 고요했다. 건물로 빼곡한 만은 잔잔한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다. 아늑하게 들어앉은 통영은 편안해 보였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둘러보는 통영은 파랑의 터. 하늘의 푸름이 그대로 바다에 담겨 있는 듯 넘실대는 파랑으로 가득했다.
많은 이들이 통영을 찾는 이유는 동피랑 벽화 때문일 것이다. 파란 남해 풍광에 더해진 알록달록한 벽화 골목. 매력적일 것이다. 통새미에서 동피랑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나 가파르다. 하지만 올라갈만 하다. 통영을 눈에 가득 담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벽화 골목을 따라가면 모 드라마를 찍었다던 곳이 있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용정암이 있다.
벽화. 언더그라운드 문화다. 외국의 유명화가들이 주류 미술로 그래피티 위상을 높여놓기 전에는 정말 낙서에 불과 했다.
동피랑 벽화는 유치원 벽화처럼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그림들 또는 트릭아이 같은 재미를 찾는 그림들이다. 언더그라운드의 벽화란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인데 우리나라 관광지의 벽화들은 규격화된 내용과 색깔로만 채워지는 듯해 아쉬움이 없지 않아 든다.
아기자기 예쁜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앨리스며 어린왕자, 뽀로로의 그림이 삶의 현장에 뒤섞여 기묘하게 느껴진다. 여하간 눈길 끄는 벽화들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상대하며 조금은 마을의 활력이 더 살아났을 테다.
'동쪽 벼랑'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은 곳. 통영 앞바다를 지키듯 서 있는 이 오래된 동네는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하늘과 파도와 바람이 머무는 동네. 동피랑으로 떠난 역사문화탐방. 마을은 그물이었나 보다. 어느 날 동피랑 언덕배기까지 밀려온 파도가 골목 구석구석 물고기며 조개며 코끼리까지 남기고 갔다. 담벼락에는 꽃이 피어나고 지붕에는 나무가 자랐다. 모퉁이를 타고 돈 작은 골목을 따라 금방이라도 파도가 밀려올 것만 같다.
마을로 들어서는 여행객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거대한 날개가 그려진 벽화다. 날개 사이에 서면 천사라도 된 듯 근사한 그림이 완성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진 포인트다. 물고기가 헤엄치던 담벼락엔 곧이어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어느 집 굴뚝엔 문어 한 마리가 인사를 하고 바람인지 파도인지 넘실대는 해초들은 여행객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막다른 길이겠거니 하고 돌아본 모퉁이에는 코끼리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지그재그로 마을로 휘감아 도는 작은 골목을 따라 보물찾기하듯 그림들을 찾아내는 것이 동피랑 여행의 묘미. 마을 정상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의 전경과 작은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건넛마을 풍경도 놓치지 말자.
바다를 지척에 두고 오래된 벽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낡을 법도 한데 하나같이 새로 그린 그림처럼 화창하다 했더니 올 봄 낡은 벽화들을 교체하고 새 옷을 입었단다. 여름내 마을에는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휴가를 맞은 가족들과 연인들, 무리지은 친구들과 카메라를 벗 삼아 홀로 떠나온 여행객들까지, 골목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웃음꽃을 피우고 추억을 나눴다. 동피랑 마을,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기억.
다시 생각해보니 이 동피랑 언덕은 좁다란 언덕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작은 집들이 들어 앉은 곳이다. 주민들이 오늘의 하루하루를 살고 먹고 자는 곳이다. 좁은 골목 열린 문 사이로 바로 손바닥 만한 방도 보인다. 한번 스쳐지나가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인연들에게 하나하나 굳이 마음 쓰며 살 필요는 없다는 듯 열린 문을 그냥 두고 무심히 사시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수없이 오가는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은 불편하지 않을까, 발걸음 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골목을 지나갔다.
한편, 이번 기행에 해설을 맡으신 분인 여천 김도용교수님의 고향이 바로 이 곳 통영이다. 동피랑 반대편에 언덕에서 태어나섰다고 한다. 그 곳을 바라보며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감회에 젖은 노년의 모습이 오늘 따라 무척이나 ‘고독(孤獨)’해 보였다.
