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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기의 수필세계
- 심오한 성찰, 냉철한 비판, 그리고 솔직한 내면 드러내기 -
권대근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들어가며
문학연구는 ‘그냥 문학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어떤 텍스트로 하여금 예술작품이 되게 하는 문학성을 연구하는 것’이라 야콥슨은 주장했다. 야콥슨식으로 말하자면, 신진기 수필에서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원리 중 제일은 치환이라 하겠다. 치환된 메타포에 의해 체험의 변용이 있기에, 연상과 상상이 일어나고, 이러한 상상력에 의해서 문학은 문학다워진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험의 결과로 드러난 인식을 관련된 다른 사물로 또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변용된 까닭으로 일상은 인상적인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치환작업은 각기 다른 변주법으로 기성의 경험과 새로운 개념과의 재치 있는 접촉으로 수필에 멋과 맛을 주는 것이다. 신진기 수필이 보여주는 쾌미는 아마도 변용의 기술이 아닐까. 그 기술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 발단부이니까, 신진기 수필은 한마디로 ‘발단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필이란 결국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이야기요,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씨알의 절규인 동시에, 그러한 역정을 들여다보는 관점이다. 신진기 문학은 언어를 통해 구축된 삶의 실상이다.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강한 의식의 주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작가는 무엇인가에 자신을 몰입시켜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첫수필집을 내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그는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수필세계에 몰입하고자 한다.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가치 있는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은 어느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신진기 수필집에 실린 작품들은 한 세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겪게 되는 역사적 변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수필의 묘미는 개인적 체험의 사회적 확대에 있다. 신진기의 작품은 개인사적 기록 차원에서 벗어나 촌철살인의 미학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하버드대학의 쿠퍼랜드 교수는 훌륭한 수필가는 구경꾼이요, 방랑자요, 게으름뱅이여야 한다고 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인연이라는 끈을 통해 남과 나를 하나로 묶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그것은 애착에 지나지 않는다. 신진기는 수석을 채취하는 데 취미를 가지고 있다. 사물과 일종의 인연맺기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나그네처럼 끝없는 방황을 계속한다. 그 둥지의 실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열렬히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신진기에게 그 대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수석이거나 자연의 소리다.
작가가 인생의 깊이에 천착하면서 자신의 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위기의 삶을 창조적으로 전환해야겠다고 피력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가족 사랑을 통해 튼튼한 삶을 더 튼튼히 다지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간화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신진기가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세상에 내어 놓는 ‘첫수필집’은 아마도 촌철살인의 예술미학을 보여준 작품집이라는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될 것 같다. 수필과 수석의 교직이라는 나름의 문학관과 취미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앞으로도 더욱 다채로운 수필의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필집은 심오한 성찰, 냉철한 비판, 그리고 솔직한 내면 드러내기를 지향하면서, 적절한 변주와 다양한 전개의 표현 기법을 통해 일정한 문학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타 수필집의 한계를 잘 극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II. 삶의 흔적과 그림자
신진기에 있어서 수필쓰기는 일상을 보다 윤기 있는 터치를 통해 그 빛깔과 체취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감동을 발아시키는 작업이라 하겠다. 수필의 윤기는 문학언어를 사용해서 화려하게 윤색을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느냐 하는 점과 인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따뜻한 눈을 갖느냐 하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신진기는 수필가이면서 수석가이기도 하다. 신진기에있어서 수필을 쓰는 일은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모색의 일환이다. 그는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영원히 기억될 무엇인가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산골에 숨어들어 자연과 함께 숨쉬며 시골스럽게 살았다. 그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일억보다 추억이라고 하지 않는가.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삶에 있어서 거름이 되어주었다고 하는 회고하는 작가이니 만큼, 좋은 수필은 따논 당상이라 하겠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고즈넉한 산사를 가는 것처럼, 막내 삼촌 집으로 숨어든다. 사소한 심부름도 싫고, 칠 남매 속에 있다 보면 내 존재 가치도 없고 해서 까막까치 울어 외는 시골집으로 간다. 앞산과 뒷산이 입맞춤할 것 같은 심심산골이라 밤에는 밤잠 낮에는 낮잠을 자며 허둥지둥 날뛰며 간섭받지 않고 지낸다. 사촌 동생이 왕복 사십 리 통학이 어려워 우리 집에서 학교에 다닌다. 작은집 큰아들인 동수는 나와는 동갑이지만 너무 작아서 내보다 일 년 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둘은 마음이 통해서 방학 시작과 동시에 고향으로 간다. 동생은 동생 집에, 나는 막내 아저씨 집에서 지낸다. 삼촌이 군에 가서 젊고 곱고 뭐든 잘하는 숙모 혼자 살고 있다. 그때는 장가가고 난 후에 군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숙모는 조카들을 어미 세가 새끼를 품어주듯 참 잘 챙겨준다.
소 먹는 풀 한 짐 해주면 삼시 세끼는 해결된다. 나머지 시간은 냇가에서 가서 물고기도 잡고, 멱감기도 하고, 그늘나무 밑에서 한숨 자기도 한다. 저녁에는 동네 형들이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오금이 붙고 숨도 제도로 쉬지 못하는 무서운 얘기도 자주 해주곤 했다. 까까머리 꼬맹이 시절에 간직한 추억들이 내 삶에 거름이 되고 서로 보듬어 주고 토닥토닥 그려 주는 촌스러운 사고력의 기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간은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흘렀다. 어떻게 방학이 끝나는지도 모르고 조용한 시골에 흠뻑 빠져 있었다.
