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생들의 사는 모습은 한마디로 ‘일체개고’이다. 모든 것이 다 고통이란 뜻인데, 우리는 육신 속에 갇혀있어 생로병사에
매이게 되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최근 나의 일상생활을 보면 그것을 뚜렷이 알 수 있다. 3월 셋째주 일요일 1080배를 하고 나서 스님께서 회식비를 주셔서
법우들과 갈비를 먹고 헤어졌다. 그날은 절을 해서 정신도 맑고 좋은 거 먹어서 기분도 좋았다. 다음날은 우리 동생이
쇠고기를 가져와서 또 실컷 먹었다. 일요일 절도 하고 잘먹어서 그런지 한주간 공부도 잘되고 참 기분이 좋았다.
그주 토요일은 연등달기 운력을 하였는데, 절에서 좋은 음식도 주고 막걸리도 한잔 줘서 먹었다.
그날은 절에서 봉사도 하고 맛있는 막걸리를 한잔 먹어서 기분이 최고로 올라갔다. 우리 표현으로 ‘더이상 바랄 것도 없고,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감기가 들어와 있었다. 한주간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고통이 시작되었다. 하도 기침이 심해서 수업도 하루 빼고 방에서 쉬었다. 머리는 띵하고 세상이 다 귀찮았다.
그 와중에 냉장고에 넣어둔 빨기도 누가 훔쳐가서 기분도 더 안좋았다. 저번주 절수행을 해서 좋아진 상태는 다 어디가고
병든 몸을 가지고 방에 누워 있었다.
이처럼 만사가 다 고통인 것이다. 내 몸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내 몸 밖의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세상사 다 고통인데 다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사가 다 고통인줄 알고 살아가는 것하고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의 차이일 것이다.
A타입의 사람은 그걸 모르고 오직 행복을 찾겠다고 배우자와 결혼하지만, 배우자가 오히려 내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괴로워하고, 원망도 하고 마침내는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B타입의 사람은 배우자가
어느 정도 나에게 괴로움을 줄 것이라는 알고 결혼해서 배우자가 주는 괴로움에 잘 대처할 수 있고
또 크게 실망하는 일도 없이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이처럼 세상사가 고통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하고 그저 행복을 찾겠다고 나 외부의 존재나 대상에 대해
집착하다가 결국엔 고통을 받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사가 고통이지만, 우리 불교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부처님처럼 삼매에 들어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나자신과 외부에 대해 지나친 집착을 끊고 고요한 선정에 들어
일상사를 사는 일이다. 그러면 하단전에 있는 행복, 청정 에너지가 잘 작동해서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 약수사 청년회는 수행하기 참 좋은 도량이다. 절과 참선, 스님법문, 그리고 법우들과의 차담 등을 통해
한주간의 피로를 풀고 청정,행복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래서 또 즐겁게 한주를 시작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청년회는 행복 주식회사인 것이다. 괴로운 사람이 오면 금방 행복을 찾을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오면
남에게 행복해 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행복의 기운도 나누어 줄 수 있다. 결국엔 청년회에 오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 져서
행복의 기운이 세상으로 퍼져 갈 것이다.
마음이 괴로우신 분 오세요, 외로우신 분도 오세요, 고통과 고민에 방황하시는 분도 오세요,
행복하신 분도 오세요, 웃음이 가득하신 분도 오세요,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서 행복을 만들어 세상에 행복의 기운을 전합시다.
약수사 청년회 행복 주식회사 회장 남국현 드림
첫댓글 장차 모두에게 행복을 전하고자 열심히 공부한다는 묘길이란 소년을 만났었는데........ 이곳에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네요. 불교의 미래가 참으로 밝으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