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영각사 입구 -(3.6km)→ 남덕유산(1,507m) -(1.4km)→ 월성재 -(2.9km)→ 삿갓골재 대피소 -(2.1km)→ 무룡산(1,492m) -(4.2km)→ 동엽령 -(2.2km)→ 백암봉(1,503m) -(1.0km)→ 중봉(1,594m) -(1.0km)→ 향적봉(1,614m) -(0.3km)→ 설천봉(1,525m) -(2.6km)→ 백련사 -(5.6km)→ 삼공리' 27.2km 코스를 종주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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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南德裕山]
높이: 1,507m
위치: 경남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1,508m)은 북상면 월성리,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전북 장수군 계북면과 경계하며 솟아있는 산으로 덕유산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는 덕유산의 제2의 고봉인데,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켜나 있지만, 남덕유산은 백두 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므로 백두대간 종주팀에게는 오히려 향적봉보다 더 의미 있는 산이 된다.
남덕유산 정상에는 맑은 참샘이 있어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는 찬물이 솟아오르는데 천지자연의 신비한 이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어렵고 그저 그렇게 되려니 하고 인정하기란 너무 오묘한 자연의 신비감이 있다.
등산길에 놓인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나뉘며 상봉이 되는 봉우리는 동봉(東峰)과 서봉(西峰) 두 봉우리가 된다. 그중 동봉이 정상이 되는 봉우리이며 서봉은 장수 덕유산으로 불린다.
남덕유산은 북덕유와 달리 장쾌한 산사나이 기상으로 솟은 바위 뼈대로 솟은 개골산이다. 산 경치가 묘향(妙香)과 금강(金剛)을 닮아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등산길은 가파르고 험준하여 7백여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남덕유에서 장수덕유로 불리는 서봉은 동봉과 사이 황새 늦은목이라는 능선을 갖고 남쪽으로 육십령의 대령을 안고 자수정 산지로 유명하다. 또한 장수 아름다운 토옥동(土沃洞)계곡을 거느리며 그 아래로 장수 온천이 분출되고 있다. 반면에 동봉은 삿갓봉을 거느리고 한 말 거창 의병사의 빛난 한쪽을 기록하고 있다.
남덕유산은 3대 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구들과 싸웠던 덕유산 의병들이 넘나들었던 육십령은 금강(錦江)의 발원샘이며 정상 남쪽 기슭 참샘은 거룩한 논개의 충정을 담고 있는 진주 남강(南江)의 첫물길이 되며 북쪽 바른골과 삿갓골 샘은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황강(黃江)의 첫물길이다.
명소로서 함양 쪽에 서상 영각사와 1984년 완공된 덕유교육원이 있으며 거창에는 사선대, 분설담 등을 거느린 월성계곡이 자리한다. 월성계곡 상류에 위치한 황점마을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이다. 조선조 때 쇠가 난 곳이며 지금은 청소년 여름 휴양지와 민박촌으로 개발되어 있다.
산행은 황점에서 폭포골로 들어 영각재를 거쳐 오르는데 3㎞에 3시간 걸린다.
그 밖의 코스로 덕유교육원에서 참샘을 거쳐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황점에서 바른골이나 삿갓골재를 거쳐 오르기도 한다.
영각사는 신라 헌강왕 2년(876)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31년(1449) 원경(圓境) 대사가 중건하였으며 중종 18년(1523) 성묵(性默) 대사가 중창한 절로 6.25 때 설파(雪坡) 대사가 감수하여 만든 화엄경판까지 불타 버려 1959년 다시 지었다.
덕유산[德裕山]
높이: 1,614m
위치: 전북 무주군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있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해발 1,300m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을 향해 장장 30여㎞에 뻗쳐있다. 북덕유에서 무룡산(1,491m)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1,507m)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만도 20㎞를 넘는 거대한 산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북쪽의 무주로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에 유입된다. 설천까지의 28㎞ 계곡이 바로 「무주구천동」이다. 구천동계곡은 폭포, 담, 소, 기암절벽, 여울 등이 곳곳에 숨어 "구천동 33경"을 이룬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계곡과 장쾌한 능선,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를 갖고 있어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 정상에는 주목과 철쭉, 원추리 군락지가 있어 봄, 가을 산행이 운치를 더한다.