한려수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달아공원 |
통영 미륵도의 산양 해안 일주 도로 중간에 위치한 공원으로 그 지형이 코끼리의 아래위 어금니를 닮았다고 해서 달아공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로부터 다도 남해와 낙조의 배어난 조망처로 유명하여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한려수도의 장관을 볼 수 있다.
'한산도'와 '여수'의 앞 글자를 각각 하나씩 떼내어 이름 붙인 '한려해상'은 거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까지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1968년 12월 마지막 날 국립공원에 지정됐다. 거제·통영·사천·하동·남해·여수 등 한반도 남쪽 바다를 골고루 에두른 이 지역의 전체 면적은 약 536㎢, 그 중에서 '바다백리길'이란 이름표를 단 건 경남 통영에 뿌리를 둔 여섯 개의 섬뿐이다.
가브리엘레 살바토레스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지중해’에서 전쟁 중 이름 모를 섬에 표류한 해군 병사들은 외부 세계의 전쟁을 잊고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망망대해가 아닌 산과 섬으로 둘러싸인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악다구니 같은 인간사를 잊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한려수도가 손꼽힌다. 거대한 바다를 마주한 공간이 아니라 땅과 인간이 바다를 끌어안은 듯한 지세, 시간이 멈춘 듯한 안락함 속에서 전쟁 같은 도시생활에 찌든 때를 벗긴다.
이곳은 미륵산 정상과 함께 통영에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통영 토박이들은 ‘달애’라고도 한다. 이곳의 낙조는 절경이다. 지는 해와 구름, 그리고 재도, 저도, 송도, 곤리도 등 섬의 실루엣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박경리기념관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신전리 1429-9)에는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고(故) 박경리를 기념하고, 작가의 고향인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설립한 박경리기념관이 소재해 있다.
박경리기념관은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김용익 등 많은 문학인을 배출한 통영의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과 박경리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이 추진돼 2008년 8월에 착공해, 2010년 5월 4,465㎡의 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됐다. 주요 시설로는 다목적실, 사무실, 전시실, 영상실, 자료실 등이 있다.
전시실은 박경리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는 코너를 비롯해 박경리가 생전에 쓰던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박경리의 작품 연보를 비롯한 각종 작품 설명 자료와 작품을 썼던 서재의 실제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박경리기념관에서는 박경리 추모제와 청소년백일장 등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박경리기념관 뒤쪽으로는 2,545㎡의 대지 위에 박경리공원과 1,541㎡의 대지 위에 박경리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박경리공원에는 시비, 친필원고 동판 시비, 어록비 등의 전시물이 갖춰져 있다.
역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은 정말로 부럽고 자부심을 느낀다. 바로 통영이 박경리선생님의 고향이라는 사실과 함께 묘소도 바로 이곳 통영에 있다는 사실.
박경리기념관 뒤쪽으로는 2,545㎡의 대지 위에 박경리공원과 1,541㎡의 대지 위에 박경리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박경리공원에는 시비, 친필원고 동판 시비, 어록비 등의 전시물이 갖춰져 있다.
박경리선생의 일대기를 보면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였다.
1980년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되었다
‘꽃의시인’ 김춘수 유품전시관 |
지난 2008년 '꽃의 시인'으로 유명한 경남 통영출신 김춘수(金春洙.1922~2004) 시인의 유품을 모은 전시관이 고향서 개관됐다.
통영시 봉평동 옛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건물 4층을 김춘수 시인 유품전시관으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유품 목록에는 육필원고 126점과 서예작품, 액자, 통영 두석장(豆錫裝:놋쇠, 백통장식장)과 침대를 포함한 가구류, 10폭 산수화 병풍, 생전에 입던 롱코트, 사진 등 330여점과 이와 별도로 400여권에 달하는 수필집과 사전류를 포함한 서적이 포함돼 있다.
전시관 한쪽에는 김 시인이 생전에 기거하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방을 꾸며 침대와 병풍, 액자 등을 넣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옷가지와 책, 평소 쓰던 소지품 등이 전시돼 있다.
