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기뻐하라
빌 3:1-3
10여년 전에 나온 책으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차별을 위주로 다루고 있으나, 이것을 통해 우리 사회를 해석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이해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쟁이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차별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도 등장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달가워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십 대들은 ‘스스로’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는데, 하면 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해져서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해지는 모순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서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 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남의 추락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흐름으로 오히려 남의 추락을 즐기는 것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종종 나타나는 것이 남의 행복해 보이는 것에 비난의 댓글을 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sns에서 누군가가 강아지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여주며 강아지가 집에 돌아온 주인을 보고 기뻐서 왁 달려오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 주인과 강아지의 영상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영상의 댓글에는 긍정적인 댓글보다는 날 선 글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닥에 매트가 깔려있지 않으니 강아지의 관절이 아플 수 있다는 걱정 아닌 비난 댓글부터 시작하여, 비슷한 이유로 강아지 주인의 부주의함을 꾸짖는 댓글들이 많고, 또 그 비난하는 댓글에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 댓글 그래서 논쟁이 펼쳐지는데 그런 것이 오늘날의 모습들이다 하는 책입니다
일반적으로 굳이 그런 비난의 글을 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씁슬한 마음도 가지지만, 지금 SNS에서는 타인의 자랑 섞인 행복한 영상은 가만히 보지 못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비난의 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일상은 그토록 치열한데, 만족이 안되고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남의 행복을 보니 그냥 보고만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에 만족이 안되기 때문이며, 지금의 자신과 지금의 상황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점점 더 비난과 험담과 모욕이 많아지고 그것이 지나치면 폭력과 행패와 피흘림의 사건들까지 일어나는 거죠.
그런데 그 옛날이나 지금까지 인간이 자신이 만족할만한 상황속에 사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솔로몬인들 만족했겠습니까? 그의 아들 르호보암 인들 만족했겠습니까?
만족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행복도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들이 너무 거칠어지고 황폐해져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살기를 다짐하십니까? 그러면서 이럴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 성경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절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여기에서 왜 끝으로 라고 하느냐
이 끝으로 이 말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결론적으로 이런 의미도 있고, 남은 것은 이란 의미가 있는 헬라어 토 로이폰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결론적으로 이런 뜻으로 이해를 하면 이때까지 1,2장의 했던 그 이야기들의 결론을 말하는 것이 되는데, 실제로 1,2장은 사도 바울의 선교적 상황과 빌립보교회에서 온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받은 위로 그리고 다시 에바브로디도를 보낼려고 하는 의도, 그것을 이야기하기에 결론적으로 라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안맞습니다.
그래서 이 끝으로 라는 말은 남은 것은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데
특히 3장 4장은 이제 빌립보교회가 그들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여러 가지 권면의 말씀이 나오기에 이런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순조롭습니다.
3,4장은 신앙적인 권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 첫 번째가 주안에서 기뻐해라 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여러 처지와 환경을 다 알고 있는 사도로서 이 권면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데 이후에 몇 번을 더 언급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이 기쁨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하면서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하며 이것을 강조 하게 되었습니다.
왜 기뻐하라고 했느냐 기뻐할 수 없는 상황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 있었느냐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안전합니다 하면서 삼갈 것이 있는데
2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합니다.
첫 번째 개들을 삼가라 - 성경에서 개의 이미지는 대부분 불결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소란을 피우며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집나간 개들 들개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대적이나 행악 자들을 종종 개라고 표현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표현도 단연코 그 시대에 개처럼 행동하는, 신앙을 오염시키며 신앙에서 멀어지면서 세상과 타협해가는 그런 사람들을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가까이 하면 그들로 인해서 너희도 오염되고, 불결해지고, 사람들이 너희도 멀리하게 될 것이니 그들을 삼가라 하시는 말씀 이죠.
그리고 행악자들 - 개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이 개들로 표현됐습니다. 그들이 행악하는 자들이니 그들을 삼가해야 한다이면서
그런데 그 다음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했습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 전에 있던 개역 성경에는 손할례당을 삼가라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할례당인데 어떤 할례당이냐 몸을 상해하는 손할례당 그들을 삼가라 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간의 언약의 표시입니다.
남자의 성기 표피를 잘라내어서 그 몸에 항상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는 표시를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할례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왜 손할례당이냐
이건 일종의 워드 플레이, 말장난, 말의 유희 같은 겁니다.
할례는 헬라어로 ‘페리토메’인데 상해는 ‘카타토메’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그들이 행하는 일은 페리토메가 아니라 카타토메다 이렇게 비꼰 것입니다. 할례는 무슨.... 그렇게 사는 것이 할례한 사람들이냐 손할례당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삼가라 한 겁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누군가가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밥을 굶고 기도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 기도는 안하면서 밥만 굶고 있다 그러면서 금식기도한다하니 한마디 합니다.
“네가 하는 것은 금식이 아니라 굶식이야 진짜 금식을 해라” 그렇게 말을 하는데
금식기도할 때는 진짜 금식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굶식하면서 금식기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도 바울도 그런식으로 “그들이 행하는 일은 ‘할례 페리토메’가 아니라, 그저 자기 몸을 ‘상해’하는 손할례 카타토메 다. 그러면서 비꼰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3절에서, 우리가 진짜 할례파다 합니다.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니 그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너희들은 우리도 저렇게 따라해도 되나, 저렇게 믿음생활해도 믿음생활이 되네, 정말 저렇게 해도 되나 하며 마음이 복잡해지고 갈등이 생기고 그래서 마음에 싸움이 자꾸 일어날 것인데,
그들을 삼가라 그러니 기쁨도 사라지지 않냐 .
