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오백리길 '이정표' 따라다니다 만난 힐링
수몰 아픔 간직한 천혜의 풍경 대청호
대청호 대전 동구 추동 <슬픈 연가> 촬영지 부근 호반. 수몰 지역이다.
왼쪽이 내탑동이다 .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호반낭만길은 대전 동구 마산동 윗말뫼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수변 따라 난 덱과 솔밭은 전국 유명 둘레길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좀 더 들어가야 호반이 드러난다.
‘<슬픈 연가> 촬영지’라 부르는, 호수 모래사장 일대는 ‘아름답다’는 형용사로 묘사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전형의 ‘아름다운 풍경’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호반은 기하학적인 곡선 패턴을 이루며 완만하게 이어진다.
반도처럼 호수 가운데로 길쭉이 나아간 모래밭에 덩그러니 놓인
나무 한 그루가 적막과 공허의 미감을 만들어낸다.
대청호를 ‘내륙의 바다’라고 하는데,
이 바다는 도시의 시끌벅적한 해수욕장보다는 외딴 섬의 고요한 해변 같다.
추동 슬픈 연가 촬영지 부근 일대 호반.
가운데 모래밭은 수위가 오르면 섬이 된다.
‘뜬섬’이라고도 부른다.
휑한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할 무대가 된다.
<나의 절친 악당들> 같은 현대물이나 <창궐> <역린> 같은 시대물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한국에서 ‘경치 좋다’는 곳의 전형적인 풍경과는 동떨어졌기에 이국적이라고도 평가받는다.
고요함과 적막함의 매력에 빠져들 때 이런 말이 들려왔다.
“실향민은 통일되면, 고향 땅을 밟을 희망이나 품잖아요.
수몰민은 고향에 갈 수 없어요.
물을 빼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대전향토문화연구회 백남우 회장의 말이다.
그는 “수몰민들은 꿈속에서 물 빠진 고향에 간다”고 말했다.
백 회장 외갓집이 추동 바로 옆 내탑동이다.
포털사이트 지도에 ‘내탑동’을 검색하면, 경계선 안은 ‘물 반, 산 반’이다.
<슬픈 연가> 촬영지인 추동도, 옆 동네 내탑동도 수몰됐다.
백 회장은 어린 시절 이곳에 자주 놀러왔다.
지금은 물에 잠긴 내탑 수영장에서 멱 감던 기억도 또렷하다.
영상 예술인들이 ‘뜬섬’ 일대를 촬영 무대로 삼았다.
풍경에 대한 시선과 감상은 주관적 경험에 따라 나뉘기 마련이다.
“가끔 백발노인들이 대청호 호숫가에 앉아서
물에 잠긴 고향 수면을 쳐다보다 가곤 해요.”
이들이 이국적 정서를 느낄 것 같지는 않다.
<슬픈 연가> 촬영지 부근엔 ‘물속마을 정원’이 있다.
담장, 정자, 장독대로 만든 정원이다.
이곳에 살던 사람에 관한 기록은 없다.
수몰의 기억은 그저 ‘관광 상품’으로, ‘장식과 조경’으로 존재한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대청댐 건설은 1968년 금강유역조사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1975년 착공해 1981년 완공했다.
용지 보상 대상 지역은 충청남북도의 ‘4군 2읍 11면 86리’다.
편입 면적 중 수몰지는 1447만528㎡, 이주민은 4075가구 2만6178명이다.
대청호오백리길은 충남북고 산과 물을 잇는 고리다.
주변에 <슬픈 연가> 촬영지가 있다.
대청댐과 대청호가 충청의 지도를 바꾸면서 사람들도 쫓겨났다.
군사정권 시절 ‘나라가 하는 일’에 저항하기란 힘들었다.
충청도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뿔뿔이 흩어졌다.
경기도 남양만 간척지로 700가구, 충남북 집단 취락지 720가구,
공단 이주 350가구 등 모두 1770가구가 집단 이주했다.
수몰 전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 주민들은
이주 정착촌인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5리로 가면서 덕유리의 느티나무를 옮겨 심었다.
타의로 떠나는데 ‘자유 이주’라고 명명했다.
2305가구다. 백 회장은 “(자유 이주 중) 서울로 가 도시 빈민으로 산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남양만 간척지로 이주한 이들은 염분 많은 토양 때문에 농사에 애를 먹었다.
‘대덕군(대전)’과 ‘청원군(충북)’을 합한 게 대청호인데,
옥천군은 대청호 면적 중 가장 넓고, 대청댐 건설로 가장 큰 손해를 입었다며
‘옥천호’로 명명하자는 제정안을 2018년 충북도 지명위원회에 내기도 했다.
병풍부소병풍바위라 부르는 부소담악의 기암절벽 길이는 700m다.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국외자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
지금 대청호 일대는 수몰 이전의 기억을 망각한 듯 무심하게 고여 있다.
40년 세월이 흘렀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축적하며 원래 그러했던 곳처럼 자연스러운 풍광을 이룬다.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부소담악(芙沼潭岳)의 기암절벽(병풍바위)도
원래 그런 모습인 양 호수에 700m 길이로 늘어섰다.
주민 A씨는 “대청댐이 생기고 50m가량 물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송시열이 금강산을 축소한 듯하다고 ‘소금강’이라 불렀는데,
옛날 모습은 물속을 바라보며 그저 헤아릴 수밖에 없다.
한때 환경오염에 시달렸던 대청호는 ‘생태’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생태관광지역 지정제는 ‘환경적으로 보전가치가 있고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체험·교육할 수 있는 지역을 지정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옥천읍 수북리~동이면
석탄리(안터)~안남면 연주리에 이르는 ‘안터 지구’를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했다.
향수호수길, 장계관광지, 선사공원, 둔주봉, 향수바람길이 이 지구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