통영시 동호동 63번지에서 출생한 김 시인은 해방 후 고향에서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시조시인 김상옥, 화가 전혁림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통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47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한 이후 2004년 향년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2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 한국 시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꽃
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너는 나에게 ,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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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의 통영 |
통영, 들으면 알만한 문인들과 그들의 시가 여기서 태어났다. 이 아늑한 터에서 많은 문인들이 나고 머물렀다. 시인 유치환, 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이 태어났다. 통영은 유치환 시인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분,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이 학창 시절을 보낸 간창골도 통영이다. 그 인근이 서피랑이다.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은 자전적이다. 여기 간창골이니 세병관 이야기가 나온다. 통영에서 간창골과 세병관을 직접 보고 나면 소설의 한 구절을 찾아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다.
작가가 직접 숨쉬고 느낀 모습을 고스란히 옮겼던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김춘수 시인과 박경리 선생이 한때 초등학교였던 세병관을 다녔다. 유년의 기억이 어떻게 번안되어 책 속에 실렸던가, 기억을 더듬는다.
사람들은 떠나고 그들을 기억하는 무엇들이 모여 있는 곳이 통영이다. 없는 이들을 기억한다는 것, 결국 그리움. 그리움이 가득 모여 있는 곳이다. 언제나 읽을 때 마다 한줄 읽고, 한숨을 한번 쉬고 천천히 다시 읽게 만드는 '흰 바람 벽이 있어'의 시인 백석도 통영과 연이 닿아있다.
문학가뿐일까, 윤이상 선생을 낳은 곳도 통영이다. 천재 음악가였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던 때의 사람이라 여기 머물지 못했다. 동백림 간첩 사건으로 한국에서 자리하지 못하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윤이상. 그를 기리는 윤이상 공원이 있다. 과거 안타까웠던 역사와 그때의 사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곳이 통영인지라, 여행의 발걸음마다 의미가 깊어진다.
통영으로 발길을 떼게 만든 시인 유치환. 녹조소성훈장, 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은, 저항시인이나 민족시인으로만 알았던 시인 유치환을 통영에서 다시 본다. 이미 결혼한 유치환은 다른 이를 사람을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한 미망인에게 20여 년간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고 하니 그 마음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당시 유치환은 남편과 21세에 사별한 이영도 시인에게 편지를 썼다. 통영의 중앙 우체국 빨간 우체통은 수백 통도 아닌 수천 통의 연서를 삼켰다. 5천여 통이라. 가늠이 쉽지 않다. 무슨 말이 그리도 하고 싶었을까. 아마 그 무슨 이야기든 그 어떤 말이든 '보고 싶다'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연인의 지극히 사소한 일도 참 크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든 것을 묻고 싶어진다. 시인은 그래서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편지를 쓴 사람, 글 짓는 사람 심경을 이해한다. 글 속의 뜻이 전해지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속에서 삭는 생각과 감정을 꺼내어 적어내지 않으면 스스로 숨 막힐 듯 답답했을 테다. 그러니 수백 수천의 편지를 적어내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닿지 못한 이 덕분에 행복하였다고 하는 시인. 불현듯 행복이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행복의 정의는 제각각 다르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명경지수 같은 삶을 행복이라 여기는 이가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삶의 흐름에 맞추어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길 수도 있고 격정의 삶을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이 만족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멜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
또 한명의 시인이 통영에서 사랑을 찾았다. 백석이다. 백석의 시비가 남아있는 통영에서 그의 시를 상기하니 평탄한 사랑을 한 건 아니다 싶다. 백석은 통영 명정골에 살던 여인을 마음에 두어서, 며칠 걸려 통영에 보러 왔는데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님이 없는 통영에서, 충렬사 앞에서 혼자 앉아 시를 썼다고 한다. 그 백석의 시비가 통영에 있다. 충렬사 앞 공원에 있다. 사랑은 그들 마음이 변하고 사라짐에 따라, 혹은 사람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스러졌는데도 시는 남아있구나.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중략)
맺으면서... |
구국의 땅, 예술의 도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추. 이 모든 수식어를 포괄하는 도시, 바로 통영이다. 가족들과 함께 '동양의 나폴리' 통영으로 명불허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또 하나의 작은 반도. 한려수도 물길이 시작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다도해를 품은 곳. 예술과 문화의 고장 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경남 통영이다. 볼거리며 즐길거리 넘쳐나는 부촌이라지만, 누가 뭐래도 통영은 봄이 제 맛이다. 얼어붙은 땅을 쑥쑥 밀어 올리는 쑥과 물오른 도다리에 시원한 졸복까지, 남도의 풍요로움을 오롯이 전한다. 그렇다고 또 통영에 봄맛만 있다고 하기엔 섭섭하다. 시인, 작가,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의 흔적이 통영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계절 언제든 즐길 수 있는 통영 속살 여행, 지금부터 출발해보자.
