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와 신혼
"오빠. 다리가 다시 가려운 것 같아." 지난 초봄, 남편과 동네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걷던 길의 절반쯤 걸었을 무렵 내가 말했다. 남편은 "그래? 어서 집에 가자. 날이 쌀쌀해서 그런가." 라며 방향을 돌린 걸음을 재촉했다. 빨라진 걸음에 허벅지 사이와 뒷다리, 엉덩이까지 가려워졌다. "오빠. 천천히 좀 걸어. 아프단 말이야." 예민해진 내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알겠어. 천천히 가자. 조금만 참아." 남편은 바쁜 걸음을 다시 늦췄고 우리는 말이 없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나는 헐레벌떡 바지를 벗어 던지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괜찮아?” 남편이 화장실 밖에서 물었다. 샤워기로 다리, 허벅지, 회음부에 물을 퍼부은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살가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간지럽기 시작하면 정신이 흐릿해지고 날카로워지는 내가 싫었다.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온 다리를 내려다보며 물기를 닦고 로션을 듬뿍 발랐다. 나는 거실로 나와 남편에게 말했다. “짜증 내서 미안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두드러기만 나면 자꾸 화가 나버려.” 남편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린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닫으며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남편과 나는 올해로 결혼 2년 차 신혼부부다. 우리는 18개월의 결혼생활 중 15개월을 두드러기와 함께 보내고 있다. 두드러기가 처음 발병한 것은 결혼 4개월 무렵이었다. 아직 개수대의 물을 틀어놓고 용변을 보고,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던 때였다.
어느 금요일,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가 다리, 등, 배가 가려워졌다. 수백 개의 바늘로 몸을 찌르는 듯하고 피부와 뼈 사이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도 같았다. 아무리 긁어도, 물로 씻어도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증을 견디다 못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아 의자에 앉아있는 내 몸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바쁜 응급실에서는 외상이 없는 나를 ‘경증환자’로 분류했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혈관주사로 스테로이드를 투약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으며, 가려워도 긁지 말라는 비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두드러기는 긁는 즉시 그 옆으로 계속 퍼진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돌아와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침대 시트 위에 기어 다니던 벌레가 내 귓구멍과 생식기를 통해 들어온 것 같은 가려움을 느꼈다. 그리고는 밤새 침대에 다시 눕지 못하고 온몸을 물로 씻고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두드러기는 해가 뜨니 놀랍게 호전되었다가 저녁이 되자 다시 나타났다. 응급실을 다시 찾아가 처치를 받았고, 목구멍까지 붓게 되면 응급 상황이니 병원으로 다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남편은 그날 잠에 들었다가도 자꾸 깜짝 놀라 일어났고, 그때마다 나를 깨우며 “숨 쉬어! 숨 쉬고 있어?” 했다. 나는 나대로 가려울 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울며 몸을 씻고 닦기를 밤새 반복해야 했다. 나는 '차라리 피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3일을 반복하고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기간 내내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병원에서는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있으셨나요? 두드러기의 70프로는 이렇게 원인을 찾지 못해요.” 하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도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으니 입원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남편도 내가 없으니 그나마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스테로이드를 먹고 맞으며 얼굴이 달처럼 부어올랐다. 이런 나를 남편이 여전히 사랑할까 궁금했다. 아픈 것도 힘들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건 더 힘들 것 같아 매일 링거를 매달고 환자 샤워실에 가서 머리를 감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고 말릴 때마다 더 큰 병에 걸려 혼자 씻지도 못하는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남편이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결혼 전의 나는 매일 활력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자주 웃고 매일 운동했다. 그 활력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기에 그가 나를 버리고 건강한 여자를 찾아 떠나지 않을까 무서웠다.
증상이 먹는 약 만으로도 잡힐 때쯤 퇴원을 했다. “이제 여기 절대 오지 말자”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침실에서 쉬다 나와보니 남편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며 ‘두드러기와 싸우던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남편의 이마를 짚어보고 내 손가락을 인중에 가져다 댔다. 숨을 쉬고 있었다. ‘숨 쉬어, 숨 쉬어야 해.’ 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 후 지금까지 ‘피부가 없어지면 좋겠다.’ 생각할 때마다 소파에 누워있던 그를 떠올린다. 나 혼자 싸우고 있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한 번 더 힘을 내고 싶어진다. 내 옆의 사람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내 살갗을 만져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다.