그래서 이 말씀을 하게 된 겁니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도 우리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많고 기뻐하지 못하게 우리로 갈등이 일어나고 분노가 일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참 악하다,,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챙길것만 챙기며, 다른 사람들은 돌아보지도 않냐,, 참 악하다 말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SNS 댓글 다는 것에도 어떻게 남 기뻐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 함께 기뻐해 줄줄 모르고, 어떻게 그런 것에도 비난하면서도 악성댓글 달고, 그래서 사람들로 낙심하게 하고 자살까지 하게도 합니다
신앙적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인 우리들에게도 경건하게 거룩하게 기쁨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또 문제는 직장에 가보니 불신자들 때문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다른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 동료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질투가 나서, 칭찬받고 높임 받는 것이 질투가 나서 내 마음이 불편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때는 믿는다면서 왜 저럴까, 자기 입으로 믿는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살까 하는 모습 때문에, 내 신앙의 기쁨까지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업하는 분은 사업하면서 "나는 ○○교회 장로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말라고 한답니다.
비즈니스 자리에서 굳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이유가 뭘까?
정정당당하게 거래할 마음이 없는 것 아닌가? 나 그리스도인이니까 믿어줘, 나 그리스도인이니까 호의를 베풀어 줘 하는 것 아닌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스도인이니까 무작정 믿어 달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나는 ____ 교회 장로입니다 할때는 그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식으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적인 기쁨도 자꾸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다 더 빨리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빌립보교회나 지금 이 말씀을 읽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왜요 그렇게 우리들의 신앙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주안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항상 기뻐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시편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이게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성도는 지금 올바른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상황이야 어떻던, 내 주변에 누가 있던, 그 영향에 의해서 내가 기쁨을 잃어버렸다 그러면 아 나는 지금 신앙생활 잘 하고 있지 않구나 하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기뻐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자라난 환경 때문에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참 기쁨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나 많은 책임과 의무 때문에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인해 기쁨을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어서 관계가 힘들고, 기쁨이 없다, 기쁨을 빼앗겼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사람사이에서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없고, 결혼생활 역시 힘들고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도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것을 바꿔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천사들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 했습니다.
예수님 오시는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이 우리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복음이 나를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이,,,, 기쁜 소식이라는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 기쁨이 없다, 잃어버렸다, 그럼 무엇을 잃은 겁니까?
복음을 잃어버린 거며 믿음을 잃어버린 겁니다.
여러분 기쁨을 잃어버린 것을 작게 여기면 안됩니다,
성도는 기쁨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찾아야 합니다.
거룩한 척, 경건한 척, 진실한 척 하기 전에, 기쁨의 마음, 기쁨의 삶, 진정한 신앙의 기쁨을 회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뻐할 일이 있어야 기뻐하지
기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냐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 뿐인데 어떻게 기뻐하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그들 때문에 나의 기쁨이 사라졌는지
정 말 그 사람들 때문에, 그 복잡한 일 때문에 내가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니죠 내가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렸을 때, 정말 기쁨이 내게 없느냐 아닙니다
다른 기쁨을 가지고 삽니다.
사람은 반드시 기쁜 일을 찾아갑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것을 찾아갑니다. 그 대상을 신앙에서 찾다가, 지금 다른 것에서 찾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믿는 것이 없다 그것도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정말 그 사람이 믿는 것이 없느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믿는 것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다른 것을 믿고 있습니다. 돈을 믿던지 사람을 믿던지 자기 자신의 선택 자기 자신을 믿던지 뭔가를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신앙의 기쁨이 없다고 내게 기쁨이 없다 할 때 정말 내가 기뻐하는 것이 없느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앙에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그 기쁨을 찾을 겁니다.
그러고는 세상에서 세상의 기쁨을 찾다가 세상이 기쁨과 함께 주는 공허와 외로움으로 인해서 또다시 난 기쁨이 없다 기쁜 일이 없다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세상에서 기쁨을 찾지말고 그래서 자꾸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그것이 세상의 기쁨의 모순이기에 주 안에서 기쁨을 찾고 주 안에서 기뻐해라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게 된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힌 상황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선포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4장 4절에서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도 합니다.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은 바울이 기뻐하라고 말한 겁니다.
자신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힌 신세이지만 바울이 있는 그 곳이 그리스도 안이었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감옥이지만 영적으로 보니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주님이 나를 품어주고 계시니, 이곳이 주님 안이지 그래서 그 환경, 그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 세상은 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안겨주고 박해와 조롱을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있어야 하는 곳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세상속에서 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도 여기에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노래하는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옛날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집안의 여러 박해 속에서도 굳굳하게 믿음생활 하셨습니다.
남편의 박해, 시부모님의 박해, 주변 이웃 친척들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럼에도 웃음 잃지 않고, 거룩하게 진실하게 사랑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속상한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억울한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찬송하며 풀었습니다.
부뚜막에서 솥에 밥을 앉혀 놓고 그 손뚜껑을 행주로 문지르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
그러면서 솥뚜껑에서 올라오는 김으로 눈이 촉촉해지고, 찬송으로 눈이 촉촉해지면서도 내가 신앙으로 이겨야지, 신앙으로 이겨야지, 내가 더 거룩해야지, 하면서 찬송하며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찬송하고 나면 마음이 풀리죠, 기쁨이 다시 생기죠 그리고 부엌에서 나올때는 얼굴에 환한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 신앙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세워졌고 지금 이 시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 주안에서 기뻐합시다.
주안에서 기쁨을 찾을려고 하고 그 기쁨을 회복할려고 합시다.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요한복음 15:1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래서 제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은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누리며 늘 기뻐하며 사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삽시다. 이 기쁨을 누리며 삽시다
주 안에서 기뻐하며 늘 항상 기뻐하며 세상의 기쁨을 찾다가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며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