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장마차 ]
바람이 자꾸만 포장마차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 바람과 함께 허리 구부정하고 허름하게 옷을 차려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포장마차 문을 열고 들어오신
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추우시죠?"
하며 어묵국물 한 컵을 종이컵에 따라드리니 주름
진 손으로 국물을 드시던 할머니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시며
"뭔 놈의 날이 갑자기 이렇게 추워진다요." 하신다.
"그러게요. 할머니, 갑자기 추워져서 더 추운 것 같
네요."
할머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시더니 쳐진 눈을
고개 젖히고 크게 뜨며 물으신다.
"이 순대가 얼마 씩 하요?"
"할머니, 순대가 일인 분에 2,000원 이예요."
할머니께선 고무줄 바지 허리춤을 만지시더니 작
은 동전지갑 하나를 꺼내시며 혼잣말을 하신다.
"6,000원아치를 사도 너무 적긋네...."
하시더니
"순대 6,000원 아치 싸주쇼."
라며 돈을 내게 건넨다.
"할머니, 어딜 가시는데 이렇게 많이 싸가세요?"
라고 물으니 장애인이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보살
펴 주는 동네에 있는 ㅇ시설이 있는데 그곳엘 가신
단다. 난 그곳을 몇 번 다녀왔던 터라
"할머니, 그 곳은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이만큼 사
서는 되지도 않아요. 제가 떡볶이랑 튀김 좀더 싸
드릴테니까 같이 가져가세요."
라고 하자
"아이고, 고맙소. 젊은 양반."
하시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신다. 할머니는 혼잣
말인 듯 내게 하는 말인 듯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우리 아들이 거기 있소. 다 큰 우리 아들이 거기 있
소. 부모가 돼 갖고 아들을 그런데 보내 놓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목구녕으로 넘어가지 않
소. 내가 그놈 때문에 죽고 싶어도 빨리 죽지도 못
하요. 언젠가 한 번 아들 맡기고 거기를 찾았더니 말도 못하는 아들 놈이 나만 쳐다보고 꺼이꺼이 우
는데 가심이 미어집띠다."
잠시 가슴을 치시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같이 살자니 이웃들이 싫어하고 나도 힘들고 어디
아무도 모르는 시골에 가서 집을 하나 얻어살까 생
각도 해보고 별 생각을 다 해보 요. 지 하고 나하고
둘이 살면 그까짓 꺼 못 살겄소? 그것도 맘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살다가 내 죽으면 어쩔 것
이요. 지랑 나랑 달랑 둘 인디 또 지금처럼 그런 디
를 가야하는데 미리 보내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 보
내놓고 내가 이렇게 내 명에 못 살고 죽게 생겼소.
나가 요. 일부러 자주 안 찾아가요. 내중엔 어차피
내 죽으면 보지 못할 것인디, 지금부터 안 보고 살
아야 내중에까정 어메 안찾고 살긋지 않겄소?"
자그마한 포장마차 안에서 할머니 넋두리에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할머니께선 아들이 왜 그런 곳에
왔는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온전치 못한 아들을 미
리 홀로서기 아닌 홀로서기 연습을 시키는 중인 것
같다. 할머니의 눈물이 그치질 않을 것 같아
"할머니, 순대랑 떡볶이 다 식겠어요." 했더니
"젊은 양반 고맙소. 이렇게 많이 싸주고..."
"할머니, 다음에 또 가실 때 들르세요. 그럼 더 많이 싸드릴게요."
"고맙소, 그란디 쵸코파이 한 상자 사서는 안되겄지
라? 전에 가보니 사람들이 많습띠다." 하신다.
"할머니,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가니까 조금만 사가
셔도 돼요."
했더니 그제서야 그 할머니 주름진 얼굴이 순간 밝
아지면서
"아! 순대 식겄다. 나 얼른 갈라요."
하시며 포장마차를 나선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무심
한 햇살은 어디에 숨고 찬바람만 불어대어 할머니
의 굽은 등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지 가슴이 아려
왔다.
나도 포장마차 바깥으로 나와 할머니의 짐을 들어
조금 모셔다 드리고는 그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
는데 괜시리 뜨거운 눈시울에 마른 기침마저 터져
나왔다.