덕유산은 철쭉 또한 아름답다. 특히 주 능선에는 철쭉이 산재하여 있어 "봄철 덕유산은 철쭉꽃밭에서 해가 떠 철쭉꽃밭에서 해가 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북덕유 정상 향적봉에서 남덕유 육십령까지 20㎞가 넘는 등산로에 철쭉군락이 이어진다. 가장 화려한 곳은 덕유평전. 평평한 능선에 철쭉밭이 화원을 이루고 있다. 보통 6월 25일 전후 6월 5일경이 절정이다.
덕유산은 무주구천동을 끼고 있어 여름철에 각광받는 곳이지만 가을단풍으로도 유명하다.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단풍경승을 자아내는데 산속으로 안길수록 더욱 깊고 그윽한 맛을 풍긴다. 대표적인 코스는 구천동 33경을 보면서 북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 하지만 이 코스는 단풍 절정기에 너무 많은 인파로 붐비는 게 흠이다.
조용하고 깊이 있게 단풍을 즐기려면 덕유산 제2의 고봉인 남덕유산이 좋다. 남덕유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빛의 구상나무와 어우러진 단풍이 한껏 멋을 풍긴다. 삿갓재에서 왼쪽 골짜기로 내려서면 원통골. 원시림 지대여서 단풍이 더욱 찬란하다. 하류 쪽에 조성된 잣나무 단지의 푸른빛과 참나무들의 갖가지 단풍 빛이 썩 잘 어울린다.
겨울의 덕유산은 마치 히말라야의 고봉을 연상케 한다. 첩첩산중으로 장쾌하게 이어진 크고 작은 연봉이 눈가루를 흩날리며 선경을 연출한다. 덕유산은 남부지방에 있으면서도 서해의 습한 대기가 이 산을 넘으면서 뿌리는 많은 눈 때문에 겨울 산행 코스로 최고의 인기를 끄는 곳이다.
구천동계곡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다른 계절에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눈 쌓인 능선 길을 올라 정상인 향적봉에 닿으면 눈옷을 입고 있는 철쭉군락과 주목, 구상나무숲이 보여주는 설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향적봉-중봉 구간에 있는 구상나무군락의 설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 한국의 산하
2017년 12월 16일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라 15일 심야버스를 이용해 남덕유산부터 덕유산을 거쳐 삼공리까지 무박 덕유 종주를 하기로 했다. 물론 애초 계획은 육십령에서 시작하는 육구종주였다. 종주 산행에 의견 일치를 본 용준, 흥수, 나 셋이 남부터미널에서 백무동 가는 막차를 타고 가 서상에서 내렸다. 서상 버스터미널에서 육십령은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고 전날 전화로 예약을 했다. 버스 안에서 제대로 잠도 못 잔 상태에서 하차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두대간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굳이 육십령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예약한 택시가 도착했을 때 영각사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영각사에서 종주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겨울 덕유를 즐기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덕유를 찾아 눈길이 잘 다듬어져 있을 거라는 예상(해서, 스패츠도 안 가져갔다.)을 깨고 쌓인 눈에서 인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온갖 추측을 하며 심설을 뚫고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한 달간 가을철 건조기 국립공원 자연자원 및 산불방지를 위해 출입을 통제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마침 16일이 토요일이라 산행을 계획하고 멀리 서상까지 내려왔다. 그 토요일이 15일이었으면 헛걸음을 할뻔했다는 얘기다.