-<객귀> 중에서
아래 인용 작품에서 드러나듯 수필가 신진기는 진솔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수필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면서도 늘 지난 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울림’이란 단어가 주는 영적 파장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는다. 울산문협아카데미 수강생 시절에도, 수필다운 수필쓰기가 어렵다고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일 주일에 꼭 한 편씩 수필을 써서 과제창에 올리기도 하는 부지런한 작가로서 저력을 발휘하여 젊은 작가를, 기성 작가를 게을러 보이게 한, 그는 진정한 청년작가였다. 필자는 배움에 있어서도 예를 갖출 줄 아는 어른이었던 것으로 그를 기억한다. 산업화의 물결로 인간이 기계화되고 인구급증에 따라 기존의 가치관도 많이 변모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선비 정신이 그리운 시대다. 신진기의 <하나 객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먼저 손 내미는 포용력을 가지고, 타인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모든 후배 작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칭찬과 용서에 인색한 나는 정도에 벗어나면 분노를 이기지 못해 소리부터 지른다. 한 이십 명 정도 되는 종업원들이 무서워 일정한 거리를 둔다. 고쳐 보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까칠한 내 성격 탓에 애를 먹는다. 탐이 욕심이고, 진은 노여움이며, 치는 어리석음이다. 그중 노여움만 다스려도 도인이라 하지 않는가. 내 부족한 부분은 마누라가 메워준다. 집사람은 늘 포근하고, 먼저 인사하고, 얘기도 조곤조곤하고, 웃기도 잘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나와는 정반대라 사람들이 천생연분이라 한다. 실은 나도 외로움에 자주 뒤척이고, 뒤끝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고면을 위해 서로 이해하고 깊이 있는 교감이 필요하지 않겠나. 대화는 내가 이기고자 함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얻어 내는 일이 아닐까.
<고면> 중에서
신진기의 수필은 다양한 영역을 두루 포섭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특징은 깨달음과 성찰이다. 위 인용 글에서 보듯, 자기 내면의 풍경 보여주기는 너무나도 고백적이다. 이 작품집에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작가의 인생관이 다양한 시각으로 펼쳐져 있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신진기는 자기 내면과의 대면을 통해서 자신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우리 인간들이 각자 자기 본연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칭찬과 용서에 인색하다’는 역설을 통해 칭찬과 용서의 미학을 구축하고, ‘뒤끝이 없다’는 말로 이를 비유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대화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는 등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제시는 이 수필집의 수준을 가늠해 보게 하는 단초가 된다고 하겠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여러 작품을 통해 자기 성찰과 만족한 삶의 색깔을 드러내고, 세태풍자와 현실비판 그리고 교훈을 안겨주었으며, 아내와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냈다. 기지와 유머가 번득이는 수필뿐만 아니라 대상에서 느낀 감정이 편린이 지성과 맞물려 깊은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왔으며, 수필적 삶을 위해 오늘도 수석을 채집하며, 경영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겠다.
III. 신진기의 수필세계
1. 자연의 순리, 신인간성의 추구
문학은 어느 의미에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인간 행위의 기록이다. 그 안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삶을 보다 견고히 구축해 나가려는 의지와 그 실천자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이다. 문학은 단순한 자기애의 표현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의 하나가 인식이다. 인식은 작가의 사회적 의식이요, 문학적인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문학 속에 내재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신진기의 <하나 객담>은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와 본질을 규명하려는 자세에 설득적 지성이 담겨 있고,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신진기의 수필을 관통하는 한 사상은 인간의 문화, 신체적 지각, 개체적으로 독특함이 인간 주변의 세계를 지각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지각이 인간의 환경에 대한 선호와 이상향, 더 나아가서는 공간을 조직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바로 환경-인간의 관계미학이다. 자연의 순리를 쫓는 경향성은 신진기 수필의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수필 <천사와 불한당>이란 작품은 자연의 위대성을 인생과 결부시켜 의미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학화에 성공했다. 문학은 절실함에서 비롯되고, 그를 자양분으로 해서 커나가는 것이기에 그리움이 있어야 결실의 조건이 충족된다. 이 작품은 자연의 순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진지한 안목이 ‘불청객이 아닌 손님으로, 불한당이 아닌 천사로, 객이 아닌 식구로 살아 가야하리라’이란 어구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어 공감을 자아낸다.
기상 이변은 자연을 순리를 뒤죽박죽 만들고 삶의 방식을 흩뜨린다.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사람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코앞에 와있는 현실이 눈을 감는다고 구름 지나가듯 지나가고, 듣지 않는다고 흘러간 옛 노래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받아드려 닭이 오리알을 품듯이 보듬어야 한다. 겨울 불청객이 아닌 손님으로, 불한당이 아닌 천사로, 객이 아닌 식구로 살아 가야하리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했지만 지금은 기역자 쓰면서 낫을 모르는 세상이 도래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세상이다. 우리의 생활 패턴에 변주를 울려야 하지 않을까.