첫댓글 하아 저도 스트레스 극심히 받으면 랜덤으로 이렇게 나오는데 그 가려움은 정말..
'피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너무 공감됩니다.
원인도 못찾고 시원한 치료도 없으니 얼마나 괴로우실까요..
그래도 남편이 계셔서 한편으로 든든하시기도 할테고, 그 미안한 감정도 굉장히 와닿습니다.
오늑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지내는 사람에게 아픈 모습이 짐이되지는 않을까 걱정만했는데 이렇게 적어내려가보니 신기하게도 뭔가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가려움에 대한 묘사가 촘촘해서 읽으며 저도 모르게 팔다리를 긁었네요. ‘이제 여기 절대 오지 말자’라는 말에서 남편이 했던 마음고생도 느껴지네요.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두드러기와 혼자 싸운 게 아니라고 느낀 것도 같은 맥락일지가 궁금합니다. 혜원이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에요. 글 고맙습니다.
누워있는 남편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보태서 써봐야겠어요. 상온님 공감해주시고 자세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을 쉬며 또 계속 살아가는 일. 때로는 참 쉽지 않죠 상온? 그래도 우리 오늘치 일인분의 숨을 마음껏 쉬어봐요. 저의 작은 마음도 응원을 담아 보냅니다.
둘째 아이가 피부가 약한 편이라 늘 방심하면 귓볼이 찢어지고 긁으면 금새 피가 나고 딱지가 일어 눈을 잘 못떼요. 가려운 상황과 그 안에 벌어지는 갈등이 자꾸 눈에 그려지네요.. 지금은 많이 호전되 가고 계시리라 믿어야할지.. 돌보는 남편에 대한 얘기도 나와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전보다 더 단단해지시기를 마음으로 기도드려요..남편의 고충섞인 힘든 말이 중간에 더 전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봐요
아이가 가려워하고 또 긁은 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게 얼마나 힘드실까요. 다행히도 요즘 많이 호전되서 양약도 끊었고요 외형상으로 올라오는 두드러기는 거의 없고 뜨거운 속열을 한방으로 다스리고 있어요. 남편의 어려움이 조금 더 나타나면 독자들의 이해가 쉬웠을 것 같네요. 나무늘보님 자세히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자녀분이 어서 나아지길 기도할게요.
아토피나 알레르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저는 사실 그 아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제가 그런 적이 없다보니 어떤 고통일지 짐작이 어려웠거든요. 겪지 못하면 못 느낀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공감을 못한 게 부끄럽네요. 혜원 님 글 읽으면서 더욱더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도 느껴졌어요. 언제나 생생한 감각을 전달해주는 글 감사합니다.
변명에 불과하다니요. 고쌤이 지금 떠올리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 자체에서 따뜻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걸요. 참 아이들을 아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선생님이신 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생각해보면 모두 각자의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제 어려움은 오히려 증상이 바깥으로 보이는거라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속에서 곪기전에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요.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가려움증을 어쩜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하셨는지 다른 분들처럼 저도 제 다리에 두드러기가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쓰다듬었답니다. 통증과 함께 싸우는 남편 분의 마음,그 안의 사랑, 예전과 다른 몸에 소원해질까 싶은 두려움도 잘 전달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알게 모르게 사라지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함께 할 분이 곁에 계시기에 숨 쉴 수 있으시다는 혜원님 응원드립니다. 글 감사합니다.
두드러기가 어떤 고통일지 몰랐는데, 혜원 글 읽으니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새로운 감각 하나 얻은 기분이에요. 잘 읽었어요. 남편분과 함께 잘 싸워가시길 바랍니다! :D
피부가 없어지면 좋겠다. 생각할 때마다 소파에 누워있던 그를 떠올린다. 나 혼자 싸우고 있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한 번 더 힘을 내고 싶어진다. 내 옆의 사람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내 살갗을 만져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책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타인과 관계맺을 때 언제나 누군가로서 상대방을 만난다 어떤 면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설정이 각자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페르소나보다 더 우선하기도 한다.> 저는 혼자였다면, 나만 있었다면 세상에서 사라졌겠다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옆에 있는 누군가 때문에 삶에 발 붙이고 살았던 것 같아요. 혜원님 곁에 같이 싸우고 있는 분이 있어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