2시간 30분의 이동 시간 동안 버스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예상치 못한 심설을 만나 러셀을 하며 종주를 하는 동안 심설 산행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지쳤고, 전날 음식을 잘 못 먹은 흥수는 식중독 증상에 시달렸다. 해서 애초 삼공리까지 가기로 한 계획을 버리고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는 굴욕(당시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모든 면에서 곤돌라를 타는 것이 현명했다.)적인 상황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산행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용준이 그날 산행 기록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11월 등산방 카페에 올려 옛 굴욕을 떠올리게 했다. 오기가 발동해 그 멤버 그대로 동일한 일자에 다시 도전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2018년 올해는 12월 16일이 일요일이었다. 그럼 토요일 심야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용준은 흔쾌히 찬성했으나, 흥수는 일요일 과 동기와의 계획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 흥수 말에 따르면 몇 동기의 도움으로 그 계획이 취소되면서 산행 참여를 확정했다. 처음 계획은 그 멤버 그대로만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친구라면 굳이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친구에게 공개하고 의사를 타진했다. 전제는 "죽어도 우린 버리고 간다."였다. 그때 이번 계획 때문에 동기 모임 취소에 적극 공헌한 경옥이 손을 들었고, 1월 태백 일출 산행을 같이했던 상욱도 다른 경로로 손을 들었다.
다섯 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각자 서상행 막차를 예매하고 23시 40분에 남부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물론 다음날 영각사까지의 택시는 오후에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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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집을 나서 40분경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미리 와 있던 경옥, 상욱, 용준, 흥수와 인사를 나누고 서상행 버스를 탔다. 예상대로 승객은 우리를 포함 열 명 남짓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불편한 의자지만, 바로 잠을 청해(이를 위해 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왔다.)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나름 잠을 잔 거 같다. 휴게소 도착이 1시 30분경이니, 1시간 30분 동안. 다시 출발한 버스에서 건너편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똑바로 누워 잠을 청했다. 진작에 이렇게 누워 잘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자다 깨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버스가 느릴수록 좋아 기사가 엔진에 이상이 생겨 정시에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을 때 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백무동을 가는 두 등산객은 뒤따라 오던 동서울발 백무동행으로 휴게소에서 갈아타기도 했다. 엔진 이상이 아니라 굳이 버스 두 대씩 백무동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예정보다 5분가량 늦은 2시 35분경 서상터미널에 도착했다. 잠은 2시간도 못 잔 거 같았지만. 지리산은 이동 시간이 네 시간이라 그나마 좀 잘 수 있는데, 덕유가 지리보다 가까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 하긴 버스도 백무동을 가는 중 서상을 거치는 거다. 버스가 서상에 진입했을 때 마을 주변에 눈이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목요일 전국적인 눈이 내렸음에도 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작년과 동일한 환경을 기대했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매일 확인하고 적설량도 세세하게 살펴보았는데. 그나마 작년에도 마을 주변 눈의 흔적이 미미해 실망했었지만, 오히려 산에서는 심설에 빠져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올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희망했다.
바로 예약한 택시가 도착해 다섯 명이 꾸겨 타고 영각사를 향해 달려 3시가 좀 못 돼 도착했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정리를 하는 동안 택시는 떠나지 않고 전조등을 켜 주변을 밝혀 주었다. 작년에도 동일하게 불을 밝혀 주어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는 기사분이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주변 논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어 택시를 타고 오며 기사분의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는 말에 실망한 기분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짐 정리가 끝나 택시가 떠나고 나서 국립공원 입간판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으나 예상대로 어두워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덕유산을 향해 가기 시작한 시각이 3시 2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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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산행 금지'라는 빔이 쏜 글을 밟고 관리공단을 통과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각은 3시 9분이다. 