- <천사와 불한당> 중에서 -
이 수필을 통과하는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는 순명이다. 인간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려는 몸짓이다. 바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려는 삶에 대한 겸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면서 야기된 조작적 행복관, 전도되고 도치된 가치관으로 인간의 역사는 갈등의 연속이 아닌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겨울 불청객이 아닌 손님으로, 불한당이 아닌 천사로, 객이 아닌 식구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이 있다면, 거역이 존재할 수 없는 순명의 세계일 것이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자연의 질서를 어기는 것이 우리 삶과 사람의 감수성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떤 삶의 전략이 가능한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데 있다.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감수성을 통째로 바꾸어 내어야 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는 게 작가의 인식이다. 변화된 세계에서 우리가 선택할 삶의 양식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같이 고민해 보려고 하는 데에서 이 수필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생각나게 하는 수필이다.
문밖을 나서는 자체가 봄 여행이요, 산야를 걷는 자체가 힐링인 계절이라고 얘기들 한다. 나른한 봄날 잠시 짬을 내서 유채꽃 만발한 강변을 걸으며 우리는 반평생을 함께 하며 집게손가락 꾸부리며 묻어둔 속내를 털어내 봄바람에 실어 보내본다. 다시 한 세대를 구상하는 자숙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이 봄을 이겨 내는 처방이 아닐까. 왜 할 말이 없으랴 만은 산 날이 있고 살날이 있으니 빼고 더하고를 적절히 하면 어쩌랴. 사회의 구성원으로 모나지 않게 다가올 반 세대를 지난 반 세대만큼 잘 살아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하리.
-<세대> 중에서 -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물질을 통해 획득되고 정신에 의해서 결실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면목은 자연의 내부에 그 뿌리를 서려 두며, 이를 근간으로 하여 잎을 피우고 꽃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신진기의 문학은 이런 생명정신을 근간으로 한다. 작가는 한 세대를 무탈하게 알콩달콩하며 살아왔음을 아내 덕분으로 돌린다. 배려와 이해로 세대간의 이견은 물론 부부간의 갈등도 좁힐 수 있다는 사내다운 정감을 수필화한 것이다. 세상은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이 수필의 메시지다. 순수로의 눈뜸은 상승 작용을 일으켜 <세대>란 수필에서 ‘비판성’이라는 작가의식으로 드러난다. ‘나른한 봄날 잠시 짬을 내서 유채꽃 만발한 강변을 걸으며 우리는 반평생을 함께 하며 집게손가락 꾸부리며 묻어둔 속내를 털어내 봄바람에 실어 보내본다.’는 진술에서 알 수 있는 바, 그의 소통하고자 하는 정서는 자연과 밀착되어 있다. 이는 자연과 동화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수확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외국 근로자들을 보듬고 살갑게 대해야 한다. 앞선 세대가 악조건 속에서 일구어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때를 생각하면 이제 우리가 그들을 두 배 세배 더 잘 대해 주어야 한다. 지금은 시대는 육칠십년대 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다름 아닌 국경 없는 국제화 시대다 보니 일을 하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 많아졌다. 또한, 국제결혼은 이국인 반려자가 급격히 늘어나 점점 다국적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생김새와 피부가 달라도 그 사람들은 우리 시민이요 국민이다. 지금은 그런 사사로움에 마음을 두고 차별화해서는 안 된다. 늘 따듯하게 안아주고 마음 써야 할 때가 왔다. 지난날 사막의 나라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배려해준 것처럼 우리도 그들은 품어야 한다.
- <사람은 같다> 중에서 -
국제화 시대에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로 오게 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작가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한경쟁시대로 인해 몰려드는 외국 근로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3D 직종에 근무한다. 과연 우리가 그들의 고용에 따른 모든 문제, 차별에 따른 문제, 인권 문제들에 귀 막고 눈 막으면 나와 관계없는 일이 될 수 있을까? 고용불안과 실직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지만, 우리는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작가의 현실인식이다. ‘생김새와 피부가 달라도 그 사람들은 우리 시민이요 국민이다.’라는 진술은 작가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세계시민의 선진의식이다. 하바드대 쿠퍼랜드 교수는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신진기는 진정한 세계시민의 길을 걷는 모범적인 작가다. 사람들은 뉴스와 신문에서 다루어지는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문제 등 답답한 현실을 자신과 상관없는 얘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수만 살아남고 나머지 '대다수를 탈락'시키는 경쟁사회에서, 재벌이나 상위 몇 퍼센트의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면, 이러한 '도태되고 탈락한' 부류에 외국인 근로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지난날 사막의 나라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배려해준 것처럼 우리도 그들은 품어야 한다.’고이렇게 외친들 스스로 관심 가지고 타자의 철학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도주의적 호소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민족주의가 낳은 갖가지 폐해를 경험하며 점차 인도주의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근로자들을 무시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신진기는 이런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의 횡포에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수필을 통해서, 드러내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차별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끝은 같다고 한다. 이왕 외국인을 받아들였으면 살갑게 대하자’는 그의 인류애적인 주장이 가슴을 울린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늙고 병든 짐승은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도태되어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인간만이 연로하신 부모를 돌보다가 죽음의 의식까지 치르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부모공경의 형태가 변화되어 가고 있다. 살림살이가 녹녹하지 못해 맞벌이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아파트란 주거문화가 함께 살기에 불편해서 오는 현상이 아닌가. 그로 인하여 부모를 위탁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까지 왔다. 영육쌍전하지 않고 정신이 중심이 되다 보니, 그 끈을 내려놓을 때까지 보살펴 드려야 한다. 이것이 베이비 세대의 애환인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첫 세대’라 하지 않은가. 이런 현실을 되새김해보면 긴 한숨이 나온다.
