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떠나는 놀토 나들이

[이구아나]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투어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오는 놀토.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의미 없이 지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수원 화성 나들이. 조선시대 과학과 건축, 군사 문화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다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을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다. 토요일 오후가 행복해지는 화성 나들이 코스를 소개한다.

‘수원 화성으로 토요 나들이를 다녀와야지’ 하고 결심한 뒤, 곧바로 파트너를 물색했다. 친구와 동행하면 나들이가 두 배로 즐거워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물망에 오른 건 아들 송주(11)의 단짝 지훈이. 초등 4학년이 될 때까지 세 번이나 같은 반을 한 인연으로 가끔씩 영화도 보고 등산도 하면서 품앗이 체험 학습을 해온 사이다. 다행히 지훈이의 주말 스케줄은 비어 있는 상태. 오랜만에 착한 엄마, 다정한 아줌마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금요일 저녁에 다시 한 번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훈아, 내일 만나자!’
놀토 아침, 오랜만에 떠나는 나들이에 두 녀석 다 들뜬 표정이다. 전철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가이드북으로 가져온 <화성에 가자>에서 만화를 보며 낄낄거린다. 그래,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자!

PM 1:00
수원 화성의 얼굴, 팔달문
드디어 수원 화성 도착.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팔달문이다. 팔달산에서 이름을 따온 화성의 남문인데, 원래는 문 양쪽에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 성문만 남았다고 한다. 수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화성행궁으로 갈까 하다가 중간에 내린 이유는 팔달문이 수원 화성을 동서로 나누는 남쪽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바깥쪽에 반원 모양 옹성을 쌓아 출입문을 보호한 것이 팔달문의 특징”이라고 설명하자, 아이들이 “적군이 쳐들어와도 끄떡없겠다”며 “한번 들어가 보자”고 조른다. 남대문처럼 도로로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 유아를 동반한 때는 버스 안에서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PM 1:20
정조의 효심이 깃든 화성행궁
팔달문에서 화성행궁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융릉)에 참배하러 올 때 머무르던 곳. 행궁 앞에 도착하자 성을 쌓는 데 효자 노릇을 한 거중기와 유형거가 발길을 붙잡는다. 거중기는 조선시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놀라운 발명품. 유형거는 짐을 싣기 편하게 만든 수레다. “거중기에는 도르래가 8개 있어요. 위에 있는 4개가 힘의 방향을 바꾸고, 아래 4개는 힘을 절반으로 줄이는 역할을 하죠. 그러면 힘이 얼마나 덜 들까요?” 모형 거중기를 설치하던 아저씨의 질문에 둘이 동시에 “16분의 1이오!”라고 대답한다. 관람객을 위한 설명에 마치 거중기를 만든 정양용을 만난 듯 반가운 눈치다.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 있는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에 들어서자 집사청, 유여택, 경룡관 등 아름다운 건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인 곳은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진찬연을 벌인 봉수당. 떡과 다식, 강정, 탕, 편육, 만두 등 70가지 음식과 12가지 소별미를 차린 잔칫상을 보니 ‘와’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난다. 지훈이가 먼저 “우리 엄마 생일에 이런 음식 해드리면 좋아하시겠다”고 하자, 송주도 질세라 “나도 엄마 회갑 때 이렇게 차려줄게” 하고 약속한다. 정조의 효심 덕분에 효도 교육 한번 제대로 했다.
장락당도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마음이 깊이 배어 있는 곳이다. 혜경궁이 만수무강하기를 바란 정조는 중국 한나라 태후의 거처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와 ‘오래도록 즐긴다’는 의미의 장락당을 지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봉수당과 장락당을 서로 통하게 만들었다는 것. 조선시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조인데, 어머니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행궁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는 길, 추억이 될 만한 기념품이 없을까 고민하다 한자 스티커 체험 활동지 ‘화성행궁 백배 즐기기’를 샀다. 건물의 이름과 의미, 위치를 오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모르는 한자를 서로 물어보면서 열심히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들. 말 그대로 천 원의 행복이다.

