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오신 할머니
곽해룡
할머니가 바늘귀에 실을 끼우신다
할머니가 바늘귀에 실을 끼우실 때 보면
할머니가 마치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 같다
낙타도 훌쩍 드나들 것 같은 바늘귀에
할머니
가자미처럼 한쪽으로 쏠린 눈으로
입도 비틀고
몸도 비틀며
부자처럼 쩔쩔매시다가 드디어
바늘귀를 통과하셨다
눈도 입도 다시 반듯하게 펴진 할머니
드디어 천국에 오셨다
-《어린이와 문학》 (2022 겨울호)
까치에게 사과를 구경분봄날 콩 씨를 뿌리면허락도 없이 빼먹는다고눈총 주었던 것미안해 까치야여름이면새빨간 토마토만 쪼아 먹는다고눈총 주었던 것도미안해 까치야가을이면잘 익은 홍시만 쪼아 먹는다고눈총 주었던 그것도미안해 까치야콩도, 토마토도, 홍시도본시 내 것만은 아니었는데우리들의 것이었는데미안해, 까치야.
-동시집 『무당벌레』 (2022 글나무)
꿩
김규학
꾸엉-
수꿩 한 마리
산과 들이 울리도록
소리쳐놓고
푸드덕 날아간다.
별것 아닌 일에
큰소리쳤던 내가
친구들 보기 부끄러워
슬그머니
숨었던 것처럼
봄볕에 졸다가
소리친 것이
저도 부끄러웠을까?
-동시집 『동시 동물원』 (2022 도서출판 LH)
발의 허물벗기
김순영
한 뼘도 안 되던
아이 발
줄넘기가
깡충 키우고,
웅덩이가
폴짝 키우고,
축구공은
뻥뻥 키웠다.
낮잠도 찾아와
솔솔 키웠다.
작아진 신발은
발이 벗어 둔 허물.
-《아동문학평론》 (2022 겨울호)
소리, 쏘리
김춘남
날마다
시도 때도 없다.
사거리 우리집
창문 밖
요란한 싸이렌 소리
미안하다는 듯
구급차는
쏘리쏘리쏘리쏘리
앞서 달리던 차들이
길을 만들어 준다.
소음 아닌 소음이던
쏘리쏘리쏘리가
이제는 짜증나지 않는다.
명절 전날 갑자기
몸을 다친 할아버지를
구급차가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2 겨울호)
징검돌
박방희
하나 둘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리가 되었다.
뚜벅뚜벅
길이 되었다.
-《동화향기 동시향기》 (2021 가을호)
시간을 자르는 가위
박소명
어제는
신나는 체육 시간을 잘라
금세 끝나게 했고
오늘은
신기한 실험 시간을 잘라
다 못 마치고 말았어.
절대 눈에 띄지 않게
절대 소리 나지 않게
자르고 남은 토막도 흘리지 않고
자른 자국도 남기지 않고
어디 숨어서
싹둑싹둑
가위질하는 걸까?
-동시집 『와글바글 식당』 (2022 국민서관)
바빠 바이러스
이성자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에서 살던 시간을
그릇 속에 잡아두고
시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
바빠바빠바빠바빠바빠...
하루빨리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지
그런데 이게 뭔 일?
어느 날부터 아빠 엄마가
바빠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어
눈만 뜨면 바빠바빠 하거든
벌을 받는지도 몰라
마음대로 자연을 잡아 가둔 죄.
-동시집 『바빠 바이러스』 (2022 고래책빵)
산비탈 밭
정경란
돌을 골라도골라도
자꾸 나오자
"돌이 새끼를 치나벼?"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삼촌이
밭에 쪼그리고 앉아
먹지도 못할 돌을
땀 뻘뻘 흘리며 캐낸다
거칠었던 산비탈 밭이
보들보들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연간집 『말하는 별이 있다』 (2022 브로콜리숲)
눈길
최정심
나보다 먼저 종종종
걸어간 친구가 있구나
발 시렸겠다
배도 고팠겠네
그래도 친구가 있나보다
흰 눈과 함께 하고 싶은-
-동시집 『들바람은 누구랑 노나』 (2022 반딧불)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박선미
첫댓글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 ^^
잘 읽었어요^^
저는 '까치에게 사과를'(구경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네요.
첫댓글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 ^^
잘 읽었어요^^
저는 '까치에게 사과를'(구경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