- <곡비> 중에서 -
작가는 <곡비>란 수필을 통해 부모를 위탁 관리하는 잘못된 세태를 따갑게 꼬집는다. 그래서 이 수필에는 지성의 섬광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수필에서의 비판적 사고는 지적 작용의 밑거름이 되어 정서와 신비의 이미지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수필의 고상성과 고결성을 불러일으킨다. 수필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사고다. 익숙한 사물이나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수필은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문상이 상주와 눈도장 찍는 것이며 길사나 흉사는 품앗이 형태로 변해가는 현실은 우리의 정서가 너무 메말라가는 것이 아닐까. 결혼식은 획일적으로 뷔페 음식으로 감사를 대신하고 흉사는 장례식장에 간단한 음식으로 가름한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지금 우리 문화는 감정이 없는 인간을 만들고 있다. 울고 웃는 날을 별도로 만들어 국경일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작가는 결말부에서 우리 사회의 삭막해진 문화 현상에 일침을 가하고있다. 이 감정이 없는 문화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울음과 웃음의 카타르시스라는 재미있는 힐링 시스템을 제안한다.
<곡비>란 이 수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 되어버린 우리 장례문화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물론 이런 현실도 결국은 물질주의가 몰고 온 유산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아파하는 걸까? 작가는 문화, 경제, 정치, 가족과 연애 등 오늘날 삶의 모습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여러 수필을 통해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이 수필을 읽으면,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하며,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지 알게 된다. 과거에 대한 보다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흉사뿐이겠는가. 현대적 삶의 형식성과 일상적 삶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예리한 성찰은 당위적 진실을 발견케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감정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걸 경계하고 있는 그의 인식은 일단 형상적 체험이란 언술 전략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생가는 돌아가신 분이 태어난 집을 가리킨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역사에 대한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곳곳에 유명 문화인들의 생가가 늘어나고 그들의 삶이 밝은 조명 아래 놓이는 것이 재미있고 지방 정부 사업에 시민으로서 관심을 즐기는 편이다. 책이나 작품 속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던 아득한 옛적 문인들 모습과 생활상이 어떠했는지 궁금할뿐더러 현재를 있게 한 과거에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 집터는 그분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혁신 도시 개발의 바람을 타고 하나둘 빛을 보지 못한 많은 문인들의 생가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 <생가> 중에서 -
특히 이 수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작가의 성장에 대한 개인사적인 사실만이 아니다. 잊고 있거나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와 우리가 진짜 관심 가져야 할 향토에 대한 발견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애향적인 소재의 발견은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소중한 인연의 끈으로 묶고 있는 작가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질펀하게 녹아 있어 무엇보다도 감동을 준다.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신진기의, 장소를 소재로 하는 이 수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삶터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다. 자신의 흔적이 있는 땅을 사랑하게 됨으로서 그 기억들이 행복을 환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에 대한 완고할 정도의 애정이며, 자기를 실존케 했던 운명적 존재에 대한 애착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가슴에 살아 있는 생가는 항상 푸른 파도가 넘실된다. 작가는 “산업화의 자본에 빌리고, 신자유주의에 휘둘리고 자본이 힘이 되는 세계화 시대에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고 하면서,“이러한 시기에 지자체가 나서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유명인의 생가를 복원해서 민심을 추스르는 것은 작은 몸짓이지만 큰 의의가 있다.”는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애향성은 가정사의 단조로움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무엇인가를 가슴에 지니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생가는 그러한 의미에서 신진기에게 그리움의 공간이다. 생가는 향수를 넘어 성찰의 시간을 부여하는 매게체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작가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부엌은 음식 만드는 공간뿐만 아니라 먹거리를 저장하는 곳간이기도 하다. 부엌을 중심으로 장독대가 햇빛 잘 드는 곳에 있고, 뒤란에는 소금을 담은 독을 위시해 크고 작은 옹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비나 눈을 피하려고 처마 밑에는 땔감 나무가 잘 정리되어 일고 불쏘시개로 쓰는 솔가리와 하루 이틀 땔 나무 정도 부엌 한 곁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바닥은 황토를 이겨 다져 마치 시멘트 포장을 한 것 같이 단단하고 언틀먼틀하여 마당맥질해야 하지만 반질반질하지 않은가. 불에 잘 타지도 않고 단단하고 야문 부지깽이는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호신용 단검과 진배없다.