작년에는 산을 오르기 시작해 500여 미터를 갔을 때 눈 때문에 아이젠과 스패츠를 해야 했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어 눈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여기저기 약간의 흔적이 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작년과 동일한 조건을 기대했건만 기대에 못 미쳤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 이날 예보된 비 또는 눈이 비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다만 1,000m가 넘는 산은, 이 계절에는 무조건 눈이라는 다년간의 산행 경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과 덕유산을 둘러싼 산 아랫마을의 가로등 불을 구경하며 - 물론 깜깜한 새벽이라 사진은 한 장도 안 나왔음 - 끝이 없을 거 같은 계단을 올라 남덕유산 정상에 오른 시간이 5시 10분으로 산행 시작 후 2시간 좀 더 걸렸지만, 국립공원이 권장하는 2시간 30분보다는 빨랐다. 그런데 정상을 오르며 앞서가든 나나 흥수나 주변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언제쯤 도착할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예측이 안 되면 불안 -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작년도 깜깜한 새벽에 랜턴에 의지해 올랐기 때문에 주변의 지형지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다만, 계단이 많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작년 정상을 오르는 과정에 춥고 강한 바람에 앙상한 나무에 얼어붙어 얼음꽃을 이루고 있던 조각들이 떨어지며 꽁꽁 언 맨살을 때릴 때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었다. 귀에 맞으면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귀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정상에선 강한 바람과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사진도 안 찍고 바로 삿갓재를 향해 출발했었다. 그에 반해 이번에는 앙상한 가지만 있을 뿐 어디에도 바람에 날릴 얼음 조각이 없었다. 그리고 가끔 찬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전년 대비 따뜻해 전년 기준으로 준비한 옷을 벗어 배낭에 넣어야 했다. 덕분에 정상에서도 여유 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그래 봐야 깜깜한 새벽이라 건질만 한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이럴 때마다 돈을 들여서라도 초고가의 카메라를 사야 하는가? 가끔 고민하지만, 전문가의 아무리 고가라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그런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삿갓재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예상외로 수북한 눈이 나타났다. 날씨가 따뜻해 남동사면의 눈은 다 녹거나 눈이 아닌 비가 내렸고, 북서사면은 눈이 녹지 않아 쌓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역시, 덕유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눈 위에는 서너 명의 인간 발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었다. 눈이 있어 반가웠지만, 통제 기간에 사람이 지나갔다는 것은 의아했다. 혹시 영각사에서 삿갓재까지는 개방 구간이었나? 이런 추측을 하며 몇 명의 등산객이 다져 놓은 눈길을 따라 삿갓재를 향해 갔다. 와중에 등산로 옆에는 개만한 크기의 다양한 짐승 발자국이 보여 호기심을 자극했다. 눈의 수준은 작년 대비 4/5 정도로 꽤 많이 내린 거 같았다. 눈이 깊었지만, 이미 누군가 길을 만들며 갔기에 그나마 작년보다는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래도 남덕유 정상에서 삿갓재 대피소에 이르는 4.3km 구간은 꽤 많은 눈이 쌓여 있어 힘겹게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7시 43분이다. 우리가 정상을 떠난 시각이 5시 17분이니 2시간 26분이 걸렸다. 작년에 2시간 46분이 걸렸으니 20분가량 일찍 도착했다. 작년과 같이 대피소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판단해 아래층 취사장으로 갔다. 그런데 취사장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여름이었나 가을에 대피소 공사를 한다고 폐쇄한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 구조를 바꾼 거로 보였다. 경옥과 상욱 두 동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운데 우리 셋이 먼저 배낭과 아이젠을 벗어 한쪽에 두고 용준 와이프가 준비해준 떡국 육수 재료와 알타리김치, 내가 사간 떡국과 만두, 흥수의 물로 떡국 끓일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날 즈음 두 동무가 도착해 떡국이 끓는 동안 이슬이를 지리조의 감말랭이를 안주로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 말소리(순간 재빨리 이슬이는 치웠다.)가 들리며 요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에게 통 두 개를 가리키며 하나는 잔반용 하나는 삼겹살 기름용이라고 일러주었다. 그 말에 상욱이 지리산 대피소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해서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멤버가 지리산 대피소에 삼겹살 구우러 가기로 했다. 