통영만큼 이름난 문화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고장을 보지 못했다.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등의 시인과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우리의 문화 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곳이 바로 통영이다. 도대체 통영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대형’ 예술인들을 길러낼 수 있던 걸까. 통영항에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와 오밀조밀 섬들이 수를 놓은 한려수도의 한 조각…. 6·25 때 이곳으로 피난을 와 잠깐 머문 적이 있던 화가 이중섭이 그림으로 남겨 놓은 충무 시가지의 정경을 보면 그 비밀의 일단을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통영은 한반도의 남쪽 중심부 고성반도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심장부 로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며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바다에는 150여개의 크고 작 은 섬들이 산재해 있어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특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심장부인 통영시는 산수풍광이 빼어나고 기후도 좋아 예로부터 축복받은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한산대첩과 당포승첩, 원문전첩을 이룩한 구국의 성지로서 세계제일의 청정해역을 낀 한국수산의 간판도시, 예술문화가 살아 숨쉬는 예향의 도시이며 한국의 연안 양식어업을 선도하는 수산 중심지이다.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통영에는 관광 불경기가 없다"고. 지리망산의 사량도,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관광특구로 지정된 미륵도(도남관광 단지)를 포함한 150여 개의 섬과 다양한 볼거리, 또 다찌, 꿀빵, 충무김밥 등의 먹거리가 충분한데다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람과 바다와 흙과 돌들이 일궈낸 통영만의 자연환경은 분주한 삶에 쉼표 하나를 찍듯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을 덮고 일어설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책 속의 어딘가로 내가 가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이 일기 때문이다. 그 곳이 통영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여러가지 일상사 때문에 지난해 다녀온 제30차 통영기행문을 이제사 올립니다^^
잘 감상합니다.
감사해요^^
몇일전에 다녀왔습니다 좀 일찍 보고 갔다올걸 못보고 온것이 많군요
네^^
함 가고싶다.잘보았습니다.
감사해요^^
좋은곳에서 입맛도 다지고 눈팅도 멋지게 하셨군요.
파랑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리며 댓글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잘지내시죠???
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잘보고 갑니다. 항상 행복 하세요~~
감사해요^^
덕분에 잘보고 담아서 갑니다~!!감사합니다
네감사
잘봤네여~
네
조만간에 한번 갈 예정인데좋은정보로 활용 할께요
좋은 추억 쌓으세요^^
멋지네요. 가도가도 좋은곳이지요.
마자요^^
통영은 정말 멋진곳이죠? 몇번 여행을 갔지만 중앙시장 회맛이 일품이었던 것 같아요.
동감
박경리의 경력?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니 다시 한번 점고 부탁합니다.
통영은 정말 정감있는 고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잘보고 노래도 잘듣고 갑니다.
족발에 쐐주 한잔~~~~캬
감사해요^^
멋있는곳 이 많은 곳이지요.
그래요^^
멋진 통영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
78년에 잠시 살든 중앙시장..... 3년전 산행후 가본 시장 ... 오늘 여기서 또보니 옛생각이....
계림에서 본 여심님의 마음마냥 넉넉한 소재가 마음을 풍성하게 만드네요....
감사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통영 공부 질하였습니다
꼭 한번 구경가보고 싶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