- <거제도의 추억> 중에서 -
그에게 있어 ‘부엌’은 ‘선인들의 지혜가 묻어있는 예술작품’으로 각인되어 있고, 자연친화적이고 향토적인 작가의 마음 속에는 지금도 추억으로 우뚝 자리잡고 있다. 이 글은 삶의 지혜와 모정 찬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서, 비인간화된 인간과 순수를 잃어버린 우리네 삶의 지향성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점철된 소망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주제 지향성적인 측면에서 인생론적 관점을 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작가는 인간의 이상적 삶을 현실과 격리해 두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은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 집착의 대상이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 행위의 주체가 무엇을 획득하고 상실했느냐에 따라 삶의 윤기와 습기, 평가는 달라질 수 있지만, 삶 자체가 집착의 결과이듯 문학도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곳간은 언제나 시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기억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무한한 삶의 의욕을 느끼게 되고, 생활의 지혜도 만날 수 있다. 신진기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곳간으로 상징되는 부엌은 모성적 원리가 숨 쉬고 있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나는 달걀을 무척 좋아한다. 건강식품이라 하루 한 개 정도 먹으려고 노력한다. 달걀만 보면 중학교 때 아버지 직장에서 얻어먹은 밖은 익고 속은 반쯤 익어 말랑말랑한 반숙이다. 따뜻한 흰밥 위에 얹으면 자연스럽게 터져 밥을 노랗게 물들인다. 간장 한두 방울 놓고 비벼 먹으면 굴 맛이다. 김과 밥과 계란을 함께 먹으면 그 맛은 늘 혀끝을 자극해 입에 침이 고인다. 먹어도, 먹어도 찔리지 않는 달걀 반숙은 그때는 고급 반찬이고, 지금은 건강식품이다. 노란 계란은 색감부터 친근감이 묻어 있어 늘 가까이에 두고 먹는다.
-<달걀 단상> 중에서 -
중학교때 만난 ‘달걀부침’과의 인연이 주는 의미를 새겨 보면, 우리는 작가의 확실히 남다른 인생관에 수긍하게 된다. 인식의 형상화가 빛나는 부분은 주제를 소망으로 일반화하는 데인데,“어린 시절 먹거리가 녹녹치 않았지만 어른 먼저 아이들 다음 어머니 나중이란 법이 가족 간의 배려와 정이 그 공간을 만들어준다. 달걀부침을 먹고 싶어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때를 생각하면 눈물 보에 잔 이슬이 맺힌다. 이제는 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추억의 도시락 반찬 달걀부침은 있는 사람들만 먹든 음식으로 마음 속에 오래오래 기억시켜두어 나태해지는 나를 추스르려 본다.”는 표현이다. 대체적으로 좋은 수필들은 주제의식의 의미화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화 전략들이 매우 체계적이다. 이 작품의 발단부에는 주제의식의 상상화를 위한 추억과 향수가 놓이고, 전개부에는 달걀부침과 아버지에 대한 인연에 얽힌 일화가 삽화로 놓여 있다. 이는 주제의식을 설득적으로 구체화하는 전략이요, 수법이다. 이처럼 소박하고 진실한 경험의 용해와 절제된 감성은 신진기 수필의 품격을 드높인다고 하겠다.
2. 구겨진 현실의 정화와 세태풍자
문학은 자신도 정화해야 하고 시대도 정화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하고, 동시에 현대인이 살아가는 사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신진기의 작품은 자신을 구원하는 글로써 거울 같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의 수필은 등불 같은 수필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자신을 반성적 성찰대 위에 세우는 일이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과 동행자가 되어 숨겨진 그들의 아름다운 진실을 캐내는 일도 모두 중요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이들 작품들은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잊고 있었던 자기에 대한 응시를 통해 무거운 아집을 버리는 일이나, 수석을 캐며 삶의 진경을 담아내는 것 모두가 수필가다운 면모를 보이는 일이다. 신진기 수필의 강점은 한 편의 수필에도 시대정신을 담는다는 것이다. 신변적 수필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본격수필’의 기치를 내걸고 작가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인생은 지름길이 없고 단 한 번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은 없지만, 생각하지 못한 일은 너무 많다. 사람마다 쓰이는 곳이 다르지 않은가. 비록 그 분야에서는 뒤져도 다른 쪽에서는 앞설 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주체로 사는 길이 아닌가.
쌍골죽의 쓰임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능률이 배가 되고 만족도가 최고도에 달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 선택의 좌표들이 한눈에 들어올 때, 고유한 삶의 궤적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곳에서 단역부터 차근차근 히 한 단계식 걸어 올라가야 행복도 도반이 되어 내 곁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 <쌍골죽> 중에서 -
‘인생은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작가는 실존철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신진기의 강점은 한 편의 수필에도 철학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신변적 수필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대정신을 담고 모든 현실을 비판적으로 주목하면서 작가정신을 수필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가치다. “에픽테토스는 ‘어떤 일도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알의 과일. 한 송이의 꽃도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나무의 열매조차 금방 맺히지 않는데 하물며 인생의 열매를 노력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다.”하는 인용문은 한 걸음 한 걸음 노력을 다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작업도 이와 같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강한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 문학을 신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그의 수필은 언제까지나 독자의 사랑과 관심을 끌 것이다. 그에게는 필마의 기운이 넘쳐난다. 쌍골죽의 쓰임처럼 수필쓰기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한 편의 글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면, 그의 글은 힘의 문학을 지향하면서, 수필문학의 위상도 함께 드높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신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사람을 넘어뜨린다. 이천 번을 넘어져야 걸음마를 배운다.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이미 이천 번이나 일어섰던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 자기 뜻을 이루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세찬 비바람도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른 분야는 아는 것이 없어, 주야장천 오직 한길, 유통업에 강산을 세 번 지내며 나날 살이 하고 있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다는 유행가 한 구절이 내 앞을 지나간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있을 일에 면경이 되리라 여겨진다. 사업이나 가정사에 변통만 잘해도 한 갑자 지난 후반전이 별일이야 있겠는가.
