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한 장 / 김선자
호박잎을 식탁에 쏟으니 어제의 향기가 풍겨난다. 호박꽃에서 나는 걸까. 아니면 호박잎에 깃든 그리움이 이는 걸까. 호박꽃을 따 주시던 할머니의 굽은 등에서 살랑대던 옷자락, 새삼 그날의 바람까지 향기로 살아난다.
소낙비가 한참 동안 퍼붓고 난 그 무렵 그저께 해거름 녘이었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스테인리스 그릇에 꼬막껍데기를 마주 비비는 듯이 유난히 짝자그르 들렸다. 마치 뉴스에 한 장면처럼 신경 쓰였다. 장대비를 맞으며 ‘만 5세 초등취학’ 철회하라는 시위 현장에서 들리던 저마다의 젖은 소리 같다. 주방 조그만 창문을 열고 깨끼발로 고개를 내밀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두리번거려도 아파트 담장 너머로 보이는 분양 텃밭은 푸름에 물들어 있을 뿐 호젓하기만 하다.
청회색 하늘에 구름 떼가 쏟아질 것 같다. 다시 한번 소낙비를 뿌릴 태세다. 개구리 소리를 핑계 삼아 성내천을 걷다가 좌판에 벌여놓은 호박잎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텃밭 울타리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 호박 덩굴줄기가 치렁치렁 빨간 고무 대야를 덮고 있다. 줄기의 능선 홈에 붙은 초록 꼭지에 콩알만 하게 달린 열매가 예사롭다. 둘레길까지 뻗어 나온 호박잎 덩굴줄기를 들쳐보았다. 열매는 꽃을 이고 달걀만 하게 녹색으로 달린 걸로 알았다. 하지만 꽃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피워내다가 종 모양으로 한데 돌돌 감겼을 뿐. 활짝 핀 꽃은 보이지 않고 열매도 이고 있지 않았다. 제다 피다 만 것처럼 꽃부리를 수그리고 있다. 열매꼭지는 꽃대가 아닌 다른 줄기의 능선 홈에 달렸다.
차광막 하우스를 뒤덮고 있는 호박 덩굴 사이에서 할머니가 등을 펴며 일어섰다.
“손질한 것은 그것이 다여. 삼천 원만 거기 둬.”
황색 호박꽃에 눈길이 간다. 익어서 잘 굳은 늙은 청둥호박 속을 긁어낸 제 몸의 빛깔과 같다. 호박 냄새가 난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운동복 차림인 내 주머니가 비워서 망설이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돈은 다음에 놓고 가던지. 그릇에 손질 안 된 것도 필요하면 더 가져가고.”
할머니의 후한 인심에 대답 대신 ‘호박꽃은 왜 피다 마는 걸까?’ 혼잣말이 물음이 되었다. “야도 이 세상에 나와 피워봤으니 끝을 맺어야지.”하시며 아침에 와보란다. 할머니는 손질 안 된 호박잎을 듬뿍 담아 주며 호박꽃 세 개를 꺾어 봉지에 넣어주었다.
식탁에 펼쳐진 호박잎 덩굴을 손질한다. 긴 줄기와 성숙한 잎에 거친 털이 또 다른 날의 풍경에 닿는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쯤이었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오빠는 6학년이었다. 운동회 며칠 전부터 오빠에게 1등 아니 3등이라도 좋으니 손등에 도장 딱 한 개만 받아보는 게 소원처럼 말했다. 노트와 연필, 상품보다 손등에 찍힌 등수 도장에 관심이 컸다. 손등에 잉크가 때처럼 보일 때까지 지우지 않고 자랑하던 친구들처럼 해보고 싶었던 걸까. 나는 마당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오빠는 내 작은 키는 그나마 장애물 달리기가 유리하다고 했다. 물바가지를 머리위에 얹고, 종이에 적힌 사물을 찾아 뛰는 흉내도 냈다. 각가지 살림살이를 마당에 펼쳐놓고 뛰어넘는 연습도 여러 날 했던 걸로 기억된다.
장애물 달리기 출발선에 섰다. 오빠 말대로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목표물을 향해 뛰었다. 먼저 도착한 두 명이 장애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6학년 도우미는 빨간 고무통을 잡고 있었다. 오빠가 잡고 있던 통에 미꾸라지가 우글거렸다. 손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친구들 틈에서 두 손을 집어넣었다. 엉겁결에 손에 잡힌 미꾸라지를 땅에 떨어트렸다. 흙에서 꿈틀거리던 미꾸라지는 통에서 건지는 것보다 잡기 쉬었을 텐데. 도우미들이 잡아준 미꾸라지를 들고 뛰어가던 친구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는 호박잎줄기로 동그스름하게 감은 호박잎을 내 손에 쥐여주며 뛰라고 했다. 앞서던 친구들도 미꾸라지를 놓친 듯 바닥을 훔치고 있었다. 뛰었던가. 몇 걸음 걸었던가. 그 장면은 흐릿하다. 하지만 운동회를 마치고 손도장을 여러 개 찍은 오빠의 손이 내민 노트를 마당에 집어던지고 생떼를 쓰며 울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줄기에 거친 털이 내 손 찌르라고 싸 줬지. 미꾸라지도 호박잎 털에 찔려 아파서 꿈틀대는데 놔줘야지. 다른 애들보다 나이도 어리잖아.’
나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에 기준으로 본다면 만 다섯 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한 시간씩 걸어갔던 등굣길은 언니 등에 자주 업혔다. 걷기 싫으면 늦장을 부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꾀를 냈던 것 같다. 종례가 끝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서 공책에 자음과 모음을 따라 쓰며 한글을 익혔다. 어느 날은 칠판에 구구단을 쓰던 모습도 가뭇한 기억 속에서 보였다. 나머지 공부였을까. 오빠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교실에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서둘러 봐.” 유년의 오빠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다. 엉클어진 호박잎 줄기에서 잊고 있던 말이 딸려 나온다. 손이 빨라진다. 다 손질한 호박잎을 어찌해야할지.
십삼 년쯤 되었을까. 그때부터 호박잎이 피는 계절이면 오빠가 불쑥 찾아온다. 함께했던 추억이 일다가 그리움 속으로 빠져나간다. 손바닥으로 호박잎 한 장을 문지른다. 어린잎이라 억세지 않고 부드럽다. 내 또래의 친구들보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였을까. 유년의 오빠는 나를 기다려 주고 유독 챙겼던 것 같다. 더딘 내 손발이 되어 주었다. 나도 이젠 성숙한 잎처럼 거친 털을 세울 수도 있고. 행동도 빠르며,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혼자 잘 할 수 있는데. 엄마의 솜씨를 닮아 제법 흉내도 낼 수 있건만. 호박잎을 찌고, 나물로 무치고, 국을 끓이고, 술을 담가서 한잔하자고, 오빠에게 직접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호박꽃은 피다 마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이른 아침 풍경은 달랐다. 활짝 피어있다. 암꽃을 이고 있는 열매도 보였다. 오빠의 캔버스에서 보았던 호박꽃이다. 오빠의 향기가 인다. 인생의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조금도 내색 하지 않던 오빠.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