상욱은 2월을 얘기하는데. 이슬이 네 팩을 나눠 마셔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했다. 어쨌든 용준이나 나나 一口二言이라고 뱉은 말이 있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조건을 충족하면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 요원이 나가고 진한 사골육수의 떡국과 경옥의 김치, 용준의 알타리와 함께 이슬이로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있는데 다른 요원이 나타나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었다. 사실대로 영각사에서 출발했다고 했더니, 요원이 원래 입산 시간이 5시로 우리는 그걸 어겼다고 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3시가 입산 시간이었는데, 아니었나? 해서 요원에게 물어보니 공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덕유산은 5시가 입산 시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했다. – 그럼 3시 이전에 산행을 시작하는 덕유 종주 산악회는 다 불법이라는 얘긴 데… -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본인이 서상 도착 버스 시간을 아는데 규정대로 하면 이 시간에 여기 도착하는 등산객이 있을 수 없다고. 아무래도 우리가 작년만 생각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 잘 자고 있던 요원과 슬리퍼를 끌고 화장실을 가던 인부로 보이는 사람을 깨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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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침을 먹고 대피소를 떠나 향적봉을 향한 시각이 9시 10분경이니 거의 1시간 20분이 넘게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노닥거렸다. 남덕유 정상을 떠난 지 1시간 여정도 지나서 맑던 하늘은 사라지고 짙은 운무가 우리를 감쌌다. 해서 5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취사장에서 나오니 그 운무가 싸라기를 뿌리는데 강한 바람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가 아니라 싸라기가 되었겠지만. 예보에는 12시가 지나 비 또는 눈이 온다고 했었는데. 그 싸라기를 보니 오늘 예상보다 더 좋은 산행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어느 국립공원에나 있는 출입 통제문을 지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보고 놀랐고, 지금까지 이해가 안 됐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문을 지나 향적봉을 향하는 등산로에는 눈은 수복이 쌓여 있었지만, 남덕유 정상부터 삿갓재까지와는 달리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물론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이게 정상적인 통제 기간의 등산로였다. 그리고 상고대가 우리를 반겼다. 삿갓재까지의 길은 대피소 공사에 따라 상주 해야 하는 요원과 인부(슬리퍼 끌고 다니던)의 발자국이었다.
인간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는 등산로를 보니 반가웠다. 이제야 작년을 재현하고 그 굴욕을 극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동엽령에 이르는 6.2km의 구간은 우리가 러셀을 하고 가야 하는 길이었다. 1,000m가 넘는 산에서 이런 광경을 보기가 쉽지 않고 더욱 앞장서서 러셀을 하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라 경옥에게 러셀 해볼 기회를 줬다. 약 200m가량 경옥이 앞장서 눈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산행을 주도했다. 이후 용준, 흥수, 내가 번갈아 가며 러셀 해 동엽령까지 갔다. 물론 동엽령 이후도 앞장 서 있었지만, 그 이후는 러셀이 필요한 구간이 아니다. 겨울 덕유 눈꽃 산행이라고 산악회에서 모집해 오는 코스가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설천봉, 향적봉을 거쳐 동엽령까지 왔다 돌아가는 거다. 해서 이 구간은 하도 많은 등산객이 다녀 오히려 다른 면에서 걷기가 힘들다.
용준, 흥수, 내가 번갈아 러셀을 하며 앞장서고 그 뒤를 경옥이 가장 후미에 상욱이 섰다. 그렇게 무룡산으로 가는 중 싸라기는 어느 순간 눈으로 바뀌었다. 그 눈은 폭설에 가까워 더욱더 가는 길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나마 작년에는 눈은 내리지는 않아 주변의 경치라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눈을 품은 운무에 갇힌 신세가 되어 시야가 채 10m 되지 않아 그저 눈을 뚫고 가는 즐거움만 있을 뿐이었다. 용준과 나눴던 얘기 중 이제 눈은 지겨우니 앞으로 남은 겨울은 눈이 없는 산을 가자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달려 10시 19분에 무룡산에 도착했다. 작년 식중독 증상에 시달렸던 흥수가 지쳐 쓰러졌던 봉우리다. 그 쓰러진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번에는 작년의 그 모습을 재현해 다시 사진을 찍었다. 경옥과 상욱은 그 모습을 다시 재현하고. 그리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 잠깐 사진을 찍느라 벗어둔 배낭을 보니 눈으로 덮여 있었다. 대충 눈을 털어 다시 매고 향적봉으로 향했다. 중간에 휴식을 두 번 더하고 그 중 한 번은 상욱이 배가 고프다고 해 간식으로 빵을 먹느라 쉬었다. 그리고 동엽령이 가까워졌다고 흥수와 대화를 나누며 가는데 둘이 기억하는 동엽령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 앞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 보였다.