- <나날 살이> 중에서
신진기의 수필 <나날 살이>는 자기 관조와 자조가 빛나는 수필이다. 우리가 수필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본래적 자아를 찾는 일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복잡하고도 삭막한 도시 생활과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본래적 자아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수가 많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의 상실은 곧잘 삶에 지친 사람들을 패배주의로 몰아가기 일쑤다. 현실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라는 괴리감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을 어떠한 형태로든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노력은 신진기에게 있어서 일생 동안 끊임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글은 그러한 현실을 기술한 글이다. 외환위기는 작가에게 큰 아픔을 주었으나, 아내가 용기를 주는 바람에 위기를 기회로 잘 극복해 내었다. 상징과 함축으로 주제의식을 내면화한 점이 강점으로 돋보이는 신진기의 수필 <나날 살이>는 현실의 온갖 위기 속에서도 본래적 자아를 지켜 주고 회복시켜 주는, 즉 오직 한길을 향해서 가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측면에서 생활인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술은 마음의 거울이라 솔직하게 얘기하게 하는 물질이다. 술 힘이 몸에 배어들면 다리는 후들 그리고 혀는 굳고 정신은 몽롱하고 눈은 흐릿해 가물 그리며 맨 정신에 시작하여 반정신 되어 끝이 난다. 사람이 한때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봄 햇살에 눈 녹듯 풀리는 것이 술자리 아닌가. 평소에 내외하던 사이라도 술잔이 몇 번 오가면 빈 잔에 마음을 담아 살갑게 가득 채워준다. 이 술이 무슨 술인가 하면 한 잔 먹고 놀라는 술이요 찬물은 입에 뱅뱅 도는데 술은 술술 잘 넘어가서 마신다는 술꾼들의 찬가를 떠올리며 오늘도 어제처럼 반주로 시작하는 술로 또 하루를 보낸다.
- <다모토리> 중에서 -
세상의 모든 것이 수필 안에 놓여져 있는 소도구다. 술잔도 일종의 소품이라고 볼 때, 수필은 하나의 우주다. 수필을 쓸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감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먼저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어야 된다. 이 수필에서 술에 대한 묘사와 단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수필을 쓸 때 여러 가지 자연물이 소재가 되는 수가 많다. 그만큼 수필은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지는 문학이며, 자연물을 문학화하여 표현한 것이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자연물을 소재로 수필을 쓰고자 할 때는 우선 자연과의 일체감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 즉 물아일체의 동화 상태에 빠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흘러간 옛 노래 몇 곡 부르고 두 잔도 안 되는 맥주를 기본 열병을 먹고 가게를 나선다. 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를 다 날려 버리고 전쟁에 공을 세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걸음을 내디딘다. 내일 삼수갑산을 갈망정 오늘은 가지고 있는 나를 전부 내려놓고 거나하게 취해 마음 것 멋을 부린다.”이렇게 작가는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작가는 술의 꾐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 떨어지기 무섭게 마음을 다잡아보곤 한다. 자신의 주량을 수필의 소재로 삼겠다는 작가의 순진한 오기로 인해, 이 수필은 고백문학인 수필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다면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태화동 먹자골목에 가면 일에서 백까지 숫자가 그 집을 대신한다. 우리도 문화의 거리나 생태 골목을 조성하면서 그 분위기에 맞는 고상한 간판들을 달고 있지 않은가. 건물의 생김새에 맞게 삼각형 사각형 마름모로 만든다. 어떤 지역의 간판은 크기와 색깔이 같다. 예술의 거리는 크기만 정해 주면 그 범위 내에서 아주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걸려있다. 깨끗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금만 공을 들이면 아름다운 거리가 만들어지지 않는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말만 그럴듯할 뿐 모두 남보다 나를 우선 챙기기에 바빴다. 자기를 조금만 내려놓고 우리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함께 누릴 수 있으리라.
- <일에서 백까지> 중에서 -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고, 현실의 부조리에 언어로 참여하는 것도 정치적 인간이 하는 일이다. 작가는 현실 정치의 도피자로서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작가란 말과 글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지식인이다. 신진기는 갖가지 형태의 어지러운 거리 간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라는 의식의 필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모두 남보다 나를 우선 챙기기에 바빴다며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를 냉소적으로 격하하고 있다. 간판을 어떻게 디자인하든 그것은 주인의 자유다. 작가의 사무실은 벽면에 ‘산정’이란 두 글자가 간판을 대신한다. 수필가는 두 글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비뚤어진 현실을 정조준하고 있다. 현실의 모순과 억압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정의롭지 못한 무리들이 현실의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수필가가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사회는 암흑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신진기의 수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다. 이러한 이유와 당위성 때문에 작가는 작가로서의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수필은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급급한 문학은 일시적 카타르시스의 도구와 수단은 될지언정 그 이상의 가치는 지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문학을 자기 감정의 분출 수단이나 그를 위한 도구처럼 인식해왔다. 그러나 보다 견고한 가치를 지닌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명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수필의 의식은 개인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에서 사회의식의 형이상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수필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고, 노력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원조’ 간판에 대한 작가의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맛이 좋은 집은 소문이 간판을 대신한다’는 그의 예리한 일침은 촌철살인의 일격으로서 신진기 수필의 가치를 높인다고 하겠다.