PM 2:30
난공불락! 서장대와 서노대
화성은 규모가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군사적 방어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성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화성행궁을 빠져나와 화성열차 승강장 방향으로 언덕길을 오르면 ‘화성장대’라고 불리는 서장대가 나온다. 장대는 장수가 성 안팎을 두루 살피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곳이다.
서장대 뒤편에 있는 서노대도 화성의 대표적인 군사시설.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 높이 지었는데, 팔각형으로 견고하게 쌓은 게 특징이다. 팔달산 꼭대기의 서노대에 오르니 아래에선 잘 보이지 않던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을 달래서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난공불락 요새를 꿈꾼 옛사람들의 지혜를 만나려면 서장대와 서노대는 필수 코스. 산책로 입구에 약수터와 매점이 있어 관람을 마친 뒤 약수를 마시고 간식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PM 3:35
관광열차 타고 화성 한 바퀴
여기서 문제 하나. 수원 화성의 둘레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5천744미터. 문루, 수문, 장대, 노대, 포루 등 현존하는 시설물만 해도 41개에 달한다. 화성 전체를 걸어서 돌아보는 건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 반나절 나들이를 계획했을 때는 화성 관광열차를 이용하는 게 정석이다. 팔달산(성신사)에서 출발해 화서문, 장안공원, 장안문, 화홍문을 거쳐 연무대까지 3.2킬로미터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데, 원하는 곳에서 내릴 수 있다. 요금은 편도 어른 1천500원, 어린이 700원.
화성행궁을 관람한 뒤에는 대부분 열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에 표가 금방 매진된다. 열차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운행 시간표를 확인하고 표를 미리 구입한 뒤 서장대에 올라가는 것이 현명하다. 성곽을 따라 돌면서 서북각루, 서북공심돈, 북포루, 장안문을 바라보니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수원의 매력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PM 3:55
수원팔경,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화홍문에서 내리실 분 계세요?”라고 묻는 안내 방송에 손을 번쩍 들었다. 화홍문은 광교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 수문.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하는데, 일곱 개 무지개다리에서 장쾌한 물보라가 이는 모습을 일컫는 ‘화홍관창’은 수원팔경 가운데 하나다.
화홍문은 아름다운 수문이지만 군사적인 기능에도 충실한 것이 특징. 성벽에는 총이나 활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총안을 만들었고, 수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해 외부 침입을 차단했다. 성벽에 뚫린 총안을 보더니, 아이들이 총 쏘는 시늉을 한다. 역사 교육 효과도 만점이다.
방화수류정도 화성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에서 달맞이를 기다리는 ‘용지대월’도 수원팔경에 속한다. 각루 앞에서 아이들에게 “십자(＋) 무늬를 찾아보라!”고 미션을 줬다.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찾아보는 게 살아 있는 체험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찾았어요!”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던 송주와 지훈이가 십자 모양 벽돌을 발견한 장소는 방화수류정 서쪽 벽면. “더하기 표시 같지 않냐?” “난 병원 표지판처럼 보이는데.” 둘이 힘을 합해 미션을 수행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역시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PM 5:00
나도 명사수, 국궁 체험
화성의 동쪽 건물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건 ‘속이 빈 돈대’란 뜻이 있는 동북공심돈이다. 오직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끓인 물이나 기름을 붓는 현안이라는 구멍이 있다. ‘소라각’이라는 별칭이 있다는 설명에 건물 안으로 가보니,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이 나선형이었다.
나들이 마지막 코스는 활쏘기 체험. 사대에 선 초등학생들의 표정이 조선시대 궁사들처럼 진지하다. 기본자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실습에 들어갔다. 화살은 30미터 과녁에 반도 못 미치고 떨어졌지만, “재미있다” “또 하고 싶다”는 반응이 대부분. 처음 만져본 활을 다루느라 힘들었지만,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궁 체험장은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하절기(3~10월)에는 오후 5시 30분까지, 동절기(11월~이듬해 2월)에는 오후 4시 30분까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험료는 1회 10발에 2천 원.
유네스코가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까닭을 몸으로 느낀 즐거운 하루였다. 아이들 중간고사가 끝나면 ‘친구와 함께 떠나는 놀토 나들이’ 2탄을 계획해봐야겠다.

수원화성 체험학습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체험해볼까?
수원화성운영재단은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에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체험’을 실시한다. 분장과 의상, 기물 등을 갖춘 뒤 행렬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인데,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일반인과 외국인도 신청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희망일 2주 전까지 가능. 참가비는 개인 1만 원, 30인 이상 단체 7천 원이다. 체험에 참여하면 화성행궁 관람, 국궁 체험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문의 031-251-4449

수원 화성 대중교통 정보
강남역 지하철 2호선 3번 출구 3000번 좌석버스 이용, 북수동 하차
잠실역 지하철 2·8호선 6번 출구 1007번 좌석버스 이용, 화성행궁 하차
수원역 11, 13, 13-3, 36, 39번 일반버스 이용, 화성행궁 하차
수원고속터미널 64, 112번 일반버스 이용, 종로삼거리(화성행궁 앞) 하차

취재·사진 김혜원 리포터 pinepo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