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쓰는 글
고 동 주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명료한 답을 찾지 못하여 곤혹스런 표정이 된다. 겨우 한다는 말이 “수필은 가슴으로 써야 한다”며 알쏭하게 얼버무린다.
사람은 저마다 생활습관이 다르듯 글을 쓰는 습관도 각각이 아닐까.
종종 수필가들의 수필작법을 대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길들여진 나의 수필작법은 나에게 고정된 나만의 것이지 결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의도적으로 글을 쓰지 못한다. 꼭 써야 되겠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테마가 정해진 원고청탁이 오면 거의 외면해 버린다.
다향(茶香)과 함께 어우러진 대화 중에서나 뜻밖의 사건이나 사물과 충격적인 만남이 있을 때, 혹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사색에 잠겼다가 어떤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수필과 연결되는 착상을 하게 된다. 그런 착상이 머리를 스칠 때 가슴속에다 사랑의 보료를 깔고 조심스럽게 안아 들인다. 그 순간부터 착상을 심안(心眼)으로 살핀다. 마치 어렵게 탐석된 수석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모저모 살펴보는 기분으로….
먼저 그 착상이 연결시켜 주는 주제를 설정해 본다. 나는 이 글 속에 어떤 삶의 의미를 그려낼 것인가. 그 핵심은 어떤 색깔로 부각시킬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런 주제를 살아 움직이게 할 소재를 불러 모은다. 가능한 한 신선한 소재를 만나기 위하여 현장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적절한 소재가 탐색되면 구상까지 머리에서 굴려 본다. 그런 작업은 새벽잠에서 깨어났거나 차를 타거나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계속된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싶으면 드디어 원고지에 요점을 정리해 보고 곧이어 초벌쓰기에 들어간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 내지 두세 시간이면 끝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조급해진다. 곧바로 퇴고(推敲)의 단계로 진입한다. 틈나는 대로 끈질기게 달려든다.
주제와 무관한 군더더기는 없는가. 소재와의 연결은 자연스러운가. 삶의 탐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 글의 여백은 적정하며 문학성은 어떤가. 문장은 제대로 짜여졌으며 어미(語尾) 처리의 반복 부분은 없는가. 흐름이 자연스럽고 호흡은 고른가. 교훈적이거나 아는 체한 부분은 없는가. 어휘 하나하나는 적절하게 선택되었는가. 빠진 부분은 없는가 등. 흔히 수필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온갖 기준을 동원해 놓고 애를 태운다. 이렇듯 퇴고는 가장 부담스러운 과정 중의 하나다.
수십 번을 거듭해도 그때마다 더 다듬고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쩌면 퇴고의 매력인지 모른다.
도입 부분의 서두에 썼던 글이 읽어볼수록 신통찮을 때가 많다. 보다 더 감미롭고 신선한 다른 말이 없을까 고민한다.
종결 부분도 그렇다. 이것 말고 글 전체에 번쩍 생기를 끼얹으면서 여운을 남기는 은은한 말은 없을까. 여기에서 또 며칠을 두고 고심을 하게 된다.
글의 제목은 주제가 떠올랐을 때 미리 정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 단계에까지 작업이 추진되었을 때 생각해 본다. 주제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을 탐색해 보고 가능하다면 진부하지 않은 신선한 제목을 택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의 선에 이르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데, 체제의 흐름이 부드럽고 무리가 없는지를 알기 위하여 소리내어 읽어 보기도 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사랑이 부족함인가. 내 관조(觀照)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인가. 일주일 정도 계속해서 퇴고를 해도 이것도 수필이라고 썼는지 자탄할 때가 있다.
고치고 또 고치고 더 고칠 여백이 없도록 복잡해졌을 때 중간 정서를 한다. 중간 정서한 것을 붙들고 또 며칠 더 퇴고를 하다가 더 고칠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원고지에 옮긴다. 세 번째 정서가 된 원고가 비로소 발표무대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발표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외면당할까 또 걱정이다. 설령 읽는다 해도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썼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일까 봐 두렵다.
작은 감동이라도 전달할 수 없는 글이라면 차라리 쓰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스한 가슴으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보고 그 속에서 진솔한 심언만을 골라낸 수필을 쓰고 싶음은 분수에 넘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밖에 길이 없음을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