외국인이 우리 일자리를 차지하는 비율이 열에 둘 이상이고, 전체 인구 비율은 2할를 넘어선 지 오래다. 두뇌를 사용하는 좋은 일자리는 인재들이 차지한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자리는 다문화 가족의 몫이다. 취업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대부분이 장그래직이다. 하루 이틀 지나고, 한두 달이 지나면, 일이 년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도도새가 된다. 그 새는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한다. 자신이 살던 땅에는 생명을 위협할 만한 맹수가 없고, 먹이가 풍부하여 가장 튼튼한 생존 수단인 날갯짓을 포기한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와 같지 않은가.
-<도도새> 중에서 -
문학은 한 시대의 구성원이 지닌 고유한 정신이며 체온이고, 도도한 흐름이어야 한다. 그 시대와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이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위해 자기의 희생을 소진하며, 그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나 도구의 하나이기에, 문학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 수필에서 신진기는 꿈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도도새’로 의미화하여 문학성을 견인하고 있다. 작가는 실업자 시대 젊은이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직업의 올바른 개념 정립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주문하고자 한다. 신진기의 글을 읽으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무개념적이라는 점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도도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충언이 다음에 나오는 ‘인생은 도전이라 말하지 않는가.’라는 문장과 결합하면서 강한 울림을 갖는다.
돌의 미학은 좀 어렵다. 구구단 외우듯이 암기하는 것도 아니고, 한두 권 이론서를 읽었다고 이치를 깨우치는 것도 아니고, 강이나 바다로 몇 달 다녔다고 물꼬가 터지는 것도 아니다. 관심 두고 깊이 생각하고 좋은 사부를 만나 대화도 하고 현장 실습도 병행해서 한 십 년 하면 말문이 트인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돌 수업이 시작된다. 십 년 더하면 눈이 뜨인다. 마음에 문이 열리고 개안이 되기 시작한다. 나이도 쉰이 넘어야 한다. 십 년 차는 시끄럽고 이십 년쯤 되면 나선다. 다 허상이다. 삼문이 열리려면 삼십 년은 배워야 한다. 눈 뜨고 마음 열리고 머리가 깨이면 좀 알만해진다.
- <돌> 중에서-
인생에 있어 진실 추구를 외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인생을 실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진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전진할 기력마저 빠지고 만다. 이것은 바로 자아를 버리는 일이고 인생 전체를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신진기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새롭고 편리한 것이 나오면 가볍게 그것을 취하지만 신진기는 사라지는 것들의 허전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애정을 주고자 한다. 그는 ‘인생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라 했다. 신작로 길만 다닐 수 없지 않는가’라는 진술을 통해 수석인이 된 운명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참된 사랑을 맛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참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고 영국의 시인 "키츠"가 말했듯이 수필도 그러한 생활의 자세가 요구된다.‘허구한 날 시간만 있으면 돌에 물주고 휴일은 망태기 하나 짊어지고 곡괭이 챙겨 돌밭을 찾는다.’라는 진술은 그의 긍정적인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수석이 있다면 한탄강에서 서귀포까지 어디든 간다. 꼭 탐석만이 목적이 아니다.’ 영혼을 갈고 닦아 더욱 빛내고자 하는 과정이 없으면 수필은 쓰여질 수가 없으며, 진실을 향한 피나는 싸움이 없으면 수석가도 수필작가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운동회 그건 학교를 중심으로 이웃한 마을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용매 제가 된다. 어찌 보면 한 다리 건너면 사돈에 팔촌들이 모여 하는 시골이라 어떤 승부보다는 친목을 돈독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더욱더 농촌화되어 일개 면에 한 학교만 남고 다 없어졌다. 이웃 동네 학생 수가 적어 봉고 차에 태우면 면 소재지 학교에 모여 수업을 한다. 지난 시절처럼 그런 운동회는 뒤안길에 묻어 두고 사진 속 추억으로 갈무리되었다.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그 시절 운동회.
- <동대항> 중에서 -
순간순간의 삶에 보다 성실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각고의 작업을 우리는 자아 성찰이라 한다. 수필을 원숙한 인생의 문학이라 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인생 저편에서 사상을 관조하고 거기에서 지혜를 터득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수필화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비판적 사고는 특히 대상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태도는 잘못된 기존의 개념이나 관념을 새롭게 바꾸는 좋은 방법이다. 이 수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에는 작가정신이 번득이고 있다. 고장난 세상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작가의 외침은 여기서 뿐만 아니라 곳곳에 수두룩하다. 자신의 삶에서 부딪치고 체득되어지는 여러 가지 역사적, 시대적 상황들을 외면하지 못해서 신진기는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투입시켜 공동체정신을 잘 구체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운동회를 동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스게임으로 보는 차원에서 작가는 이 글을 통해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삶의 실천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작가정신은 높게 평가된다.
처가면 어떻고 집이면 어쩌랴 그곳이 내 마음이 머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마누라와 마음이 반반이면 쉽게 잠들 수 있는 곳이 많아 편안할 것 같다. 그때그때 따라 마음이 머무는 곳이면 참 좋겠다. 그게 어려우니 고생이 두 배다. 그래 어쩌랴 조금 부족하고 누추해도 격식이 필요 없고 편안한 복장으로 모로 누워도 좋고 바로 누워도 좋고 삐딱하게 누워도 좋은 내 집이 마음이 머무는 곳이니 별 방책이 없다. 처가든 집이든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다면 그게 보약이지 따로 뭐가 있으랴. 셰익스피어는 좋은 잠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해 주는 살뜰하고 그리운 간호사라 했다.