데크로 이루어진 공간에 컨테이너 건물이 나타났다. '긴급재난 안전쉼터'라는 대피소였다. 뭐 대피소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나 컨테이너형 대피소는 처음 보는 거라. 그리고 작년에는 없던 물건이다. 그 시각이 12시 20분이다. 애초 계획은 동엽령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는 거였지만, 아침을 푸지게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배가 고프더라도 라면을 끓일 상황이 아니었다. 대피소에는 요원 두 명과 등산객 한 명이 눈을 피해 쉬고 있었다. 그리고 동엽령을 반환점으로 하는 산악회 등산객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해서 간단히 간식으로 사과만 먹었다.
이제는 눈뿐만 아니라 좁은 등산로에서 부딪히는 등산객도 피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백암봉에 도착한 시각이 1시 49분이다. 향적봉이 2.1km 남았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백암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1km가 동엽령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구간 중 가장 힘들다. 중봉에 도착한 시각이 2시 20분이니 1km를 걷는 데 31분이 걸렸다. 속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닌데 매번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향적봉을 향하는 길에 향적봉의 명물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계속 길을 가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2시 45분이다.
거기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테이블을 잡아 자리를 잡고 점심 준비를 했다. 그때 경옥이 발가락에 이상이 생겨 걷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럼 당연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다. 애초 경옥의 보디가드로 상욱이 왔지만, 산을 잘 아는 친구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해 흥수가 경옥과 리조트로 내려가 우리와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조트 곤돌라 마감 시간이 오후 4시였다. 해서 곤돌라를 타기 위해서는 4시 이전에 설천봉에 도착해야 했다.
라면 끓는 속도가 늦어 두 동무는 허겁지겁 라면을 먹고 곤돌라를 타기 위해 서둘러 설천봉을 향해 떠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와 있는 두 동무의 짐은 우리가 정리해 가져가기로 했다. 그리고 상욱, 용준, 나 우리 셋은 남은 라면을 여유 있게 먹고 국물에 햇반 하나와 이것저것 때려 넣고 돼지죽을 끓여 먹었다. 용준이나 나는 밥까지는 생각이 없었는데 상욱이 두 개 넣으라는 햇반을 하나만 넣는 것으로 타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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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세 친구가 배 터지게 점심을 먹고 뒷정리를 깨끗이 한 다음 백련사로 내려가기 시작한 시각이 3시 45분이다. 뭘 먹던 우리가 버너와 코펠을 꺼내 뭘 하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았다. 최근에 이 사실을 깨닫고 장거리 산행을 위해선 버너와 코펠을 버리는 짐을 꾸리는 초심 때의 산행으로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아니면 식사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속도를 높이든가. 시간이 한정된 산악회와 같이 움직일 때는 특히 중요하다.