- <맘이 머무는 곳> 중에서
작가는 까다로운 자신의 잠 습관을 주시하면서 평온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을 수필을 통해서 찾고 있다. “나는 조금 특이 체질이다. 영국 속담에 잠이 짧으면 그만큼 생명이 길다는 말 때문인지 나는 잠자는 시간이 짧다. 깊이 자면 두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반주를 과하게 먹고 일찍 자리에 들면 새벽 두시쯤 잠이 깬다. 아무리 용을 써도 다시 자는 경우는 없다. 추스르고 일어나 잠깐 볼일 보고 전문독자가 된다. 그 버릇이 차곡차곡 쌓여 이런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조용한 시간에 책을 보는 매력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먹어 봐야 맛을 알듯이 그 시간에 읽어 보아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책을 가까이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다 그 감정을 헤아리리라 여겨진다.”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중용의 ‘지미’를강조하며, 순간순간의 삶에 보다 성실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원숙한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기 위해 수필을 씀으로써 세상의 구원에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잠은 건강한 생활인의 자연적 부화라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도 부가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의 공감대 위에서 작가가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독서로 대체함으로써 일상의 행복에 젖어 들고 있는 것은 무료한 일상을 지나가는 시간의 관성이 아니라 창조의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지의 확산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환영할 만 하다고 보겠다.
문학은 어느 의미에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인간 행위의 기록이다. 그 안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삶을 보다 견고히 구축해 나가려는 작가의 의지와 그 실천자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이다. 문학은 단순한 자기애의 표현 수단이 아니다. 수필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의 하나가 인식이다. 인식은 작가의 사회적 의식이요, 문학적인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문학 속에 내재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와 본질을 규명하려는 자세에 깃들어 있는 설득적 지성이 바로 신진기 문학의 힘이다. 신진기는 인식을 수필의 출발점으로 두고 수필을 창작한다. 신진기의 수필을 읽으면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산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자신에의 집착을 엮어 가는 일이다. 원근과 대소를 재면서 자신과의 관련을 현재화시킬 때 집착에 이를 것은 뻔한 이치다. 작가의 일상적 삶은 ‘잠’을 그 거점으로 해서 방향을 잡아가는 하나의 흐름이다. 이 수필집에서 읽히는 또 하나의 강점은 불리를 유리로 치환하는, 자신의 존재적 인식을 교정하는 활달함이다. 인간이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은 무아와 달관을 전제로 한 안심입명을 의미한다.
V. 나오며
작가는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작가는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쳐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에이브럼즈는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문제는 거울이 중요하다. 등불이 중요하다가 아니라 문학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미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런 논쟁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문학이 되어야 한다. 거울이니 등불이니 순수니 참여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의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좋고 싫음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 수필이 상상력이나 예리한 관조, 지적 통찰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채 쓰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진기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나열도 아니고, 결코 관념의 퇴적장도 아니다. 여기의 장도 배설의 공간도 아니다. 화려한 수식어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도 없다. 신진기 수필은 삶과 세계에 대한 고도의 세련된 지적 통찰의 결과물이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 신진기의 작품은 문학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신진기는 글감을 생활 주변의 세태와 그를 둘러싼 사건 속에서 찾아내는 작가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는 버폰의 표현에 정확히 맞는 언행 일치의 삶을 사는 작가다. 내면 풍경이 은어처럼 드러나는 투명한 작가다. 시골에서 자라나, 평생을 자영업에 투신해서 성공한 사람으로서 그의 글은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미학을 남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인생을 달관한 삶의 선배로서 버릇없음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 담겨 있는가 하면, 한 가정을 편안하게 리드해가는 가장으로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편편들에 대한 다소곳한 정감을 수필 속에 용해시켜 내는, 가슴 따스한 작가다. 차분함과 여유에서 나오는 그의 글에는 오늘을 사는 생활인의 가슴 저린 애환이 있고, 따스한 정이 소리 없이 흐르며, 가족에 감사하는 생활의 미학이 녹아 있다. <옹기> <어머니의 곳간> 등의 수필에서 입증되듯 그는 전통을 숭상하며 온고이지신 철학을 바탕으로 살고자 한다.
수필이 정의 문학이고, 수필의 주제 지향성이 인간성의 모습과 인간애의 정신을 밝혀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데 있다면, 신진기의 작품들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개인적 체험의 사회적 확대가 독자로부터 서정적 설득과 공감을 받도록, 작가는 사건에 대한 정신적 반응과 체험의 변용에서 일관된 정서적 매질을 가했다. 여기에 더하여 솔직성이라는 덕목이 녹아 있어, 독자와의 공감대 확보에 성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수필 ‘삼’으로 작가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의 한 켠에 언제나 합리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숫자가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삼’의 세계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인격을 존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삼’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모두가 수긍해야 한다는 논리다. ‘삼세판은 법 위의 법이다’라는 그의 언명은 그가 추구하는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드러낸다. 그는, 탐석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선택의 미학을 실천하며, 행복의 돌을 찾고 있다. 그는 정녕 본받아야 할 이 시대의 지성이요, 정말 솔직하여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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