백련사로 내려가는 2.4km는 지리산 피아골보다는 약간 덜 심한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로 많은 등산객이 짜증 낼 만했다. 우리가 하산하는 계단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을 보며 버스 시간 6시 10분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속도를 내어 내려갔다. 그 하산길은 지금까지 와는 달리 운무가 사라지고 날이 환히 밝아 오고 있었다. 건너편 산의 계곡 사이에서 올라가는 구름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상욱 말 대로 덕유가 우리에게 운무와 맑은 하늘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내려가는데 백련사를 1km 남겨 두고 겨우살이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500m 지점에서는 거의 모든 나무에 겨우살이가 있었다. 그중에는 새빨간 열매가 달린 것도 있었다. 그 겨우살이를 보자마자 사진으로 찍었지만, 폰의 상태가 좋지 않아 봉 감독에게 바로 알려주지는 못했다. - 여담으로 봉 감독이 이미 겨우살이를 찍기 위한 명당으로 찍어둔 장소였다. -
4시 41분에 백련사에 도착해 6km 떨어진 탐방지원센터를 향해 달렸다. 향적봉을 떠나 백련사를 지나고 센터를 향해 달리다 향적봉까지 경옥이 뒤에서 따라오던 상욱이 사실은 산행의 대단한 고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 그대로 달리고 싶은 본능을 숨기고 보디가드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숨은 기인이 많다. 경옥도 "조용하게 강하다!"라는 말을 생각나게 했는데. 워낙 요란한 빈수레가 설치는 세상이라. 어쨌든 우리의 1차 목적은 센터 아래에 있는 터미널까지 가 6시 10분 차를 타는 것이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간 경옥과 흥수도 우리 쪽으로 와 합류하기로 했다. 절경이라는 무주 구천동 계곡을 주마간산으로 달려 관리공단을 지난 시간이 5시 55분경이다. 직전에 구천동에 도착한 흥수가 식당에 자리를 잡았으니 그리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6시 8분에 먼저 온 두 동무가 자리 잡은 식당에 다시 모여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버섯전골을 주 안주로 뒤풀이를 했다. 뒤풀이의 주 화제는 두 가지로 첫째가 조용하게 강한 두 친구와 둘째는 왜 작년보다 더 힘드냐였다. 강철 체력 용준이 이런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첫째는 두말하면 잔소리로 두 동무에게 격찬을 보낸 뒤 두 번째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중에 흥수의 "한 살 더 먹었잖아!"에 다 같이 웃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작년과 달리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리는 가운데 러셀을 하며 오른 것과 향적봉에서 삼공리에 이르는 8km의 구간이 마지막 체력까지 소모해서가 아닐까다.
7시 10분 구천동발 대전행 버스를 타려면 7시에는 버스정류장으로 옮겨야 해 급하게 술을 마시고 먼저 세 친구가 터미널로 가 버스를 잡고 있고 남은 술은 흥수와 내가 비우고 터미널로 따라갔다. 버스에 타고 정신을 차리니 대전이었다. 대전에서 경옥은 인천행 버스를 타고 나머지는 강남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11시였나?
'영각사 입구 → 남덕유산(1,507m) → 월성재 → 삿갓재 대피소 → 무룡산(1,492m) → 동엽령 → 백암봉(1,503m) → 중봉(1,594m) → 향적봉 대피소 → 삼공리' 26.14km(트랭글 기준), 평속 2.2k/h, 총 소요 시간 15시간 4분의 종주 산행이었다.
남덕유에서 향적봉을 거쳐 백련사로 내려가 삼공리까지 가는 종주는 권하고 싶지 않다.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는 것이 답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조용하게 강한 친구를 확인한 산행이었다.
남덕유에 두 번 올랐지만, 두 번 다 새벽에 랜턴에 의지한 산행이라 남덕유의 참 면목을 보지 못해 아쉽다.
첫댓글 이번 산행은 예상에서 그닥 벗어나지를 않았지??? ㅎㅎ 향적봉에서 사진 안찍은거 빼면...
벗들이 덕유종주를 할때 나는 편집하면서 내내 그곳만 생각했다오...아직도 편집중..
@우서락 빨이 끝내고 산에 가자
가야 할 산이 많다.
암튼 이제부터 국립공원 입산가능 시간이 5시로 늦춰 질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비를 잘 세워야 할 듯하다.
기래?...규정을 위반할 일이 계속 생기네...
@우서락 그러게 말이다.
내가 설천봉까지 곤돌라타고 올라갔다가 비오는 날 백련사 무주구천동으로 하산하면서...
이 코스 잡은 놈 원망 많이 했지..^^
그래 그건 아니다.
곤돌라 마감시간이 4시인 이유는 스키리조트 오전 스키 마감이 4시, 그 다음 브레이크 타임에 슬로프 정비하고 야간 스키 개장 준비하기 때문임. 하여튼 부러움
아... 스키를 안타니 아나
@雲峰 곤돌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슬로프 이름이 '서역기행'이야. 뜬금없지?
@Angela ㅋㅋㅋ
야간에 곤돌라 안하고 리프트만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